424화 : 96층 클리어
“인코스는 유리하기 때문에, 아웃코스의 출발점이 보다 앞선 위치에 있습니다.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권은 두 분께 맡기겠습니다.”
별의 성좌 스트라비아가 말했다.
-그럼 저희가 인코스로 하죠. 괜찮지, 염훈?
“응. 뭐, 난 상관없는데. 그전에 작전 같은 언 건 안 짜냐?”
염훈이 불안해하며 물었다.
보통 교묘한 작전으로 상황을 극복해 온 은혁이었기에 이번에도 엄청난 작전이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물론, 작전이 있긴 했다.
-어려운 작전은 아니니 미리 설명할 것도 없어. 일단 내 몸체 위에 올라타라.
“정말 비장의 수가 있긴 한 거야? 어떻게 할 건지 모르겠네. 끄응.”
염훈은 약간 불안해하며, 드래곤 파워드 아머 2.0의 등 부분에 올라탔다.
“좋습니다. 각자 위치로!”
은혁과 염훈은 인코스에, 별의 성좌와 시간의 성좌가 아웃코스에 섰다.
“준비…….”
천계의 사자는 어느새 출발 신호용 총을 들고 하늘을 겨누고 있었다.
타앙!
그리고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이겼다.’
두 성좌는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트랙의 허공에 떠 있는 별들은 그냥 장식이 아니라, 실제로 중력과 열을 발생시키는 항성들이었기 때문이다.
별의 성좌는 이 항성들의 중력과 열기를 교묘하게 전부 조작할 수 있었다.
‘즉, 그냥 달려가면 항성들과 전부 충돌하게 될 터. 아무리 빠르고 강력한 존재라 해도 항성들과 연속으로 부딪히는 걸 견딜 수는 없을 것이다.’
별의 성좌는 그렇게 판단했다.
또한, 시간의 성좌는 반대편 트랙 전체의 시간 전체를 늦추고, 이편의 트랙의 시간을 빠르게 했다.
‘미안하지만 질 수가 없다.’
시간의 성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순간.
-96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뭐?!”
두 성좌는 경악했다.
아직 전체 트랙의 10%도 달리지 않은 상태.
그런데도 은혁과 염훈은 골인 지점에 도달해 있었다.
치이이이익……!
드래곤 파워드 아머 2.0은 과열로 인해 전체에서 뜨거운 증기를 내뿜고 있었다.
- [긴급 수리].
파앗!
드래곤 파워드 아머 2.0이 빠르게 수리되었고, 은혁은 그 안에서 나왔다.
“으으, 우리 다 죽을 뻔했다. 안 그러냐, 은혁아?”
“엄살 부리긴. 네 [10초 무적]이 있으면 널널하지.”
“시간으로 따지면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인공 빅뱅을 일으키다니.”
“후후. 세븐 칼리버 제7형태의 힘을 조금 빌렸을 뿐이야.”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두 성좌는 깜짝 놀랐다.
“바, 방금 뭐라고?”
“퓨전 스킬 [빅뱅-인플레이션 부스트]입니다. 쓰는 건 쉬운데, 뒷감당이랑 벡터 통제력을 위해서 드래곤 파워드 아머 2.0을 입었죠.”
그랬다.
은혁은 드래곤 파워드 아머 2.0의 부스터 출력을 최대로 올린 채, 부스터 모드로 전환한 사이오닉 런처에도 블랙 스타의 힘을 조금 흘려 넣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기존의 차원을 펼치면서, 펼쳐지는 차원 계면을 따라 화염을 뿜어내는 스킬인 [플레임 인플레이션] 또한 발동할 준비를 했다.
온갖 무기와 스킬을 덕지덕지 발동할 준비를 마치고 스킬들을 융합했다.
그렇게 탄생한 퓨전 스킬이 [빅뱅-인플레이션 부스트]였다.
블랙 소드과 사이오닉 런처의 힘으로 인공-유사 빅뱅을 최대 출력의 부스터 내부에 생성한다.
후방에서 인공 빅뱅을 터뜨리는 순간에 맞춰, 인플레이션 현상을 유도하고 플라즈마 제트를 생성하기 위해 [플레임 인플레이션]을 발동했다.
모든 스킬이 어우러지자, 우주 창세 순간을 모방한 초월적인 팽창 현상이 발생했다.
별의 성좌나 시간의 성좌도 정확히 추산하기 어려운 초강력 팽창.
그 팽창을 추진력으로 삼아서 가속한 것이다.
“아아…….”
“이, 이럴 수가.”
성좌들은 다차원성계를 원본으로 한 트랙을 보며 경악했다.
‘색깔이 변했다.’
성좌들의 눈에만 보이는 색깔의 변화는, 은혁이 덧씌운, 새로운 우주 배경 복사 때문이다.
“이, 이것이.”
“인간들이 말하는 ‘먼치킨’이라는 건가.”
성좌들은 컬처 쇼크마저 느꼈다.
강함에도 정도가 있어야지, 인공 빅뱅을 만들고 그것을 추진력 삼아서 질주하다니.
항성과 시간을 지배하는 성좌들의 준비 수준을 넘어서 대처하지 못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지금 강은혁의 수준이었다.
할 말을 잃은 두 성좌를 대신해 천계의 사자가 말했다.
“이쯤 되면, 우리가 플레이어를 시험하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가 우리를 시험하는 거군요.”
“음? 원래 그럴 생각이었는데요? 제가 히든 미션을 만든 이유가 그겁니다.”
그랬다.
기존의 노멀 모드를 거절하고, 은혁이 히든 미션을 만들어 역제안을 한 것은 정확히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군요. 근데 빅뱅을 추진력 삼아 달려 놓고도 멀쩡하다니.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하긴. 염훈의 [10초 무적]은 워낙 사기라서요. 녀석이 자기 몸을 보호하면서 저도 보호해 줬습니다. 그 사기 스킬 도움을 많이 받았죠. 안 그러냐, 염훈?”
“아니! 네가 더 사기지!!”
염훈은 펄쩍 뛰었다.
은혁의 [텔레파시]로 미리 [10초 무적] 타이밍을 알려줘서 망정이지, 정말 죽을 뻔했다.
“으음. 두 분은 바로 다음 층으로 가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럴 생각입니다. 준비됐냐, 염훈?”
“물론! 기세를 타고 빨리빨리 끝내버리자!”
그렇게 두 사람은 바로 다음 층으로 넘어갔다.
* * *
-97층 : 광기의 도서관 (지고의 위상)
낡고 거대한 도서관이 있었다.
도서관의 크기는 추량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고, 높았다.
“어서들 오시오.”
구불거리는 촉수가 뭉쳐진 듯한 서기가 다가왔다.
“이 도서관에 있는 것은, 지고의 위상이 그간 저지른 모든 광기의 기록들…….”
촉수가 서가에 꽂힌 책들의 책등을 쓰다듬었다.
“쿡쿠쿠쿠……. 앞으로 저지를 광기의 기록들도 적혀 있지만 하여튼, 여러분 두 플레이어는 이 광기의 공간에 잘 어울리는 존재들이오…….”
그 순간 미션창이 떴다.
<97층 메인 미션 : 광기 재현>
-목표 : 도서관의 책을 한 권 이상 고른다. 그 경우, 책에 담긴 광기와 대면하게 된다. 그 광기를 극복하면 성공.
-성공 시 보너스 : 없음.
-실패 시 페널티 : 없음.
-제한 시간 : 10분.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
촉수 서기가 말했다.
“이 광기 재현 미션은, 둘 중 한 명만 해도 상관없소. 혼자서 한 권을 골라서 광기를 극복한다면 두 사람 모두 클리어요.”
“왜 그런 특혜를 주는 거지?”
은혁이 묻자, 촉수 서기가 쿡쿡 웃었다.
“글쎄올시다. 나야 뭐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한 일이니까. 쿠쿠쿡…….”
“위? 위가 누구지?”
“그거야 직접 알아서 찾아내시든가. 쿡쿡쿡!”
은혁은 자꾸 비웃음을 흘리는 촉수 서기를 물끄러미 보다가 말했다.
“염훈. 이번 미션은 내가 혼자 할게.”
“괜찮겠냐? 같이 하는 게 안전하지 않아?”
“이건 일종의 초대거든.”
“초대?”
“그런 게 있어.”
은혁은 저 촉수 서기가 말하는 ‘위’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뮤비즈.’
최강의 지고의 위상.
회귀 전, 염훈과 은혁을 죽인 존재.
만약 은혁이, 염훈 앞에 선 뮤비즈를 만난다면, 아마 이성을 잃고 즉시 죽이려 들 것이다.
그 경우, 오히려 위험해질 수도 있다.
뮤비즈는 단순히 덩치가 큰 괴물이 아닌, 상당한 지력을 지닌 지고의 위상이었으니까.
“서기여. 뮤비즈의 책을 찾아주시오.”
“직접 찾으시오……. 제한 시간 안에 찾는 것도 미션의 일부요.”
“귀찮게 하네.”
콱!
은혁은 [사이코메트리]로 이곳의 기억을 읽어서 뮤비즈가 쓴 책을 찾을까 했다.
하지만 그 경우 이 광기의 도서관에 있는 광기를 단숨에 빨아들이게 되어 위험하다.
‘무아의 성좌여. 내 목소리가 들립니까.’
‘무슨 일인가.’
은혁은 [텔레파시]로 무아의 성좌에게 도움을 청했다.
‘지고의 위상 뮤비즈를 찾아야 합니다. 광기를 필터링을 해야 하니, 도와 주십시오.’
‘흠. 광기의 도서관인가.’
무아의 성좌가 조금 망설였다.
‘내가 돕는 대신 뭘 해줄 건가?’
‘성좌 연합의 성좌를 모조리 죽여야 할 일이 생긴다 해도, 당신은 죽이지 않겠습니다.’
‘…….’
‘거래하시겠습니까?’
‘하겠다.’
은혁은 지체 없이 [광역 사이코메트리]를 발동했다.
파앗!
광기의 도서관이 지닌 수많은 암기, 광기, 절망, 혼돈의 힘이 은혁의 뇌를 침습하려 했다.
“크하하! 어리석도다! 자만하는구나!”
촉수 서기가 비웃었다.
“네가 그분과 꼭 만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광기의 도서관 속에 그분의 존재를 숨겨 뒀더니, 감쪽같이 당하는구나.”
“급이 낮은 놈은 좀 닥치지 그래?”
“엇……!”
촉수 서기는 당황해했다.
아무리 은혁이 강하다 해도 광기의 도서관 전체의 광기를 훑어보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다.
‘무아의 성좌가 힘을 빌려 주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군.’
은혁의 눈에만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무아의 성좌, 아카식 제로가 광기를 필터링합니다!
사실, 은혁은 아카식 제로의 힘을 빌리지 않고 혼자 할 수도 있었다.
[그림자 분신 9.0]의 힘과 [심연의 심장]을 이용하면 광기를 분산시켜서 흘려보내거나, 오히려 흡수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럼에도 은혁이 아카식 제로의 힘을 빌린 것은 일석이조를 노리기 위해서다.
‘내가 아카식 제로에게 빚을 지면서, 동시에 아카식 제로에게 흔적을 남긴다!’
광기의 도서관은 아카식 제로조차 망설일 정도로 짙은 광기가 감도는 장소다.
아카식 제로가 은혁에게 힘을 빌려 주는 순간, 그 광기의 흔적이 성좌에게도 조금은 남는다.
그 경우, 나중에 정말로 99층에서 성좌들이 염훈의 몸을 빼앗으려는 일이 발생할 때, ‘조준점’을 잡기 편해진다.
‘염훈의 몸과 영혼이 성좌에게 뺏기고 섞여서 구분이 어려울 때, 광기의 흔적이 묻은 아카식 제로와 그 주변은 성좌. 나머지 부분은 염훈이라는 식으로 분리하면 일 처리가 좀 더 쉬워지지.’
즉, 은혁의 정신을 망가뜨리기 위해 준비된 광기의 도서관 스테이지마저, 99층에서 마주할지도 모르는 최악의 경우까지 대비하기 위한 수단으로 쓴 것이다.
‘영악하군, 강은혁.’
아카식 제로는 그런 은혁의 속내를 눈치채고 말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성좌 연합이 99층에서 뒤통수를 치려 한다는 첩보가 있어서.’
‘후후. 아마 지고의 위상 측으로부터 들었겠군. 하지만 그것이 위장 공작, 거짓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나?’
‘어느 쪽이건 조심해야죠. 만사불여튼튼이라는 말도 있고요. 말 나온 김에, 99층에 대해 뭐 아시는 거 있습니까?’
‘후후. 천하의 강은혁도 99층만은 두려운가 보군. 기대하고 있으라.’
‘하하하! 하는 수 없죠. 일단 도와 준 건 고맙습니다.’
그렇게 은혁은 뮤비즈의 책을 찾았다.
“저쪽이군.”
타앗!
은혁은 거대한 서가에 [벽 타기] 스킬을 발동, 수직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정확히 원하는 곳에 멈춘 뒤 한 권을 골랐다.
-뮤비즈의 기록. 포식하는 왕이 될 때까지.
“거창한 제목이군.”
은혁은 책을 펼쳤다.
* * *
드넓은 보라색 공간.
피구름 속의 송곳니의 내부와 조금 비슷했지만, 훨씬 넓고 조용했다.
‘여긴 어디지?’
“잘 왔다. 회귀자여.”
슈르르륵.
회귀 전에 본 것과 같은 뮤비즈가 있었다.
‘아니, 조금 작아.’
‘포식하는 왕’이 되기 이전의 뮤비즈의 모습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