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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426화 (426/434)

426화 : 98층의 전투

“상관이 없다니? 중요한 문제 아냐?”

“아니……? 내가 볼 때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닌데?”

염훈은 설명했다.

“은혁아, 너는 태어나기 전을 기억하냐?”

“불가능하지. 태어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네가 나한테 한 질문이랑, 내가 너한테 한 질문이랑, 사실상 같은 질문 아니냐? ‘이전 세계’를 기억하거나, 그 이전 세계와 상호 작용이 가능하다면 모를까, 다 불가능하다면 뭐…… 의미 없는 일 같다.”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지금! 바로 현재지. 그밖에 다른 건 전혀 관심 없다.”

“…….”

염훈의 올곧은 말을 들은 은혁은 생각했다.

‘염훈 이 녀석. 어쩌면, 내 정체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는 눈치챈 것 아닐까?’

염훈도 지능 자체는 높은 편이다.

은혁의 비정상적인 정보량에 대해 의아해하는 것이 당연하고, 어쩌면 은혁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염훈은 언젠가부터, 은혁이 지닌 정보에 대해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그저 믿고, 믿고, 끊임없이 믿어 줬다.

‘미안하다. 그리고 정말 고맙다, 염훈.’

염훈이 은혁의 속마음을 정말로 아는지 모르는지, 씨익 웃으며 은혁의 어깨를 툭 쳤다.

“근데 이전 세계에 대해서는 왜 물어? 설마, 전생에 내가 왕이었고, 네가 내 노예였다~ 뭐 그런 거냐? 하핫!”

“……다음 층 가자.”

* * *

-98층 : 천상 전투 (드래곤 컬트)

드래곤 컬트의 영역, 선한 성좌들이 머무는 천계, 그리고 지고의 위상들의 본거지가 맞닿는 곳.

그곳을 98층, 천상이라고 불렀다.

다차원성계의 한복판이지만, 특이하게도 ‘하늘’이 있었다.

즉, 위아래의 구분이 있었다.

천상의 위쪽에는 푸른 하늘색.

천상의 아래쪽에는 다차원성계 특유의 검은 진공의 공간과 수많은 항성들이 있었다.

푸른 하늘에 가까워질수록 운명치의 제약이 크게 풀리므로, 3대 파벌 모두가 이곳을 장악하길 원했다.

3대 파벌의 점유율이 늘 엎치락뒤치락하는 곳이지만, 가장 최근에 이곳을 대부분 장악한 이들은 드래곤 컬트였다.

은혁과 염훈은, 90층을 연상시키는 투명한 유리 벽으로 된 방에 전송되었다.

“다시 보게 되는군.”

적룡왕 그랑피네온이 이전처럼 영령의 형태로 다가왔다.

“바로 설명하지. 이곳에서 자네 둘은 내가 지휘하는 군단을 상대해야 한다.”

<98층 메인 미션 : 적룡왕의 군단과의 모의전>

-목표 : 적룡왕 그랑피네온이 지휘하는, 대형급 드래곤 군단을 상대로 싸워서 이길 것. 또는 5분 이상 버티는 경우 성공.

-성공 시 보너스 : 없음.

-실패 시 페널티 : 없음.

-제한 시간 : 5분.

“화끈한 미션이군요.”

은혁이 씨익 웃었다.

그는 이런 걸 바라고 있었다.

적룡왕 그랑피네온은 그런 은혁의 태도를 보고 화가 난 듯 말했다.

“자네, 너무 깔보는 것 아닌가? 내가 직접 지휘하는 용군단은 드래곤 컬트 전체를 통틀어 최강일세.”

“5분만 버티면 되는 거니까요. 그게 아니면.”

척.

은혁은 영체 상태의 그랑피네온을 가리켰다.

“그냥 당신만 쓰러뜨려도 승리 아닙니까?”

“오만하군, 이라고 말해줄 수가 없어서 참으로 갑갑하군.”

98층까지 온 플레이어다.

그것도, 노멀 모드가 아니라, 멋대로 히든 미션을 만들어 시비를 걸어온 자.

즉, 그랑피네온이 은혁의 말에 화를 낼 게 아니라, 은혁에게 미션 난이도를 인정받았으니 자랑스러워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염훈. 준비됐냐?”

“엥? 바로 시작하게?”

“왜, 문제라도?”

“그야, 용군단 규모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나?”

“규모가 뭔 상관이야?”

스윽.

은혁은 세븐 칼리버 제7형태, 블랙 스타를 망설임 없이 꺼내 들었다.

“싹 다 한 방에 쓸어버릴 건데. 아, 반작용이 클 테니까 [10초 무적]은 타이밍 맞춰서 잘 써줘.”

은혁의 말에 대한 반응은, 염훈과 그랑피네온 모두 같았다.

“…….”

기가 막혀서 둘 다 말을 잇지 못했다.

아예 적 앞에서 작전을 다 말한 셈인데, 알고서도 대처하기 어렵다.

“좋은 승부가 될 것 같군.”

파앗.

그랑피네온의 영체가 사라졌다.

-1분 뒤 미션이 시작됩니다!

* * *

그랑피네온의 대형급 드래곤 군단은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총병력 1,500.

대형급으로만 1,500의 드래곤이다.

한 마리 한 마리가 대륙의 재앙급이며, 국가와 민족을 절멸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들.

하지만 그런 1,500마리의 드래곤을 상대적으로 작게 보이게 할 정도로 거대한, 상식 밖의 드래곤이 비행하고 있었다.

스으윽…….

같은 드래곤 컬트의 용왕들 중에서도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적룡왕 그랑피네온.

만약 대형급 드래곤 한 마리의 크기가 팥 한 알갱이 크기 정도 된다면, 그랑피네온은 사자 크기쯤 될 것이다.

레드 드래곤은 다른 드래곤들보다 본래 덩치가 컸고, 대형급 레드 드래곤 한 마리는 더더욱 컸다.

-좌우로 나뉘어 돌격하라.

그랑피네온은 부하 드래곤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부우웅……!

공기가 없는 진공의 공간이었기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날갯짓은 없었다.

다만 날개를 좌우로 쫙 펴고, 의지력과 마력만으로 비행하는 1,500마리의 드래곤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은혁과 염훈은, 좌우 각각 750마리의 양면 포위를 마주했지만, 허공에 뜬 채 가만히 기다렸다.

“네 말대로 다가오네.”

염훈이 말했고, 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드래곤의 오만은 고칠 수가 없어.”

은혁은 블랙 스타를 꺼내 들었다.

“인공 항성 만드는 퍼포먼스가 오히려 역효과였는지도 모르지. 그게 내 최대 능력의 한계라고.”

은혁은 블랙 스타를 휘둘렀다.

파밧……!

단 한 차례의 휘두름으로, 모든 빛이 사라졌다.

위편에 보이던 파란 하늘도.

아래편에 보이던 융단처럼 펼쳐진 무수한 항성들의 빛도.

모든 빛이 사라진 것이다.

먼 곳에서 날아들던 레드 드래곤들은 당황하여 저들끼리 [텔레파시]로 의견을 묻고, 일부는 어둠 속에서 서로 부딪혔다.

본래 드래곤은 빛이 사라져도 적외선 시야 수준으로 앞을 보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은혁의 블랙 스타가 빛을 포함한 대부분의 전자기파를, 단 1초 만에 싹 다 흡수해 버렸기에 적응하질 못했다.

-무슨……! 대피하라! 전원 대피!!

가장 상황을 빨리 파악한 이는 그랑피네온이었다.

자신은 시험하는 쪽이 아니라 오히려 시험당하는 쪽임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드래곤 특유의 여유와 오만함을 넘지는 못했다.

적에게 접근하기 전,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편대 비행부터가 오류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최대한 안 죽게 휘두를 테니까, 알아서 막거나 피하세요. 뭐, 무리겠지만.”

은혁은 그렇게 오만하게 말한 뒤 염훈에게 고갯짓을 했다.

“[10초 무적]! 최대로!!”

파아앗!!

염훈과 은혁을 [10초 무적]의 빛이 감쌌다.

“단 일검에 썰릴지어다, 다차원성계여! [성계 참단]!!”

번쩍!! 번쩍!!

은혁은 블랙 스타를 빠르게 두 번 휘둘렀다.

단, 휘두를 때마다 절반씩, 98층 범위 내에 있는 모든 항성의 힘을 흡수한 것을 분출하며 휘둘렀다.

퀴오오오오오오오……!!

그랑피네온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열의 벽이 생겨났다.

얇게 압착된 열의 벽은, 블랙 소드를 두 번, 최대한 위력을 압축해서 휘두른 궤적이었다.

-아……!

그랑피네온은 자신이 좌우의 열벽에 갇혀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매우 특이한 체험이었다.

날개 달린 드래곤으로서 좌우에 생긴 벽에 갇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까짓거 벽을 부수거나, 아예 높이 날아올라서 벗어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은혁이 단 2회에 걸쳐 검을 휘둘러 만든 초고열의 벽은 부수는 것이 불가능하고, 더 높이 날거나 아래로 날아서 벗어나는 것도 불가능했다.

쿠류루루루루루루……!!

좌우에서 차원이 들끓는 소리가 났다.

이제, 은혁이 블랙 스타를 거두어도, 은혁이 98층에 입힌 이 검격의 자국은 영원토록 차원의 상흔으로 남을 것이다.

아마 그 거칠어진 상흔을 따라 마력이 몰리고 성간 물질이 둥둥 떠다닐 터.

-크어억……!

한 박자 늦게 그랑피네온은 고통을 느꼈다.

검격이 입힌 차원의 상흔 때문에, 그사이에 갇힌 그랑피네온의 마력이 벌써 뒤틀리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몸이 좌우의 검격 쪽으로 몰리고 있었다.

그랑피네온은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좌우에서 당기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쿠오오오오……!!

퀘에에에에엑……!!

좌우에서 부하들의 절규가 들려왔다.

은혁의 공격에 직접 당한 드래곤은 단 하나도 없었지만, 블랙 스타가 차원을 휩쓸고 간 여파만으로도 온몸을 뒤트는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거, 시끄럽네. 빨리 기절들 안 합니까?”

어느새 그랑피네온 앞 10m 지점으로 다가온 은혁이 투덜거렸다.

은혁도 맨몸으로는 견딜 수가 없는지, 염훈이 걸어준 신성 스킬이나 새로 얻은 방호 스킬을 덕지덕지 두르고 왔다.

“한 방에 보내드릴 테니까 움직이지 마십쇼.”

철컹.

은혁은 블랙 스타를 칼라미티 해머로 전환시켰다.

은혁이 만든 화염의 장벽이 즉시 소멸했다.

-지금이다!! 쳐라!!!

그랑피네온이 찢어지는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쿠오오오오오오오!!!

썩어도 준치라고 하듯, 그랑피네온의 부하들은 드래곤이었다.

여전히 고통 속에서 꼼짝하기도 힘들었으나, 화염의 벽이 사라진 순간, 가까이 나타난 은혁에게 단 한 번의 일격은 가할 수 있었다.

물론, 가장 자신 있는 화염의 브레스 공격.

화아아아악……!!!

캄캄한 공허의 공간에, 좌우에서 안쪽으로 해바라기가 피어나는 듯했다.

찰나의 순간이었건만, 은혁은 그 순간에서도 싱긋 웃었다.

“[재난의 심장] 최대 활성화.”

우우우웅……!

은혁의 [재난의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

재난의 성좌의 차원 속 본체보다 수백 배 강한 재난의 힘을 내재한 채 공명했다.

그 공명은 칼라미티 해머와 맞닿았고, 은혁을 중심으로, 자신을 향한 포위망까지의 영역이 이미 재난의 차원으로 변했다.

“[빙천신공] + [사이오닉 필드] 융합.”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절대영도 아포칼립스].”

범위 안의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1,500마리의 드래곤이 뿜어내는 화염의 숨결조차 얼어붙었지만, 사실 잘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범위 안의 개체뿐만 아니라 공간까지 통째로 얼려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얼음덩어리의 질량은 추산하기가 불가능할 정도.

이 정도 질량의 얼음이면 스스로 붕괴해야 정상이지만, 은혁의 마력이 유지하고 있는 동안은 멀쩡했다.

-으……으윽.

그랑피네온은 경악했다.

하지만 은혁의 기술은 끝나지 않았다.

“[재난 흡수].”

파앗!!

은혁이 만들어 둔 얼음이 모조리 칼라미티 해머에 흡수되었다.

후두둑.

후두두둑.

강제로 얼려졌던 드래곤들은 죽지는 않았지만 일종의 동면 상태에 빠졌다.

무중력 공간이었으나, 은혁이 처음 블랙 스타를 휘둘러 만든 차원의 상흔 궤적을 따라서 흘러 내려갔다.

마치, 길가에 생긴 도랑으로 낙엽이 후두둑 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현상.

“제가 상대해 보니까, 좋게 말할 때 항복하라고 하면, 꼭 최후의 필살기가 남았다~ 이런 식으로 막 더 싸우려 들더라고요. 그래서 항복을 권하지 않고, 그냥 한 방으로 기절시키겠습니다.”

우주급 냉기의 재난이 충전된 칼라미티 해머의 일격은, 그랑피네온도 강제 동면시킬 정도로 강력했다.

-항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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