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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430화 (430/434)

430화 : 100층탑 최종 미션 (1)

-그런 의미는 아니다. 어차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해도 납득하지 못할 테니, 예시를 들어 보지. 너는 관측 가능한 우주 너머를 볼 수 있나?

“불가능합니다.”

-왜지?

“인간의 시야 너머의 것이니까. 그리고 너무 광대하니까. 설령 다른 장비의 도움을 받아 우주 너머를 보더라도 온전하게 인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니까.”

-그런 거다.

“그래도 허공에 말하려니 좀 기분이 이상하군요.”

-가능한 성실히 답변하겠다고 약속하마. 이제, 질문해라.

“100층탑은 왜 만든 겁니까?”

-인간을 플레이어로 만들어 시련을 주고, 극복시키고, 더 높은 존재로 성장시키기 위함이다.

“더 높은 존재라 함은?”

-초월자, 혹은 그에 근접한 존재를 말한다.

“그럼 저와 염훈은 그 정도로 높은 존재가 된 겁니까?”

-후후. 네 생각은 어떻지?

“어느 정도 성장한 것 같긴 한데…….”

-그럴 거다. 기존의 인간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강해졌으나 초월자에 이르진 못했지. 뭐, 100층탑에도 한계는 있으니까.

“그럼 당신은 실패한 거군요.”

은혁이 툭 쏘는 말투로 말했지만, 초월자는 화난 기색이 아니었다.

-실패라. 그럴지도 모르지.

“실망스럽겠군요?”

-후후. 싸우는 자답구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초월자에게도 싸움을 걸듯 말하는구나.

“…….”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라고 하면, 주사위는 왜 굴리나?

“주사위요?”

-그래, 주사위 말이다. 6면체 주사위를 굴리다 보면 원하는 눈이 나올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지. 정확히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고, 일단 굴려 봐야 아는 거야. 그 결과가 초기 목적과 많이 달라졌다 해서 실패라고만 할 수는 없지.

초월자는 마치 뜻대로 되지 않아서 기쁘다는 듯이 말했다.

-설마. 회귀자가 모든 걸 클리어하다니. 이는 전혀 예상 밖의 일이다. 하하하!

초월자는 은혁이 회귀자라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제가 클리어하면 안 됩니까?”

-안 될 건 없지. 앞서 말했듯 솔직히 놀랍구나. 따지고 보면, 너는 온몸으로 내 초기 목적과 맞서 싸운 셈이구나.

“하하하!”

-깨달음의 웃음 같구나?

“아까 주사위 이야기도 그렇고, 초월자라고 해도 절대자는 아닌가 보군요. 관리국 시켜서 100층탑을 만들 때, 저 같은 존재가 나올 것을 미리 다 예측한 건 아닌가 봅니다?”

-그렇다. 초월자라고 해서 모든 걸 다 아는 것은 아니다. 너희가 이 100층탑에서 무엇을 경험할지, 어떻게 성장할지…… 전부 다 아는 것은 아니다.

“하긴. 더군다나 초월자가 직접 100층탑을 제작한 게 아니라 관리국을 시켜서 만든 거라면 더욱 그렇겠군요.”

-그러하다. 너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대화하는 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럼, 제게서 뭘 원합니까.”

-너, 강은혁이라는 개체에 대한 큰 목적은 딱히 없다. 굳이 따지자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소소한 대화 그 자체를 원했다. 그리고 마지막 선택지를 주는 것뿐이다.

“선택은 오기 전에 이미 했습니다만.”

-소원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완전히 다른 선택이다.

“그게 뭔가요?”

-강은혁 플레이어. 그전에 묻겠다. 이 100층탑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깨달았는가?

“한계.”

-한계라고?

“네. 저는 제가 한계를 지닌 존재이며,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놀랍군. 자네는 100층탑 전체를 통틀어, 유일한 ‘모든 직업’의 소유자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할 수 있는 게 늘어나고 있다. 또한 회귀자로서 두 번째 삶을 살기에 보다 많은 지식과 경험을 지니고 있다.

“네. 압니다.”

-또한 자네는 강력한 모든 플레이어를 꺾었으며, 성좌, 드래곤, 지고의 위상은 물론, 관리국조차 발아래 둘 수 있다. 그런데도 한계를 느낀다고? 그것이 초월자 앞에서 드러낼 가장 큰 깨달음이란 말인가?

“네. 그리고 저는 그 사실이 굉장히 자랑스럽습니다.”

-설명해 보게.

“100층탑의 100층은, 일종의 완성된 영역을 상징하지요. 더 오를 필요가 없는 정점…….”

은혁은 초월자의 공간에서도, 평소처럼 고개를 들어 높은 곳을 올려다봤다.

“저는 그 100층에 왔음에도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 사실이 만족스럽군요.”

은혁은 성장 가능성 그 자체를 사랑하는 플레이어였다.

완전성이나 절대성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누군가가 그런 것을 주려고 한다면?

은혁은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불완전성에 대해 만족한다는 것인가?

“아뇨.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는 겁니다.”

은혁은 주먹을 움켜쥐며 웃었다.

“저는 쉽게 만족하지 않습니다. 한계를 인정한다는 건, 불만족 속에서 정진하되, 동시에 그것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모순처럼 들릴지도 모르겠군요.”

-잘 알았다. 혹시 지금 당장 초월자가 될 수 있다면, 되고 싶은가?

“아뇨.”

은혁은 즉답했다.

-왜지? 초월자가 되면, 너와 네 동료가 고민했던 소원을 더 많이 이룰 수 있게 된다.

“초월자라고 해서 모든 주사위 굴림의 결과를 다 처음부터 아는 건 아니죠?”

-아까 말했듯이, 그렇다.

“거기에 하나 더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초월자가 되려면 반드시 당신의 제안을 받아야만 하는 겁니까?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초월자에 도달하는 게 가능합니까? 아니면 뛰어넘는 것도 가능합니까?”

은혁은 다른 방식으로 초월자가 되거나 뛰어넘을 수 있다는 답이 나올 거라고 기대하고 물었다.

-놀랍군.

“또 뭐가요?”

-너와 같은 식으로 말한 자가 이전에도 있었다. 너희 지구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완전히 다른 세상이…….

은혁은,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놀라지 않았다.

은혁의 차원에 대한 지식은 상당했고, 은혁은 이 우주가 아닌, 완전히 다른 우주에는 또 다른 가능성을 품은 지구가 있을 거라고, 내심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 그 다른 지구에 있다던 그 사람은 어떻게 됐습니까?”

-도발적인 어조로, 우리 초월자들의 대리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쏟아 낸 뒤 지구로 돌아갔지.

“음? 초월자‘들’이라고요?”

-후후. 그렇다. 초월자는 나 혼자가 아니다. 다수의 초월자들이 존재하고 있지. 이 100층탑은 초월자들이 진행 중인 프로젝트 중 하나일 뿐.

“다른 우주에서도 인류의 수준을 끌어 올리려 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그렇다.

“미안한 마음은 없습니까?”

-후후후. 인류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멋대로 100층탑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 말인가?

“그렇습니다.”

-물론 초월자들 중에 그러한 의견을 보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너희 인간들도 때때로 부모는 자식을 때려서라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 하지 않나?

“오만하군요, 초월자여. 당신이 인류의 창조자가 아닐진대 어떻게 부모의 비유를 듭니까?”

-허! 그것도 그렇군.

“……초월자라고 해서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자인 줄 알았더니만 꼭 그렇진 않군요.”

-그럴 수밖에. 초월자 중 대다수는 너 같은 존재였으니까.

“흠. 그건 좀 재밌군요.”

-하지만 초월자끼리의 싸움은 제한되어 있다. 괜히 나한테 싸움 걸고 싶어서 초월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거두도록.

“뭐, 그럼 됐습니다. 초월자가 되는 선택지는 정식으로 거부하겠습니다.”

-그렇군.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부탁과 플레이어로서의 요구 사항이 하나씩 있는데요.”

-부탁과 요구? 궁금하군.

“우선 부탁부터. 제 동료인 염훈이 지금 소원을 뭘 빌까 고민 중입니다.”

-음. 알고 있다.

“그 녀석한테 가서, 소원 개수 좀 늘려 주시죠.”

-막 나가는 요구를 하는군.

“정당한 요구입니다.”

은혁은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제가 회귀자인 것을 아실 겁니다.”

-그렇다만?

“회귀 이전에도 이 100층탑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회귀한 이후인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살아서 모든 걸 보고 관측한 이상, 회귀 전의 일들이 없었던 일로 치부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일리 있군. 그러므로 너는 회귀 전 사람들의 몫까지 계산해서 소원을 여러 개 이룰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를 하는 건가?

“물론 저 혼자 특혜를 볼 수는 없겠죠. 그러므로 염훈에게 소원을 빌 권리를 여러 개 제공해 달라고 하는 겁니다.”

-후후. 염훈은 네 친구이니, 사실상 네가 특혜를 보는 게 아닌가 싶다만.

“그렇게 보셔도 할 말은 없습니다. 다만 소원의 개수를 늘려주신다면, 특별히 염훈에게 특정 소원을 이뤄 달라는 식의 부탁을 하진 않겠습니다.”

-흠, 뭐 사실 별 상관없다. 그렇다 쳐도, 괜찮겠나?

“뭐가 말입니까?”

-자네 친구인 염훈도 좀 엉뚱한 인간 같더군. 소원의 개수를 두세 개 정도로 늘려 주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 경우 인류는, 내 100층탑 실험보다 훨씬 큰 변화를 맞게 될 걸세.

은혁은 씨익 웃었다.

“저는 제 친구를, 말 그대로 죽어도 믿습니다!”

-좋다, 강은혁. 염훈에게 3개의 소원을 빌 권리를 주도록 하지. 그가 소원을 빌더라도 너는 그것을 번복할 수 없으며, 특정 소원을 이뤄 달라 요구할 수 없다. 동의하나?

“기대되는군요. 동의합니다. 그럼 부탁은 끝났으니, 마지막으로 한 가지 요구를 할까 합니다.”

-후후후. 궁금하군. 왠지 엄청 재미있는 요구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생각이 일치했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하! 그럼 해봐라, 100층탑을 정복한 자여! 이 초월자에게 무엇을 요구하려 하는가?

* * *

파앗!

은혁은 다시 100층으로 돌아왔다.

고뇌하던 염훈은 은혁을 돌아봤다.

“아, 마침 잘 왔다, 은혁아. 나……!”

파앗!

역으로, 이번에는 염훈이 어디론가 전송되었다.

염훈에게 소원 3개가 주어지는 대신, 은혁의 조언을 받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오? 다시 돌아오셨군요?”

총관리자가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총관리자는, 은혁이 당연히 초월자가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종 미션이 남아서 돌아왔습니다.”

은혁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최종 미션?”

총관리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히든 미션에 관한 정보가 있었지만, ‘최종 미션’이라는 용어는 들어본 바가 없다.

수상함을 느낀 총관리자가 조금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러고 보니 염훈 플레이어는 어디로 간 겁니까? 당신이 다른 곳으로 옮긴 겁니까?”

“아뇨. 초월자와의 약속 때문입니다. 초월자가 염훈을 방해받지 않을 곳으로 잠시 옮겼을 뿐.”

“약속……?”

총관리자로서는 불길한 소리였다.

은혁이 설명했다.

“저는 초월자에게 부탁과 요구를 했고, 초월자는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염훈이 사라진 건 제 부탁 때문이고, 제가 다시 나타난 건 요구 때문이지요.”

“요구? 초월자에게 무엇을 요구한 겁니까?”

“100층탑의 유일무이한 총관리자 자격에 관한 도전권.”

“……네?”

“총관리자 알파레몬 님. 나, 강은혁은 당신에게 총관리자의 직위를 걸고 도전합니다.”

<100층탑 최종 미션 : 100층부터 1층까지>

-목표 : 100층부터 1층까지 생성되는 ‘중앙 계단’을 타고 내려가, 1층까지 가장 먼저 도착하는 자가 승리. 반드시 100층에서 시작하여, 모든 층을 순차적으로 거쳐 1층에 도달해야 한다.

-성공 시 보너스 : 100층탑의 총관리자가 된다.

-실패 시 페널티 : 패배한 쪽은 영원히 총관리자가 될 수 없다.

-제한 시간 : 5분.

미션창은 은혁뿐만 아니라, 총관리자의 눈에도 나타났다.

“뭐, 뭐야, 이 쓰레기 같은 미션은!!”

총관리자가 여유를 잃고 화를 냈다.

“어허, 무려 초월자가 직접 내려준 미션입니다. 경의를 표하셔야죠?”

실제로 최종 미션 내용은 은혁과 총관리자가 합의하에 만든 것이었다.

“총관리자 지위라니! 그, 그건 결코 양도될 수 없는 겁니다!”

“하하! 엄청 여유를 잃으셨군요.”

은혁은 100층을 잠시 돌아봤다.

“뭐, 초월자가 허락한 것이니, 거부해 봤자 소용이 없을 겁니다.”

그 순간.

파앗!

관리국 본부가 갑자기 빛을 발했다.

은혁이 통합길드장이 되었을 때와 비슷한 황금빛.

그 빛은 100층뿐만 아니라 100층탑의 모든 것을 비췄으며, 플레이어와 NPC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닿았다.

-100층탑 최종 미션이 개방되었습니다!

-5분 뒤 100층탑 최종 미션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동안 하던 일을 멈추고, 100층탑 최종 미션을 확인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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