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1화 : 100층탑 최종 미션 (2)
빛이 사라지고, 총관리자는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서 있었다.
철컹! 철컹!
100층의 중심부 바닥에 원형 계단이 생성되었다.
그 계단은 99층, 98층, 97층…… 1층까지 생겨났다.
거대한 통합층의 경우, 그 규모를 반영하여 보다 긴 층계로 구성되었다.
“읏차.”
은혁은 계단을 보며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마지막 미션이 달리기. 그것도 위에서 아래로 달리는 미션이라니. 하하.”
아이러니함 그 자체였고, 그래서 초월자와 은혁 모두 이 미션을 만드는 데 동의했다.
아득바득 100층까지 올라온 플레이어에게, 모든 걸 걸고 다시 1층까지 빠르게 내려가는 것을 요구하는 미션.
그것도 플레이어 혼자 내려가는 게 아니라, 100층에 머물며 모든 걸 관리하던 총관리자와 함께 경쟁하며 빨리 내려가야 한다.
아이러니함이 가득한 미션.
그것이 최종 미션이었다.
“……포기하십시오.”
총관리자가 적개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총관리자입니다. 100층탑의 모든 것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미션을 무효화할 수는 없을 텐데요.”
“그렇지요. 하지만 속도는 지배할 수 있습니다.”
스팟!
은혁과 대화하던 총관리자는 어느새 은혁의 뒤편에 섰다.
은혁조차도 그 잔상만 겨우 감지했을 뿐.
‘빠르군.’
은혁에게 준비 시간이 더 있었다면, 총관리자와 싸워서 이기는 것도 가능했을 터.
하지만 총관리자는 여전히 시스템에 대한 지배력을 지니고 있다.
‘한 3일만 심연에서 더 수련하고, 추가로 3일 정도 3대 파벌을 상대로 실전 대련을 한다면…… 그땐 내가 확실히 이길 테지만.’
당장 싸운다면, 실력 격차가 6일 정도 부족하여 패배할 것이다.
“무슨 생각인지 빤히 보이는군요. 나와 싸우는 상상 중이겠지요?”
“후후. 티 많이 납니까.”
“파괴력은 강은혁 플레이어가 위입니다. 하지만 총관리자인 저와의 싸움은 단순 파괴력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게 아닐 터!”
“동의합니다. 그래서 이번 미션은 싸우지 않고 순수하게 빨리 내려가서 이길 생각입니다.”
“실패할 게 뻔한 소리를. 포기하지 않겠다면 단숨에 이길 뿐입니다.”
두 사람은 중앙 계단 앞에 섰다.
100층부터 1층까지를 관통하는, 추상과 물질이 반쯤 섞인 계단.
물리적 특성은 일반 계단과 비슷하지만, 초월자의 의지가 개입된 계단이므로 의미가 각별했다.
일반적으로 원형 계단은 바깥쪽보다는 안쪽에 서는 편이 아주 조금 더 빨리 내려간다고 하지만, 이미 두 사람에게는 그 정도는 별 의미가 없었다.
총관리자는 은혁에게 안쪽 코스를 양보하며, 속으로는 권능을 발동할 준비를 갖췄다.
‘절대 질 수 없다.’
총관리자는 생각했다.
‘이 100층탑은 내 모든 것이다. 내가 짓고 키우고 유지해 왔다. 이걸 빼앗길 순 없다.’
총관리자는 최후의 순간이 되고서야 솔직해질 수 있었다.
냉철함을 위해, 익명의 존재가 되기 위해 가면을 쓰고 다녔지만, 사실은 총관리자로서 활약할 때 행복을 느끼곤 했다.
-출발까지 5초 전…….
-4초 전…….
-3초 전…….
-2초 전…….
-1초 전…….
-출발!!
파앗!
두 사람은 출발했다.
‘내가 이겼다.’
은혁과 총관리자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절대 권능 리미터 해제].”
총관리자가 먼저 고유 스킬을 발동했다.
100층탑 내부에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힘.
너무 강력한 힘이기에 절대 권능 리미터를 스스로 걸어둔 상태.
그러나 이것이 정말 최종 미션이라면 그런 걸 걸어둘 필요가 없다.
-총관리자의 [절대 권능]이 복원됩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총관리자가 선언했다.
“[절대 권능] 발동. 100층탑의 시간을 정지시킨다. 오직 총관리자만이, 정지된 시간 속에서 움직일 수 있다.”
우뚝!
은혁의 몸이 멈췄다.
아니, 완전히 멈추진 않았다.
뚜드드드득……!
[심연의 심장]을 지닌 은혁이었기에, 정지된 시간 속에서도 심연의 힘을 연료 삼아 인위적으로 달려 나가는 게 가능했다.
뿐만 아니라 [타임 스톱]이나 [미완성 시간 되감기]를 비롯해 각종 시간 관련 스킬도 습득했기에, 총관리자의 [절대 권능]조차 곧 있으면 풀릴 터.
‘과연 강은혁. 관리국의 통제 수준을 확실히 뛰어넘은 지 오래군.’
총관리자는 내심 찬탄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에게 도전하지 않았다면, 서로 좋게 완만하게 끝났을 텐데.’
총관리자는 은혁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이 대결을 즉시 끝내기로 했다.
“[절대 권능] 발동. 나, 총관리자가 인식하는 100층부터 1층까지의 거리만을, 단 한 걸음 거리로 압축시킨다.”
아예 자기 기준의 공간 자체를 좁혀 버리는 꼼수.
파앗……!
‘보인다!!’
총관리자의 눈에만 계단 아래가 보였다.
한 걸음, 한 계단만 내려가면 바로 1층에 도달하게 된다.
뚜드드드드드드……!!
은혁의 느려진 몸이 보다 빠르게 회복되었다.
“큭, 시간 정지인가……! 꽤 오래 정지된 것 같군.”
은혁이 화를 내며 회복하는 것을, 총관리자는 일부러 몇 초 기다려 줬다.
그래야 자신의 마지막 말이 그의 귀에 들릴 것이므로.
“끝입니다. 강은혁 플레이어.”
선언한 뒤, 한 걸음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하지만.
-성좌 연합이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지고의 위상들이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드래곤 컬트가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뭐?”
투쾅!!!
[절대 권능]으로 공간을 압축한 것이 무효화되면서, 총관리자의 발이 갑자기 위로 튕겨 버렸다.
압축되었다가 급격히 원상 복원 된 공간에 의해, 총관리자의 몸은 통째로 스프링에 튕겨 나가는 것처럼 천장까지 날아갔다.
“커헉!!”
100층의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고 바닥에 다시 떨어졌다.
“뭐, 뭐……!”
총관리자는 뒤늦게 깨달았다.
관리국이 100층탑을 총괄하는 것은 사실이나, 3대 파벌 구성원들 또한 이미 신이거나 그에 준하는 고차원적 존재들이 다수다.
3대 파벌이 한 마음으로 총관리자의 권능 행사에 비토권을 행사하면, 한두 번 정도는 정면으로 반발할 수 있다.
그래서 총관리자의 [절대 권능]을 사용한 공간 압축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하하하하! 내가 괜히 3대 파벌을 하나도 안 죽이고 흡수한 줄 알았습니까? 하하하하!”
은혁은 웃음소리를 흩뿌리며 뛰어 내려갔다.
99층…….
98층…….
97층…….
-서둘러라!
-여긴 우리가 막겠다!
-총관리자보다는 네놈이 이기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드래곤, 성좌, 지고의 위상들이 영체 상태로 모여 외쳤다.
“고맙습니다! 근데 다들 괜찮겠어요? [절대 권능]을 거부하면 운명치를 싹 잃어버릴 텐데?”
3대 파벌이 본체가 아닌 흐릿한 영체 상태로 나타난 것도 그런 이유다.
-네놈이 총관리자가 되면 다 복구시켜 줄 거 아닌가?
-어차피 우리에겐 달리 선택지가 없다.
-하여간 일단 이겨라!!
“하하! 그럼 되겠군요. 꼭 이기겠습니다! 그럼 갑니다!”
파바바바바박!
은혁은 어느새 91층까지 도달했다.
“용서 못 한다 네놈드으으을!!!”
100층에서 총관리자가 귀신처럼 외치며 뛰어 내려왔다.
쿠콰콰콰콰콰콰콰콰콰……!!
총관리자가 뛰어 내려오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계단이 박살 났다.
“후후.”
은혁은 90층을 지나 89층에 돌입했다.
70층~89층 영역은 3군주 세력의 끝없는 전쟁의 영역.
지금은 길드연합국이 3군주 세력까지 흡수하여 규합해 뒀다.
“준비!!!”
은혁이 외쳤다.
은혁은 뛰어 내려오며 [텔레파시]로 명령 내렸다.
주둔하고 있던 길드연합국의 병력과 3군주 휘하의 연합 병력은 스킬을 마구 쏟아 냈다.
“[무한의 축복]!!”
“[초가속의 성화]!!”
“[엔드리스 윈드]!!”
“[러시 오브 이터니티]!!”
파앗! 파앗!
파앗! 파앗!
주로 은혁에게 걸어 주는 버프였다.
포션조차 필요 없어진 지 한참 된 은혁이었지만, 3군주의 영역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걸어 주는 개별 버프는 그 자체로 강력한 조력이었다.
“야! 고맙다! 아는 얼굴들이 많군!”
은혁은 그렇게 외친 뒤 [텔레파시] 스킬로 일일이 감사 인사를 던졌다.
은혁이 자신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한 플레이어들은 환호를 내질렀다.
얼마 전까지 적이었던 3군주 측 플레이어들은 화풀이 삼아 은혁의 뒤편을 향해 공격과 디버프를 날렸다.
“우리의 힘을 보여 주마!”
“총관리자 놈! 못 오게 계단 구멍을 확 막아 버려!!”
투콰콰콰콰콰……!!
온갖 스킬이 계단 위편을 향해 치솟았다.
“크와아아악!!”
분노한 총관리자가 일갈하자, 그것만으로도 그를 방해하는 스킬은 마구 튕겨 나갔다.
그때, 누구도 예상 못 한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파앗!
미치오였다.
미치오는 은혁의 옆으로 따라 달리며 그를 원망 섞인 눈으로 바라봤다.
“이 거짓말쟁이 놈.”
“딱히 거짓말은 안 했습니다. 3일 ‘뒤에’ 같이 천상황제를 치러 가자고 했지, 그전에 뭘 하건 그건 제 자유죠. 아, 참고로 천상황제도 꺾었습니다. 놈이 먼저 덤벼서 그런 거니 양해 바랍니다.”
“……어떤 식으로든 네가 천상황제를 꺾고, 100층까지 클리어했다면 나는 더 할 말이 없군. 네 승리다.”
“그럼 총관리자 좀 막아 주시죠.”
“한 10초나 막을 수 있을까? 대신, 그동안 너와 나 사이의 모든 원한을 잊어 준다고 약속해다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좋다.”
파앗!
미치오는 총관리자를 막아섰고, 은혁은 69층 구간으로 뛰어 내려갔다.
* * *
60층~69층 구간은 파괴된 다차원성계의 텅 빈 공간.
기묘한 중앙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고, 은혁은 그것을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무중력 공간이라 뛰어 내려가기 좀 갑갑하군.”
은혁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꼼꼼하게 계단을 밟으며 내려갔다.
쿠르릉……!
쿠쿠쿵……!
계단 위쪽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후두두둑.
가면의 파편이 위에서부터 떨어졌고, 은혁은 위를 올려다봤다.
-쿠아아아아아아!!!
“음.”
은혁은 위쪽을 보고 긴장했다.
세븐 칼리버 제7형태 제작에 도달한 이후로 처음으로 놀랐다.
‘저게 총관리자의 진짜 모습인가?’
총관리자의 진짜 모습은 수많은 문자로 이뤄진 거신에 가까웠다.
키는 대략 10미터 정도.
몸체는 은혁도 읽을 수 없는 난해하고 혼란스러운 문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모순되지만, 아무리 혼란스러울지언정 문자로 만들어진 이상 나름의 규칙을 지니고 있었다.
‘저것이 총관리자의 본성이구나. 아마도 본래는 강대한 정보 생명체였겠지.’
그러다 초월자의 눈에 들어, 가면의 활용법을 익히고 총관리자가 된 것이리라.
‘싸우려면 싸울 수는 있지만, 힘들겠군. 더 빨리 내려간다!’
은혁은 60층~69층의 모든 어둠을 향해 그림자의 심상을 확장시켰다.
“이곳의 모든 어둠을 나의 분신으로 삼겠다! [그림자 분신 9.0]!!”
파앗! 파앗! 파앗!
그림자 분신이 새로운 그림자 분신을 만드는 기법으로 수백, 수천의 분신을 순식간에 만들어 냈다.
화아아아아악……!!
무수히 많은 그림자 분신은, 그대로 어둠의 군체가 되어, 다차원성계의 어둠과 융화되었다.
즉, 60층~69층에 존재하는 가득한 어둠이 곧 은혁의 분신 무리가 되었다.
-캬아아아아아……!!
총관리자의 울부짖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오래 버틸 수 있겠지.’
은혁은 59층으로 달려갔다.
* * *
은혁은 59층의 화산지대에 내려서자마자, 용암 속으로 몸을 던졌다.
풍덩!
걸쭉한 용암은 살을 태워야 했지만, 은혁은 그 힘을 몸과 블랙 스타로 흡수할 뿐.
쩌저저적……!
용암 지대의 온도가 급속도로 낮아지며, 용암 지대가 딱딱한 화산암 지대로 굳어 버렸다.
“읏차! 다음!”
은혁은 지체 없이 58층으로 뛰어갔다.
58층은 기가 스틸 성채였다.
“앗!”
“강은혁 님이시다!”
58층에는 불패불굴 길드원들이 주재하고 있었다.
58층의 기가 스틸을 가공하는 임시 공업 지대는, 이전에 60층~69층을 돌파하기 위해 세웠던 곳인데,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다 비켜! 대피해라!”
“넵!!”
길드원들은 가타부타 더 묻지도 않고 탈출했다.
“으럅!!”
은혁은 블랙 스타를 휘둘렀다.
서거걱!!
콰콰콰쾅!!
기가 스틸은 강력한 힘에 의해 순식간에 썰려 나갔다.
정교하게 정신을 집중할 시간조차 아끼기 위해, 은혁은 부하들을 대피시키고 스테이지 전체를 썰어 재낀 것이다.
“다음!”
은혁은 사이오닉 필드를 위로 펼쳐서, 기가 스틸 조각들을, 이미 지나쳐 온 머리 위 계단 통로에 단단히 쑤셔 박았다.
“흡! 녹아라!”
은혁은 방금 흡수한 용암의 에너지를 [적류초열공]과 [화염 지배]의 힘으로 다뤄서, 기가 스틸을 초고열로 녹여 버렸다.
화르르르르륵!!
“마지막으로 [빙천신공]!”
쩌저적……!!
계단의 통로는 구멍 하나 없이 단단히 막혀 버렸다.
‘이걸로 30초 이상 벌었다!’
은혁은 다음 층으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