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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433화 (433/434)

433화 : 100층탑 최종 미션 (4)

“오오.”

“굉장하다.”

엘프들은 감탄했고, 국왕은 신음했다.

“이보시오. 그게 정말 효과가 있는 일이오?”

“잠깐 동안은 효과가 있겠죠.”

꾸궁…….

은혁의 귀에만 그림자를 통해 소리가 들려왔다.

‘56층에서 난 소리다.’

56층의 보안관에게 부탁한 바 있었다.

총관리자가 56층을 뚫고 아래로 내려가면, 신호를 위해 총을 쏴달라고.

현재 은혁이 36층 지점에 있으니 꽤 거리가 벌어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총관리자가 그리 만만할 리가 없지. 그자도 뭔가 한 방에 역전할 수를 갖고 있을 터.’

“서둘러 가봐야겠군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폐하.”

“오오, 행운을 빌겠소.”

은혁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35층인 명상의 방을 통과하며 아카식 제로의 조언을 받았다.

-주의하라, 강은혁. 총관리자가 이상한 술수를 부리고 있다.

“그게 뭡니까?”

-계단을 직접 걷는 대신, 자신을 계단과 동조화시켜서 투과하는 방식을 쓰고 있는 듯하다. 그가 오래 걸리는 이유는 실제로 네 방해 공작이 효과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계단의 특질을 분석하느라 오래 걸리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군요. 그에 따른 제안이 있습니까?”

-지금 네가 하는 것처럼 더 빨리 내려가는 것 말고는 없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위대한 성좌여.”

-후후. 네 승리를 기원하마.

은혁은 계단을 뛰어 내려가 34층인 악어의 강을 빠르게 통과했고, 잠든 공주와 일곱 난쟁이 미션이 있던 33층도, 거미의 숲인 32층도 빠르게 지나쳤다.

‘이미 핵심 요소들을 클리어한 곳이라 그런가, 34층, 33층, 32층은 심심하군.’

하나하나가 염훈과의 추억이 얽힌 곳이지만, 지금은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그리고 31층이다.’

31층은 범인 찾기 관련 미션이 있던 곳으로, 과거의 사건이 각색된 기억이 담겨 있는 곳이다.

은혁은 이곳에서 100층탑 강림의 순간에 관한 각종 비밀을 얻어 낼 수 있었다.

“허허, 오랜만입니다.”

31층의 진행자가 웃으며 은혁을 맞이했다.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제가 가진 건 이야기 대본뿐입니다만.”

“그게 필요합니다.”

“뭐에 쓰시려고?”

“계단에 바르려고.”

은혁은 자신이 지나온 중앙 계단의 통로를 무식하게 막는 방식으로 총관리자를 늦추고 있었다.

하지만 총관리자가 중앙 계단을 분석하고, 그 계단과 융합해서 차츰차츰 내려오려고 한다면, 또 새로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오호라, 텍스트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와 감정들을 계단에 이식해서, 정보 생명체로 변한 총관리자님을 막겠다는 거군요.”

“바로 그겁니다.”

“흐흐흐. 재밌어 보이는군요. 그 대신 이 최종 미션을 이야기로 남겨도 되겠지요?”

“그것은 진행자님의 자유입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그렇게 은혁은 총관리자가 숨겨 둔 각종 이야기 대본을 가상 정보화하여, 계단에 말 그대로 발랐다.

스르르륵…….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총관리자가 그 정보들을 뚫는 데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만약 그것들을 올바로 해독하고 뚫는다면…….”

“네. 총관리자는 더 강해지겠죠.”

은혁의 이 행위는 약간 도박수였다.

하지만 남은 층은 30층 남짓.

할 만한 도박이라 판단했다.

“좋군요. 성공하길 빕니다. 그럼 어서 내려가십시오.”

“예,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타앗!

은혁은 30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오오!”

“카레의 성자가 오셨다!”

30층은 버섯 숲과 하플링들의 마을이었다.

은혁이 만들었던 카레가 어지간히 맛있었는지, 여전히 은혁을 보고 기뻐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전에 만든 레시피입니다!”

파앗!

은혁은 인벤토리창에 넣어 둔 카레 제작 레시피를 모두에게 뿌려 줬다.

“와아아!”

“강은혁 만세!”

하플링들의 환호를 뒤로한 채, 은혁은 바로 26층~29층 구간으로 향했다.

‘이쪽은 딱 한 곳 빼곤 별거 없지.’

피에로와 광기의 놀이동산 콘셉트의 층이었다.

대부분 파괴되어 관리국은 폐허가 된 테마파크 콘셉트의 스테이지로 개변시켰다.

단, 은혁이 획득한 28층은 넓은 농경지 그대로였고, 특히 28.5층은 콩나무 본부가 있었다.

“와아아아!!”

“강은혁 부길드장님!!”

상주하는 길드원들이 은혁을 외치며 반가워했다.

모두의 환호성을 찢는 듯한 앙칼진 외침이 들려왔다.

“강은혁!!!”

28.5층 꼭대기 플랫폼 위에 있던 제인이 외쳤다.

은혁은 부하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뒤, 단숨에 [그림자 도약]해서 제인 곁에 나타났다.

“하하! 보고 싶었어요?”

“이 나쁜 놈아!! 죽은 척하다가 살아났으면서 여태 뭐 하다 이제 나타나?!”

제인은 씩씩거렸다.

그동안 정말로 슬퍼했기 때문이다.

“미안합니다. 100층을 정복하고 오는 길이라.”

“그, 그건 솔직히 잘했지만.”

제인은 화를 막 쏟아 내려다 멈칫했다.

그만큼 은혁의 업적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에잇, 잔뜩 화내려고 했는데 다 날아가 버렸네. 하여간 해냈구나! 정말 축하해!”

“다 제인 덕분입니다. 제인이 없었으면 세븐 칼리버부터 드래곤 파워드 아머, 이 콩나무 본부 개조까지. 무척 힘들었겠죠.”

“아, 아냐! 나야말로 예전부터 고맙다고 하고 싶었어! 네가 내 가치를 알아봐 줬기 때문에……!”

쿠르릉……!

저 위편에서 차원의 떨림이 느껴졌다.

‘대략 재난의 왕국, 46층 구간일까?’

은혁이 46층~49층의 잔여 재난을 깡그리 흡수한 이유는, 새로운 재난, 즉 총관리자의 힘이 닿았을 때 작은 차원 폭발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순수한 산소에 불꽃이 닿으면 폭발하듯, 재난을 인위적으로 제거해 버린 재난의 왕국에 듣도 보도 못한 정보 생명체가 갑자기 강림하면 차원 폭발 반응이 일어난다.

은혁은 그 특유의 폭발의 떨림을 캐치할 수 있었다.

‘여기가 28.5층이니까, 46층이면…… 그래도 아직은 여유가 있다.’

“강은혁! 우리가 콩나무 길드 본부에 설치한 워터 캐논을 쓸게!”

제인이 소리쳤다.

“몇 초 늦추는 효과야 있겠지만, 큰 효과는 없을 겁니다.”

“들어 봐! 네가 새로 얻은 힘을 물에 녹이면 돼!”

“제가 새로 얻은 힘……?”

블랙 스타의 힘은 너무 강력하기에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남는 건…….

‘심연의 힘을 물에 녹이는 게 가능한가?’

은혁은 즉시 콩나무 길드 본부의 물탱크로 가서 그 안에 심연의 힘을 심어 보았다.

부글부글부글……!

놀랍게도 심연의 힘이 콩나무 길드 본부의 물과 결합되었다.

‘그냥 물이 아니라 그런가? 되네?’

‘잊힌 강의 마정석’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물이라 그런지, 모든 가라앉은 정보가 쌓인 심연의 힘과 상성이 잘 맞는 듯했다.

은혁은 각오한 뒤, 방송 시스템에 접근했다.

-나는 불패불굴 길드의 부길드장 강은혁이다!! 전원 5층으로 대피하라!! 콩나무 길드 본부는 완전 폐쇄한다!!

은혁의 말에 꽤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우리들의 길드 본부는 100층 정복을 위해 존재한 것! 나와 염훈은 실제로 100층을 정복했으니, 그 목적을 다한 것이다!

갑자기, 정들었던 길드 본부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길드원들은 가슴이 아팠지만, 이곳에 더 머무를 수도 없었다.

“모두들! 빨리 떠나줘!”

비상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제인이 다그쳤다.

“우리들은 이제 불패불굴 길드뿐만이 아닌, 전체 통합 길드의 길드원이야. 이곳의 역할은 정상에 도달하기 위한 중간 베이스 캠프 역할! 이제 그 목적을 달성했으니, 더 큰 미래를 향해, 이곳을 버리고 떠나야 해!”

제인이 똑 부러지게 외치자, 길드원들은 그제야 마음을 다잡았다.

“안녕히.”

“우리들의 콩나무 본부여.”

제인과 다른 길드원들은 신속히 대피했다.

“좋아. 그럼 최종 발사는 내 분신에게 맡겨볼까.”

은혁이 중얼거린 순간.

“발사 버튼은 내게 맡겨 둬!”

오리 지배인이 날아와서 말했다.

“아? 너 오랜만이네. 너도 대피해야지?”

“아니! 난 이곳의 지배인! 마지막까지 남아서 발사 버튼을 누르겠어!”

“제정신이야? 총관리자가 반격 삼아 주먹만 휘둘러도 넌 죽는다.”

“각오했다!”

“이해를 못 하는군. 그렇게 죽으면 부활도 못 시켜. 지금의 총관리자는 정보의 괴물이다.”

“각오했다, 강은혁. 바로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남아서 버튼을 눌러야 해. 원격 조작에 맡겼다간, 정보 해킹으로 무효화될 수도 있으니까.”

“음, 그래도 내 분신을 남기면 어느 정도는…….”

은혁은 말끝을 흐렸다.

오리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너에게, 그리고 이 불패불굴 길드의 일원으로서 정말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이 일은 내게 맡겨 줘!”

“…….”

은혁은 말리고 싶었지만, 이 이상 오리를 말릴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지. 죽을 것 같으면, 오리 왕의 권능을 빌려 탈출해라.”

은혁과 오리의 사이는 악연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새 정이 들어 버린 오리 지배인과 은혁이었다.

“그럼 간다. 부탁하지.”

“맡겨 둬!”

은혁은 오리를 믿으며 중앙 계단으로 향했다.

* * *

25층은 빠르게 뛰어 내려갔다.

25층은 음악가와 시인의 도시였으나, 그 어느 때보다 조용했다.

대형 스크린으로 은혁과 총관리자의 최종 결전을 집중해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이어서 21층~24층 구간도 빠르게 질주했다.

이곳은 본래 검은 오크 부족의 땅이었던 곳으로, 은혁과 염훈이 오페아 길드와 함께 활약했던 장소.

은혁은 아예 오크의 성좌 오키니움의 사과마저 받아낸 바 있었고, 스테이지는 크게 개변되어, 오키니움의 시련을 순차적으로 클리어하는 장소가 되어 있었다.

연합 길드인 오페아 길드와 그 길드의 대장격인 터스크는 은혁을 멀리서 응원했다.

“힘내십쇼!”

“힘내라! 강은혁!”

“와아아아아아!!”

보아하니, 오페아 길드는 더 높은 곳으로 진출하는 대신, 이곳에 머문 채 다른 플레이어들을 돕는 일에 주력하며 활동한 듯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꼭 이기겠습니다.”

은혁은 바로 다음 층으로 향했다.

20층은 은혜의 분수였고, 19층은 술래잡기의 체육관이었다.

은혁과 염훈이, 당시 훨씬 강자였던 상승 길드의 브라이언을 꺾은 일과 관련이 있는 층들이다.

‘그때는 진짜 도발에 도박에 막 나갔구나.’

물론, 지금은 무려 총관리자를 상대로 최종 미션 중이니, 지금도 적당히 살고 있는 건 아니다.

은혁이 너무 강해졌기에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느껴지는 것뿐.

쿠르르릉……!

드드드드득……!

폭발음과 진동음이 순차적으로 들려왔다.

‘역시 총관리자. 물리력과 정보력. 투 트랙 방식으로 뒤쫓기로 한 건가.’

아직 격차는 충분했다.

은혁은 더욱 기어를 올렸다.

18층에는 다크 드워프들의 도시 올그레이가 있었다.

본래는 코볼트의 화산으로, 광차를 타고 채굴하는 미션.

하지만 은혁과 염훈은 코볼트들을 모조리 처리하고 다크 드워프들을 부활시켰다.

“으음.”

은혁을 마주한 다크 드워프들의 수장 윌칸이 신음했다.

은혁은 다크 드워프 문명 복원을 조금 돕는 대신, 그들의 보물 창고 ‘라루방툼’ 속 보물의 40%와 채굴용 드릴을 뺏은 바 있다.

그래서 월칸으로서는 은혁에 대해 복잡한 심경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은혁은 시간을 끌지 않았다.

“자.”

촤르르륵.

은혁은 골드 드래곤의 보물을 쏟아 줬다.

“어?”

“가지시오.”

“아, 아니, 왜? 왜 주는 거요?”

“전에 드릴이랑 금화 받았으니까. 그때는 꼭 필요해서 받았지만, 지금은 금화가 좀 넘칠 정도로 많아서. 그냥 주는 거요.”

“……!!”

윌칸은 드워프답게 눈이 높았다.

그래서 은혁이 쏟아 낸 것이, 골드 드래곤의 기준에서도 천 년의 시간을 들여야 모을 수 있는 귀한 금화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흐흑.”

윌칸은 감격하여 눈물을 보였다.

“돈 주니까 우네.”

“아, 아니오. 그런 게.”

“하하! 뭐, 이걸로 악연도 은혜도 모두 청산한 걸로. 잘 사시오.”

“자, 잠깐!”

“나 바쁜데.”

“왜, 왜 우리 문명을 살린 거요?”

은혁은 이전에, 코볼트와 다크 드워프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은혁은 굳이 다크 드워프를 택했다.

그때야 그레이 드릴과 보물 때문에, 라고 말하면 설명이 끝났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문명 국가라서. 그리고 당신이 망자로 변한 민족 때문에 슬퍼할 줄 알고, 돈 귀한 줄 아는 자라서. 그뿐이오.”

은혁은 적당한 설명을 던져 준 뒤 쿨하게 떠났다.

윌칸은 또 감격하여 맹세했다.

‘우리 역사서에 강은혁의 이름은 신처럼 위대하게 기록될 것이다!’

물론, 은혁은 상관도 안 했고, 바로 다음 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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