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화 : 승리와 자유
그렇게 17층, 16층, 15층을 돌파했다.
각 층은 피라냐의 호수, 코볼트 동굴, 경험치가 없는 사냥터였다.
이제는 스테이지가 많이 개변되었고, 최종 미션 때문인지 사람도 별로 없었다.
쿠쿵……!
뚜드드드드……!
“이런.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군.”
은혁이 막아 둔 것과 은혁을 돕기로 자원한 이들이 총관리자를 늦추고는 있으나 슬슬 한계였다.
11층~14층은 콩나무 관련 통합층으로, 오리들이 머무는 곳.
“와아!”
“강은혁이다!”
오리들이 환영했다.
어느새 오래 아는 사이가 되었고, 은혁 덕분에 스테이지 개변 또한 오리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오오, 어서 오시게, 강은혁 플레이어.”
오리 왕 또한 은혁을 기분 좋게 맞이했다.
“급합니다. 제 현재 상황 아시지요?”
“음. 뭘 어떻게 도와 주면 되겠는가?”
“일단 저희 길드 본부, 28.5층에 있는 오리부터 구해 주시죠.”
“그는 안전하다네. 위기에 처하면 자동으로 이곳으로 전송되도록 해뒀지.”
“그건 다행이군요. 그럼.”
파앗!
말하기가 무섭게 오리 지배인이 전송되었다.
“앗!”
“양반은 못 되는군!”
“어차피 오리 중에는 양반이 없는걸!”
“그것도 그러네!”
오리들은 소란을 떨며 오리 지배인 곁으로 몰려갔다.
“으으.”
오리 지배인은 부상을 입은 듯 신음했다.
“다들 비켜!”
은혁이 모두를 물린 뒤 힐링 포션을 오리 지배인 입에 흘려 넣어줬다.
“으으, 미안하다.”
“미안할 거 없어. 안 죽어서 다행이다.”
“이, 일단 심연의 힘이 담긴 워터 캐논을 한 방 제대로 먹이긴 했는데.”
“그리고?”
“그, 그 뒤로는 기억이……! 아아.”
오리 지배인은 기절했다.
“흠. 한동안 요양이 필요하겠구만.”
오리 왕이 중얼거렸다.
“예. 잘 부탁합니다.”
“자네와 우리 오리라면 언제든 환영일세. 달리 해줄 건 없을까?”
“총관리자와 함부로 싸우지 말 것. 그뿐입니다.”
그 순간.
콰콰콰콰쾅!!!
위층에서 엄청난 파성음이 울려 퍼졌다.
“으악!”
“오리 살려!”
오리들이 허둥지둥 대피하기 시작했다.
-찾……았……다……!
총관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기가 많이 커졌네?’
은혁은 자신이 깔아둔 방해를 극복하고 내려오면서 총관리자가 더욱 강해졌음을 확인했다.
‘마치, 우리 플레이어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점차 강해지는 걸 보는 것 같군.’
은혁은 히죽 웃었고, 총관리자는 그런 은혁의 웃음을 보며 화를 냈다.
-감히 나를 시험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안 될 거 있습니까? 시험이란 일방적인 관계일 수 없는 법. 서로가 서로를 시험한다면 오히려 건강한 갈등이 아닐지요?”
-오만한 놈. 거기 있으라.
“싫습니다.”
타앗!
은혁은 더욱 빨리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10층으로 몸을 날렸다.
화악!
총관리자의 검은색 정보체 손이 은혁을 움켜쥐려 다가왔다.
그 순간.
“사격!”
투쾅!! 투쾅!!
10층은 연구자의 공원.
빌의 본거지이기도 한 이곳에는 각종 방위 병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3군주조차도 각오 없이는 쉽게 쳐들어오지 못하는 이곳에서 발사 준비 중인, 차원포, 레일 캐논, 플라즈마 블래스터만 200여 문에 달했다.
쿠콰콰콰콰콰쾅!!!
모든 공격은 아슬아슬하게 은혁 뒤편의 총관리자에게 모조리 꽂혔다.
“어서 가십쇼!”
“여긴 우리가 시간을 끌겠습니다!”
10층의 연구 길드원들이 외쳤다.
원래부터 시험용 무기가 가득한 장소인데다, 연구 길드원들 또한 평소에 훈련을 꾸준히 해왔다.
특히 3군주와의 전면전에 대비하여 무기를 증강하고 훈련도 더욱 열심히 해왔다.
“그럼 부탁합니다!”
타앗!
은혁은 9층으로 향하며 감개무량했다.
‘원래는 저 무시무시한 무기들이 전부 길드연합국 플레이어들을 죽이는 용도로 쓰였었는데.’
회귀 전, 제2차 길드대전을 기억하는 은혁으로서는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살상의 무기가, 지금은 오직 은혁의 앞길을 위해 총관리자를 늦추는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일이니, 회귀자로서 뿌듯함을 느꼈다.
‘더 빨리!’
타앗! 타앗! 타앗!
순식간에 9층, 8층, 7층, 6층을 돌파했다.
9층은 오염된 개울가였으나, 지금은 상당히 정화된 상태였고, 8층과 7층은 전형적인 고블린 관련 사냥터였고, 6층은 농장 지대였다.
올라갈 때는 의미 있는 장소들이었지만, 중앙 계단으로 내려갈 때는 크게 도움이 되는 장소가 아니었다.
-크하하하! 이제 널 보호해 줄 방패막은 없다! 날 막을 장애물은 없다!
총관리자의 손길은 은혁의 등에 닿을 듯했다.
하지만 은혁은 생각했다.
‘아슬아슬했지만, 계산대로다.’
그리고 5층이 펼쳐졌다.
그리고 총관리자는 살면서 가장 치명적인 공격에 직면했다.
지극히 모호한 개념들이 구현화된 공격.
즉, 정의, 상승, 연구, 자유시장, 평화, 구원, 행복이었다.
꾸궁……!
구현화된 개념이라는 공격에 적중당한 정보 생명체 총관리자는 마치 심한 소화 불량에 걸린 사람처럼, 경직된 채 꿈쩍도 못 했다.
“마중 공격 감사합니다.”
은혁이 말했다.
“늦었군.”
7대 길드의 길드장, 부길드장 전원이 있었다.
은혁은 피식 웃었다.
“모두가 마중 나오니 좀 감동적이군요. 사실 여러분이 저를 도와 줘야 할 의무는 없는데 말이죠.”
그러자 7대 길드의 길드장들이 차례로 말했다.
“불만스럽지만, 네가 한 일이 가장 정의에 가까우니까.”
정의 길드장 저스티스가 말했다.
“자네보다 연구를 많이 한 자는 없을지도 모르기에 자네를 지지하네.”
연구 길드장 빌이 말했다.
“네가 제일 미친놈이고 재밌으니까.”
행복 길드장 해피가 말했다.
“네가 구원자에 가장 가깝기 때문에.”
구원 길드장 올마스크가 말했다.
“자네는 자유로운 계약과 거래를 누구보다 잘 활용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으니까.”
자유시장 길드의 슬레이버가 말했다.
“너는 내게 평화와 폭력이 불가분의 관계임을 느끼게 해줬지. 네가 총관리자가 된다면 두 가지 모두 자유롭게 다룰 것이다.”
평화 길드장 피스메이커가 말했다.
“가장 높은 정상과 가장 낮은 밑바닥은 통하는 법. 나와 달리, 너는 그 두 가지를 모두 해내는 존재다.”
상승 길드장 어센션이 말했다.
총 7인의, 길드장은 일곱 개의 키워드에 따라 길드를 세우고, 이를 좇아 싸워 온 자들이다.
그들은 강한 확신을 담아, 강은혁을 돕기로 했다.
“설마 우리가 이런 소년 만화 속 주인공의 동료 같은 말을 할 줄은 몰랐지만.”
빌이 한숨 쉬듯 말했고, 이어서 나머지 모두가 외쳤다.
“어서 가라, 강은혁! 여긴 우리에게 맡겨라!!”
그 말에 은혁은 자기도 모르게 울컥했다.
“이 사람들이……! 끝에 다 와서 훈훈하게 말하긴!”
은혁은 감동과 고마움을 느끼며 얼른 4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4층은 장벽 오르기의 층.
‘아! 여기 기억난다.’
은혁은 무지막지한 장벽의 꼭대기까지 올라,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100층탑을 정복할 것을 맹세했었다.
‘그게 바로 얼마 전 같기도 하고, 까마득한 옛날 같기도 하고.’
은혁은 복잡한 감회를 느꼈다.
‘그때는 100층탑 정복까지 한참 걸릴 줄 알았지. 그런데 현실 시간으로 1년도 안 되어서 클리어라니.’
지금은 정말 최강자가 되어 오히려 총관리자에게 최종 미션을 거는 입장이 되었다.
은혁은 이어서 3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아, 여기도 기억나네.”
3층은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은혁의 중앙 계단이 생성된 곳은 공포의 학교 구역이었다.
“여긴 내가 클리어했는데, 왜 또다시 어두워진 거야?”
은혁은 투덜거리며 블랙 스타를 허공에 휘둘렀다.
“빛이여! 있으라!!”
번쩍!!
실제 항성을 만들기엔 시간이 없어서, 스테이지의 하늘 계면에 빛과 열의 구슬을 박아 넣었다.
그것만으로도 ‘아침’과 비슷한 환경이 조성됐다.
이제, 12시간 주기로 이곳은 빛과 어둠이 번갈아 생길 것이다.
“이 스테이지의 원본이 되는 곳이 얼마나 공포와 고통이 가득한 곳인지는 모른다. 이곳을 개변시킨다고 해서 현실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겠지. 그러나 그냥 두고 지나칠 순 없군.”
은혁은 그렇게 말한 뒤 2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2층은 허수아비 훈련소.
그곳의 조교들이 도열해 있었다.
“모두 경례!!”
척!
그들은 말없이 은혁을 향해 경례를 붙였다.
은혁 또한 웃으며 마주 경례를 해줬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쿠르릉……!
위에서 파괴음이 들려왔다.
아마 총관리자가 7대 길드의 길드장과 부길드장들을 마침내 뿌리치고 4층에 돌입한 것일 터.
타앗!
은혁은 바로 1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안 돼애애애……!
총관리자의 절규를 뒤로한 채.
1층 바닥에 은혁의 발이 닿았다.
타탁!
특별할 것 없는 그 작은 발소리.
그것으로 모든 게 끝이 났다.
스오오오오오……!
정보 생명체가 된 총관리자 알파레몬은, 패배라는 현실을 마주한 순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도……착.”
은혁은 부들부들 떨었다.
100층에 도달했을 때 이상의 희열에 온몸이 전율했다.
-축하드립니다! 100층탑 최종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사상 최초의 업적 확인!
-현 시간부로, 당신이 총관리자입니다!
“하아…….”
털썩!
은혁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1층부터 100층. 그리고 다시 100층부터 1층.’
그 모든 일을 마쳤다.
기쁨과 허무함이 몸속에서 휘몰아쳤다.
“하하하……!”
은혁은 웃으며 눈물을 흘렸다.
염훈이 죽었을 때를 제외하면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 없는 은혁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적막한 1층.
모든 걸 극복하고 그곳에 혼자 주저앉고 나니, 그동안 겪었던 모든 일들이 떠올라서 울고 웃는 수밖에 없었다.
“왜 울고 그러냐?”
어느새 염훈이 곁에 와 있었다.
놀란 은혁이 눈물을 그쳤다.
“어? 야, 네가 왜 여기 있냐?”
“초월자랑 내기를 했거든.”
“내기?”
“그래.”
“아니, 소원은 안 빌고?”
“소원은 거부했다.”
“뭣?!”
은혁은 깜짝 놀랐다.
자신도 소원을 거부하는 대신 총관리자와의 마지막 승부를 택한 몸이지만, 염훈까지 소원을 거부하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아니, 소원을 그렇게 좋아하더니만! 갑자기 왜?!”
“처음에는 마냥 좋았는데, 알고 보니 초월자가 선심 삼아 내려 주는 거라며? 그걸 생각해 보니까 기분이 나쁘더라고. 지가 뭔데 소원을 주고 말고 해?”
“뭣?!”
“그렇잖아? 멋대로 끌고 와 놓고 다 클리어하면 소원 주마~ 라는 건데, 애초에 우리한테 동의서 한 장 받은 적 있냐?”
“아, 아니, 그게, 상대는 초월자인데…….”
“초월자면 다야? 초월자라고 해서 기본 예의도 초월해도 된다면, 애초에 교류고 뭐고 없어!”
“허……!”
은혁은 기가 막혔다.
자신도 막 나가긴 하지만, 그래도 장기적으로는 이득이 되는 방향을 계산해서 막 나가는 성격이다.
반면에 염훈은 고집이 딱 서면, 죽여야 할 놈도 살리고 받아야 할 소원도 걷어찼다.
“그, 그래서 어떻게 됐어?”
은혁은 자신이 새로이 총관리자가 된 것도 잊은 채 염훈 걱정부터 했다.
염훈은 부루퉁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렇게 속마음을 다 말했더니 초월자가 막 웃더라?”
“그래서?”
“그래서 나는 화를 냈지! 왜 비웃냐! 하면서.”
“으윽.”
은혁조차도 초월자에게는 싸움을 걸 수가 없다.
그건 우주를 상대로, 누구 몸이 더 큰지 대결해 보자고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 될 것이므로.
“초월자가 자꾸 웃어서 화가 났는데, 초월자가 이렇게 말하더라? 너랑 총관리자랑 현재 대결 중인데, 승부가 날 때까지 기다려 보라고, 둘 중 누가 이기는지 확인한 뒤 소원을 결정해도 된다고.”
“와, 초월자가 그렇게까지 네 사정을 봐줬다고?”
“음. 그 순간 네 방식이 생각났지. 그래서 초월자에게 내기를 걸었어. ‘강은혁이랑 총관리자 중 누가 이기는지를 걸고 내기합시다. 은혁이가 이기면, 인류를 멋대로 100층탑에 불러 모은 걸 일단 내게 사과한 뒤, 소원을 빌 권리 3개를 그대로 주시죠.’라고.”
“야, 그러다 내가 지면?”
“……어? 듣고 보니 그러네? 네가 진 경우에는 어떤 페널티를 받을지 조건을 건 기억이 없구만.”
염훈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초월자는 염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실제로 은혁이 이겼고, 초월자는 내기에서 졌음을 인정했다.
‘봐준 건가.’
초월자 정도면 은혁이 이길지 총관리자가 이길지, 꽤 정확하게 예측이 가능할 터.
“초월자가 마지막으로 한 당부 같은 건 없었어?”
“그런 건 없고, 부럽다던데.”
“부럽다……?”
“의미는 모르겠어.”
은혁은 알 것 같았다.
염훈을 굳이 1층으로 내려보낸 이유.
‘초월자는 고독하겠지.’
초월자가 하나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들이 정말 초월적인 존재라면 의외로 사람다운 유대를 갖긴 어려울 것이다.
불완전한 존재를 초월한 자들에게 의지해야 할 친구가 필요할 것 같진 않다.
반면에 은혁과 염훈은 불완전하다.
장점도 단점도 각양각색.
그럼에도 서로를 믿는다.
그 무엇보다 서로를 믿는다.
초월자는 그게 부러웠기에, 그것을 보기 위해 더 너그럽게 행동한 것인지도 모른다.
염훈을 1층에 돌려보낸 이유는…….
‘승리의 순간을 같이 만끽하라는 거겠지.’
은혁은 피식 웃었다.
“이제 난 총관리자고, 넌 소원을 3개나 이룰 수 있다. 이제, 우린 뭘 하면 좋을까?”
기쁨 반 허무 반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은혁이 물었다.
오직 100층탑을 정복하는 것에 모든 것을 걸었던 사내답게,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친구의 조언이 꼭 필요했다.
염훈은 빙긋 웃었다.
“그야, 친구가 되게 만들어야지.”
“누구랑 누구를?”
“탑 안쪽 사람들과 바깥쪽 사람들을.”
* * *
[에필로그]
강은혁이 총관리자가 된 지 30년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기존 총관리자였던 알파레몬의 관리국장 지위를 유지시켜 줬다.
그리고 개인적인 충성 맹세를 받고, 각종 관리 업무를 보게 만들었다.
아무리 은혁이라 해도 기존의 모든 시스템을 단번에 인수인계 받기는 어려웠기에, 관리국장을 활용하는 일은 꼭 필요했다.
이제, 관리국장 알파레몬은 은혁의 의지에 따라 100층탑을 조율하는 일에 쓰였다.
이어서 은혁이 총관리자로서 한 일은 ‘100층탑 출입국’의 신설이었다.
기존 관리국과 독립된 조직으로서, 출입국장에 염훈을, 부국장에 아이리스를 임명했다.
적절한 심사를 통해 100층탑에 들어오거나, 반대로 나갈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뿐만 아니라, 은혁은 총관리자로서 UN과 접촉했다.
그리고 파격적일 정도로 100층탑 내부의 정보를 ‘전부’ 전달했다.
물론, UN은 경악했다.
100층탑의 플레이어들이 쏟아져 나온다면 지구의 경제, 사상, 문화 등은 모조리 파괴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완전한 개방까지는 앞으로 짧게 봐도 30년, 길게 보면 300년은 봐야겠죠.”
하여, 조심스럽고 제한된 개방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한 합의가 이뤄진 직후.
투둥!
합의가 이뤄진 직후, 100층탑의 1층에 ‘출입구’가 생겨났다.
물론, 아무나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는 문이지만, 문이 없던 100층탑에 문이 생겨난 것은 엄청난 변화였다.
이제, 지구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그 출입구를 통해 100층탑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에 100층탑에서 지구로 나오려는 사람은 100층탑 출입국의 ‘심사관’이라 불리는 자들의 심사를 받아야 했다.
이 심사관의 존재만으로도, 100층탑은 완전히 분위기가 바뀌었다.
100층에 도달하는 것 말고는 나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심사관의 기준을 충족시키면 어느 정도 나가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 되었으니까.
이 심사관 임명권은 성황제 염훈과, 바깥세상과 100층탑을 두루 경험한 교황제 알렉스가 공동으로 관리하기로 해두었다.
그렇게, 100층탑과 지구 사이의, 느린 개방과 교류 과정은 이어졌고, 세상은 많이 변했고, 또 그대로였다.
오늘이 그 30년째 되는 날이었다.
은혁과 염훈은 휴가를 쓰고 나왔다.
30년 만에 나오는 것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나이를 거의 먹지 않았기에, 수명이 수백 년에 달하는 이들이었기에, 20대 초반의 모습 그대로였다.
두 사람은 염훈이 다니던 대학가 근처의 치킨집에 앉았다.
평상복 차림이었기에 두 사람을 알아보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100층탑 내부에서는 신보다 유명한 두 사람이었지만, 정작 외부에서는 아니었다.
두 사람의 얼굴은 지구의 최고위직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소원은 겨우 하나 썼네.”
은혁이 말했다.
염훈이 사용한 소원은, ‘100층탑에 끌려온 이들 중 죽은 이들을 전부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사실은 100층탑 바깥 사람들 중에도 착한 사람들은 다 부활시키려고 했는데, 네가 막은 부분도 있고.”
염훈은 은혁의 부모님을 부활시켜드리려 했지만, 은혁이 거절했다.
100층탑 안에서 얻은 힘으로 100층탑 바깥의 죽음을 되돌리는 일은 부적절하다는 은혁의 윤리 기준 때문이었다.
100층탑 내부의 사람들만 선악 구분 없이 전부 부활시킨 것은, 그들이 100층탑 안으로 끌려 온 것이 그들의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염훈은 설득당했고, 결국 소원 3회는 받자마자 딱 하나만 쓴 뒤, 30년이 지나도록 더는 쓰지 않았다.
“소원 따위보다 이게 더 좋지.”
염훈은 500cc 크기의 맥주잔을 들었다.
은혁도 웃으며 맥주잔을 들었다.
지극히 평범한 젊은이 둘이 기쁜 일이 생겨서 치킨에 맥주 한잔하러 나온 모습 그대로였다.
“이렇게 마시는 건 30년 만에 처음이지?”
염훈이 물었고, 은혁은 피식 웃었다.
“그렇지. 너무 바빴으니까.”
“모처럼이니까 건배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네가 해.”
“우리들의 우정을 위하여?”
“왜 의문형이야?”
“우리들의 영원한 우정을 위하여!!”
“위하여!!!”
두 사람은 짜릿한 자유를 누렸다.
-[나 혼자만 모든 직업] 완결.
*공*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