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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1화 (1/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1화

정마대전이 벌어졌다.

분명 이 전쟁이 시작된 이유는 있으나 지금은 그 누구도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개와 고양이가 싸우는 데 이유가 필요한가?

길 지나가다 서로 눈 마주치면 싸우는 거지.

정파와 마교도 마찬가지.

그들은 옷깃만 스쳐도 싸우는 갱년기 부부 같은 관계 아니었던가.

지난 오십여 년간 평화로웠으니 한판 거하게 붙을 때도 됐지.

다만 지금 이 순간에도 적을 죽이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정파와 마교, 그들 모두가 궁금한 것이 딱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누가 이번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한 남자가 있었다.

수만이 넘는 무인 중 자신이 중원의 정점에 우뚝 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그만한 자격과 실력도 갖추고 있었고.

“에이, 피 튀었잖아. 오늘 처음으로 입은 옷인데.”

마교 교주, 제운강이 자신의 흰옷에 튄 붉은 피를 보고 인상을 찌푸리자 땅바닥에 쓰러진 승려가 한탄했다.

“마교의 수괴여, 비록 소림은 이렇게 쓰러지지만, 정파의 혼은 꺾이지 않을 것이다.”

“네가 아마 백 번쯤 될 거다.”

“……무슨 말이냐?”

“내 손에 죽으면서 그딴 말 나불댄 놈들이 백 놈은 된다고.”

어찌 정파 놈들은 죽을 때마다 똑같은 소릴 늘어놓는지.

어디 무림 학관 같은 데서 가르치나?

최후의 순간, 마지막 자존심 지키는 법 같은 거.

“그만큼 우리 정파는 명예를 중요시한다…….”

되지도 않은 헛소리를 더는 듣고 있을 필요 없었다.

퍽!

제운강이 일장을 뻗어 승려의 마지막 숨통을 끊었다.

소림 최고 고수, 원각 대사의 허무한 최후이기도 했다.

숙적을 해치웠음에도 제운강은 못마땅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림만 불태워 버리라고 했더니, 아주 산불을 내놨네.”

정파의 정신적 지주, 소림이 활활 불타고 있었다.

제운강이 함께 온 부하들에게 명했기 때문이다.

주춧돌 하나 남기지 말고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라고.

이건 본보기였다.

전세가 이미 마교에게로 확연히 기울었음에도 끈질기게 저항하는 정파의 떨거지들에게 보내는.

순순히 항복하지 않으면 너희들도 곧 이렇게 만들어 버리겠다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했다.

“어휴, 그래도 적당히 할 것이지.”

불이 소림사가 있는 숭산 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환경파괴 수준 아닌가.

하여간 꼴통들.

나의 직속 부하들은 피가 너무 뜨거운 놈들이다.

“이제 천무십존을 모두 이겼나?”

가증스러운 정파 놈들이 가당찮게도 저들끼리 정파에서 가장 강한 열 명의 고수를 뽑았단다.

이른바 천무십존.

천하를 도모할 만한 고수들이라 명칭을 그렇게 지었다나.

우스운 일이지.

감히 마교의 교주인 나를 빼고 천하제일을 논하다니.

그래도 제법 이름값은 하는 놈들이었다.

그들의 손에 죽은 마교 고수들의 숫자가 수백은 훌쩍 넘었으니.

이번 전쟁을 아래 부하들에게 맡기고 마교의 본거지, 십만대산에서 무공 수련에만 열중하던 제운강이 친히 나선 이유이기도 했다.

마교의 앞길을 막는 최대 숙적들을 처지하고 본인의 무공이 어디까지 통하나 확인도 할 겸 해서 겸사겸사.

“……생각보다 허무하군.”

방금 원각대사를 끝으로 천무십존을 모두 죽였다.

그것은 이제 정파에 자신과 손을 겨룰 만한 고수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고.

천하제일 고수를 목표로 무공을 열심히 수련했건만 막상 그 자리에 오르자 기쁨보다는 마음이 헛헛했다.

이것이 절대자만이 느낄 수 있는 고독일까.

“조금만 더 강하지 그랬소? 그랬다면 더 재밌었을 텐데.”

씁쓸한 눈으로 원각대사의 시신을 내려다보던 제운강이 눈에 이채를 띠웠다.

“……응?”

거친 불길을 뚫고 낯선 청년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넌 누구니?

여긴 왜 왔고?

“당신을 죽이러 왔다.”

맞은편에 선 청년이 다짜고짜 내뱉은 말에 제운강이 반문했다.

“내가 누군 줄은 알고 그따위 소리를 하는 것이냐?”

“천마 제운강. 당신을 반드시 처단할 것이다.”

음…… 혼란스럽다.

신종 자살 방법인가?

내가 누군 줄 알면서 저딴 헛소리를 저리도 당당하게 하다니.

“이봐, 젊은이. 생명은 소중한 것이야. 무슨 일 때문에 삶을 포기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살아야지.”

라고 충고해 주고 싶지만 제운강이 이미 죽인 사람들의 숫자가 너무 많긴 하다.

“나는 남궁도라고 한다.”

“남궁이라 하면……?”

“그렇다. 나는 남궁세가에서 왔다.”

남궁세가라면 한땐 정파에서 손꼽는 명문으로 이른바 오대세가의 수장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쇠락하여 오대세가의 말석까지 밀렸고.

“내가 지금 마음이 좀 울적하거든. 그러니 그냥 가라. 사지 멀쩡히 돌려보내 줬다고 고마워하지는 않아도 돼.”

제운강이 큰 인심 썼지만 남궁도는 거부했다.

“당신을 죽이지 못하면 이곳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왔다.”

“애송아, 아버지 허락은 맡고 왔냐? 집에 가서 아버지 어깨나 주물러 드려.”

“내가 남궁세가 제일검이다, 오늘 당신을 죽이고 천하제일검으로 인정받을 것이고.”

젊은 놈이 패기 하나는 좋다.

아님, 제대로 미친놈이거나.

“…….”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저놈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밖에 있는 수하들이 소림사의 가장 안쪽인 이곳까지 오도록 순순히 통과시켜 줬을 리가 없는데.

제운강이 이미 신신당부하지 않았던가.

원각 대사와의 결전에 방해되니까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너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

“검을 꺼낼 필요도 없었다.”

“……뭐?”

“밖을 지키는 놈들이 하도 허접해서 검을 꺼낼 필요도 없이 모두 죽였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소림을 구할 수도 있었을 것을.”

“……!”

확인해 봐야겠다.

저놈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제운강은 진지하게 남궁도를 상대하기로 마음먹었다.

*   *   *

수하들을 죽였다는 남궁도의 말이 최소한 거짓은 아닌 것 같다.

제운강이 그와 주고받은 초식이 벌써 백여 초를 훌쩍 넘겼으니.

그러고도 아직 남궁도에게 제대로 된 유효타를 적중시키지 못했다.

참고로 이제껏 여느 천무십존도 제운강의 백 초를 받아 내지 못했다.

쾅! 허공에서 제운강의 권과 남궁도의 검이 부딪혔다.

서로에게 돌진할 때보다 더욱 빨리 뒤로 튕겨 나가는 두 사람.

제운강은 다섯 걸음 뒤로 물러섰지만, 남궁도는 네 걸음 물러섰을 뿐이다.

“…….”

제운강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거 자칫 잘못하면 다른 사람이 오해할 만한 상황 아닌가.

자신의 무공이 남궁도보다 열세라고.

‘원각대사와 싸운 피로가 남아 있나?’

아무렴, 분명 그런 걸 거야.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무공을 수련했는데 저런 애송이에게 질 리가 있나.

더는 시간 끌 필요 없이 최고 절기로 상대해야겠다.

우우웅, 진지하게 마음먹은 제운강의 하얀 옷이 부풀어 오르며 그의 기도가 대기를 찢어 버릴 듯 사납게 변했다.

“남궁도, 얘들 장난 같은 싸움은 이제 끝이다. 내가 빨리 집에 가서 쉬어야 할 것 같거든.”

지금부터 전심전력으로 너를 박살 내 주마.

“천마강륜.”

제운강이 두 손을 크게 휘두르자 유형화된 내공 덩어리가 쏴아아악,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부메랑처럼 날아갔다.

개방의 방주이자 십존의 일인인 취걸개의 사지를 절단한 기술이기도 했다.

“아직도 얘들 장난 같소만.”

매우 매서운 공격이었음에도 차분히 응수한 남궁도의 검에 두 개의 검날이 햇볕에 닿은 눈처럼 녹아 사라졌다.

“설마 이게 다는 아니겠지?”

“물론!”

그의 도발에 격분한 제운강이 후속 공격을 했다.

“천마십지공이란 것이다.”

제운강의 열 개의 손가락에서 작은 강기들이 비수처럼 발사되었다.

각각의 위력은 천마수탄보다 약하지만, 눈으로 좇기 힘든 속도를 자랑했다.

남궁도도 자신의 전신 사혈을 노리고 날아오는 천마십지공의 쾌속 질주에 당황한 눈치가 역력했다.

너도 곧 화산파 장문인이었던 진무처럼 열 개의 구멍에서 피를 흘리면 죽어 갈 것이다.

“푸하하하하…….”

승리를 확신하며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던 제운강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게 되나?”

남궁도가 두 눈을 감더니 소리만으로 열 개의 강기환을 모두 막았다.

천마십지공보다 훨씬 빠른 쾌검으로.

어찌나 빠른지 제운강도 방금 휘두른 남궁도의 검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기필코 네놈을 죽여 주마.”

오기가 생긴 제운강이 쉴 틈을 주지 않고 연이어 공격했다.

“천마벽천공.”

그래, 솔직히 이건 막을 거라 예상했다.

“천마괴룡장.”

어라? 이것도 막아?

“천마공참파, 천마화룡각, 천마 수탄…….”

마교 최강, 천마신공의 최고 절초들을 연신 퍼부었음에도 남궁도는 무사했다.

오히려 내공을 가뭄에 지하수 뽑듯, 무리하게 끌어다 쓴 제운강이 제풀에 지쳐 먼저 헉헉거렸다.

‘남궁세가는 대체 뭔 짓을 했길래 저런 괴물을 길러 낸 거야?’

자신은 만성피로에 젖어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데 남궁도는 이곳에 처음 등장했을 때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땀 한 방울 안 흘리는 모습을 보니 얄밉기까지 했다.

“너 대체 몇 살이냐? 혹시 반로환동한 노인 아니냐?”

“올해로 스물셋이오.”

씨팔, 진짜 괴물 맞네.

현재 제운강의 나이가 딱 마흔.

삼 년 전, 그러니까 서른일곱에 마교 교주로 등극했다.

그러고도 마교 역사상 최연소 교주로서 무공의 천재, 신이 내린 재능이라는 등, 온갖 찬사를 받았다.

그런데 저놈은 이제 겨우 스물셋?

제운강이 마교 최일선 전투부대에서 선임들 속옷이나 빨고 있을 때 이미 천하제일인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

온몸에서 힘을 뺀 제운강이 내공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 양손에 몰아넣었다.

천마신공 최강 최후의 기술, 천마대환무을 펼치기 위함이었다.

작은 태양을 박아 넣은 듯 밝게 빛나는 제운강의 양 손바닥을 보고 남궁도도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꼈나 보다.

그도 긴장한 얼굴로 검을 곧추세웠다.

“남궁세가 최강의 검술, 제왕무적검법으로 응수하겠소.”

그런 검법이 있었나?

남궁세가 최강의 검법은 창궁무애검법 아니었나?

이름 참 촌스럽다고 비웃어 주고 싶지만, 제운강은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그만큼 남궁도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압도적이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보내 주겠소.”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제운강은 죽었다.

남궁도의 검에 온몸이 관통당해.

그의 호언장담대로 어떠한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다.

*   *   *

제운강은 저승이 어떤 곳인지 당연히 몰랐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알겠다.

최소한 이곳이 저승은 아니란 걸.

“도련님! 도련님! 이제 정신이 드십니까?”

눈을 뜬 그의 얼굴 위로 이마 정중앙에 점이 있는 청년이 눈물, 콧물을 질질 짜며 울고 있었다.

“……여긴 어디냐?”

제운강이 상체를 겨우 일으켜 세우는데 점박이가 덥석 껴안았다.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신 겁니까!?”

뭔 선택?

그것보다 이것 놔라.

난 남색에 관심 없으니.

“다른 사람들이 도련님을 보고 남궁세가의 칠푼이니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수치니 욕해도 이제껏 잘 참으셨잖습니까.”

지금 당장 나를 놓지 않으면 천마신공으로 대가리를 으깨 버릴…… 뭐? 내가 누구라고?

“……내가 남궁세가라고?”

“기억을 잃으신 겁니까? 혹시 후유증이 있나?”

점박이가 나의 이마에 손을 얹고 눈꺼풀을 확 까집어 보는 등 온갖 부산을 떨었다.

“도련님은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도 대협의 막내아들이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

이 새끼는 아까부터 뭔 헛소리를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

내가 남궁도의 아들이라니.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 리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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