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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2화 (2/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2화

사람들은 보통 황당한 일을 겪게 되면 일단 부정부터 하게 된다.

‘아니야,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 리 없어.’

‘이건 분명 꿈일 거야.’

그럴 리 없다며 본인이 처한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시간을 낭비하곤 한다.

하지만 그건 평범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고, 전 제운강, 현 남궁정혁은 남들과 달랐다.

그가 누구인가?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흙수저 출신으로 뼈를 깎는 노력과 천부적인 재능을 결합해 마교 교주까지 오른 자수성가의 화신이자 개천에서 난 용, 아니 천마 아니던가.

그는 본인이 처한 현실을 빠르게 파악하고 받아들였다.

이게 무슨 조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이 환생했다는 것을.

그것도 무려 이십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서.

다만 수긍했다는 것이지, 현재 상황에 불만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남궁정혁은 지금 심기가 무척 불편했다.

“……우선 생긴 것부터가 맘에 안 든단 말이야.”

그가 잔잔한 연못 표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동그랗게 큰 눈. 일자로 쭉 뻗은 코, 갸름한 하관.

남자치고는 너무 곱지 않은가.

꼭 기생오라비처럼.

“쯧쯧, 남자란 자고로 듬직하게 생겨야 하는 법이거늘.”

이에 비하면 전생의 제운강은 얼마나 남성적인 매력인가 넘쳤는가.

각진 턱, 부리부리한 눈매로 마교 내 숱한 여인들의 방심을 흔들었지.

그런데도 여인들이 그에게 그런 마음을 한 명도 내보이지 않은 것은 부끄러워서일 것이다.

마교의 여인들은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행동했음에도 말이다.

분명 그랬던 것이리라.

“…….”

어쨌든 못마땅한 건 외모뿐만이 아니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이 얼마나 등신이냐면…….

“도련님, 바람이 찹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연못가에 홀로 서 있는 남궁정혁을 보고 정학우가 다가왔다.

이틀 전, 남궁정혁이 처음 깨어났을 때 그를 붙잡고 대성통곡했던 그 사람 맞다.

처음엔 시종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남궁정혁의 호위무사란다.

그런 것치고는 비실비실해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가 남궁정혁의 안색을 살피다 조심스레 물었다.

“도련님, 아직도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겁니까?”

“…….”

돌아올 리가 있겠냐, 겉은 같아도 안에 있는 혼이 바뀌었는데.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생긴 일시적인 증상일 것입니다. 마음 편안히 먹고 푹 쉬면 분명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는 그런 나쁜 짓을 하시면 안 됩니다.”

나쁜 짓? 그게 뭔데?

자살하지 말라는 거냐?

외모도 마음에 안 들지만, 그것보다 마음에 안 드는 건 이 몸의 원래 주인의 심약한 마음이었다.

인생을 비관해 뒷산 절벽에서 뛰어내렸다나.

‘뛰어내린 건 그놈인데 아픈 건 왜 나냐고.’

억울해 죽겠네.

머리가 깨진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그동안 남의 대가리만 깨고 다녔지, 내 머리가 깨진 적이 없어서 몰랐다.

골통이 쪼개지는 느낌이 이렇게 아픈지.

걷기만 해도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혹시 이것도 전생의 업보 중 하나일까.

다른 사람의 고통을 너도 느껴 보아라, 뭐 이런 거.

“후우.”

남궁정혁이 답답한 마음에 머리에 둘둘 감긴 붕대를 매만지며 한숨을 토하자, 그 뜻을 오해한 정학우가 옆에서 위로했다.

“……세상에 여자는 많습니다. 분명 연화 소저보다도 더 아리땁고 현명한 여인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암요! 저희 도련님이 뭐가 부족하다고 그런 여인 하나 때문에 그러십니까!”

모지리, 등신, 바보.

투신을 행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혼담이 오가던 여인이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서란다.

고작 그런 일로 스스로 삶을 포기하다니.

오히려 그 연놈들을 잡아 족치겠다는 각오로 더욱 열심히 살아야지.

전생의 제운강이 원래의 남궁정혁을 만났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두들겨 팼을 거다.

제발 살려 달라고 빌 때까지.

“그나저나 큰일입니다.”

남궁정혁이 한심하고 나약한 청춘에게 분개하고 있을 때 정학우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염려했다.

“출타했던 가주님이 내일 돌아오시면 큰 호통을 칠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덜 혼나기 위해서는 무조건 잘못했다고 비세요.”

“……혹시나 해서 다시 묻는데 내 아버지라는 사람이 진짜 남궁도가 맞냐? 이십 년 전 천마를 이긴 그 남궁도? 동명이인 아냐? 제발 그렇다고 해 줘.”

“똑같은 대답 하느라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입니다. 도대체 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하는 겁니까? 도련님의 부친은 남궁도 대협이 맞습니다.”

정학우가 가슴을 내밀고 뿌듯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이십 년 전 천마를 죽이고 정마대전을 종식한 천하제일검이자 자랑스러운 남궁세가의 현 가주!”

자랑스럽기는 개뿔이. 머리통을 세게 쥐어박고 싶은 걸 참았다.

그나저나 진짜 미치겠네.

뭐, 다 좋다 이거야.

기생오라비처럼 생기면 어떻고, 자살 따위나 하는 등신이면 어떠하랴.

외모야 취향 차이가 있는 것이고 썩은 정신이야 개조하면 그만이다.

근데 내가 남궁도의 아들이라니.

나를 죽인 원수, 남궁도가 내 아버지라니.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단 말인가.

“씨팔, 염병, 우라질…….”

남궁정혁이 온갖 욕을 퍼부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

거참, 날씨 한번 우중충하다.

지금 내 심정처럼.

‘그냥 집을 나갈까?’

남궁정혁이 출가외인이라도 되어야 하나 고민할 때 누군가 나타난 인기척이 들렸다.

“가주님.”

정학우가 그 사람에게 쪼르르 달려가 고개를 조아렸다.

그 소리에 남궁정혁은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봤다.

그리고 거기에 보이는 건.

“……!”

진짜 남궁도였다.

기억 속에 그는 앳된 티를 완전히 벗지 못한 젊은 청년이었건만.

지금은 중후한 눈빛과 묵직한 존재감으로 제법 관록이 붙은 절대자의 분위기가 난다.

전생의 제운강이 그러했듯.

그런 그에게 정학우가 조심스레 여쭈었다.

“가주님, 내일 오신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었습니까?”

“정혁이가 또 사고를 쳤다고 해서 일정을 앞당겼다.”

남궁도가 무심하게 남궁정혁을 쳐다보았고, 남궁정혁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

“…….”

누군가에겐 이틀, 누군가에겐 이십 년.

두 사람을 그렇게 다시 만났다.

아버지와 아들. 부자 관계로서.

*   *   *

아, 싫다.

정말 싫다.

저 사람…… 아니 저 자식을 아버지라고 부르기가.

그래서 남궁정혁은 남궁도를 만난 이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닫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와 단둘이 방 안에 앉아 있는 지금까지도.

그건 남궁도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방안에 들어온 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사나운 눈길로 노려볼 뿐.

이에 질세라 남궁정혁도 눈동자에 핏발이 서도록 힘을 주었고, 마치 두 사람이 눈싸움이라도 하는 듯한 형국이 되었다.

그러고 있길 한참,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남궁도였다.

“세가 사람들이 너를 두고 뒤에서 뭐라고 수군거리는지 아느냐?”

“…….”

“너를 보고 칠푼이라고 한다. 어미 배 속에서 일곱 달 만에 태어나 칠푼이가 되었다고. 남궁세가뿐만 아니라 합비에 사는 모두 너를 그렇게 부른다.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상식이 부족한 사람들인가 봅니다. 일곱 달 만에 태어났으면 칠푼이가 아니라 칠삭둥이지.”

이십년 만에 다시 태어나 보니 사람들의 기초 상식 수준이 많이 떨어졌나 보다.

“사람들이 그걸 몰라서 너를 칠푼이라고 부르겠냐? 그만큼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네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제가 원래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라, 긍정적인 편이죠.”

“긍정적인 게 아니라 나약한 것이다. 네게 주어진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려 하기보다는 쉽게 꺾이고 포기하지.”

후, 나오는 한숨을 겨우 참으며 남궁수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번엔 그것마저도 실패했고. 이번만이 아니지. 네가 하고자 한 것 중엔 성공한 것이 없으니.”

이 양반, 아무리 그래도 말이 심하네.

말속에 가시가 있어.

설마 뛰어내린 게 실패해서 아쉬운 것 아니겠지?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향 피워서 되겠냐고?

물론 난 자식은 아니지만.

“제가 죽어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리겠습니다?”

쾅!

남궁정혁의 도발에 남궁도가 오늘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냈다.

바로 분노.

남궁도가 손바닥으로 대리석 탁자를 내려치자, 그것이 마치 검으로 자른 듯 반듯하게 둘로 갈라졌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부릅뜬 눈에서 화를 참고 있다는 게 여실히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껏 네가 무분별한 언행으로 인생을 허비해도 내가 참견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그것은 바로 미안함 때문이었다.”

“……?”

“어미 없이 너를 외롭게 자라게 한 미안함. 바쁘단 핑계로 너를 방치한 미안함. 너를 얼자로 태어나게 한 미안함.”

얼자?

내가 얼자였단 말인가?

가뜩이나 기생오라비 같은 이 몸에 들어온 것도 맘에 안 드는데 거기다 얼자라고?

“…….”

얼자는 주인과 하인 사이에서 낳은 자식으로 양민 출신의 첩 사이에서 낳은 서자보다도 더욱 낮은 대접을 받았다.

아니, 대접이라고 말할 정도도 아니지.

어릴 적부터 눈칫밥 먹고 자란 게 분명하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미안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네가 얼자라는 것이다. 나 또한 서자 출신으로 그 차별과 냉대를 잘 알고 있으니. 그래서 지금까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었다.”

“앞으론 아니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남궁도가 허리를 쭉 펴자, 그로부터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흘러나왔다.

“너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 번째는 지금이라도 대장장이 일을 제대로 배우는 것이다.”

웬 대장장이?

화롯가에서 망치로 철광석을 두들겨 패서 검 같은 거 만드는 사람?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내 적성이랑은 맞지 않아서.

“나머지는 뭔가요?”

“지금 당장 내 손에 죽는 것이다. 선택해라. 무엇이냐?”

남궁도의 커다란 손바닥에 시퍼런 강기가 파도처럼 출렁였다.

“……다른 선택지는 없나요? 둘 다 마음에 안 드는데.”

“죽고 싶다고?”

“남궁세가는 무림세가인데 왜 무공을 배운다는 선택지는 없는 겁니까?”

“네가 얼자이니까. 얼자는 남궁세가의 무공을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더냐? 정확히 말하면 직계 혈족들에게만 내려오는 본가의 비전을 익힐 순 없을 뿐 일반 무사들에게 가르치는 기본공은 익힐 수 있다. 하지만 기본공은 싫다고 네가 먼저 거부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기술이라도 배워야지.”

“얼자는 혈족도 아니랍니까? 반쪽이라도 남궁세가의 피를 이어받지 않았습니까?”

“……가법이 그러하다.”

얘가 삐뚤어진 이유가 있었군.

타고난 신분으로 차별하니 원래의 남궁정혁이 삐딱선을 안 타고 배겨.

하여간 정파 놈들은 이래서 문제야.

겉으론 협이니 정의니 온갖 위선은 떨면서 뒤에서 파보면 부조리투성이지.

그에 비하면 마교는 얼마나 공명정대한가.

타고난 신분, 배경 이딴 거에 상관없이 능력만 있으면 기회가 주어지니.

마교가 괜히 기회의 땅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진짜 그냥 가출해?’

치사하고 더러워서라도 마교로 돌아갈까 고민하는데.

‘……잠깐.’

고개를 번쩍 뜬 남궁정혁이 남궁도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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