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3화
남궁도와의 대화에서 이상함을 느낀 남궁정혁이 물었다.
“아버…… 당신은 서자이면서도 가주가 되었잖아요. 혹시 서자는 되도 얼자는 안 되는 겁니까?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당신이라는 말에 남궁도의 검미가 살짝 꿈틀거렸지만, 한숨을 쉬더니 이내 답했다.
“원래라면 서자도 가주가 될 수 없었다.”
“될 수 없다고요? 그럼 어떻게 가주가 된 것입니까?”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지 않았으니까. 내 운명에 저항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무공을 수련하며 나 자신을 갈고닦았다.”
잠시 말을 멈춘 남궁도는 이전을 회상하듯 생각에 잠기더니 이어 말했다.
“그리고 내 능력으로 나날이 쇠락하는 세가를 천하제일세가로 우뚝 일으켜 세웠다. 그 공을 인정받아 가법을 고쳐 가면서까지 가주가 되었다.”
그 공이 설마 천마를 죽인 일?
그렇다면 남궁도가 남궁세가의 가주가 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바로 나로군.
내가 이 한 몸 바쳐 당신을 남궁세가의 가주로 만들어 주었다고.
……씁쓸하구만.
“그럼 저도 큰 공을 세우면 가주가 될 수도 있다는 거군요.”
“운명이 쥐여 준 무게에 짓눌려 스스로 인생을 포기한 네가?”
어쭈, 비웃어?
네가 했는데 나라고 못 할 것 같아?
이거 왜 이래, 나도 천마야.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 적이 있는 남자라고.
남궁정혁이 꿈틀거리는 미간을 애써 진정시키며 남궁도에게 당차게 말했다.
“저도 꼭 가주가 되어야겠습니다.”
“무엇 때문에?”
“제가 어디 한 곳에 소속되면 꼭 그곳의 우두머리가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서요.”
“네가 그런 성격인지는 오늘 처음 알았구나.”
남궁정혁의 말에 남궁도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겨우 그것이 다냐? 세가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없이?”
없긴 왜 없어, 당연히 있지.
나의 지금 목표는 오로지 하나.
‘이 빌어먹을 남궁세가를 마교처럼 바꿔 주마.’
그래, 내가 가긴 어딜 가냐.
천마는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천마가 있는 그곳이 곧 마교다.
“고리타분한 가법과 예절에서 벗어난 진짜 무가를 만들 것입니다.”
힘을 향한 강한 열망.
누구보다 강해지고 싶은 경쟁의식.
그게 바로 마교다.
때론 경쟁이 너무 지나쳐 갖은 배신과 뒤통수가 난무하긴 하지만 그게 나쁜가.
애초에 이 세상은 약육강식이다.
당한 놈이 약한 놈이고 멍청한 것이지.
내가 꼭 남궁세가를 마교처럼 타락…… 아니 순수한 무예의 장으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남궁도, 이번 생애에선 너를 반드시 내 발밑에 무릎 꿇리리라.’
한 번은 패배했지만, 두 번은 없다.
남궁세가의 검으로 남궁도를 쓰러뜨리는 상상을 하며 통쾌함을 느낀 남궁정혁이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었다.
“푸하하하하하…….”
“…….”
그러다 이내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남궁도의 시선을 느꼈다.
뭐냐? 시선에서 왠지 한심함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왜 그런 눈빛으로 절 쳐다봅니까?”
“……네 모습이 마치 교활한 음모를 꾸미는 악당 같아서.”
악당?
좋다, 목적을 이룰 수만 있다면 내 기꺼이 악당이 되리라.
남궁세가를 박살 낼 수만 있다면…….
“맘대로 생각하십시오, 최후의 승자는 제가 될 테니까. 푸하하하하.”
의미 모를 소리와 함께 사악하게 웃는 남궁정혁을 보며 남궁도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저놈이 내 자식으로 태어나 이리 속을 썩이는 걸까?’
전생에 큰 죄를 지으면 자식으로 태어나 골치를 썩인다더니.
아마 모르긴 몰라도 자신이 막내아들에게 큰 잘못을 한 것 같다.
설마 살인죄, 이런 건 아니겠지?
“…….”
뭔지 몰라도 벌써 이기고 있는 것 같다.
눈을 꼭 감은 남궁도가 나 때문에 괴로워하는 걸 보니.
천하제일검도 자식 앞에서는 어쩔 수 없구나.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야.
푸하하하하, 통쾌함을 느끼던 남궁정혁은 이내 웃음을 멈추고 남궁도에게 물었다.
“남궁세가의 가주가 되기 위해선 뭘 하면 됩니까?”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할 수 있는 건 있고?”
이 양반, 자기 자식을 너무 못 믿는 거 아냐.
부모가 자식을 못 믿으면 누가 믿어 주냐고요.
그만큼 이 몸의 원래 주인이 등신인 것 같긴 하지만.
“전부 다요, 가주가 되기 위해 제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면 전부 다.”
“…….”
남궁도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심후한 눈빛으로 남궁정혁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가주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당연히 무공이죠. 가장 센 놈이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게 마교…… 아니 무림의 진리 아닙니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무림인에게 있어 무력은 중요한 요소이니.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남궁세가의 가주가 되기 위해서는 무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전부가 아니라고?
무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난 무공이 가장 강해서 마교의 교주가 되었는데.
날 반대하는 놈들 대가리에서 피 질질 흘리게 해 주면서.
예상과 다른 남궁도의 단언에 남궁정혁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럼 뭡니까? 설마 타고난 신분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겠죠?”
“가장 중요한 건 신망과 인덕이다. 세가 사람들이 너를 진심으로 믿고 지지해야 한다. 그럼 의미에서 너는 이미 자격을 잃었다고 할 수 있다.”
“제가 남궁세가의 칠푼이라서요?”
“한 번 잃은 민심을 되돌리는 건 흘린 물을 다시 주워 담는 것보다 힘들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죠.”
참고로 전생의 천마 제운강은 흘린 물도 잘 주워 담았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허공섭물의 수법으로 물을 끌어모아 허공에 들어 올린 다음, 병 안에 담으면 된다.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말하는 남궁정혁의 태도에 남궁도가 뿔이 났나 보다.
그가 성난 어투로 말했다.
“과도한 자신감은 실수의 원인이다.”
“하기도 전에 쪼는 것보단 낫죠.”
“말보다 중요한 것이 행동이다.”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못 할 것도 없더라고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문답에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금 허공에서 격렬히 부딪혔고.
한숨을 한 번 폭 내쉰 남궁도가 말했다.
“그렇다면 증명해 보아라.”
“어떻게요?”
“어떻게든.”
무슨 일을 맡기면 좋을까, 잠시 고민한 남궁도가 말을 이었다.
“이렇게 하자. 이번에 너로 인해 벌어진 일련의 소동을 네가 수습해 보아라.”
“소동이라면……?”
“이번 사건으로 인해 넌 또다시 남궁세가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 약혼 당사자인 신성상단에 네가 직접 가서 책임을 묻고 사태를 정리할 수 있겠느냐?”
“못 할 것도 없지요. 다만 제 방식이 조금 과격해도 괜찮겠습니까?”
“네 앞에 앉아 있는 내가 누구고 네가 앉아 있는 이곳이 어디더냐? 정도를 벗어난 길만 가지 않는다면 그 뒷수습은 신경 쓸 필요 없다.”
“제가 가주가 될 자격을 갖추면 가법도 바꾸고요?”
“네가 하는 거 봐서 못 할 것도 없지.”
“좋습니다. 제발 가주가 돼 달라고 빌게 만들어 드리죠.”
자신만만하게 말한 남궁정혁이 방을 나갔고 남궁도는 처음에 앉은 그 자세 그대로 방안에 남았다.
“어떻게 생각하나?”
언제 나타난 것일까?
바람처럼 스며든 중년 남자가 어느새 남궁도의 등 뒤에 시립했다.
“낯섭니다.”
“낯설다?”
“예.”
그는 남궁도의 최측근이자. 남궁세가의 그늘진 곳에서 정보수집, 내부감찰 등의 임무를 담당하는 무영각의 각주, 모단수였다.
그런 그는 느꼈다.
지금의 남궁정혁이 예전의 남궁정혁과는 무척 다르다는 걸.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듯했습니다. 이제껏 정혁 도련님이 반항적이긴 했지만, 오늘처럼 가주님께 당당히 맞선 적은 없지 않습니까?”
“죽다 살아나니 심경의 변화를 느꼈나 보지.”
“그렇다고 해도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모단수의 말에 남궁도가 헛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허, 더욱 나쁘게 변했단 말인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래도 날 피해 다니면서 젊음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하고자 하는 목표도 생겼고.”
사내는 꿈이 커야 한다고 늘 말하긴 했지만, 인제 와서 남궁세가의 가주가 되고 싶다니.
재밌다는 듯, 피식 웃는 남궁도를 보며 모단수가 말했다.
조금은 염려된다는 어투로.
“한데 괜찮겠습니까? 신성상단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곳이긴 하지만 재물이 쌓인 곳이니만큼 소속된 무인들이 적지 않지 않습니다. 정혁 도련님 혼자서 상대하긴 버거울 것입니다.”
“자네도 보지 않았나, 녀석이 큰소리치는 것을.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자고. 설마하니 신성상단에서 정혁이를 죽이기야 하겠는가.”
“그렇긴 하겠다만…….”
모단수가 고개를 들어 남궁도의 옆얼굴을 힐끔 보며 계속 말했다.
“정말 정혁 도련님을 위해 가법까지 바꾸실 생각은 아니시지요? 아무리 가주님이라도 독단적으로 가법을 바꿀 수는 없지 않습니까. 특히 가주직과 관련된 것이라면 장로들 전원의 찬성이 필요한데 그들이 결단코 반대할 것입니다.”
자신이라고 그것을 어찌 모를까.
차마 아픈 손가락 같은 아들에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가장 많이 변한 건 눈빛이더군.”
“…….”
“예전에 텅 빈 눈에 목적 없는 악기만 가득했는데. 오늘 보니 어떻게든 살고자 발버둥 치는 눈빛이야. 아비로서 그 의지를 북돋아 주지는 못할망정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지 않은가.”
“…….”
“조금 더 지켜보자고. 잠깐의 변덕일지 아니면 정말로 변한 것인지.”
여태껏 무뚝뚝했던 남궁도의 표정에 처음으로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흡족함이었다.
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자식이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건 아비 된 자의 즐거움 중 하나이니라.
* * *
이제 나오나?
가주님께 야단맞고 시무룩할 줄 알았더니 아니다.
도련님의 얼굴을 보니 오히려 홀가분한 표정이다.
그러니 어찌 궁금하지 않으랴.
안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그래서 정학우는 남궁정혁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연신 질문을 퍼부었다.
“도련님, 안에서 두 분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습니까?”
“약혼을 앞두고 바람을 피운 그 연놈들의 목을 치고 가문까지 모두 불 질러 버리라고 하더군.”
남궁정혁이 별일 아니라는 듯 시큰둥하게 말하자 정학우가 깜짝 놀랐다.
“……가주님이 정말 그러라고 하셨다고요?”
“응, 나보고 사태를 직접 수습하래. 정도를 벗어난 일만 아니면 괜찮다고 했으니 그 말이 그 말 아니겠어?”
“그 정도면 정도를 많이 벗어난 것 같은데요.”
“쯧쯧.”
남궁정혁은 ‘넌 뭘 몰라서 그런 소릴 하는 거야.’라는 듯한 의미로 검지를 세워 흔들었다.
“손을 아예 쓰지 않으면 몰라도 일단 쓰기로 마음먹었으면 제대로 써야 한다. 다시는 놈들이 내 앞에서 고개조차 들지 못하도록. 그것이 패도의 길이니라.”
“…….”
그러니까 왜 정파에서 패도를 찾냐고요.
그건 저 십만대산에 서식하는 인격파탄자들이나 환장하는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