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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4화 (4/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4화

남궁정혁의 호위무사로 발령받은 건 3년 전이다.

그때 정학우는 생각했지.

‘나는 망했다.’

나름 착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름 성실히 살았다고 자부하는데.

하늘은 자신에게 왜 이런 시련을 내려 주신다는 말인가.

‘내가 뭘 잘못했다고요?’

남궁세가의 수치, 남궁정혁에 대한 악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는 짓이 얼마나 개차반 같은지 가문의 명예를 좀먹는 쓰레기라고.

하지만 어차피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가주의 자식인 그놈과 남궁세가 평무사인 자신이 엮일 일이 뭐가 있다고.

근데 제대로 엮여 버렸네?

왜 하필 접니까? 남궁세가의 많고 많은 무사 중에 왜 하필 제가 남궁정혁의 호위무사가 되어야 하냐고요.

윗사람을 찾아가 항의도 많이 했다.

“저는 못 합니다. 그자의 호위무사 될 바에는 차라리 남궁세가에서 파문당하겠습니다.”

중원에 문파가 여기밖에 없나.

그런 더러운 일을 맡느니 차라리 남궁세가를 그만두게 낫지.

근데 알고 보니 녹봉을 이만큼 많이 주는 데는 남궁세가 밖에 없더라고.

괜히 대문파가 아니다.

그래서 사정도 많이 했다.

“이곳에서 받는 녹봉으로 고향에 계신 홀어머니를 봉양해야 합니다. 저 사정도 좀 봐주세요.”

결국 아무 소용없었지만.

나중에서야 알았다.

자신이 왜 남궁정혁의 호위무사로 발령받았는지.

‘이래서 착하게 살면 손해라니까.’

무던하고 착한 사람.

이게 바로 주위에서 정학우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허허허.

손해를 봐도 허허허.

누가 욕해도 허허허…… 는 개뿔.

아니, 착하게 살면 상을 받아야지, 왜 벌을 받냐고.

남궁정혁의 호위무사를 했다가 그만두고 남궁세가를 나간 사람이 이미 여럿이란다.

그래서 자신까지 순번이 왔다나.

무공의 강함과는 상관없이 그냥 버틸 수만 있으면 된다고.

‘그때는 도련님이 진짜 개차반인 줄 알았지.’

어쩔 수 없이 남궁정혁의 호위무사를 맡게 된 첫날.

“넌 뭐야? 꺼져!”

최소한 사람을 처음 봤으면 넌 누구냐고, 이름부터 묻는 게 최소한의 예의 아닌가.

자신은 그렇게 배웠는데.

한데 다짜고짜 꺼지라니.

진짜 가주님의 아들만 아니었으면 꿀밤 한 대 먹였다.

그렇게 돈 때문에 하루만 버틴다는 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어느새 삼 년이 지났다.

이제는 알지.

남궁정혁의 본성을.

‘외로우셨던 게야.’

가주님은 일이 바빠 자식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뿐이면 조금은 덜 어긋났으련만.

얼자라는 신분의 족쇄가 그의 운명을 가로막았다.

최소한 먹고살 걱정은 없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자신이라도 옆에서 잘 보필해야지.

그런데 우리 도련님이 뒷산에서 뛰어내리다니.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간절히 빌기도 했고.

제발 목숨만 살려 달라고.

근데 진짜 목숨만 살려 주셨네?

사람이 머리에 큰 충격을 받으면 성격이 저렇게 바뀔 수도 있나?

아까부터 뭐? 패도?

헛소리하시는 걸 보니 그 후유증이 심상치 않은 것 같다.

신성상단에 가서 불을 지르다니.

하도 자신만만하게 말하길래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가준님이 무사를 지원해 준다고 하셨습니까? 그래서 신성상단에 복수할 겁니까?”

“그런 말은 따로 없던데? 필요도 없고.”

“지원이 없다고요? 그럼 무슨 수로 신성상단에 가서 불을 지를…… 아니 책임을 물을 겁니까?”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남에게 미뤄 본 적이 없다.”

‘미루는 거 많이 봤는데요’라고 중얼거린 정학우가 의심스러운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남궁정혁을 바라봤다.

“무공도 모르는 도련님이 무슨 수로요?”

“익힐 거야.”

“언제요?”

“오늘부터.”

“그럼 신성상단에는 어느 세월에 갑니까? 내후년쯤에나 슬슬 가시려고요?”

“아니, 내일 가야지. 오늘은 시간이 늦었잖아. 해 지고 남의 집에 찾아가는 건 예의가 아니야.”

“…….”

정학우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억지로 참았다.

땅바닥 밑에 지하 있다더니, 아무리 봐도 상태가 더 안 좋아졌어.

인성이 이리 변할 수가 있나?

차라리 이전의 도련님이 더 나은 것 같았다.

……그건 또 아닌가.

어쨌든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살아 있는 게 용하긴 하지.

정학우가 그런 생각을 할 때, 남궁정혁이 기거하는 3층 전각에 도착했다.

“내일 화섭자는 넉넉히 준비해라.”

“왜요?”

“불은 크게 질러야 제맛이거든, 그래야 보는 맛이 있어.”

정학우에게 신신당부한 남궁정혁은 머리를 감은 붕대까지 풀어헤치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도련님, 머리에 붕대, 아직 풀 때가 아닌 거 같습니다만…….’

에휴, 요즘 따라 한숨이 끊이지 않는 정학우였다.

*   *   *

방으로 돌아온 남궁정혁은 다시금 방을 둘러봤다.

갖은 색 비단과 장신구들로 치장된 지나치게 화려한 방이었다.

원래의 남궁정혁은 자신 내면의 열등감을 이렇게라도 해소하고 싶었던 걸까.

현재 남궁정혁의 취향에는 전혀 맞지 않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는 방 한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정학우에게 언급한 대로 이제 본격적으로 무공을 익혀 볼 참이다.

‘환생한 것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지.’

그는 전생에 이미 무림 최강자의 반열에 올랐었다.

그렇다고 전직 천마는 본인의 무공에 만족했을까?

아니, 전혀, 천부당만부당이다.

그럼 그는 왜 다른 사람들이 우러러 치켜세우기도 모자라 경배해 마지않았던 자신의 무공에 만족하지 못했을까?

본인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급하게 먹은 밥이 당장의 허기는 채워 주지만 소화는 느리다는 것을.

무림의 잘못된 속설이 하나 있다.

장파의 무공은 입문 초기에는 발전이 더디지만 높은 경지까지 꾸준히 성장할 수 있고, 마교의 무공은 초반에는 빠른 성장을 하지만 높은 경지로 갈수록 발전이 더디다.

일견 맞는 말처럼 들린다.

실제로 그러하니까.

정파의 무인들은 초반에는 느린 성장에 답답해하지만 높은 경지까지 막힘없이 꾸준히 나아간다.

마치 거북이가 걷는 것처럼.

반면 마교의 무인들은 초반의 빠른 성장에 만족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 도달하면 성장을 가로막는 내면의 벽을 만날 확률이 정파의 무인보다 상대적으로 높다.

그래서 그 조급함을 이기지 못한 몇몇 마교 고수들은 주화입마에 빠지거나 심지어는 마기가 골수에 침범하여 피에 굶주린 살인마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제운강은 분석했다.

‘그 원인이 꼭 무공의 성질 때문만은 아니다.’

진짜 원인은 무공을 익히는 사람들의 성격 때문이라고.

마공을 배우는 사람들은 대체로 성격이 다급하고 인내심이 부족하다.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주변 환경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마교는 무한경쟁, 실적 제일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자, 생각해 보라.

수백 종이 넘는 마공이 있다.

당신은 그중 하나를 선택하여 익혀야 한다.

그럼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엄청 고민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주위에 어떻게든 나를 짓밟고 위로 올라가려는 놈들 틈바구니에서 고민 따위는 사치이기 때문이다.

나도 당장 강해질 수 있는 마공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기초를 다지는 데 불완전한 무공이라 할지라도.

남들은 이미 외발 뜀뛰기로 저만치 앞서가는데 나만 두 발로 아장아장 걸을 순 없지 않은가.

마공에도 대기만성 할 수 있는 무공이 있음에도 외면받는 이유였다.

반명 정파는 달랐다.

그놈들은 어쨌든 겉으로는 인내를 강조했다.

대놓고 뒤통수를 치는 사람도 없다.

차분히 무공을 익힐 수 있는 심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기초가 튼실할 수밖에.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점은 고려치 아니하고 결과만으로 원인을 분석했다.

인과관계가 뒤바뀐 것이다.

제운강 또한 그런 실수를 했었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 기초를 등한시하고 실전적인 무공을 익혔다.

다행히 천부적인 재능과 악착같은 노력으로 극마의 벽을 뚫고 탈마의 경지에 거의 다다른 초고수가 되긴 했지만,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아쉬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

이번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우선은 천마개화술이다.”

마교 교주만이 익힐 수 있는 천마신공에는 신묘한 효능을 가진 재주가 여럿 있었다.

그중 하나가 천마개화술.

체내의 탁기를 몰아내고 정화해 인체가 무공을 익히기에 가장 적합한 상태로 만드는 비술이었다.

남궁정혁은 속으로 구결을 외며 그것에 집중했다.

들숨, 날숨 규칙적인 호흡을 통해 받아들인 자연의 기운을 땔감 삼아 몸 안의 불순물을 체외로 배출하기 시작했다.

원래 남궁정혁의 무절제한 사생활로 인해 그동안 몸 안에 쌓인 나쁜 기운들이 전신 모공에 몽글몽글 맺혔다.

그러고 있길 한참.

아침 이슬 같았던 물방울들이 점점 커져 이내 몸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남궁정혁은 찌뿌둥했던 몸이 점차 개운해지는 걸 체감했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갓 태어난 아기와 같은 상태로 만들 생각이었다.

혈도와 혈관에 불순물 따윈 티끌만큼도 없는 순수한 상태로.

분명 달이 채 뜨기도 전에 시작한 일이었으나 어느새 동쪽에서 해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을 느끼며 남궁정혁은 눈을 떴다.

‘······다 됐다.’

기분만으로는 앉은 자세 그대로 펄쩍 뛰면 천장에 머리가 닿을 것처럼 상쾌했다.

실제로 근력도 상승했고.

웬만한 장정 대여섯 명은 가볍게 찜 쪄 먹을 것이다.

내친김에 단전까지 만들어 봐?

그렇게 고민하는데.

“도련님, 도련님!”

무슨 급한 일이 있는 걸까?

정학우가 문을 부술 듯 열고 들어왔다.

“도련······ 크흡.”

그가 황급히 코를 막더니 남궁정혁을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봤다.

“도련님······.”

눈물까지 글썽이는 걸 보니 많이 안타까운 모양이다.

“마음의 상처가 큰 줄을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지독할 줄을 몰랐습니다. 어서 극복하셔야죠.”

응? 뭐가?

“어젯밤에 자다가 오줌 지리신 거잖아요.”

“······.”

체외로 배출된 탁기의 고약한 악취를 소변의 지린내와 혼동한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

“걱정 마십시오, 사나이 정학우의 명예를 걸고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하겠습니다.”

“네가 단단히 오해한 모양인데······.”

“사실 저도 몇 달 전에 술 먹고 이불에 오줌 싼 적이 있습니다.”

“······아침 댓바람부터 날 찾은 이유가 뭐냐?”

아차, 그제야 본래 용무를 깨달은 정학우가 분하다는 듯 씩씩거렸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냐면······.”

*   *   *

두 남자가 드넓은 남궁세가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정학우는 뭐가 그리 급한지 발을 성큼성큼 내디디며 걸음을 재촉했고, 그 뒤를 따르는 남궁정혁은 산보하듯 천천히 걸었다.

그런 남궁정혁의 여유가 답답했는지 앞서가던 정학우가 뒤를 돌아보며 재촉했다.

“도련님, 빨리 좀 오십시오.”

“빨리 가든 천천히 가든 뭔 상관이냐? 제 발로 남궁세가를 찾아온 사람이 도망갈 것도 아니고.”

남궁정혁 예비 정혼자와 정분이 난 그놈이 남궁세가로 찾아왔단다.

이름이 풍상호라고 했던가.

다짜고짜 나를 만나고 싶단다.

안 그래도 조만간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먼저 와 주면 나야 걸음 아끼고 고맙지.

어디 얼굴이나 한번 보자.

“도련님은 왜 그리 유유자적합니까? 다른 사람이 보면 마치 남의 일인 줄 알겠습니다.”

“그러는 넌 마치 네 일 같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지가 파혼당한 줄 알겠네.

그리고 남 일 맞아.

가주가 되기 위해 인정받는 일이 아니었으면 풍상호인지 풍산개인지는 신경도 안 썼을 거다.

무공 수련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먼저 찾아옵니까? 아주 죽고 싶어 환장했나 봅니다.”

그러니까 네가 왜 그리 흥분하냐고.

나는 찾아가는 수고 덜어서 편하기만 하고만.

이걸 충성심으로 봐야 하나, 오지랖으로 봐야 하나.

어찌 됐든 날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 기특하게 여기기로 했다.

“하찮은 짐승도 자기 죽을 자리는 아는 법이지.”

남궁정혁이 필요 이상으로 흥분한 정학우를 달랬지만, 정학우는 뜨거운 콧김까지 씩씩 내뿜으며 더욱 분개했다.

“도련님은 참 사람 볼 줄 모르십니다. 하필 친구를 사귀어도 그런 사람과 우정을 나누다니요.”

……어? 이건 처음 듣는 소린데.

친구한테 여자를 뺏긴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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