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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6화 (6/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6화

갑자기 튀어나온 여인을 보는 순간 대충 짐작이 갔다.

“가가, 괜찮으세요?”

“소저…… 위험하니 얼른 다른 곳으로 가시오.”

“어떻게 가가를 놔두고 갈 수가 있나요.”

혹시나 해 정학우를 쳐다보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나.

‘이 몸의 원래 주인이었던 머저리가 왜 마음을 빼앗겼는지 알 것 같군.’

척 보기에도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긴 생머리, 여리여리한 몸에 달걀처럼 갸름한 얼굴은…… 아니, 니들 지금 뭐 하세요?

“연화, 그나저나 이곳에는 어떻게 온 것이요?”

“가가께서 남궁세가로 향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슨 화를 당하지 않을까 염려되어 급히 쫓아왔습니다.”

“그대마저 화를 입으면 어쩌려고.”

“당신이 계신 곳이라면 지옥인들 마다할까요.”

“연화…….”

“가가…….”

아주 지랄들을 해라.

저 연놈들이 밀애하려거든 야밤 물레방앗간에서나 몰래 만날 것이지, 대놓고 사람 염장에 불을 질러?

내가 직접 바람을 당한 건 아니지만 저 모습을 보니 여간 아니꼬운 게 아니다.

그래. 너희들은 그 머저리가 뛰어내렸다는 뒷산에 나란히 파묻어 주마.

남궁정혁이 그렇게 결심할 때, 연화가 사나운 눈길로 그를 쫙 째려봤다.

바로 전까지 눈에 꿀을 머금고 풍상호를 바라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이거 취급이 너무 차이 나는 거 아니야……?

거의 사람과 동물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내가 너희를 그렇게 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도대체 왜 우리를 이렇게 괴롭히는 겁니까?”

끼리끼리 논다더니 뻔뻔하기가 풍상호와 아주 판박이다.

아마도 다음에 할 말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게 죄란 말입니까?”

역시나, 너희 여기 오기 전에 같은 말 하기로 짰냐?

“우리한테 했던 말은 다 거짓이었나요? 우리의 사랑을 축하한다고 다독여 주지 않았습니까.”

“응? 내가?”

이건 예상외의 말인데.

그 머저리가 너희의 잘못된 만남을 축하했다고.

왜?

“아니, 그거 확실한 거야? 내 여자를 뺏기는데 내가 축하했을 리가 있나.”

“이제 와서 말을 바꾸는 것이냐?”

풍상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핏대를 세웠다.

그 얼굴이 얼마나 억울한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가 잘못한 줄 알겠다.

너희들의 순수한 사랑을 방해한 악연인 줄 알겠다고.

“연화는 네 여자가 아니라 내 여자다. 남궁세가에서 매파를 보내기 전부터 우린 사귀고 있었단 말이다.”

“……?”

이건 또 뭔 소리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려고 하는데.

“네가 연화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사귀고 있단 걸 미리 말하지 못했다.”

풍상호의 품에 안긴 연화도 말을 보탰다.

“가가께서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얼마나 고민했는지 아세요?”

“결국, 사태가 그 지경까지 이르고 나서야 너에게 우리 사이를 고백했다.”

“……그래서 내가 수긍했고?”

“미안해하는 나에게 오히려 네가 미안했다고 위로해 주지 않았더냐. 남궁 가주님을 만나 사태를 직접 수습하겠다고 하지 않았더냐! 근데 인제 와서 발뺌해? 이게 네 복수 방법이냐?”

“이런 방식으로 농락하려거든 차라리 그 검으로 우릴 죽여 주세요.”

“죽일 땐 죽이더라도 나란히 묻어 줘라.”

그건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참이긴 한데…….

‘음, 혼란스럽다.’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저들의 애절한 모습을 보니 거짓말하는 건 아닌 것 같단 말이야.

그럼 여기서 생기는 궁금증 하나가 있었다.

“그럼 나는 대체 왜 절벽에서 뛰어내린 거냐?”

“…….”

그 말에 풍상호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 미친 새끼야. 나도 궁금하다. 네가 왜 그런 짓을 벌였는지.’ 라고 항의하듯 날 바라보았고 연화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정학우마저도…….

*   *   *

혼란의 연속이다.

환생자, 원수의 아들.

그다음은 살인 음모?

그 상황에서 시시비비를 확실히 가릴 순 없다.

일단 남궁정혁은 풍상호와 연화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거처로 돌아왔다.

“학우야.”

“예, 도련님.”

“내가 실연의 아픔 때문에 자살을 시도했다고 단정 지은 이유가 무엇이냐?”

“유서에 그렇게 적혀 있었으니까요.”

“유서? 유서가 있었어?”

“도련님이 뛰어내린 절벽 위에 신발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그런 줄 알았죠.”

“근데 왜 유서가 있다고 말 안 했냐?”

“안 물어보셨으니까요.”

……그건 그렇지.

“그 유서는 지금 어디 있냐? 버린 건 아니지?”

“가주님이 돌아오시면 보셔야 할 것 같아서 제가 잘 챙겨 뒀습니다.”

“지금 당장 가져와라.”

정학우가 제 방에 둔 유서를 가져왔고, 나는 책장을 뒤져 그 머저리가 쓴 서찰 하나를 꺼내 유서와 나란히 펼쳤다.

“보십시오. 필체가 동일하지 않습니까. 도련님이 왜 이런 유서를 썼을까요?”

“…….”

“풍상호 공자님 앞에서는 괜찮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이런 식으로 복수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요?”

“…….”

유서와 서찰의 필체를 뚫어져라 비교해 본 남궁정혁이 말했다.

“……아니다. 이건 내가 쓴 게 아니야.”

“……제가 볼 땐 분명 똑같아 보이는데요.”

“서체 끝을 마무리하는 방식이 미세하게 달라.”

온갖 지저분한 음모와 책략이 판치는 마교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나다.

다른 사람들 눈을 속여도 나는 못 속이지.

유서와 서찰은 구십구 할이 비슷하지만, 나머지 일 할이 다르다.

유서는 분명 위서였다.

그렇다면 누가 이걸 쓴 걸까?

“세가에서 날 싫어하는 사람이 누구냐?”

“책으로 엮어서 제출할까요? 명단 정리하려면 최소 삼 일은 걸릴 것 같습니다.”

“……그 정도냐?”

“다 도련님의 업보죠.”

“내가 죽으면 가장 이득 볼 사람은 누구냐?”

“남궁세가요.”

“아니, 남궁세가 중 누가 가장 이득을 보냐고?”

“남궁세가 그 자체요. 도련님이 찬란히 빛나는 가문의 명예에 먹칠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가주님이 아니었으면 벌써 중원 외딴곳으로 유배를 가도 최소 오백 리는 먼 곳으로 갔을 것입니다.”

“…….”

에라이 머저리 같은 놈.

남들보다 인생을 더 빠른 속도로, 아니면 덜 느린 속도로 산 것도 아니면서 좀 제대로 살지.

아니, 이놈의 업보를 왜 내가 받아야 하냐고.

‘진짜, 넌 나한테 몸 뺏겼다고 원망하지 마라.’

나랑 만났으면 뒤지게 맞았을 테니까.

그나저나 그 연놈들, 아니 그 한 쌍만 처리하면 사건이 종료될 줄 알았더니 오히려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도대체 누굴까?

어떤 놈이 무슨 목적으로 날 죽이려 했을까?

남궁정혁이 팔짱을 낀 채 방안을 왔다 갔다 하자 정학우가 옆에서 충고했다.

“도련님, 우선 가주님께 보고부터 하죠. 그러면 가주님께서 사건의 진상을 밝혀 주실 겁니다.”

“내가 누차 말하지만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남에게…….”

“맡기시죠. 이건 도련님의 목숨이 관련된 일입니다.”

그러니까 더 내가 해결해야지.

이번 일을 보고하면 내가 남궁도한테 꼭 구걸하는 것 같잖아.

날 살려 달라고.

차라리 한 번 더 죽으면 죽었지,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팔짱을 푼 남궁정혁이 정학우에게 물었다.

“내가 죽으면 가장 손해를 볼 사람은 누구냐?”

“어…… 아마 옥화루가 아닐까요?”

“옥화루? 이름이 특이하구나.”

“사람 이름이 아니라 이 근방에서 가장 큰 기루의 이름입니다.”

“기루? 그 머저리, 아니 내가 기루에 자주 드나들었던가?”

“도련님은 끼니는 거르셔도 기루 가는 건 빼먹지 않으셨죠. 그러니 도련님이 죽으면 그곳이 가장 큰 손해를 보지 않을까요?”

진짜 가지가지 했구나.

남궁세가의 칠푼이?

반푼이라고 안 불린 게 다행이다.

“당장 그곳으로 가자.”

“지금 술이나 드실 때가 아닙니다?”

“네가 뭘 모르는구나. 자고로 선과 악은 종이 한 장 차이고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큰 손해는 곧 큰 이익이 될 수도 있는 법이지.”

“……갑자기 헷갈리네요. 도련님이 똑똑해진 건지, 아닌지.”

“너도 머리 한 대 때려 줄까? 그럼 알 수 있을 텐데.”

“……얼른 가시죠.”

남궁정혁은 문을 박차고 나가자 정학우는 그 뒤를 따랐다.

속으로 ‘술을 드시고 싶으면서 핑계는’이라고 투덜거린 건 비밀이었다.

*   *   *

남궁세가의 가주실.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는 남궁도에게 모단수가 다가갔다.

“가주님, 조금 전 세가 내에서 정혁 도련님과 풍상호가 결투를 벌였다고 합니다.”

“풍상호? 정혁이가 좋아하는 여인을 가로챘다는 그 친구 말인가?”

“맞습니다. 부하가 먼발치에서 봤기에 둘의 대화를 엿듣지는 못했지만, 그 일로 싸운 듯합니다.”

“나이가 몇인데 드잡이를 벌인단 말인가, 못난 놈들. 그딴 건 굳이 보고할 필요 없네.”

남궁도를 힐끔 본 모단수가 다시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정혁 도련님이 무공을 익힌 듯합니다.”

“……무슨 말인가? 정혁이가 무공을 모른다는 건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나?”

“도련님이 고혼일혼으로 단 십 초 만에 풍상호를 제압했다고 합니다.

그에 남궁도가 명상에서 깨어나 번쩍 눈을 떴다.

“그게 확실한 건가?”

“가주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남궁세가 내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무영각의 눈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진짜 정혁이가 무공을 익혔다고?”

“네, 확실합니다. 분명 무공을 사용하여 풍상호와 싸웠다고 합니다.”

“풍상호의 무공 수위는?”

“이류로 추정됩니다.”

“하찮군.”

끼리끼리 논다고 풍상호의 무공도 그리 대단치는 않다.

천하제일검의 눈에는 더더욱.

“그래도 도련님이 무공을 사용해서 이겼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의의인 점이 더 있습니다”

“……?”

“두 사람의 결투를 직접 본 부하의 말에 따르면 도련님이 매우 노련했다고 합니다. 꼭 실전 경험이 풍부한 백전노장처럼 말입니다.”

“노련했다고……?”

그게 가능한가.

무공의 무 자도 모르던 풋내기가 단시간에 무공을 익혔을 뿐만 아니라 능숙하게 펼쳤다니.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천재다.’

남들보다 적은 노력으로 훨씬 더 많은 성취를 이루는 특별한 사람.

허허. 아무렴, 누구 아들인데 무재가 없는 게 더 이상하지.

정혁이가 이제야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 준비를 하는구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 남궁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아침은 정혁이와 함께 먹어야겠다.”

“정혁 도련님은 외출했습니다.”

“아침부터 어딜 갔단 말인가?”

“저, 그게…….”

남궁도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모단수를 재촉했다.

“왜 머뭇거리는가? 정혁이가 못 갈 데라도 갔단 말인가?”

“향한 방향으로 추정컨대 기루에 간 듯합니다.”

“……기루? 설마 내가 아는 그 기루를 말하는 것인가?”

“예.”

“왜?”

“……예?”

“왜 아침부터 기루에 가냐고? 그곳에서 아침밥이라도 먹는다던가?”

“정혁 도련님은 그곳에서 삼시 세끼 먹은 적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어허, 남궁도가 답답하다는 듯 뒷짐을 졌다.

“사람을 보내 도련님을 모셔 올까요?”

“놔둬라, 정말 기루에 갔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자식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믿는 주는 것, 그것 또한 아비의 역할이리라.

“…….”

사실 별로 믿음은 안 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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