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7화
옥화루는 남궁세가가 위치한 합비 외곽에 있었다.
그것도 울창한 숲속, 큰 호숫가 옆.
처음 와 봤지만, 제법 운치가 있다.
자연히 술맛도 날 거고.
거기다 척 봐도 알겠다.
‘술값이 엄청 비쌀 것 같은데.’
정원의 잔가지 하나 없는 나무며, 바닥에 놓인 돌멩이까지 허투루 관리 된 것이 없다.
거기다 건물은 또 어떻고?
“비싼 자재로만 골라 지었군.”
내가 전직 천마로서 중원에 좋다고 이름난 곳은 거의 다 가 봤었다.
근데 이렇게 안락한 느낌을 주면서도 호화로운 곳은 드물다.
지을 때도 돈이 많이 들었겠지만, 관리는 더 잘됐군.
그래서 그렇나?
“저 사람들은 우리처럼 지금 온 걸까요? 아니면 밤을 새운 걸까요?”
정학우의 말대로다.
옥화루는 아침임에도 사람들로 붐볐다.
입구에도 들어가기 힘들 만큼.
아무래도 지난 이십 년간 강호의 풍기가 많이 문란해진 것 같은데.
‘그냥 돌아가?’
여기서부터 ‘전 남궁정혁 살인미수 사건’을 조사하려고 했더니 제대로 된 조사가 어려울 거 같다.
사람이 좀 많아야지.
‘다른 곳에도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있을까?’
현 남궁정혁이 고민하는데 옥화루 안에서 한 사람이 그를 알아봤다.
“남궁 도련님~”
저 사람은 누구?
왜 저리 반갑게 나한테 인사할까?
남궁정혁이 그런 생각할 때 그 사람이 취객들 사이를 헤치고 반갑게 다가왔다.
“날 아시오……?”
이 말을 마칠 새도 없다.
그가 옥화루에 안에 대고 외쳤다.
“남궁 도련님이 오셨다! 풍악을 울려라!”
“……?”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은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정학우가 작게 속삭였다.
“옥화루의 총지배인입니다. 오랜만에 온 도련님을 보니 반가운 모양입니다.”
아, 그 머저리가 옥화루 최우수 고객인 건 확실하네.
내가 기루 문턱을 넘기도 전에 뛰쳐나온 저 총지배인이란 작자가 이리도 환대하는 걸 보니 말이다.
저 밝은 얼굴을 보자니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부은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도련님, 지난 나흘간 방문하지 않아 제가 얼마나 상심했는지 모르실 겁니다. 그동안 별고 없으셨죠?”
큰 별고가 있긴 했지만 그건 당신이 신경 쓸 일은 아니고, 그것보다 우선은.
“이것 좀 그만하면 안 되나?”
“예? 뭘 말입니까?”
“쓸데없는 생물 낭비하지 말라고.”
아까 총지배인이 그러지 않았는가.
풍악을 울리라고.
그러자 진짜 풍악이 울렸다.
옥화루 안에서 피리 부는 사내들과 더불어 십여 명의 기녀들이 날 둘러싸고 연신 빨간 꽃잎을 뿌렸다.
대체 그동안 기루에 얼마나 많은 돈을 갖다 바쳤기에 이런 접대를 받는 걸까?
전생에서도 꽃길은 마교 교주 취임식 때 딱 한 번 걸어 봤다.
그런데 그놈은 머저리 주제에 이런 호사를 누려?
‘이렇게 청춘과 돈을 낭비했으니 자살로 위장한 타살이나 당하지. 한심한 놈.’
전 남궁정혁을 떠올리며 나직이 탄식할 때 총지배인이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특실로 모시겠습니다, 도련님. 이쪽으로 오시죠!”
아침부터 휘황찬란한 옥화루, 그중에서도 가장 호화로운 방에 앉아 있으니 금방 요리상이 나왔다.
상다리가 부러지겠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은, 아니 오히려 부족한 요란한 상차림이었다.
함께 나온 술들도 척 보아하니 중원 곳곳에서 소문난 명주들이었고.
아주 호화스러운 삶을 살았구나.
이 정도면 얼자 치고 잘 산 거 아닌가……?
안주를 집어 먹으며 빈속을 달래고 있으니 한 여인이 들어왔다.
“남궁 도련님, 인사 올리겠습니다.”
그녀가 다소곳이 절을 하는데 그 모습이 사뭇 요염하다.
몸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난 옷이라 더욱 그렇다.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옆에서 정학우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도련님이 이곳에 올 때마다 항상 찾으셨던 은홍입니다.”
그 머저리가 왜 저 기녀를 찾았는지 알 것 같다.
친구의 여자, 연화를 닮았으니까.
이거 알면 알수록 더 찌질한 놈이었구먼.
대체 남궁도는 자식 교육을 어떻게 한 거야.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의 기본 개념은 확립시켜 놨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괜히 내가 민망하네.
무공이 강한 거랑 자식을 교육시키는 거랑은 별개의 문제 같다.
“도련님, 술 받으시지요.”
은홍이 뽕, 병마개를 개봉해서 술을 따르자, 남궁정혁은 아무 말 없이 잔을 들어 술을 받다가.
“……앗차, 실수.”
손에서 잔을 놓쳤다.
그러자 은홍이가 민첩한 동작으로 떨어지는 잔을 잽싸게 받았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본 남궁정혁이 흥미롭다는 듯 운을 띄웠다.
“옥화루는 재밌는 곳이군.”
“비싸니까요. 내신 만큼 만족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렴, 무공을 익힌 기녀가 술을 따르는데 비쌀 수밖에.”
사실 그녀가 방 안에 들어올 때부터 알아봤다.
걸음걸이, 절을 하는 모습 등 사소한 움직임에도 무공을 익힌 자 특유의 특징이 녹아 있었다.
이것 또한 전직 천마쯤 되니까 알아볼 수 있었던 거다.
웬만한 사람들은 눈치도 못 챘겠지.
나도 방금 일부러 잔을 떨어트려 확인도 했고.
“하오문인가?”
기녀, 마부, 도둑 등, 저잣거리 가장 밑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뭉친 문파가 하오문이다.
개개인의 무력 수준은 그리 높지 않지만 하오문에게는 다른 문파와 다른 큰 장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정보.
가술을 따르는 기녀는 매일 같이 손님의 취중진담을 들었고, 말을 모는 마부는 고객의 행선지를 알며, 남의 집 담을 넘는 도둑은 거부들의 가장 은밀한 곳을 들여다봤다.
그들은 그렇게 정보를 모아 자신들의 무기로 삼았다.
그리 위협적이진 않지만 건드리면 성가신 조직, 그게 바로 하오문이다.
그런 하오문과 연관 있는 기루에 그 머저리가 드나들었던 게 과연 우연일까?
남궁정혁 자살 위장 사건에 저들도 연관된 건 아닐까?
‘……설마 저들이 범인?’
그렇게 의심을 하는데 챙, 검을 꺼내는 이가 있었다.
정학우였다.
그가 검을 꺼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은홍에게 겨눴다.
“움직이지 마라, 손끝 하나라도 까닥하면 당장 베겠다.”
단호한 어투로 말하는 정학우의 태도로 볼 때 그도 여기가 하오문과 관련된 곳이라는 건 몰랐다는 건데.
이곳에 연화와 얼굴이 아주 닮은 기녀가 있는 게 과연 우연일까?
뭐, 지금부터 천천히 심문해 보면 알겠지.
여차하면 고문도 마다치 않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내가 손가락을 풀 때 은홍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방에 들어오기 전 귀띔받은 말이 사실이 아닌가 봅니다.”
“……?”
“루주님께 들었습니다. 도련님께서 기억을 잃으셨다고. 근데 직접 보니 아니군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내가 기억을 잃었다는 것까지 알아? 역시 하오문이다 이건가.
“나에게 접근한 이유는 무엇이냐?”
“옥화루를 먼저 찾은 건 도련님이십니다.”
“이곳을 찾은 게 우연이다?”
“옥화루는 손님을 오라고 유혹한 적도, 가라고 내쫓은 적도 없습니다.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떠나시면 됩니다.”
은홍이가 당당하게 말했다.
근데 말끝이 왜 그리 떨릴까?
마치 죄가 있는 것처럼 말이야.
“…….”
남궁정혁이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자 은홍이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이 상황이 거북한 듯이.
“루주를 불러와라.”
“죄송하지만 그분은 제가 함부로 오라 가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 그럼 천장 위에 있는 저 쥐새끼한테 말하면 되나?”
“……!”
천장 위에 숨어 우리의 동태를 염탐하는 존재 역시 진즉에 눈치채고 있었다.
이 방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남궁정혁이 천장 모서리를 응시하자 곧바로 인기척이 사라졌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그리고 잠시 후, 방문이 양옆으로 쫙 열리면서 검은 망사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고혹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들어왔다.
“도련님. 절 찾으셨다고요? 제가 옥화루의 루주, 묘화입니다.”
“내가 강녕하지 못했다는 건 그쪽이 더 잘 알 텐데.”
“이렇게 무사한 모습을 보니 잘못된 정보인가 했지요.”
“그 망사 좀 치우지, 내가 사람 눈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서 말이야.”
“사정이 있음을 양해해 주세요.”
“내가 남의 사정 따윈 봐줄 만큼 너그럽지 않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을 텐데.”
햐아, 작은 한숨과 함께 묘화가 망사를 옆으로 치우자, 그 사정이란 게 뭔지 알 것 같다.
아름다운 중년 미부의 얼굴에 사선으로 길게 난 흉터가 있었다.
검상인 것 같은데 누가 저런 끔찍한 짓을.
망사를 완전히 벗은 묘화는 내게 물었다.
“이래도 이해해 주지 않으실 건가요?”
그 태도가 담담해서 더욱 미안하다.
“흠, 흠. 실례했소.”
“아닙니다, 실례는 저희 쪽에서 먼저 했지요.”
“그럼 말해 보시오, 날 옥화루로 끌어들인 이유가 무엇인지?”
“도련님이 뭔가를 오해하셨나 본데…….”
대답하려는 묘화의 말을 남궁정혁이 끊었다.
“계속 능청 떨면 당장 이곳을 나가 아버지를 만나겠소.”
“창궁검제 남궁도 대협을요?”
“하오문이 남궁세가에게 매우 관심이 많다고 전해 드려야지. 그러면 아버지가 참 좋아하지 않겠소?”
물론 남궁도에겐 그 어떤 얘기도 할 생각이 없지만, 천하제일검을 거론한 건 효과가 있었다.
묘화가 저리 술술 부는 걸 보니 말이다.
“……우연을 가장해 은홍이를 남궁 도련님과 길에서 자주 마주치도록 하긴 했죠.”
“그렇게 명한 이유는?”
“나쁜 뜻은 없었습니다. 단지 도련님은 통해 남궁세가의 내부 소식을 얻고자 했을 뿐입니다. 거기다 돈도 많이 쓰시니까요. 호객 행위의 일부라고 봐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정말 그게 단가?”
“다른 뭔가가 더 있어야 하나요?”
그 자리에 고정된 듯 흔들림 없는 자세.
거기다 차분한 목소리까지.
저렇게 태연한 모습이라면 정말 아무 관련이 없는 걸까?
아니, 강호 경험이 풍부한 여인이라면 그 속을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
루주의 다섯 개 척추뼈를 열 개로 늘리면 속에 있는 얘기를 모두 토할까?
아무 말 없이 루주를 쳐다보니 그녀가 과장 된 동작으로 자신의 몸을 감쌌다.
“절 쳐다보는 눈빛이 오싹하군요. 무서운 생각을 하시나 봅니다.”
너스레 떨던 그녀가 품속에서 서찰 하나를 꺼냈다.
“도련님께서 술에 취하시면 항상 은홍이에게 토로하시던 고민이 있다기에 미리 조사해 보았습니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보시죠.”
……뭔 고민?
정학우를 쳐다보자 그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간의 실례를 사죄하는 의미에서 정보료는 따로 받지는 않겠습니다.”
“옥화루는 접대가 후하군. 고객의 사적인 고민까지 관심을 두다니 말이야.”
“후후, 사소한 영업 기술일 뿐입니다.”
개뿔, 이런 식으로 그 머저리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려고 한 거겠지.
남궁세가의 정보도 알고, 돈도 벌고.
어째 옥화루에 손님이 넘치더라니.
돈 버는 법을 알고 있군.
남궁정혁이 건네받은 서찰을 펴자 정학우도 옆에서 목을 길게 빼고 같이 봤다.
그리고 그 내용은.
“……?”
“……?”
전혀 예상치 못한 고민이었다.
왜 이런 걸 고민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