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8화
이 몸의 원래 주인, 그 머저리가 하는 일 없이 잘난 가문에 빌붙어 먹고 사는 식충인 줄 알았더니 또 그건 아니었다.
어쨌든 세가 내에서 공식적인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남궁세가 부속 남궁대장간 품질관리부의 부장이란다.
‘하여튼 작명 감각 참 구리다니깐.’
아무리 남궁세가 부속 기관이라지만 대장간에까지 남궁이란 성을 붙였나 했나?
그게 그렇게 좋으면 남궁세가랑 관련된 곳에는 전부 다 남궁을 붙이지 그래?
남궁상단, 남궁전장, 남궁객잔 등등.
‘…….’
여기서 소름 끼치는 건 실제로 저렇게 했을 것 같다는 거다.
지금 당장 더 소름 끼치는 건 날 바라보는 정학우의 저 초롱초롱한 눈방울이고.
옥화루를 나오기 전, 그 조사서를 본 후부터 저런다.
“저 정학우는 도련님께 감탄했습니다.”
“감탄하건 말건 그건 네 자유인데 당장 그 눈 좀 깔아 주면 안 되겠니?”
“저는 도련님이 퇴근 후에도 일에 관해 고민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최소한의 책임감은 있으셨군요.”
그건 나도 의외긴 하다.
그동안의 평판을 생각해 보면 그 인간이 기루에 와서 술을 마시면서까지 직무로 고민할 만큼 책임감 있는 유형의 인간은 아닐 것 같은데 말이야.
남궁정혁이 품속에 있던 조사서를 다시 꺼내 보았다.
[시중에 제조한 곳을 알 수 없는 검이 대량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유통 경로를 역추적해 본 결과 남궁 대장간에서 유출된 파검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서 파검이란 남궁대장간에서 정한 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폐기처분 해야 하는 불량품을 말한다.
그런 거 있지 않나.
도자기 굽는 노인이 겉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이건 아니야’하고 깨부수는 불량품.
그런 파검들이 시중에 나돌아다닌단 말인데…….
이 문제를 원래의 남궁정혁이 왜 고민했을까?
“품질관리부에서 파검인지 아닌지 판별합니다. 도련님이 최종 결정권자죠.”
“파검은 어떻게 처리해? 일단 한 번 녹인 쇠는 강도가 떨어져 병기로는 재활용할 수 없을 텐데.”
“다시 녹여 농기구로 만든 다음 주변 농민들에게 무료로 나눠 줍니다.”
대문파의 사회적 책임인가?
나름 좋은 일도 하는데.
어쨌든 파검으로는 이윤 창출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군.
돈이 되지 않으니 관리, 감독도 부실했을 거고.
그렇게 되면 꼭 기생충이 끼기 마련이지.
남들은 모르는 검은돈을 노리고.
그 문제를 파고들었기 때문에 파검을 유출한 자가 그 머저리를 죽이려고 했던 걸까?
아무리 그래도 가주의 아들을?
“내가 성실히 근무했나?”
“겉보기엔 태만한 것으로 보였지만, 실제론 아니었기에 제가 감탄한 것 아니겠습니까.”
과연 책임감 때문일까?
파검이 진짜 문제였다면 상부에 보고하면 될 것 아닌가.
아니, 그것보다 애초에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내가 왜 대장간에서 일하고 있었던 거야?”
“그거야 가주님이 억지로 임명하셨으니까 그렇죠. 얼자라도 가주님의 아들인데 마냥 놀고먹을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하긴, 처음 만났을 때도 대장간 운운했지.
기술이 그렇게 좋으면 자기가 익히든가.
왜 남한테 억지로 시키고 지랄이야.
하여간 보면 볼수록 마음에 안 들어.
어서 빨리 가주가 돼야겠다.
“제가 감히 추측하기로는 가주님의 안배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대장간에 무슨 안배?”
“모르는 사람들이 바깥에서 바라보기엔 가주님이 남궁세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론 아닙니다. 세가 내에서 가주님을 견제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오호, 이건 또 예상 밖의 이야긴데.
흥미롭기도 하고.
그래서 남궁정혁이 정학우를 재촉했다.
“계속 말해 봐라.”
“지금 가주님은 아시다시피 서자 출신입니다. 그러니까 이십 년 전 정마대전이란 큰 난리가 벌어지지만 않았다면, 그래서 천마를 이기지만 않았다면 절대 가주가 될 수 없었다는 거죠.”
“그걸 고깝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 말이군.”
“남궁수 대장로님과 그 측근들입니다.”
남궁수, 남궁수라…….
낯익은데. 왜 어디서 들어 본 이름 같지?
“남궁수 대장로님은 전대 가주님의 큰아들, 적통입니다. 만약 그분이 정마대전에서 겨우 살아남아 무공을 잃지만 않았다면, 설사 현재의 가주님이 정마대전을 종식했다 해도 가주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그로선 남궁도가 못마땅할 수밖에 없겠군. 서자라 무사했던 사람이 자기 자릴 채 갔으니.”
“문제는 대장간, 상단 등 세가의 주요 수입원을 대장로님 쪽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겁니다. 대장로님이 소가주이던 시절부터 따르던 이들이죠.”
남궁도가 매우 갑갑하겠군.
나도 마교란 단체를 운영했던 경험이 있기에 잘 알지 않은가.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건 무공이랑은 또 차원이 다른 문제다.
구성원들 입는 것, 먹는 것, 쓰는 것 모두가 다 돈이니, 돈줄을 쥔 사람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밖에.
그만큼 중요한 사람한테 쥐여 주는 자리인 거고.
남궁도가 남궁세가를 한 손에 틀어쥐고 있는 줄 알았더니 이런 사정이 있는 줄을 몰랐네.
‘……고소하다.’
남궁도가 돈 때문에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더더욱 그렇다.
십 년 묵은, 아니 이십 년 묵은 체증이 약간은 가시는 기분이군.
간장 종지만큼이지만.
“그래서 날 이용해서 대장간을 장악하려 했다는 거군.”
“거기에 도련님의 미래도 고려한 거지요.”
“내 미래?”
“그간 도련님이 무공을 익히지 않았으니 다른 선택지가 없지요.”
“나는 쇳밥에 관심 없다.”
“그나저나 그곳에 도련님을 죽이려 한 자가 있을까요?”
“그건 가 보면 알겠지.”
남궁정혁과 정학우는 남궁대장간으로 향했다.
* * *
땅! 땅!
대장간에 들어서자마자 후끈한 열기에 숨이 턱 막히고, 탕탕탕 망치질하는 거친 소리는 고막을 자극한다.
하지만 딱히 싫은 건 아니다.
오히려 삶의 최전선에서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은 가상하다.
물론 내가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원래 상 차리는 사람, 밥 먹는 사람은 따로 있지 않나.
오죽하면 죽 쒀서 개 준다는 말이 있을까.
“…….”
이게 아닌가.
어쨌든 남궁대장간은 예상보다 더 넓고 크다.
그만큼 일하는 사람들도 많고.
대체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검을 생산하는 걸까?
“남궁세가 소속 무사들이 사용하는 검을 만들 뿐만 아니라 중원 각지의 중소 문파에서도 단체 주문이 쇄도합니다. 일 년 내내 화로에 불 꺼질 날이 없죠.”
아무래도 그렇겠지.
이왕 무기 사는 거 좀 더 값을 치르더라도 확실한 곳에서 사는 게 나으니까.
대문파의 이름값에서 오는 신뢰감은 무시 못 하지.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괜히 생겼겠나.
“…….”
이것도 아닌가.
뭐, 어쨌든.
“근데 도련님, 이 많은 사람 중에서 흉수를 어떻게 찾을 겁니까? 아직 확실하지도 않잖아요.”
“그래서 지금 찾고 있잖아.”
“대장간 내부만 여러 바퀴째 돌고 있는데 어떻게 범인을 찾습니까?”
“넌 모르겠지만 다 방법이 있다. 그러니 넌 잠자코 따라다녀라.”
그렇게 남궁정혁이 대장간 내부를 빙빙 돌 때였다.
“어이, 남궁부장.”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과 마주쳤다.
그중 맨 앞에 서 있던 중년 사내가 말했다.
“사고가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다. 집에서 좀 더 쉬지, 왜 나왔나? 어차피 있어 봤자 도움도 안 될 텐데. 하하.”
근데 웬 시비조?
한껏 거만한 자세로 말하는 저자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다.
원래의 남궁정혁과 절대 좋은 사이는 아니었다는 걸.
그러니 저렇게 재수 없게 실실 쪼개지.
남궁정혁이 살짝 고개를 숙이자 그 뜻을 이해한 정학우가 귀에 대고 말했다.
“남궁 대장간의 간주, 반곤입니다. 대장로님의 최측근 중 한 명이죠.”
오호라, 남궁도 반대파셨구먼.
우린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네.
내가 첫인상을 중요시해서.
“기억을 잃었다며? 사실이냐?”
넌 그걸 또 어떻게 알았냐.
하오문에서 돈 주고 정보 샀나?
정학우가 귀에 대고 또다시 속삭였다.
“쉬쉬한다고는 했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을 겁니다. 가주님이 대장로님 쪽 사람을 감시하듯, 대장로님도 가주님 쪽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을 테니깐요.”
“아주 이제 모르는 사람 찾는 게 더 어렵겠다?”
“뭐, 어쩔 수 없죠. 가문 내에서 일어난 일이니까요.”
둘이서 속닥거리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나?
반곤이 비아냥거리는 어투로 말했다.
“뭘 그렇게 속닥거리나?”
계속해서 비아냥거린 반곤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기억이 없는데 일은 어떻게 하냐? 아, 어차피 아는 것도 없었지. 크하하하하.”
반곤의 말에 주위 사람들이 따라 비웃었다.
“크큭.”
“흐흐흐.”
하나같이 재수 없게 웃는 꼬라지 하고는.
범인만 색출하고 가려고 했는데 살짝 열 받네.
남궁정혁의 고개가 점점 삐딱해지자 정학우가 다급히 말했다.
“일부러 도발하는 겁니다. 지금은 참으셔야 합니다. 일을 벌여 봤자 좋을 게 없어요, 도련님.”
“내가 겨우 이 정도 도발에 넘어갈 거 같으냐?”
“네.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는데요?”
“…….”
예상보다 남궁도와 대장로의 사이가 더 안 좋은 모양이다.
다 큰 어른이 저딴 식으로 유치하는 구는 걸 보니.
“평소에도 내게 저런 식으로 시비를 걸었나?”
“뭐, 평소에는 개 닭 보듯 서로 무시했는데 오늘 좀 이상하긴 합니다. 도련님에게 일어난 안 좋은 일로 꼬투리 잡아 어떻게든 조롱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그래, 참자, 참어.
내가 지금 드잡이질하려고 여기 온 게 아니잖아.
‘전 남궁정혁 살인미수 사건’의 범인부터 잡아야지.
현 남궁정혁이 큰마음 써서 그냥 보내 주려 했는데 반곤이 이런 마음을 몰라줬다.
사람 속상하게.
그가 남궁정혁을 지나치며 끝까지 비아냥거렸다.
“이번 기회에 아예 그만두는 건 어떤가? 사람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야지, 이를테면 기루에 드나들면서 술이나 마시는 거 말이야. 종년의 아들이니 기녀와 급이 맞아. 사람은 끼리끼리 놀아야 하는 법일세. 인생의 선배로서 하는 충고야.”
네가 점점 무덤을 파는구나.
어디 햇볕 잘 드는 곳에 묏자리라도 봐 뒀니?
그래서 빨리 묻히고 싶어?
점점 험악해지는 남궁정혁의 얼굴을 본 정학우가 정학우의 손을 꽉 잡았다.
“반곤이 비록 손바닥 비비기 신공과 대장장이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장로가 되긴 했지만, 본 세가에서도 이백 명 안에 드는 고수입니다. 풍상호 같은 어쭙잖은 무인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참아라?”
“예, 최소한 오늘은 참아야 합니다. 그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지나도 늦지 않다고.”
군자나 그렇게 살라고 해.
이런 일 당하면 마음속에 십 년 동안이나 꽁하니 묵혀 두고 살라고.
난 달라, 난 천마잖아.
이런 취급을 받고 참으면 울화병 생겨서 오늘 밤에 잠도 안 올 거라고.
저런 쓰레기들은 원래 나한테 말도 못 걸어야 한단 말이다.
뭐 쓸 만한 거 없나?
저거다.
남궁정혁이 주위를 둘러보다 검의 원료가 되는 철광석 한 덩이를 주워 반곤의 뒤에서 달려들었다.
“나도 충고 하나 하지. 항상 뒤통수 조심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