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10화
“거봐, 내 말이 맞지?”
역시 대범한 놈이다.
장기호는 본인의 집무실에 앉아 일하고 있었다.
아니, 일하는 척을 하고 있었던 걸까?
책상 한쪽에 결제해야 할 서류들이 수북이 쌓인 걸 보니.
“부장님이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왜 왔겠어? 장 부부장 얼굴 보러 왔지.”
“제 얼굴은 왜…….”.
“다른 것도 보러 왔고.”
가타부타 길게 말하고 싶은 생각 따윈 없다.
남궁정혁은 장기호의 멱살을 잡고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렸다.
무공을 모르는 그는 그저 허공에서 버둥거릴 뿐이었다.
“컥컥, 부, 부장님. 왜 이러십니까?”
“날 죽이려고 했던 이유가 뭐냐?”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전 그런 적 없습니다. 제가 왜 부장님을 죽이려고 했겠습니까.”
응, 그렇지.
넌 그런 적 없겠지.
나도 순순히 대답할 거라곤 생각 안 했다.
퍽!
“억!”
주먹으로 장기호의 코를 가격하자 그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무척 놀란 것도 같고.
설마 다짜고짜 손찌검할 줄은 몰랐나.
“나도 몰랐는데 코피에 신묘한 효능이 있더군. 정신이 맑아지면서 기억이 돌아와. 네가 날 죽이려고 했던 일도 포함해서 전부 다.”
퍽퍽퍽퍽!
남궁정혁은 연이어 장기호의 코를 때렸다.
“크헉!”
“어때? 너도 이제 기억이 나냐?”
이럴 땐 무조건 강하게 나가는 게 최고다.
물론 효과도 확실하고.
여태껏 당당했던 장기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는 버둥대며 말했다.
“컥, 컥. 마, 말하겠습니다! 우선 이것부터 놓고…….”
숨도 통하지 않게 꽉 쥔 멱살을 놓자 장기호가 철퍼덕,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자, 네 소원대로 놔줬다. 이제 말해 보아라. 왜 날 죽이려고 했는지.”
“그건…….”
잠시 망설이던 장기호가 이내 자포자기했는지 그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읊기 시작했다.
피의자인 그의 진술을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다.
그에게 아픈 딸이 있단다.
병을 치료하는 데는 많은 돈이 필요하고.
그래서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몰래 파검을 갖다 팔았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 몸의 원래 주인에게 들킨 것이다.
그럼 왜 들켰냐?
그 머저리가 직업 정신이 투철해서?
아니다.
그 이유도 어이가 없는데.
“처음 파검을 빼돌린 사람이 나라고?”
남궁정혁의 반문에 장기호의 눈을 치켜떴다.
“다, 당신, 기억이 돌아온 게 아니군!”
“아니면? 인제 와서 부인하려고?”
강렬한 눈빛으로 장기호를 제압한 남궁정혁.
이어 정학우를 보았다.
“너도 몰랐냐?”
“대장간에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제가 알 수 없습니다. 애초에 관여를 안 하거든요.”
그래? 그럼 그 머저리는 왜 파검을 빼돌렸을까?
명색이 가주의 아들인데.
아무리 얼자라지만 왜 그런 치사한 짓까지 했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남궁정혁의 의문을 정학우가 해소해 주었다.
“하긴 이상하긴 했습니다.”
“뭐가?”
“무슨 돈으로 매일 옥화루를 가는지가요. 돈이 어디서 났냐고 물으면 돈 나오는 구멍이 있으니 너는 알 필요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횡령까지 하실 줄은 몰랐네요.”
……할 말이 없다.
알면 알수록 더 못난 놈일세.
횡령의 목적이 뭐 대단한 걸 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유흥비?
진짜 쪽팔려서.
본인이 빼돌린 양보다 더욱 많은 파검이 유통되고 있으니 걱정이 됐겠지.
자신이 저지른 죄가 들통나지는 않을까 싶어서.
그래서 조사를 하다 보니 장기호가 얻어걸린 거고.
잠시 생각하던 남궁정혁이 다시 장기호를 쳐다보자 그가 움찔 고개를 숙였다.
“제 잘못을 눈감아 달라고 했는데 오히려 협박당했습니다. 부장님이 빼돌린 것까지 저한테 덮어씌운다고 해서.”
“그래서 죽였다?”
“우발적인 사고였습니다.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습니다. 도련님과 티격태격하던 중 하필 뒤에 절벽이 있어서…….”
이 새끼가 누굴 멍청이로 아나?
감히 날 속이려고.
“그래서 미리 가짜 유서까지 준비했냐?”
“그, 그건 제가 즉석에서 쓴 것입니다.”
“써 봐.”
“예?”
“한 번 했으니 두 번은 못 할까. 이 자리에서 또 써 보라고.”
책상에서 지필묵을 가져다 장기호 앞에 쾅 내려놓자, 그제야 그가 두 손을 모아 빌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횡령이 들키면 부장님은 문책으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최소 파면입니다. 그러면 저희 딸은 죽습니다. 그래서 그랬습니다. 한 번만 봐주십시오.”
내가 오해했다.
대범한 게 아니었어.
자기 딸의 목숨이, 가족의 목숨이 달려있어서 간절했을 뿐.
그렇다고 죄가 용서되는 건 아니다.
자기 딸을 살리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해?
얘기를 듣던 정학우가 장기호의 뒷덜미를 잡았다.
“죄를 시인했으니 세가로 데려가 옥에 가두죠. 집법당 사람들이 알아서 처벌할 겁니다.”
그러면 사건이 깔끔히 마무리되겠지만…… 이게 그렇게 마무리되면 안 되는 거잖아.
안 그래도 세가의 수치니 칠푼이니 하는 소리를 듣는 나다.
근데 내가 파검을 빼돌리고, 그것 때문에 아랫사람에게 살해당할 뻔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봐.
칠푼이에서 오푼이로 더욱 평가가 뚝 떨어지겠지.
그렇게 되면 내 인생의 목표, 남궁세가의 가주가 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아니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리든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쪽팔려서라도 그런 사실이 알려져서는 안 되고.’
그렇다고 이 사건을 없었던 것으로 덮을 순 없다.
그러기엔 내 머리가 너무 아팠거든.
음…… 어떻게 할까.
나의 명예도 드높이고 실리도 챙기는 방법이 없을까?
자고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게 진정한 능력자 아니겠는가.
“……이렇게 할까?”
이내 고개를 든 남궁정혁이 장기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잘 들어라. 우리 이렇게 하자.”
* * *
“가주님!”
남궁도는 갑자기 가주의 집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모단수를 질책하지 않았다.
다만 궁금할 뿐이었다.
무슨 일이 있길래 평소에 침착한 성격의 그가 저리 흥분한 것일까?
“…….”
남궁도의 차분한 시선으로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모단수가 순간 호흡을 고르고 말했다.
“정혁 도련님이 자살 시도를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음모에 빠진 것이었습니다.”
“뭐라? 누가 정혁이를 죽이려 했단 말인가?”
“남궁대장간의 간주, 반곤입니다. 그가 그런 짓을 벌인 이유는…….”
이후 계속된 모단수의 보고는 놀라웠다.
반곤이 파검을 몰래 빼돌렸고, 그것을 눈치챈 정혁이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이다.
주변의 눈초리 때문에 감투라도 하나 씌워 놨더니 그런 사건에 엮였을 줄이야.
“그게 정말 확실한 건가?”
“예. 도련님께서 직접 공범, 장기호를 잡아 왔습니다.”
“장기호라면?”
“남궁대장간 품질관리부 부부장입니다. 반곤의 지시로 정혁 도련님을 죽이려 했다고 방금 자백했습니다.”
“허어.”
과연 모단수가 흥분할 법한 일이다.
못난 아들의 일탈이라 생각했던 일에 그런 배후가 있었을 줄이야.
이건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껄끄럽고 불편한 대장로의 수족 중 하나를 쳐 낼 기회.
‘감히 내 아들을 죽이려고 해?’
게다가 아들을 걱정하는 아비의 분노가 더해졌다.
남궁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장 장로 회의를 소집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 * *
정학우는 앞서가는 남궁정혁의 뒤통수를 보고 문득 궁금해졌다.
대체 저 머리통 안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그 상황에서 그런 제의를 할 줄이야.’
모든 것을 반곤에게 뒤집어씌우자는 도련님의 제의를 장기호가 처음엔 거절했다.
그런 짓을 하면 그가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고.
물론 ‘지금 내 손에 죽고 싶냐’라는 도련님의 위협에 결국 승복하고 말았지만.
사실 집법당을 가도 무사하진 못할 거다.
반쪽짜리라지만 가주님의 핏줄을 죽이려고 했으니.
어떤 세가를 가도 가주의 핏줄을 해하려고 한 죄는 무겁다.
하물며 명문 세가인 남궁세가는 어떻겠는가.
자신의 죄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건 장기호 본인이 제일 잘 알 것이다.
그렇다고 채찍질만 한 건 아니었다.
먹음직한 당근도 같이 던졌다.
-네 딸은 내가 살려 주마.
도련님이 딸의 치료비는 어떻게든 마련해 보겠다고 했다.
장기호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지.
본인과 딸 둘 다 죽느냐, 아니면 딸이라도 살리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으니.
그가 반곤를 배신하고 누명을 씌운 이유였다.
“도련님도 장로 회의에 참석할 겁니까?”
“당연하지. 사건 당사자가 참석 안 하면 누가 하냐.”
혹시라도 마음이 바뀐 장기호가 딴소리하지 않는지 감시해야지.
더불어 이 기회에 남궁세가의 윗대가리 얼굴들도 좀 감상하고.
“학우야, 넌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라.”
남궁정혁은 장로 회의가 열리는 대회의실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맞은 편에서 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과 마주쳤다.
근데 맨 앞에 서 있는 남자가 낯익단 말이야.
우리 어디서 만난 적이 있나?
“…….”
남궁정혁이 반백 머리의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그 남자 옆에 있던 사내가 호통을 쳤다.
“인사를 드리지는 못할망정 어디서 감히 대장로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느냐?”
대장로? 그렇다면 남궁수?
……아아, 이제야 기억난다.
그를 어디서 만났는지.
‘예전에 정마대전 때 상대한 적이 있었지.’
제발 목숨만 살려 달라고 오줌까지 지렸던 놈이라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오줌싸개가 지금은 남궁세가의 대장로라니.’
남궁수, 너 고새 참 많이 컸다.
* * *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반곤을 당장 남궁대장간 간주 자리에서 해임하고 엄하게 벌해야 합니다.”
“아직 확실한 증거도 없는데 그를 범인으로 단정 짓는 건 이르지 않습니까.”
“공범이 자백했는데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합니까!?”
“그건 그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입니다. 더 확실한 건 반곤의 의견도 들어봐야 알겠지요.”
유죄를 주장하는 측과 무죄를 주장하는 측의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다.
기다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은 양측이 서로 내 말이 옳다고 침을 튀기며 주장했다.
그럼 현재의 사태를 유발한 남궁정혁은 뭘 하고 있을까?
‘주먹과 검이 오가는 싸움이 다는 아니지.’
대회의실 한쪽에서 느긋하게 앉아 저들이 혀로 싸우는 결전을 관전 중이다.
어찌나 흥미진진한지 같이 먹을 누룽지가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정학우한테 가져오라고 할까?
‘그나저나 남궁도의 세력이 확실히 작군.’
오른쪽에 앉은 남궁도 측 장로의 수가 왼쪽에 앉은 남궁수 측 장로의 수보다 적었다.
하나, 둘, 셋, 넷…… 딱 두 배네.
남궁도 측, 네 명.
남궁수 측, 여덟 명.
생각보다도 대장로의 입지가 더 탄탄한 모양이다.
정파에서는 혈통이란 게 이렇게 중요하다.
고리타분한 위선자 놈들.
타고 난 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태어난 후 무엇을 이루는가가 중요하지.
“음흉한 당신들이 언젠가 이런 일을 저지를 줄 알았습니다.”
“뚫린 입이라고 나오는 대로 씨부렁거릴 거야?”
적당한 해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까, 어느새 분위기는 슬슬 과격해지고 있었다.
‘점점 더 재밌어지는데.’
남궁정혁이 발목을 까닥거리며 웃었다.
진짜 누룽지라도 필요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