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12화
“꺼억…….”
순식간이었다.
반곤의 검에 가슴을 찔린 한 남자가 죽은 것은.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아, 그렇다고 그 남자가 당연히 남궁정혁은 아니고.
흥분한 반곤의 검에 가슴을 찔려 죽은 사람은 장기호였다.
남궁정혁이 일부러 장기호가 앉아 있는 쪽으로 유도했다.
반곤이 완전히 이성을 잃도록 열심히 자극도 했고.
‘원래 성격이 다혈질이어서 그런가.’
조금도 긁어 줘도 눈이 회까닥 뒤집히더라고.
덕분에 나야 수월하게 일을 마무리했다.
장기호의 눈앞에서 몸을 갑자기 휙, 피하니 무공을 할 줄 모르는 그가 피할 도리가 있나.
공격 대상을 잃은 검은 고맙게도 장기호의 심장을 관통해 줬다.
반곤이 나의 기대에 부응해 준 셈이지.
남궁정혁이 싸늘한 눈으로 장기호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이런 날 무정하다 탓하지 마라.’
애초에 그는 장기호를 살려 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유가 어떻든 장기호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건 사실 아닌가.
살아 있으면 나중에 마음이 바뀐 장기호가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르고.
한 번 남을 배신한 사람은 두 번도 할 수 있다.
원래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쉬우니까.
‘이제 대충 일이 마무리되었나?’
자신이 원하던 바가 이루어진 남궁정혁은 마음이 흡족하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아!”
바닥에 흐르는 붉은 피를 보고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든 반곤이었다.
그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지만 이미 상황은 끝났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대회의실에 앉아 있던 사람들 모두가 일어나 그를 손가락질했다.
“반 간주, 실망했소. 정도는 지켰어야지.”
“당신 때문에 대장로님만 피해를 보게 되었군.”
남궁수마저 이제는 끝났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때, 모단수가 말했다.
“저 죄인을 당장 포박하세요.”
“이, 이럴 수가…….”
가주측 장로들이 둥글게 포위망을 형성하고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반곤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제는 어떤 수를 쓰더라도 상황을 돌이킬 수 없다.
꼬투리를 제대로 잡은 가주는 자신을 엄벌할 것이 분명하다.
최소한 무공을 폐하고 세가에서 제명되리.
어쩌면 사형당할지도.
그렇다면…….
“……나 혼자 죽지는 않는다. 저승길 동무로 삼아 주마!”
반곤이 또다시 남궁정혁을 공격했지만 아무 소용 없다.
이제는 겨우 피하는 척 연기할 필요 없는 남궁정혁이 반격했다.
광분한 반곤의 품 안으로 파고 들어가 턱 옆의 혈자리, 천용혈을 정확히 가격했다.
그곳은 작은 충격에도 기절할 수 있는 급소였다.
“크윽.”
남궁정혁이 몸의 중심을 잃고 휘청이는 반곤를 몰아붙였다.
주먹으로 반곤의 복부를 연속으로 가격한 뒤 몸을 날려 그의 얼굴에 뒤돌려차기를 먹였다.
쿵!
이제는 치아가 모두 부려져 음식 씹을 일은 없을…… 어라?
재수가 없어도 저렇게 없나.
뒤로 날아간 반곤의 머리가 하필 대리석 탁자 모서리에 정확히 찍히고 말았다.
대리석 탁자도 부러지고 반곤의 머리도 성치 못했다.
바닥에 쓰러진 그가 잠시 몸을 꿈틀거리다 이내 축 늘어졌다.
“…….”
죽었나?
남궁정혁이 다가가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 봤지만 아무 반응이 없다.
너무 싱겁게 죽었는데.
난감한 그가 고개를 들자 다른 사람들, 특히 남궁수 대장로 측 사람들이 경악하여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네가 언제 무공을 익혔단 말이냐?”
“익혔다 한들 그렇게 능숙할 수가 있나?
음, 이럴 땐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정당방위예요.”
다들 보셨죠?
반곤이 저를 먼저 죽이려 한 거.
* * *
정학우는 초조한 마음에 대회의실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지금 저 안에서 무슨 얘기가 오가고 있을까?
고함 지르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는 거로 보아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것 같은데.
마음 같아서야 문을 살짝 열고 안을 들여다보고 싶지만, 안 된다. 참아야 한다.
일개 무사인 자신이 감히 장로 회의를 엿볼 순 없다.
행여나 걸리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도련님에게도 큰 폐를 끼치게 된다.
해서 정학우를 귀를 쫑긋 세운 채, 하릴없이 대회의실 문 앞을 왔다 갔다 했다.
‘……싸우나?’
큰소리와 함께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울리나 싶더니만, 곧 대회의실 문이 활짝 열리면 시체가 차례대로 나왔다.
‘장기호, 반곤…….’
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칼부림까지 난 걸까?
도련님이 또 뭔가를 꾸몄나?
한창 그런 생각을 하는데 다시 문이 닫히고 회의가 재개되었다.
무슨 할 얘기가 더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회의 결과를 유추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회의실 밖으로 나오는 대장로 측 사람들은 떫은 감이라도 씹은 듯 표정이 어두웠고, 가주 측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나가며 속닥거리는 말을 귀동냥하니, 죽은 반곤의 빈자리를 대체할 인사권을 가주님이 가지기로 했단다.
‘그런데 도련님은 왜 안 나오지?’
이제 대회의실 안에는 가주님과 도련님 둘만 남았다.
아버지와 아들, 두 부자가 더 할 말이 있나 보다.
두 부자가 사이좋게 지내면 좋을 텐데.
그래도 좀 빨리 나오지.
기다리기 지루하네.
종아리가 슬 뻐근해질 때쯤 남궁정혁이 밖으로 나왔다.
“도련님!”
“가자.”
도련님도 원하는 걸 얻어나 보다.
그의 표정이 밝은 걸 보니.
“가주님과 무슨 얘기를 나누신 겁니까?”
“남수단 단주란다.”
“남수단…… 뭐요?”
“남수단 단주가 되었다고.”
남궁정혁이 대회의실에 끝까지 남은 이유는 남궁도와 자신의 처우에 관해 상담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남궁도에게 분명히 말했다.
“쇳밥에 관심 없으니 행여나 저를 대장간 간주로 임명할 생각은 마십시오.”
아무런 말 없이 그를 바라보던 남궁도가 대뜸 말했다.
“남수단 단주.”
“……?”
“남수단은 남궁세가 최고의 전투부대로 본 세가에 위협이 되는 적들을 처리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그곳의 단주로 임명한다. 지금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최고 자리다.”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아무렴, 남궁도도 보는 눈이 있을 텐데 이런 재능을 대장간에서 썩히는 건 범무림적 손해긴 하지.
그래도 단번에 한 무력 단체의 단주라니.
승진이 너무 빠른 거 아냐.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도 있겠는데.
가주가 자신의 권력을 남용해서 아들을 고속승진 시켰다고.
당장 옆에 있는 정학우도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도련님이 갑자기 남수단 단주가 되었다고요?”
“왜? 불만 있냐?”
“제대로 들으신 건 맞습니까?”
“실력으로 증명할 거다. 내가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이란 걸.”
“일단 축하드립니다. 근데 남수단이 뭡니까?”
“……?”
이건 또 뭔 소리래?
남수단을 몰라?
남궁세가 최고의 전투부대라던데.
“남궁세가에는 총 네 개의 전투부대만 있습니다. 청룡단, 백호단, 주작단, 현무단.”
“네가 모르는 건 아니고?”
“제가 남궁세가에 들어온 지 오 년이 넘었는데 그것 하나 모를 것 같습니까?”
“……근데 왜 나한테는 남수단 단주를 맡으라고 했을까?”
“흠, 한자리 달라고 떼쓰는 도련님이 귀찮아서?”
“……!”
아비란 작자가 아들한테 사기를 쳐?
그것도 없는 자리까지 대충 만들어서?
남궁정혁은 당장 남궁도에게 달려갔다.
* * *
“방금 헤어졌는데 무슨 일로 나를 다시 찾아왔느냐?”
정말 모르겠다는 듯 뻔뻔하게 말하는 남궁도가 얼마나 얄미운지, 삼강오륜만 아니었으면 벌써 주먹 한 대는 날아갔다.
남궁정혁이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말했다.
“제가 알아보니 남수단이라 부대는 없더군요.”
“누가?”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전부 다요.”
혹시나 해 가주실로 오는 동안 마주친 사람, 모두에게 물어봤다.
남궁세가의 최강 전투부대, 남수단을 아는지.
하나같이 고개를 흔들며 그런 건 모른다고 했다.
어떤 놈은 아직 부상이 심해 보이니 붕대라도 감고 다니라고 헛소리를 지껄였다.
남궁정혁이 이를 악물며 계속 말했다.
“아마 저한테 잘못 말한 듯합니다. 남수단이 아니라 다른 부대를 말하려고 했지요? 이를테면 청룡단이나 주작단 같은 거 말이지요.”
“아니, 남수단이 맞다. 너는 그곳의 단주다.”
“남수단은 없는 거 아닙니까!”
이 양반이 진짜, 오늘 한번 해 보자는 건가.
자꾸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요.
“다시 말하지만 남수단은 분명 존재한다.”
“존재한다고요? 근데 왜 다른 사람들은 모르나요?”
“네가 그것에 관해 물어본 사람들 나이가 어떻게 되냐?”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묻는 말에나 대답해라.”
“아직 불혹이 되지 못한 젊은 사람들에게 주로 물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렇다.”
“……?”
“남수단은 그 당시 남궁세가의 부활을 목표로 세가 최고의 인재들이 소속된 곳이었다. 그래서 전멸했지만.”
“전멸했다고요? 왜요?”
“이십 년 전 함사평 대회전 때다”
함사평 대회전은 정마대전이 발발한 후, 마교와 정파가 맞붙은 최초의 대규모 전투였다.
양쪽 모두 많은 피를 흘린 처절한 전투이기도 했고.
정마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라고 할 수 있는 꼭 이겨야 하는 전투였다.
그곳에서 이겼기에 마교는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최후미에서 마교의 추격을 최대한 저지했기에 정파 연합군의 피해를 그나마 줄일 수 있었다.”
아, 생각난다.
꽁무니 빠지게 도망치는 정파 놈들 맨 뒤에서 마교의 발목을 잡는 놈들이 있었다.
그놈들만 아니었어도 정파에게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 분한 마음에 그놈들 시체를 깡그리 모아 불태워 버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 마교에게 전멸당한 부대의 대장이 되란 말입니까?”
“왜 자신 없느냐?”
그건 아닌데 좀 꺼림칙하긴 하네.
내가 전멸시킨 부대의 장을 맡는다는 게.
“함사평 대전에서 죽은 단원들의 원혼이 너와 함께 할 것이다.”
그런 말 하지 마.
무섭잖…… 아니, 내가 은근히 예민한 성격이라.
이럴 줄 알았으면 양지바른 곳에 고이 묻어 줄 걸 그랬다.
“참고로 내가 남수단 초대 단주다. 단원들도 모두 내가 손수 뽑았지. 정작 정마대전 때는 사정이 있어 단주직을 내려놓기는 했지만.”
그런 자리에 임명한 것은 날 시험하는 걸까?
내가 가주가 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
어쩌면 기회를 주는 걸 수도.
뭐, 어쨌든 좋다.
남궁도가 했는데 나라고 못 할까.
“근데 왜 하필 명칭이 남수단입니까? 솔직히 좀 촌스러운데.”
“남궁 수호단의 준말이다.”
“…….”
이젠 징글징글하다.
아니, 이놈의 일족엔 저주라도 걸려 있나?
이름 지을 때 남궁 자를 붙이지 않으면 벼락 맞아 죽는 저주.
“이번에도 제가 직접 단원들을 뽑으면 됩니까?”
“마음대로 해라. 진정한 지도자에겐 사람들이 따르는 법이니까.”
용무를 마친 남궁정혁이 가주실을 나가려다 다시 몸을 돌렸다.
“아 참, 아까는 제가 깜빡하고 말 못 했는데 돈 좀 주십시오. 꼭 쓸데가 있거든요.”
“얼마나?”
“음……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릴 정도?”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그것이 천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