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13화
한가로운 오후.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은 쾌청하다.
간간이 바람도 불어 주고.
그러니 딱이지 않은가.
“후우!”
무공을 수련하기에는 말이다.
남궁정혁은 아침부터 검을 휘둘렀다.
“하압, 하얍!”
자, 봐라.
웃통까지 벗고 수련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을.
남궁정혁이 검을 휘두르자 그의 몸에 맺힌 땀방울이 흩날리는 모습이 제법 멋지다.
그뿐이랴.
가슴은 울퉁불퉁, 어깨의 근육은 한껏 부풀었고 등 뒤의 근육은 역삼각형으로 매우 성이 나 있다.
게다가 배에 새겨진 왕(王)자는 어찌나 선명한지, 반역죄의 증거라고 관 직속 기관인 동창이 잡아가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다.
“하압!”
단 삼 개월.
호리호리하고 가냘픈 몸매를 단단하고 날렵한 몸매로 바꾸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그 기간 동안 남궁정혁은 수련에 매진했다.
열심히 한 만큼 충분히 만족한 만큼의 결과도 얻었고.
호흡이 다할 때까지 검을 휘두른 남궁정혁이 잠시 휴식을 취하자 정학우가 다가와 냉수를 건넸다.
“도련님, 정말 굉장합니다! 벌써 대연검법을 다 익히시다니요.”
“후후, 뭘 이 정도로.”
별것도 아닌데 호들갑 떨기는.
대연검법은 남궁세가의 무사라면 누구나 익히고 있는 기본 검법이다.
그렇다고 기본이라고 무시할 만한 검법은 아니고.
직접 익혀 보니 꽤 활용도가 높은 검법이다.
인정해 주기는 싫지만, 남궁세가가 괜히 검의 명가는 아니었던 거지.
“제가 아는 사람 중에 도련님만큼 무공이 빠르게 상승한 사람은 없습니다. 도련님은 정말 천재입니다.”
이제 겨우 내 전생 실력의 일 할쯤 될까?
아직 갈 길이 한참 멀었지만, 이것도 정학우의 눈에는 대단하게 보이나 보다.
하긴 이 정도만 돼도 어딜 가든 대접받을 만한 실력이긴 하지.
‘최소한 어딜 가서 맞고 다닐 정도는 아니니.’
정학우가 남궁정혁이 바닥에 내려놓은 거무튀튀한 검을 들었다.
“저도 도련님처럼 철검으로 수련해 볼까요? 이것 때문에 성취가 빠른 걸 수도 있잖아요.”
저 검은 남궁 대장간에 의뢰해 특별 제작한 수련용 철검이다.
일반 검은 가벼워서 취향에 맞지 않더라고.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근력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그래서 가장 무거운 대신 가장 값도 싼 건철을 통째로 녹여 저 검을 만들었다.
일부러 날도 세우지 않았고.
건철이 워낙 단단해 세밀하게 조형하기 힘들단다.
어차피 수련용으로만 사용할 거라 상관은 없었지만.
“어이쿠.”
휘잉, 철검을 휘두른 정학우가 그 무게를 감당치 못하고 몸을 휘청였다.
“아니, 도련님은 어떻게 이걸 막 휘두릅니까? 까닥했다간 손목 다 나가겠는데요.”
“다 자기에게 맞는 무기가 있는 법이다.”
철검을 다시 바닥에 내려놓은 정학우가 말했다.
“그나저나 우리는 언제 단원들을 모읍니까? 명색이 전투부대인데 도련님과 저, 단둘뿐이잖습니까. 이래서는 전투부대라고 말하기도 뭐하지 않나요.”
“양보다 질이다. 어중간한 사람 뽑았다가 골치 썩느니 차라리 안 뽑는 게 나아. 안 그런가? 정 부단주?”
도련님 잘 모신 덕에 단번에 신분 상승한 남궁정혁이 정학우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남궁 단주님. 저한텐 거짓말 안 해도 됩니다.”
“……뭐?”
“어제 청룡단의 현우에게 입단 제의했다가 거절당했잖아요. 그저께는 우영후. 그끄저께는 만호.”
“……너 그거 어떻게 알았냐?”
“세가 내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도련님이 돌아다니다 눈만 마주치면 입단 제의를 한다고요.”
“…….”
쳇, 입 싼 놈들. 안 들어올 거면 주둥이라도 닫고 있지.
그래, 솔직히 말해서 지난 며칠간 남수단의 인원 확충에 신경 좀 썼다.
그렇다고 저 말 같지도 않은 소문처럼 아무한테나 막 제의를 한 건 아니고.
똘똘하고 싹수가 보이는 사람들로 간추려 제의했는데 모두 거절당했다.
지금 자리에 만족한다나.
하여튼 요즘 것들은 도전 정신이 부족해.
“다들 현재 자리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인재들인데 아무것도 없는 남수단으로 오려고 하겠습니까?”
“왜 아무것도 없어? 내가 있잖아. 내가.”
“…….”
그러니까 더 안 오죠.
도련님이 단주라면 있던 사람도 나갈걸요.
“내가 지적한 버릇은 고쳤냐?”
“예, 도련님 말대로 초식을 변형해서 허리를 펴고 보폭을 짧게 하니 검술의 운용이 훨씬 더 원활해졌습니다.”
“잘 들어. 초식은 틀이다. 기본에 충실하되 거기에 억지로 너를 맞추지는 마. 그러면 절대 높은 경지로 나아갈 수 없다. 여자한테 너무 맞춰 줘도 쉽게 질려 하는 것과 같은 이치지.”
참, 귀에 속속 들어오게 설명은 잘한단 말이야.
도련님이 무심히 던지는 한마디가 정학우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지난 석 달간 무공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졌고. 무공 실력도 많이 향상되었다.
다만 새로운 의문은 생겼지만.
“근데 도련님은 이런 걸 어찌 아는 겁니까? 도련님도 무공을 제대로 익힌 지는 고작 석 달밖에 되지 않았잖아요.”
어떻게 알긴.
내가 전직 천마니까 알지.
그렇다고 이걸 곧이 고대로 말할 수도 없고.
“내가 천재라서 그래. 딱 보면 바로 견적이 나오지.”
남궁정혁이 다시 철검을 잡았다.
“이번엔 대련을 해보자.”
혼자서 초식 수련만 하려니 조금 지루하네.
기분 전환 삼아 실전으로도 검을 겨뤄 봐야지.
“아무리 도련님이라도 봐주지 않을 겁니다. 각오하십시오.”
“저번에 찰나도 지나지 않아 무릎 꿇은 걸 벌써 잊었냐?”
“그땐 방심해서 그런 거고요. 이번엔 진짜 제대로 할 겁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보다 검을 겨누는데 한 사내가 연무장에 나타났다.
“네 이놈!”
무슨 용무인지는 모르지만, 잔뜩 찌푸린 인상으로 다짜고짜 목소리를 높이는 걸로 추측건대 절대 좋은 일로 온 건 아니다.
다가오는 사내를 본 정학우는 또냐는 듯 남궁정혁을 쳐다보며 말했다.
“도련님, 이번엔 무슨 사고를 치신 겁니까?”
“……왜 나 때문이라고 단정 짓는 거냐? 너 때문일 수도 있잖냐?”
“설마요.”
씩씩거리며 걸어온 사내가 남궁정혁과 정학우, 둘을 번갈아 보다 남궁정혁에게 삿대질했다.
“네놈이 남궁정혁이렸다?”
“거봐요, 도련님 맞잖아요.”
“…….”
자신이 찾던 사람이라는 걸 확인한 사내가 길길이 날뛰었다.
“지금 당장 무릎 꿇고 빌지 않으면 다리를 분질러 버리겠다.”
“……?”
가만있어 보자.
내가 지난 석 달간 저런 악담을 들을 만한 짓을 한 게 뭐가 있을까?
* * *
혹시나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하자면 남궁정혁은 지난 삼 개월 동안 열심히 수련에 매진했다.
잠자는 시간, 먹는 시간까지 아껴 가며.
아예 하지 않으면 몰라도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하는 게 그의 성격 아니던가.
그렇다고 무조건 검만 휘두른 건 아니다.
때론 휴식도 일의 연장이니까.
수련의 고단함을 잠깐의 여흥으로 풀 때도 있었다.
그래서 몇몇 문제가 발생하긴 했지만.
‘두 달 전 손봐 줬던 도박장과 관련된 자인가?’
무공이 잠시 답보 상태에 머물러 답답한 마음에 주사위 몇 번 굴린 적 있었다.
그때 놈들이 속임수를 쓰길래 도박장에 불을 질렀지.
‘……아니야.’
고작 뒷골목 한량과 관계된 자가 남궁세가 내에서 저리 큰소리칠 수는 없다.
내가 아무리 얼자라지만 남궁세가의 핏줄인데 저리 당당히 찾아와 따진다?
그럴 리는 없었다.
‘혹시 한 달 전 정문을 지키던 무사와 관련된 자?’
자신의 얼굴을 빤히 알면서 세가를 드나들 때마다 신분 확인을 하던 수문위사가 있었다.
얼자라고 차별하는 것 같기에 눈 똑바로 뜨라고 눈탱이를 밤탱이로 만들어 줬다.
‘그것도 아닌 것 같단 말이야.’
주먹의 대화로 앞으로 차별하지 않기로 약속받지 않았던가.
그리고 남궁세가 소속이면 지금도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저 사람을 정학우가 몰라볼 리 없다.
‘그럼 누구지?’
남궁정혁이 고갤 갸우뚱하자 이제는 사내가 삿대질까지 했다.
“어제 네놈이 기루에서 다리를 부러뜨린 사람이 내 사제다.”
아하, 그 일과 관련된 거였군.
어제, 옥화루주 묘화의 초대로 그곳을 방문했다.
귀찮아서 안 간다고 몇 번을 거절했는데 거듭해서 간곡히 초대하길래 한번 가 준 거였다.
묘화의 꿍꿍이야 뻔하지.
어떻게든 나와의 끈을 유지하고 싶은가 보다.
나야 공짜 술을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도 없고.
마침 어제는 아침부터 비가 내려서 술이 당기기도 했다.
“내 사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런 짓을 한 거냐?”
술을 다 마시고 나오는데 웬 놈이 옥화루 입구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술값이 너무 많이 나왔다고.
바가지라며 그 돈을 못 내겠다고 억지를 썼다.
그래서 옥화루의 뒤를 봐주는 하오문 대신 내가 좀 어루만져 줬다.
소화도 시킬 겸, 공짜로 먹은 술값도 할 겸해서.
옥화루주가 좋은 술을 많이 준비했더라고.
사실 정강이까지 부러뜨릴 생각은 없었는데 그놈이 무공을 좀 하길래 손을 좀 과하게 쓰긴 했다.
그러곤 엉덩이를 차 주며 말했었다.
“불만 있으면 남궁세가의 남궁정혁을 찾아라.”
근데 진짜 찾아왔네?
그것도 사형이 대신.
아주 눈물 나는 사제지간이구먼.
“찾아온 용건이 뭐냐? 사제의 복수? 지금 여기서 한판 해?”
남궁정혁이 팔짱을 끼고 고갤 위, 아래로 까닥이자 상대방이 더 흥분했다.
“죄송하다고 사죄하지는 못할망정 어디서 건방이냐? 내가 누군 줄 아느냐? 나는 산동환검 엄백산님의 큰 제자 양소다.”
요새 것들은 참 쓸데없는 말이 많단 말이야.
나 때는 불만 있으면 세 마디 이상 나누지 않고, 바로 주먹부터 날렸는데 이놈들은 호구 조사부터 하니.
네 사부 이름 대면 내가 쫄 줄 알았냐?
그렇게 따지면 이 몸의 아비는 남궁도다.
천하제일검이라고.
물론 그 이름을 팔아 이득을 취하느니, 혀를 꽉 깨물고 죽겠지만.
‘근데 산동환검이 누구야?’
환생한 지 이제 겨우 석 달.
남궁정혁은 그가 누군지 당연히 모르는데 정학우는 아는 눈치다.
“산동에서 유명한 검의 고수입니다. 지금은 대장로님의 손님으로 별당에서 머무는 것으로 압니다.”
아, 남궁수 손님.
그렇다면 내가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말이잖아.
“다만 그에는 안 좋은 소문이 따라다닙니다.”
“무슨 소문?”
양소의 눈치를 본 정학우가 남궁정혁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돈을 너무 밝힌다고 합니다. 돈만 된다면 더러운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참 끼리끼리 논다.
스승이라는 자는 돈을 밝히고, 제자는 기루에서 먹고 튀려고 하고.
“당장 사제에게 가서 무릎 꿇고 사죄해라.”
“내가 왜? 뭘 잘못했다고?”
“너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다. 직접 만나 보니 네가 왜 남궁세가의 수치로 불리는 줄 알겠다.”
“나도 방금 네 사부에 관한 소문을 들었다. 돈을 그렇게 밝힌다며?”
“그 주둥이 닥쳐라.”
“돈 많아도 아무 소용 없어, 죽을 때 싸 들고 갈 것도 아니고. 경험자의 충고니깐 그렇게 전해.”
“날 욕하는 건 참아도 사부님을 욕하는 건 못 참는다.”
그래도 착하네.
난 내 욕만 안 하면 되는데.
다른 사람은 다 욕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