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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14화 (14/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14화

내가 세상을 살아오면서 정한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그중 하나는 바로.

‘오는 적은 안 막고, 가는 적은 두들겨 패서 보낸다.’

먼저 시비 거는 상대에겐 반드시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 준단 말이다.

지금 그 상대가 눈앞에 있고.

그것도 마침 몸이 적당히 풀렸을 때 말이다.

스릉, 양소가 검을 꺼냈다.

“남궁정혁, 사부님을 모욕한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다.”

이것이 주객전도인가?

당신이 날 찾아온 이유는 사제의 복수 아니었나?

근데 이제는 사부를 모욕했다고?

뭐 어쨌든 좋다.

안 그래도 정학우말고도 새로운 대련 상대가 필요했거든.

상대가 먼저 알아서 덤벼 주면 나야 고맙지.

“네가 먼저 시비를 건 거야, 난 단지 그에 응해 주었을 뿐이고.”

“마지막 기회를 주마,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한다면 너그러이 용서해 주마.”

“그럴 필요 없어.”

“……?”

“난 네가 인제 와서 빈다고 해도 용서 안 해 줄 거거든.”

“이놈이 감히…….”

“근데 여기서 널 두들겨 패면 어찌 되는 거냐? 이번엔 네 사부가 찾아오는 거냐?”

“내 검이 널 용서치 않으리라.”

분노한 양소가 검을 휘둘렀다.

먼저 공격한 이상 몸 성히 보낼 수는 없지.

그래도 확실히 사제보다는 사형이 낫네.

검의 변화가 어제 만난 놈보다는 더 현란하다.

그래 봤자 거기서 거기지만.

챙! 챙!

양소의 검이 머리 세 개 달린 독사처럼 남궁정혁에게 독니를 박아 넣기 위해 머리, 가슴, 몸통을 노렸다.

하지만 남궁정혁이 누구던가?

전생에서 이미 무림 최강자들과 대결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다른 사람이 볼 땐 양소의 공격이 살모사의 그것처럼 날카로울 수도 있지만, 남궁정혁이 볼 땐 글쎄.

새끼 뱀이 갓 나온 유치를 드러낸 것처럼 앙증맞기만 했다.

‘재롱부리는 게 귀엽네.’

상체만 움직여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양소의 공격 모두 흘려보낸 남궁정혁이 반격했다.

“대연검법 제 일식, 대연참영.”

익혀 보니 남궁세가가 왜 이 검법을 소속 무인들에게 필수 검법으로 보급하였는지 알겠다.

‘기본이 가장 중요하니까.’

검은 그 성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속도가 빠른 쾌검, 변화가 많은 환검, 힘을 중시한 중검, 찌르기에 집중한 첨검 등등.

하지만 대연검법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속도는 느리지도 않지만, 빠르지도 않다.

그렇다고 상대의 눈을 어지럽히는 변초가 많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간결하고 단순하다.

다른 요소들도 마찬가지.

무색무취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특이점이 없는 검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검을 처음 익히는 사람들에게 더욱 좋지만.

특정 요소에 치우치지 않고 차근차근 기초를 쌓아 검이라는 무기의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궁정혁, 제법 재주가 있구나.”

허세를 떨던 것과 달리 양소는 낭패감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그 움직임이 눈에 훤히 보이는 것 같은데 남궁정혁의 검을 갈수록 막기 힘겨웠기 때문이다.

그의 공격은 단순했기에 목표물에 힘을 집중시키는 우직함이 있었고, 빠르지 않았기에 방향 전환에 용이했다.

검에 실린 힘도 만만찮다.

뭔 검을 돌덩이로 만든 것도 아닌데 한 합 한 합이 천근만근이었다.

캉!

지금도 남궁정혁의 공격을 맡은 자신의 검이 도리어 튕겨 나갔다.

상대의 무거운 철검이 여간 버거운 게 아니다.

“징그러운 놈, 제발 좀 떨어져라!”

양소는 적과의 거리를 벌려 반격의 기회를 얻고 싶었지만 남궁정혁이 도통 그 틈을 주지 않았다.

마치 발정기 때 암컷을 쫓는 수컷처럼 집요하게 따라붙으며 공격하니 제대로 된 검식을 펼치기 힘들다.

“크윽.”

쾅!

머리 위로 떨어지는 남궁정혁의 검을 겨우 막으니 허리가 절로 꺾인다.

대체 저 철검은 무게가 얼마나 나가는 걸까?

쾅!

똑같은 공격을 두 번째 막았을 때는 무릎이 꺾인다.

무식한 놈, 보기와 달리 힘이 무척 세구나.

잡념을 가질 새조차 없다.

쾅쾅쾅!

“큭!”

남궁정혁이 무릎 꿇은 양소의 검을 계속해서 내리쳤기 때문이다.

그 무지막지한 공격을 막느라 양소는 몸이 자꾸 내려앉았다.

양 무릎은 흙바닥을 파고들었고, 접힌 허리는 더욱 굽어 이마가 땅에 닿기 직전이다.

온몸의 관절은 산산이 조각나는 느낌마저 들고.

쾅쾅쾅!

검을 든 팔이 얼얼한 게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때쯤 빡, 불길한 소리가 들린다.

설마, 양소가 고개를 들자.

“젠장.”

누적된 충격을 견디지 못한 검이 반으로 뚝 부러졌다.

그러고도 기세를 잃지 않은 공격을 양소가 급한 대로 팔을 들어 막았다.

저 거무튀튀한 검을 머리에 그대로 맞았다간 저승사자가 마중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빠각!

하지만 강철 검도 막지 못한 공세를 팔로 막았으니 어찌 됐을까?

“크으으윽!”

꽉 다문 입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한 번의 방어에 팔이 기이한 각도로 꺾였다.

부러진 것이다.

“내, 내가 졌소…….”

“응? 그래서?”

시작은 네놈이 했을지는 몰라도 끝은 아니야.

남궁정혁이 양소의 갈비뼈를 올려 치자 그가 하늘을 붕 날았다.

“으어어억!”

저것은 고통일까, 환희일까?

크게 소리 지르며 공중부양하는 양소의 모습에 남궁정혁이 씨익 웃었다.

한 번 더 날게 해 주지.

양소가 땅에 떨어지기 직전 다시 검을 휘둘렀다.

빡, 이번엔 등.

“크아아아악.”

양소가 기대 이상의 반응을 보여 줬다.

그리고는 고함과 함께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도련님, 그만하시죠.”

정학우가 땅에 엎어진 양소의 상태를 살폈다.

이미 정신이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입에 게거품까지 물은 걸 보니, 족히 몇 달은 정양해야 할 것 같았다.

“더 하면 진짜 죽겠는데요.”

말리는 정학우를 보며 남궁정혁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내 식견이 짧았구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사람이 왜 도구를 사용하는지 알겠다.”

남궁정혁이 전생에서 권에 집착한 이유는 주먹 끝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타격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금 깨달았다.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걸.

방금 검으로 양소를 후려칠 때도 그와 유사한 타격감을 느꼈다.

아니, 오히려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이런 희열은 오랜만이다.

그동안 쌓인 심적 울분이 쫙 풀리네.

어째 술보다 더 나은 것 같다.

“어디 대련 상대 더 없나?”

새로운 취향에 눈을 뜬 남궁정혁이다.

*   *   *

남궁수는 요즘 심기가 매우 어지러웠다.

밥을 먹어도 제대로 소화가 되지 않고, 누워도 잠이 잘 오지 않았다.

힘겹게 잠에 든다고 해도 악몽을 꾸기 일쑤였다.

그렇다면 남궁세가의 대장로로서 남들이 보기엔 세상 부러울 것 없을 것 같은 그는 왜 나날이 피부가 꺼칠하고 눈이 퀭해질까?

“이게 모두 다 남궁정혁…… 그놈 때문이다.”

석 달 전, 장로 회의에서 만난 그는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나태하고 방종한 태도가 사라진 대신 건들건들하고 능청스러워진 느낌이었다.

확실한 건 이전보다는 훨씬 더 대가 세지고 심지가 단단해졌다.

‘차라리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 것을.’

대체 그는 과거의 그 일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정말 신이 내려 사람의 속을 들여다볼 수 있나?

그때부터였다.

가끔 세가 내에서 남궁정혁을 마주칠 때마다 그와 제대로 눈도 못 마주치게 된 것은.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이 천마의 그것과 닮아 더욱 그랬다.

가끔은 20년 전에 죽은 천마가 살아 돌아와 남궁세가에 복수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부끄러워서 남들한테 얘기는 못 하지만, 남궁정혁을 마주친 날에는 자다가 악몽도 꿨다.

오줌을 지리면서 천마에게 살려 달라고 구걸하던 그때의 수치가 꿈속에서 생생히 재현되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그 치욕을 느끼면서 살 수는 없었다.

“대장로님, 약 대령했습니다.”

부족해진 정기를 보충해 심신의 안정을 도모해 준다는 한약을 들이켰다.

쓴 만큼 효과도 좋아야 할 텐데 아직 특별한 차도는 없다.

이 번뇌가 언제쯤 끝날꼬.

남궁정혁이 눈앞에서, 아니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리면 좋을 텐데.

“형님!”

그때 분명 벌컥 열리며 한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엄 대협, 무슨 일인가?”

남궁세가가 있는 이곳, 안휘성 합비를 지나다 인사차 들렀기에 며칠 머물다 가라고 거처를 내준 엄백산이 왜 저렇게 뿔이 났단 말인가?

“형님, 남궁세가가 우리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

“이 사람아,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근차근 말하게. 그래야 알아듣지.”

“방금 무슨 일이 있었냐면…….”

엄백산은 하소연했다.

자신의 둘째 제자가 술 취한 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우려는 악덕업주에게 ‘정당한 항의’를 하다 기루와 결탁한 ‘악인’에게 두들겨 맞고, 그것에 관해 사과할 것을 ‘정중히 요구’한 첫째 제자마저 보복 폭행당했다고.

“뭐라? 그래서 얼마큼 다쳤다고?”

“첫째 제자는 팔과 갈비뼈과 부러지고 둘째는 다리가 부러져 거동조차 못 하고 있습니다. 몇 달은 요양해야 할 판입니다!”

“그것이 남궁정혁, 그 얼자 놈의 소행이라고?”

“네! 그 얼자 놈이 간땡이가 부었습니다. 당장 그놈을 불러주십시오, 제가 직접 문초하겠습니다.”

“……관둬.”

“예?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잘 못 들었습니다.”

“그놈한테 뭔가 으스스한 기운이 흐르는 게 엮여 봐야 좋을 게 없어. 자네도 밤에 잠 잘 자고 싶으면 그냥 넘어가라고.”

엄백산이 억울하다는 듯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제자들이 다친 것도 화나지만 이번 일로 제 손해가 얼마나 막심한지 아십니까, 옆에서 도울 제자들이 없으니 그 일도 못 하게 생겼습니다!”

“……!”

순간 남궁수의 머리가 팽그르르 돌아갔다.

무공을 상실한 대신 계략과 술수로 지금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그가 아니던가.

심신 안정을 위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자네, 여기까지 온 게 산적을 소탕하러 가는 길이라 했지?”

“예, 무공을 익혔으니 정의 사회 구현에 노력해야죠.”

“…….”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남궁수의 눈빛에 엄백산이 솔직히 고백했다.

“크, 크흠. 금자 서른 냥을 받기로 했습니다. 합당한 보수지요. 그게 아니면 제가 왜 그 촌구석까지 가겠습니까.”

남궁수가 커다란 함에서 금자 뭉치를 꺼내 엄백산 앞에 던졌다.

척 봐도 오십 냥은 넘어 보였다.

“이건…….”

“가지고 싶나?”

“……?”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두 배 더 주지.”

똥개가 똥을 마다할까.

엄백산이 남궁수 곁에 찰싹 붙었다.

“제가 뭘 하면 됩니까?”

“당장 가주에게 가서 방금 그 일로 핑계로 이렇게 요구하게…… 그다음엔…… 이렇게 하면 되네. 할 수 있겠나?”

“……아무리 얼자라도 가주의 아들인데 괜찮을까요?”

“뒷수습은 내가 할 터이니 그건 전혀 걱정할 필요 없네. 일이나 잘 끝내야 할 거야.”

“그건 걱정하지 마시죠. 저야 복수도 하고 돈도 벌어서 좋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궁정혁은 형님 조카 아닙니까?”

“당치도 않은 소리. 애초에 남궁도를 내 동생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네.”

엄백산은 남궁수가 시키는 대로 하기 위해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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