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15화 (15/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15화

남궁정혁은 남궁도의 호출에 가주실로 불려 왔다.

무슨 일로 찾는지는 대충 짐작된다.

아마 오늘 낮에 있었던 엄백산 제자와의 다툼 때문이겠지.

……또 사고 친 게 있나?

아마 맞겠지?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뭘 하라고요?”

남궁도는 예상과 다르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산적 소탕을 하라고요?”

“그래.”

“산적 소탕? 갑자기요?”

남궁도는 가주실 한쪽에 무게를 잡고 앉아 있는 엄백산을 보며 말했다.

“가진 것이 없어 산속에서 밭을 일구며 사는 화전민을 약탈하는 산적들이 있다고 한다. 너도 엄백산과 함께 가서 그들을 처단해라.”

“그니까 제가 왜 그래야 하나요?”

“왜인지는 네가 더 잘 알지 않냐?”

“어…… 저 사람 제자들의 팔다리를 부러뜨려서요?”

“네가 대신 따라가 엄백산을 도우면 그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는구나. 어떻냐? 함께 가겠느냐?”

“어째 제가 가길 원하는 것 같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돕는 좋은 일이니까. 게다가 좋은 기회 아니냐, 네가 그동안 무공 수련을 열심히 한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연습과 실전은 다른 법. 호수에서 수영을 배운 사람은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빠져 죽을 수가 있다. 실력 향상의 지름길은 실전이지.”

그건 나도 잘 알고 있지.

저 말은 동의한다.

안 그래도 마땅한 대련 상대가 없나 손이 근질근질하던 참이기도 하고.

‘그동안 너무 수련만 했어.’

세가 내에서만 있느라 바깥바람을 쐬고 싶기도 했다.

다만 한 가지 꺼림칙한 건…….

남궁정혁이 슬쩍 엄백산의 얼굴을 훑었다.

관상이 맘에 안 들어.

‘절대 너그러운 관상이 아니란 말이야.’

눈썹이 짧고 볼에 심술살이 있는 것이 사소한 일에도 앙심을 품고 반드시 복수할 상이다.

소갈머리가 간장 종지만큼 좁다는 말이다.

내가 저런 관상은 또 기가 막히게 본다.

그런데 자신을 따라가 돕는 것만으로 그 일을 용서한다고?

이 일이 그만한 가치가 있나?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 같은데.

남궁정혁이 의뭉스러운 눈길로 쳐다보자 엄백산이 말했다.

“도와주게,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한 일이네.”

정의 사회 구현 따윈 내 알 바 아니지만, 합법적으로 사람을 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그리고 이 일을 통해 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개선되면 그것 또한 좋은 일이고.

엄백산의 검은 속내가 좀 신경 쓰이긴 하지만…… 뭐, 상관있나.

구더기 무서워서 고추장 못 담글 것도 아니고.

사소한 것에 신경 쓰면 발전이 없다는 말이다.

거기다 참고로 얘기하자면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선 구더기도 좋은 식량원이 될 수 있다.

의외로 맛도 있고.

예전에 먹어 봐서 안다.

“저도 동참하겠습니다.”

남궁정혁이 승낙하자 엄백산은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우선은 그를 이 일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후후, 따라오기만 하면 다 잡은 거지. 우선 목적지에 도착해서…….’

그다음은 크흐흐흐…….

“그럼 내일 아침에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의도한 바를 이룬 엄백산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가주실을 나갔다.

남궁정혁도 마찬가지였다.

볼일을 다 봤는데 굳이 남궁도와 계속 얼굴을 맞대고 싶진 않았다.

“오늘 봤으니 내일 출발하기 전 따로 인사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가주실을 떠나려는 남궁정혁을 남궁도가 붙잡았다.

“자리에 앉아라.”

“왜요?”

귀찮다는 듯 반문하자 남궁도가 품 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딸각.

안에 들어있는 은색 환에서 퍼지는 청아한 향기에 매료된 남궁정혁이 홀린 듯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저거 나 주려는 건가?’

아니, 그런 걸 준비했으면 준비했다고 미리 얘기했어야지.

남궁정혁이 은색환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

“……이것은?”

“공향단이다. 삼십 년 공력을 품고 있지.”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이 넘어갔다.

안 그래도 내공이 모자라 아쉬운 참이었는데.

아무리 무재가 뛰어나고 전생의 경험이 있어도 영약을 먹지 않는 한 내공을 비약적으로 늘릴 순 없다.

내공은 투자한 시간만큼 느는 법이기 때문이다.

근데 저 조그마한 환이 무려 삼십 년 세월을 품고 있다니.

“이 귀한 걸 어디서 구한 겁입니까?”

“지인이 선물로 줬다.”

남궁도가 잘나가긴 잘나가나 보다.

이런 영약을 선물이라고 덥석 주는 사람이 있는 걸 보니.

내가 마교 교주일 때도 돈이나 보석을 받은 적은 있어도 이만한 영약을 선물로 받은 기억은 거의 없다.

그만큼 영약은 귀한 것이다.

그래서 뺏어 먹었지.

안 준다는 놈, 아가리를 찢어서라도.

“나한텐 필요 없는 것이니 네가 먹어라. 썩어 문드러져 버리는 것보단 낫지.”

풋…….

남궁도의 무심한 듯 던지는 말에 가주실 한쪽에 서 있던 모단수는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저것이 어떻게 구한 영약이던가.

‘아주 힘들게 구했지.’

이십 년 전에 있었던 정마대전의 영향으로 인해 현재 영약은 씨가 마른 상황.

그전에 만들었던 영약은 그때 이미 다 먹고, 그 이후로 만들어진 영약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효능 좋은 약초가 십 년, 이십 년 만에 자라는 것이 아니니.

“전 중원을 뒤져라.”

남궁정혁이 수련에 열중한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남궁도가 부하들에게 내린 명령이었다.

그가 내공을 늘려 주는 영약을 확보하라고 닦달한 탓에 부하들 발에 굳은살이 한 움큼씩은 늘었을 것이다.

안 판다는 걸 억지로 사기 위해 막대한 지출도 감수했고.

그 돈이면 대궐집 십여 채도 거뜬히 지었으리라.

덕분에 당분간 긴축재정이다.

다른 장로들이 알면 까무러치겠지.

차라리 소림사의 대환단이나 무당파의 태청단 같은 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게 다행이다.

“먹고 뒤돌아 앉거라.”

행여나 누가 뺏어 먹을까, 혹은 남궁도의 마음이 바뀔까, 남궁정혁은 냉큼 공향단을 입안에 넣었다.

‘……!’

향이 심상치 않다 싶더니 역시나.

과연 제대로 된 영약이다.

겨우 세 번 씹었나, 그것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식도를 타고 쑥 내려갔다.

‘반응이 금방 오는군.’

배 속에 작은 모닥불이 생긴 듯하더니 그 기세가 사뭇 거칠다.

마치 건조한 가을철, 마른 갈대에 붙은 산불처럼 환의 기운이 순식간에 혈도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간 것이다.

갑자기 확장된 기혈 때문에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질 찰나.

‘움직이지 마라.’

봄날 햇볕처럼 따스한 기운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공향단의 기운을 운기할 터이니 넌 가만히 있으면 된다.”

남궁도였다.

그가 아들의 등 뒤에 대고 내공을 투입하여 영약의 기운을 조절했다.

남궁정혁은 그런 남궁도를 믿고 몸을 맡겼고.

속은 바뀌었다 해도 겉은 그의 아들 그대로니 믿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제법 잘하는군.’

영약은 먹고 난 후, 그 기운을 체내로 갈무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영약의 기운이 대소변이나 피부의 모공을 타고 체외로 배출될 수 있다.

삼십 년 공력이 삼십 년 묵은 똥이 되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체내로 흡수되지도, 체외로 배출되지도 못한 기운 때문에 온몸이 부풀어 올라 폭사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남궁도의 운기는 뛰어났다.

자신의 체내에서 사납게 날뛰는 기운을 잘 달래어 단전으로 부드럽게 끌어모았다.

사실 이런 것쯤은 내가 직접 할 수 있지만 남이 해 주는 게 더 편하긴 하다.

왜, 안마도 내 손으로 내가 하는 것보단 남이 해 주는 게 더 시원하고 효과도 좋지 않나.

귀찮음을 감수해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그래도 아비라고 자식은 챙기는군.

“다 됐다.”

한 식경쯤 지났을까.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남궁도가 남궁정혁의 등 뒤에서 손을 떼며 물었다.

“어떠냐? 효과가 있냐?”

암요, 있고 말고요.

가장 먼저 체감할 수 있는 건 시력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흐릿하게만 보였던 벽에 걸린 족자의 작은 글씨가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뿐이랴.

손아귀에 힘이 넘치는 게 바로 앞에 있는 강철 탁자를 두 손으로 구겨 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조금 과장해서 남궁도와 바로 싸워 볼 법한 자신감이랄까.

물론 아직은 턱도 없지만.

“영약의 기운이 몸 안에 잘 흡수되었습니다. 고맙…….”

뜻밖의 선물이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나도 모르게 고맙다는 말까지 튀어나올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목숨과 영약, 아직은 수지가 맞지 않지.

다음에 또 갖다 주면 그땐 한번 고려해 볼게.

*   *   *

다음 날, 화전민 마을이 있다는 계양현 팔용산에 가기 위한 준비로 아침부터 부산했다.

정확히 말하면 정학우, 그 혼자 말이다.

“도련님.”

“왜?”

“저는 이번 산행 안 가면 안 될까요?”

“너도 가야지. 엄백산의 제자도 두 사람이었잖아. 게다가 남수단의 첫 공식 업무인데 부단주가 당연히 가야지.”

“제가 정말 남수단의 부단주 맞습니까? 잡부 아니고요?”

“어느 놈이 너보고 잡부라고 하디? 누군지 당장 말해. 내가 작살을 내 버릴 테니깐.”

“…….”

도련님이 그렇게 부려 먹고 있잖아요.

새벽에 일어난 정학우는 지금껏 아침도 못 먹고 짐을 꾸려 마차에 실었다.

산적을 소탕하러 가는 길에 필요한 게 뭐가 그리 많은지 누가 보면 분가하는 줄 알겠네.

“궁금해서 묻는데 이불은 왜 가져가는 겁니까? 화전민에게 주려고요? 그들이 산속에서 추위에 떨고 있을까 봐서요?”

“아니, 내가 쓰려고. 너도 알다시피 내가 예민해서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못잖아요.”

……뒤통수만 땅에 대면 코까지 골면서 자는 사람이 무슨 헛소리를.

“그럼 수저는 왜 챙기라고 하셨습니까?”

“딴 건 몰라도 그건 꼭 챙겨야 해.”

“아무리 없이 사는 화전민들이라고 해도 남는 수저 없을까요.”

“다른 사람 입안에 들어갔던 걸 어떻게 같이 써? 불결하잖아.”

그래서 저번에 옥화루에서는 안주를 손으로 집어 드셨군요.

뒷간 다녀와서 손 안 씻은 것도 다 봤는데.

이렇게 쓸데없는 이유를 붙여 가져가는 물건이 사두마차 내부의 절반은 넘게 차지했다.

대체 요강은 왜 실으라는 거야?

그것도 물어볼까 했지만 또 무슨 속 터지는 기상천외한 답변이 나올 줄 몰라 정학우는 묵묵히 짐을 쌌다.

그렇게 먼 길 떠날 준비가 다 됐을 때쯤 몇몇 사람들이 배웅을 나왔다.

그중에는 대장로 남궁수도 있었다.

그가 마차에 타려는 엄백산에게 인사했다.

“엄 대협, 부디 몸조심하시게나.”

의례적인 덕담을 한 남궁수가 주위를 살피다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다.

“내가 준 그것은 잘 챙겼겠지.”

“그럼요, 여기 있습니다.”

남궁수가 자신의 가슴팍을 툭툭 치는 엄백산에게 신신당부했다.

“실수가 있어선 안 될 것이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약조만 꼭 지켜 주십시오.”

“그건 걱정하지 말게.”

남궁수가 이번엔 남궁정혁에게로 갔다.

“정혁아.”

“……?”

남궁정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 양반이 오늘 왜 저런대?

가끔 마주치면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인상부터 찌푸리며 지나가던 사람이 웬 아는 척?

그것도 저렇게 밝고 상쾌하게.

“널 위해 준비했다. 받아라.”

“……?”

아이고, 뭘 이런 걸 준비했나.

괜히 더 의심스럽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