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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19화 (19/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19화

화전민 마을에 잔치가 벌어졌다.

몸과 목이 분리된 산적들이 차디찬 흙 속에 파묻힌 기념으로.

마을의 걱정거리가 사라진 지금 주민들은 모두 밝은 표정으로 잔치를 즐겼다.

자신들을 좀먹던 암 덩어리가 사라져 기쁜 주민들은 없는 살림이나마 감자를 쪄 내고, 옥수수를 구워 정의의 무인들을 대접했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십시오.”

진짜 차린 건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흥이 돋았다.

“하하! 술 더 가져와!”

남궁정혁은 맛이 텁텁한 싸구려 농주라도 술을 양껏 마실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고.

“인생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정학우는 원래 긍정적인 성격이라 기분이 좋았고.

“이 세상에 정의는 살아 있습니다!”

서문호는 다른 사람들이 기뻐하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이때, 혼자 울상 짓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이번 의뢰는 손해가 막심하구나.’

엄백산이었다.

그는 횃불의 빛이 닿지 않는 구석에 홀로 앉아 농주를 들이켰다.

평소라면 입에 대지도 않은 저급한 술이지만 마음이 헛헛해서 그런지 몰라도 쫙쫙 넘어갔다.

‘돈 받긴 글렀어.’

원래는 남은 산적을 자기 손으로 토벌하고 보수를 요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문호가 산적 두목을 죽였고, 다른 산적마저 남궁정혁이 순식간에 때려죽인 탓에 엄백산이 나설 기회 자체가 없었다.

한 것도 없는데 돈을 달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남궁정혁의 무공의 성취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남궁도의 무재가 남궁정혁에게도 이어졌구나.’

분명 남궁세가의 수치라 불리며 가문을 좀먹던 망나니일진대, 언제 그렇게 무공을 익혔단 말인가.

두 눈으로 직접 본 남궁정혁의 무위는 놀라웠다.

한 방에 한 명.

그가 철검을 휘두를 때마다 산적들이 한 수도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그러니 엄백산이 나설 틈이 있나.

어, 어 하는 사이에 상황이 종료되었다.

‘뭘 한 게 있어야 돈을 달라고 하지.’

그렇다고 명색이 정파 소속인 그가 양민을 상대로 돈 내놓으라고 윽박지를 수도 없고.

사실 차라리 그렇게 할까 생각해 봤는데 무림이란 곳이 평판이 워낙 중요한 곳이라.

자칫 잘못해서 이상한 소문이라도 퍼지면 더 손해다.

그래서 이곳까지 온 여비라도 뜯어낼까 했더니 남궁정혁의 새로운 부하가 된 서문호라는 놈이 고리눈을 떴다.

“정의를 위한 일에 돈을 요구하는 것은 대협이 할 짓이 아닙니다.”

쳇, 누굴 돈만 밝히는 금충으로 아나.

‘…….’

뭐 틀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손해를 만회할 기회가 있긴 하다.

남궁수가 의뢰한 그 일을 해낸다면 말이다.

‘……으흐흐흐흐.’

엄백산이 품속에서 하얀 가루를 꺼냈다.

출발 전 남궁수가 준 것이다.

그것의 정체는 산공독.

명문정파의 대장로가 내공을 먼지처럼 흐트러뜨리는 산공독을, 그것도 이런 최상품을 왜 가지고 있는지 구태여 묻진 않았다.

자고로 독이란 어떻게 구했는지보다는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산공독에 중독되면 내공을 끌어올리기 전까진 자신이 중독된 줄도 모른다고 한다.

무색무취이기 때문에 당연히 먹을 때도 모르고.

그렇기 때문에 범인을 특정하기가 어렵다.

먹은 시간이 같아도 무공을 사용하는 시간은 제각각일 텐데 어떻게 알겠는가,

이 독이라면 남궁정혁도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당할 것이다.

‘계획이 다소 변경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원래 계획은 산적과 싸우기 전에 이걸 먹이는 거였다.

그래서 싸움 중에 내공이 흐트러진 남궁정혁이 어느 산적의 눈먼 칼에 맞아 죽게끔.

혼전 중에 사망한 것이니 남들 보기에도 자연스럽고 자신도 의심받을 일도 없지.

그래서 수락했건만.

‘재수 없게 걸리지 않겠지?’

그렇다고 인제 와서 포기할 맘은 없다.

벌써 금자 오십 개를 받았고 일을 마무리하면 백 개가 더 들어온다.

하는 일에 비하면 수입이 매우 짭짤한 편이다.

양심의 가책?

이미 비슷한 일을 여럿 해 봤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최대한 자연스러운 죽음으로 보이게 연출하느냐인데…….’

절벽에서 밀어 죽이는 건…… 남궁정혁이 이미 절벽에서 한 번 떨어진 적이 있어서 기각.

물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건…… 놈이 수영을 배웠을 수도 있잖아.

이것도 기각.

괜한 의심을 받을 수 있다.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

잘 때 묶어 놓고 불을 지르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도출한 엄백산이 행동에 나섰다.

마을 중앙에 피워 놓은 횃불 근처에서 술 마시는 남궁정혁의 모습을 염탐하니 좋은 꾀가 떠오른다.

“술이 모자라.”

빈 호리병을 내미는 남궁정혁의 요청에 어느 아낙네가 술을 가지러 갔다.

엄백산은 그 뒤를 쫓아가며…….

“나도 술을 더 주게.”

아낙네에게 말했다.

아낙네가 커다란 항아리에서 술을 퍼 담을 때 남궁정혁의 호리병에 얼른 산공독을 탔다.

물에 녹으면 무색무취라 했으니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봐도 완벽한 범죄였다.

이제 결과만 기다리면 된다.

‘으흐흐흐흐.’

멀찍이 떨어진 통나무집 뒤에서 고개만 빼꼼히 내민 엄백산이 기원했다.

‘마셔라, 빨리 마셔라.’

……응? 뭐지?

저놈이 왜 나한테 오지?

마시라는 술은 안 마시고 자신에게 다가온 남궁정혁이 다짜고짜 술병을 내밀었다.

“마셔.”

“……!”

네가 마셔야지, 그걸 왜 나한테 마시래?

엄백산이 어색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에 쥔 술병을 내보였다.

“내 술은 따로 있네.”

“마시라고.”

“……왜 자꾸 자네 술을 나보고 마시라고 강요하나?”

“마시기 싫어?”

“다른 사람 입이 닿은 술병은 좀 그래서…… 내가 매우 깔끔한 성격이라.”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무슨 이유 말인가?”

“내 술에 몸에 안 좋은 뭔가가 들어 있는 거 아냐? 가령 독 같은 거 말이야.”

“……하하, 술은 원래 몸에 안 좋네. 원래 과한 술은 독과 다름없다고 하지 않은가.”

저놈이 뭘 알고 얘기하는 걸까?

갑자기 웬 독 타령?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표정 관리 못 하는 엄백산을 보며 남궁정혁이 속으로 비웃었다.

하는 짓이 같잖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전문가 앞에서 재주 부리기는.’

산적 소탕을 제의했을 때부터 엄백산이 무슨 꿍꿍이를 가졌나 싶었다.

그래서 남궁세가를 출발할 때부터 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마냥 술만 마시고 있었던 건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고작 독?’

이건 너무 쉽잖아.

온갖 음모가 횡행하는 마교에서 이 정도는 하수나 쓸법한 수법이다.

남궁정혁이 본인의 술병에 대고 코를 킁킁거렸다.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단 말이야.”

“……무, 무슨 냄새?”

분명 남궁수가 무색무취라 했는데.

“자, 맡아 봐.”

남궁정혁이 내민 술병과 본인 술병의 냄새를 비교한 엄백산이 정색했다.

“냄새가 똑같은데 뭐가 다르단 말이냐?”

“내 감각이 좀 예민해서 말이야.”

남궁정혁으로 환생한 후, 처음 한 것이 천마개조술이다.

몸 안의 탁기를 몰아내고 순수하고 깨끗한 몸으로 개조시켰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와 같이.

왜 아기들도 조금만 쓰면 입안의 음식을 뱉지 않나?

그거 단순한 음식 투정이 아니다.

신경과 감각이 생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렇다.

통각, 미각, 후각 등 모든 감각이 속세에 찌든 어른보다 훨씬 더 예민한 거지.

남궁정혁도 마찬가지.

그가 본인의 술 냄새를 다시 맡았다.

“그전까진 괜찮았는데 이번 술에선 꾸리꾸리한 냄새가 아주 희미하게 난단 말이야. 꼭 누가 뭘 탄 것처럼.”

엄백산이 버럭, 큰소리쳤다.

“설사 누가 술에 뭘 탄다 해도 왜 나를 의심하는 것이냐!?”

그거야 당신이 아까부터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내 주변을 얼쩡거렸으니까 그렇지.

여기서 나한테 해코지하려는 사람이 당신밖에 더 있겠어?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좀 더 결정적인 증거가 있거든.

“이 술에서 나는 냄새와 똑같은 냄새가 당신한테서 나.”

남궁정혁이 엄백산의 몸에 대고 코를 킁킁댔다.

이에 당황한 그가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을 가슴팍에 갖다 댔다.

쓰고 남은 산공독이 있는 곳이다.

“거기에 뭐가 들었는지 좀 볼 수 있을까?”

“……내, 내가 그 술을 마시면 될 것 아니냐, 그럼 의심이 풀리겠지.”

젠장, 개코냐.

살다 살다 냄새로 독을 찾아내는 놈은 처음 봤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산공독.’

내공을 흐트러뜨리긴 하지만 그 외에 몸에 해로운 것은 없다.

독의 기운은 며칠 지나면 몸속에서 자연스럽게 분해될 것이고.

산적도 다 소탕했겠다, 당분간 무공 쓸 일도 없으니 거리낄 것도 없다.

그것이 그의 오판이었지만.

“어떠냐? 이제 나의 결백을 믿겠느냐?”

남궁정혁의 술병을 가로챈 엄백산이 꿀꺽꿀꺽 술을 다 마셨을 때였다.

쾅!

화전민 마을 입구의 삐걱거리는 낡은 문이 부서지며 한 무리의 사내들이 들이닥쳤다.

“……?”

저들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뭐 하는 사람들인지는 알겠다.

‘산적?’

험악하고 허름한 인상착의가 팔용채 산적들과 유사한 것이 동종업계 종사자가 분명하다.

그중에서도 유독 체격이 큰 빡빡머리가 앞으로 나섰다.

“팔용채가 어디 있냐?”

아까의 악몽이 떠올랐는지 두려움에 떠는 주민들을 자신의 등 뒤로 물린 서문호가 앞으로 나섰다.

“그곳은 왜 찾는 것이오?”

“찾는 사람이 있어서. 웅귀라고 알고 있냐?”

“웅귀?”

서문호는 그가 누군지 몰랐다.

방금 본인 손으로 저세상에 보내 줬지만, 통성명을 따로 하지 않아 이름까지는 몰랐으니까.

그래서 촌장을 보았다.

“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빡빡머리가 횅한 머리를 긁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 여욱은?”

“여욱?”

“팔용채의 전 채주입니다.”

촌장의 말에 서문호가 빡빡머리를 보았다.

“그를 찾는 목적이 무엇이냐?”

“고놈이, 나 철구를 이곳까지 초대했거든.”

얼마 전 큰 형님을 도와 그가 녹림칠십이채 대채주가 되는 데 큰 공을 세운 철구는 한 통의 서찰을 받았다.

팔용채로 전 대채주의 부하가 도망쳐 와 있으니 빨리 좀 잡아가라고.

졸지에 채주 자리를 뺏긴 여욱이 보낸 것이었다.

그래서 철구는 웅귀를 잡으러 여기까지 온 것이고.

“우린 그와 상관없으니 당장 이곳에서 나가시오.”

“알고는 있다는 거네. 어디 있냐? 지금 너희랑 시답잖은 얘기할 시간은 없고. 그거만 알려 주면 좋게 가지.”

그때, 서문호 옆으로 슥 한 사람이 나타났다.

“저기 있어.”

남궁정혁이다.

그가 손가락으로 저쪽 숲 둥글게 쏟은 봉분을 가리켰다.

“따로 묻기 귀찮아서 한꺼번에 파묻었어. 아마 웅귀란 놈도 저기에 있을 거야. 찾으면 다시 잘 덮어 놓고.”

“뭐? 무슨 소리냐?”

“안 그럼 들짐승들이 꼬이잖아. 이런 건 기본 상식 아냐?”

당황한 철구가 버럭 화를 냈다.

“그걸 묻는 게 아니잖냐, 여욱과 웅귀가 왜 저기 묻혀 있냔 말이다.”

“죽었으니까, 죽으면 묻어야지.”

까닥, 철구의 눈짓에 부하들이 봉분을 파헤쳤다.

“두목, 진짭니다. 웅귀의 목이 여기 있습니다.”

그곳에는 정말로 자신이 찾던 웅귀가 있었다.

그것도 시체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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