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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21화 (21/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21화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고.

화전민 마을 주민들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날이기도 한데, 진짜 그날이 올 줄이야.

더구나 그 볕이 좀 세차다.

화전민 마을 촌장과 그 주민들이 느끼기엔 지금의 상황이 한여름의 내리쬐는 햇볕처럼 강렬하다.

그러니 산에서 내려가는 남궁정혁과 수하들을 배웅하는 그들의 허리가 절로 굽혀질 수밖에.

촌장과 마을 사람들은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감사함을 표현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은인들 덕분에 오늘부터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겠습니다.”

“산적들을 물리쳐 준 것뿐만 아니라 돈까지 주시다니,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희의 은인이십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과할 정도의 인사말을 들은 정학우가 손사래 쳤다.

“부담 말고 가지십시오, 어차피 저희 돈도 아닌걸요.”

서문호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저희 단주님은 잘나가는 집안 아들이라 그 돈이 필요 없으시답니다.”

어젯밤, 철구와 그 부하들을 웅귀 옆에 나란히 묻었다.

엄백산은 그 옆에 혼자 묻어 줬다.

원래는 귀찮아서 같이 묻을까 했는데 화전민 마을 주민들이 고맙다고 따로 땅을 팠다.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들고 다니는지 그의 옷가지에서 금자가 오십 개나 나왔기 때문이다.

철구와 그의 부하들도 다섯 개는 있었고.

거기에 물욕은 별로 없는 남궁정혁이 남궁수에게 받은 돈 중 다섯 개를 더해, 총 금자 육십 개를 마을 발전 기금으로 기부했다.

금자 서른 개뿐인 마을 총자산이 순식간에 곱절 넘게 불어난 것이다.

마을 사람들 처지에서는 횡재도 이런 횡재가 없다.

돈을 들여 고용한 자들이 일도 해결하고 오히려 돈을 주다니.

이 돈만 있으면 겨울을 따뜻하게 날 방한복도, 농사를 수월하게 지을 수 있는 농기구도, 아플 때를 대비한 비상약도 살 수 있다.

그러니 햇볕을 등지고 선 저들의 모습이 어찌 눈부시지 않으랴.

“가시는 길, 집까지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다시 한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당신들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끝없는 감사 인사를 뒤로하고 남궁정혁와 그의 부하들이 팔용산에서 내려왔다.

***

남궁세가로 돌아가는 길도 무탈하고 순조…… 로웠으면 좋았으련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주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아닌가, 사소한 문제가 쌓이고 쌓이면 이것도 큰 문제인가?

남궁정혁이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이래서 사람은 기질이 맞는 사람끼리 다녀야 해.’

맞지 않으면 괜히 피곤하니까.

물론 여기서 기질이 다른 사람은 서문호였다.

“약자를 돕는 게 무인의 의무 아니겠습니까.”

지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던 홍익인간도 아니고 오지랖은 얼마나 넓은지.

조금이라도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사소하게는 마차 바퀴가 구덩이 빠진 사람을 돕는 것부터 시작하여 객잔에서 술에 취해 시비가 붙은 사람 사이를 중재하는 등 남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했다.

그만큼 이동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었고, 불만이 쌓인 남궁정혁이 저놈을 버리고 갈까 고민하던 어느 날.

“단주님, 이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아 오십 리 길을 걸어왔다고 합니다!”

낮에 길가에 쓰러진 한 아이가 있었다.

서문호가 그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었겠는가.

당장에 뛰어가 얼굴에 물을 뿌려 대며 제정신을 차리게 했다.

실신한 연유를 물으니 어릴 적 헤어진 엄마를 찾아 헤매는 와중 배고파 쓰러졌다고 한다.

“이 어린 것이 얼마나 안타깝고 기특합니까. 우리가 데려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저 아이를 네가 엄마한테 데려다줘라.”

“역시 단주님, 대협의 풍모가 느껴집니다.”

엄지를 세우는 서문호에게 남궁정혁이 계속 말했다.

“그리고 넌 네 갈 길 가, 남궁세가로 찾아오면 죽인다!”

“하하하, 단주님, 농담까지 잘하시는군요.”

이게 농담 같냐?

아무리 생각해도 저놈을 수하로 받은 내 실수다.

앞으로 계속 같이 다니면 피곤한 일이 무척 많아질 것 같단 말이야.

더 귀찮아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쳐 내려 하는데…….

“도련님, 좀 돌아가긴 하지만 우리가 데려다주죠.”

여태까지 조용하던 정학우까지 서문호를 거든다.

벌써 서문호 저놈한테 물들었나?

저놈이 주변에 이렇게 악영향을 끼친다.

이렇게 가다가는 남궁수호단이 남궁봉사단이 되겠어.

“매정하게 모른 척하기엔 너무 어린아이 아닙니까?”

“…….”

정학우의 말에 남궁정혁이 아이를 보았다.

이제 겨우 일고여덟 살 정도 되었을까?

시커먼 손으로 서문호가 준 주먹밥을 허겁지겁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짠하기는 하다.

나도 전생, 어린 시절엔 저리 꼬질꼬질했을까?

어째 내 어린 시절 모습이 겹쳐 보이는 거 같기도 하고.

마교에 들어갈 당시 내 꼴이 딱 저랬던 것 같다.

“휴……”

한숨을 쉬며 뒷머리를 벅벅 긁은 남궁정혁이 마차 위로 올라갔다.

“난 잘 거야, 너희들이 알아서 해.”

“잘 생각하셨습니다, 도련님.”

“남한테 베푼 만큼 자기에게 다 돌아오는 겁니다.”

시끄럽다.

자는 데 조용히 해.

*   *   *

“단주님, 너무나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자식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돈 벌러 떠난 어미는, 자신을 찾아온 어린 아들을 보고 처음엔 화를 냈다.

이 먼 곳까지 혼자서 찾아오면 어떡하냐고, 도중에 사고라도 당했으면 어떡할 뻔했냐고.

생각 없이 무작정 찾아온 아이는 그 태도에 당황했겠지.

엄마를 보고 싶어 오십 리 길을 걸어왔는데 반겨 주지는 못할망정 꾸중이라니.

“으아아아앙.”

서러움이 폭발한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고, 어미도 그런 아들을 안고 같이 울었다.

“아가, 내가 미안하다.”

설마 제 배에서 나온 아들이 미워서 혼냈겠는가.

이 조그만 것이 그 먼 길을 혼자 오면서 겪었을 고생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겠지.

‘이 어미가 그리도 그리웠더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준 어미가 아들의 조막만 한 작은 손부터 시작해서 몸 이곳저곳을 유심히 살폈다.

행여 다친 곳은 없는지, 작은 생채기라도 나지 않았는지.

그렇게 구석구석 아주 꼼꼼히 살폈다.

“큽…… 남을 돕는다는 건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서문호는 두 모자의 해후가 어지간히 감동적인가 보다.

코까지 훌쩍이는 걸 보니.

사실 남궁정혁도 썩 괜찮은 기분이었다.

그도 붉은 피가 흐르는 인간인데 저 모습에 어찌 가슴이 따뜻해지지 않으리.

다만 절대 티를 내지는 않았다.

여기서 이 기분을 들켰다간 저 오지랖 넓은 놈이 또 무슨 귀찮은 일을 물어 올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때는 진짜 서문호와 작별하는 거지.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저씨들 고맙습니다.”

어미가 고맙다고 연신 고갤 숙였고, 아이는 해맑은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자,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서문호, 네가 마차 안에 타.”

원래 그는 마차를 모는 정학우 옆에 앉았다.

생각해 보면 그게 문제였다.

마부 옆에 할 일 없이 앉아 있으니 쓸데없는 일만 눈에 들어올 수밖에.

이럴 땐 아예 남의 일에 참견 못 하게 그를 마차 안에 격리하는 게 최선이다.

남궁정혁의 계략에 마차 안에 탄 그가 큰소리로 외쳤다.

“단주님, 의자가 정말 편합니다. 마부석이랑은 차원이 다른데요.”

“…….”

생각해 보니 열 받네.

안락하고 폭신폭신한 의자를 놔두고 내가 왜 이렇게 불편하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가야 하는가?

게다가 먹구름 가득 낀 하늘에선 보슬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도련님, 어서 우비 입으십시오. 옷 젖습니다.”

“…….”

정학우가 건네는 꿉꿉한 옷을 보니 더욱 열 받는다.

아무래도 서문호, 저놈을 쳐 내야 인생을 편히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남궁정혁이 그런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했을 때였다.

“……뭐야? 저 사람들은?”

제법 규모가 큰 장원 앞에 많은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다들 어둡고 근심 어린 표정인 걸 보니 좋지 않은 일로 저렇게 서 있는 것 같단 말이야.

그때 장원 입구에 떡하니 걸린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벽문파?”

무림 문파인 모양이다.

저곳에 무슨 안 좋은 일이 벌어진 것일까…… 아차, 아니다.

“빨리 이곳을 통과해라.”

저 참견쟁이가 또 나서기 전에.

남궁정혁이 정학우를 재촉했지만 이미 늦었다.

“부단주님.”

사람은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쪽으로 촉이 발달한다던데 그 말이 맞나 보다.

오지랖이 최소 화경에 도달한 서문호가 어느새 창문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외쳤다.

“잠시 마차 좀 세워 주십시오.”

푸드득, 마차가 섰다.

그렇다고 서문호의 요청 때문에 세운 건 아니고.

좁지 않은 도로임에도 사람들이 길을 가득 메워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지 제가 금방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그새를 놓칠세라, 서문호가 마차 밖으로 뛰쳐나가더니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접근해 말을 걸었다.

하여간 저 넉살 하나만큼은 타고났단 말이야.

“출발해라.”

“서문호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깐 가야지.”

“네?”

저렇게 능청스러운 놈이니 어딜 가서든 잘 적응하겠지.

너랑 비슷한 사람 만나 행복하게 살아.

아니면 너보다 더 심한 놈 만나 고생을 사서 해 보든지.

남궁정혁이 그렇게 서문호를 버리고 가려는데, 그가 돌아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

“단주님! 어젯밤 벽문파 사람들이 모조리 죽었답니다.”

아닌 척하고 싶다.

상관없는 척하고 싶다.

하지만 궁금증이 더 큰 남궁정혁이 결국 물었다.

“왜 죽었다는데?”

“마교 잔당의 소행 같답니다.”

“……?”

저놈이 방금 뭐랬지?

내가 잘못 들었나? 아니면 귀가 막혔거나.

남궁정혁이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다시 물었다.

“너 방금 뭐라고 했냐? 누구 짓이라고?”

“마교요.”

“아니, 그 뒤엔 말.”

“잔당이요.”

지난 이십 년간 단어 뜻이 바꿨나?

잔당이라니?

내가 아는 잔당이라는 말은 한 세력이 망하고 남은 찌꺼기를 뜻한다.

그런데 뭐? 잔당이라고?

허허, 누가 들으면 그동안 마교가 멸망한 줄 알겠네……!

정신이 번뜩 든 남궁정혁이 서문호에게 다시 물었다.

“잔당이 최우수 정예를 뜻하는 말이냐? 마교에서 고르고 뽑은 우수한 애들이 와서 벽문파를 멸문시킨 걸 거야, 그렇지? 내 말이 맞지?”

“…….”

서문호가 남궁정혁을 가만히 쳐다보다 이마에 조용히 손을 얹었다.

……열은 없는데.

“마교의 떨거지들이 벽문파를 멸문시켰다고요.”

“떨거지들?”

“멸망한 마교에서 도망친 놈들이지요…… 커억.”

숨이 막힌 서문호가 컥컥댔다.

남궁정혁이 갑자기 그의 멱살을 틀어잡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서문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정도로 세게.

“너 이 새끼, 헛소리 말고 똑바로 말해.”

“……컥컥.”

고통스러운 서문호가 남궁정혁의 손을 탁탁 쳤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마교가 왜 망해? 대체 왜 망했냐고?”

그는 계속 서문호를 다그쳤다.

“이 새끼 대답 안 해? 마교가 왜 망했냐고?”

“……커억, 다, 단주님.”

이걸 놔야 대답을 하죠.

성대가 눌려서 말이 안 나온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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