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22화
마교.
사실 이 명칭은 주로 정파인들이 사용하는 것이고 마교도들은 스스로를 이렇게 불렀다.
천마신교.
여느 단체가 그렇듯 마교도 초창기에는 겨우 백여 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참석하는 조촐한 모임에서 출발했다.
그때만 해도 비슷한 신념과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 순수한 모임이었다.
만나서 차도 마시고 과자도 먹으면서 덕담을 주고받았다나.
그러다 점점 인원이 늘어났다.
백 명은 이백 명이 되고, 이백 명은 사백 명이 되고…… 어느새 십만 명이나 넘게 늘었다
중원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많은 신도를 가진 종교가 된 거지.
사람이 많다 보니 의도치 않게 주변의 이목도 끌게 됐고.
그중 천마신교를 가장 주목한 건 관(官)이였다.
폭발적으로 신도 수가 늘어나는 걸 경계한 거지.
저렇게 많은 인원이 모였으니 뭔 수작을 부리지는 않을까 하고.
자연히 이어진 박해.
“너희들의 모임을 금지한다.”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켰지만.
사람 심리란 게 그렇지 않나?
하지 말라고 더 하고 더 하고 싶잖냐.
부모가 반대하는 사랑이 더욱 불타오르는 것처럼.
천마신교의 신도들이 그랬다.
관이 만나지 말라고 하면 더욱 열심히 만났다.
물론 남들은 모르게 뒤에서.
그러다…… 아, 됐다.
한 종교 단체가 무력 단체로 변질한 데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 한가하게 그런 걸 얘기할 때가 아니다.
다음에 또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
중요한 건 마교가 명부상실한 지상 최대, 최강의 무력 단체였다는 것이다.
혼자서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주축으로 한 정파연합체, 정천맹과 자웅을 겨룰 만큼.
그런데 그런 마교가 망했다고?
왜? 대체 무엇 때문에?
설마 이십 년 전 정마대전에서 져서?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지난 오백 년간 앙숙으로 으르렁거린 정파와 마교가 맞붙은 적이 몇 번이나 될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최소 열 번은 넘을 것이다.
어쩔 땐 정파가 이겨 마교가 그들의 눈치를 보며 십만대산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할 때가 있었다.
반대로 마교가 이겨 중원을 지배한 적도 있었고.
단 한 번의 전쟁으로 망할 거였음 정파나 마교, 둘 중 하나는 진작에 망했을 거라는 말이다.
그럼 이번에 마교는 왜 망했냐?
‘아이고, 머리야.’
서문호에게 들어 보니 그 이유가 기가 찬다.
마교 교주 제운강이 죽은 후 전쟁이 바로 끝난 건 아니었다.
이후, 일 년간의 치열한 격전이 더 벌어졌다고 한다.
‘생각보다는 오래갔군.’
하긴 교주가 죽었다지만, 그것만으로 승기를 잡은 전쟁을 포기할 만큼 마교는 성정이 무르지도, 지도 체계가 허술한 조직이 아니긴 하지.
오히려 교주의 복수를 부르짖으며 더욱 맹렬히 전의를 불태웠다고 한다.
‘역시 의리가 있는 놈들이야.’
이 대목에서 남궁정혁은 가슴 찡하게 감동했지만 어쨌든.
“정파는 잃었던 영토를 회복하고 마교를 궁지에 몰았습니다. 그 선봉장은 당연히 단주님의 아버지, 남궁도 대협이었고요.”
하여튼 재수 없는 놈.
그놈이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야.
그놈만 없었더라도 나와 마교가 풍요로운 중원에서 태평성세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을.
다시 생각해 봐도 열 받네.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정파의 수뇌부들은 협정을 추진했습니다.”
그렇겠지, 구석으로 몬 쥐를 잡는 것보단 밖으로 쫓아내는 게 더 쉬운 법이다.
아무리 승기를 잡았다 한들 정파도 큰 피해를 보았으니 그쯤에서 휴전하고 서로의 본거지로 돌아가 힘을 회복하는 거지.
다음에 또 맞붙을 정마대전에 대비해서.
그것이 무림이란 곳의 생리다.
여기까지는 이해했다는 듯 혼자서 고갤 끄덕이는 남궁정혁을 보며 서문호가 계속 말했다.
“그리고 결국 그 협정은 성사되었습니다. 정천맹은 철혈궁과 동맹을 맺고 마교를 멸망시키는 데 합의했죠.”
……뭐? 뭔 궁? 그런 이름은 처음 듣는데.
“철혈궁이 뭐 하는 곳이길래 정천맹이 협정까지 맺어?”
협정이란 건 규모가 어느 정도 비슷한 조직끼리 맺는다.
근데 무림에 정파무림 연합체, 정천맹과 규모가 비슷한 곳이 또 있었나?
이 대목부터는 정학우가 나서서 설명했다.
“철혈궁은 새외 무림의 북해빙궁, 대막태양궁, 포달랍궁이 연합하여 만든 단체입니다.”
“걔들이 어떻게 힘을 합쳤대? 그것들은 정파와 마교보다 사이가 더 나쁘잖아.”
분명 그랬다.
정파와 마교가 개와 고양이 같다면, 그들의 사이는 연년생 남매 정도?
마주치기만 해도 으르렁거렸단 말이다.
서로 꼴도 보기 싫어했고.
“동방도존 단사천입니다. 불세출의 영웅인 그가 물과 기름처럼 뭉치지 못하던 그들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마교가 멸망했다?”
“앞에서는 정파가 밀고 오고, 뒤에서는 철혈궁이 막고 있으니 마교도 어쩔 도리가 없죠.”
“십만대산에 적지 않은 병력이 대기 중이었을 텐데.”
내가 마교 교주였지만 전권을 틀어쥔 건 아니다.
남궁도에게 껄끄러운 남궁수가 있듯이, 나에게도 그렇게 짜증 나는 놈이 있었다.
‘유건명. 그놈이 재수 없긴 해도 능력은 있는 놈인데.’
그는 마지막까지 교주 자리를 두고 경쟁했던 사람이다.
영악한 데다 무공까지 강해 무척 힘겨운 상대였지.
아마 ‘그 사건’이 없었다면 최후의 승자는 유건명이 되었을 수도.
그런 그를 따르는 무리는 일부러 정마대전 때 배제했다.
괜히 같이 갔다가 내분이라도 일어나면 큰일 아닌가.
그래서 천마신궁을 지키란 명목으로 대기시켰다.
‘결사 항전하다 마교와 함께 아스라이 사라진 건가?’
아무리 그라도 정천맹과 철혈궁을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도망을 갈 수 있었을 것 아닌가.
최소한 그랬으면 마교가 멸망하지는 않았겠지.
남궁정혁이 이러한 의구심을 정학우가 계속 말했다.
“십만대산을 넘은 철혈궁이 마교의 본거지를 쳐들어갔을 때, 그들은 두 문을 활짝 열고 환영했다고 합니다.”
“……!”
순간 튀어나오는 욕을 겨우 참았다.
뭐? 뭘 했다고? 환영?
‘마교가 십만 대산에 있는 맛집이냐?’
환영을 하게.
손님 오셨냐고.
‘유건명, 이 개자식.’
그래도 자존심은 있는 놈이라고 여겼건만, 쳐들어온 적에게 본거지를 냉큼 갖다 바쳐?
어떻게 보면 남궁도보다 더욱 괘씸하고 발칙한 놈이로다.
이번 생, 잡아 족쳐야 할 놈이 한 명 더 늘었군.
어금니를 꽉 다무는 남궁정혁을 보고 정학우가 의아해했다.
“망한 건 마굔데 왜 도련님이 화나신 겁니까?”
“흠, 흠…… 그래서 마교의 남은 무리는 어떻게 됐냐?”
“지난 이십 년간 무림맹과 철혈궁이 끈질기게 추격하고는 있지만, 점조직 형태로 훑어져 그 수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힘듭니다.”
“얼른 가서 확인해 보자. 진짜로 마교의 소행인지, 아닌지.”
남궁정혁이 앞장서서 벽문파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그들을 가로막는 이들이 있었다.
가슴에 송 자가 새겨진 무인들이었다.
“이곳은 오늘부터 저희 송화문이 통제합니다. 신분이 확실치 않은 자들은 출입할 수 없습니다.”
불현듯 벌어진 참사에 근처 문파에서 나온 듯했다.
슥, 정학우가 남궁이라 새겨진 패를 내밀자, 그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서며 고갤 숙였다.
“남궁세가에서 나오신 분들이군요. 들어가십시오.”
아까와는 전혀 다른 태도.
여기서도 이렇게 남궁세가의 위세를 확인할 수 있다.
“…….”
속 쓰리네.
마교의 충성스러운 부하들은 지금 열심히 도망 다니고 있는데 남궁세가는 이렇게 잘나간다는 것이.
솔직히 공향단 때문에 남궁도에 대한 적개심이 살짝 누그러졌는데 그래선 안 된다.
정신 차리자.
그는 반드시 내가 복수해야 할 원수다.
그렇게 다짐하며 문 안으로 들어온 남궁정혁은 생각과는 다른 현장을 마주했다.
“현장이 깔끔하군요.”
정학우의 말대로다.
많은 사람이 죽었으니 혈흔이 낭자할 줄 알았더니 핏자국이 하나도 없다.
목을 졸라서 교살시켰나?
굳이 귀찮게 왜?
송화문 무인들이 시체를 한쪽에 모아 하얀 천으로 덮어 두었다.
정확한 사인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천을 살짝 들춰 보니.
“……!”
윽, 예상외의 끔찍한 모습에 한걸음 뒤로 물러섰던 정학우가 다시금 사체를 유심히 살폈다.
그 시체는 마치…….
“꼭 목내이 같군요.”
그렇다.
시체가 수분 하나 없이 바짝 말라비틀어진 것이 목내이와 흡사하다.
“이렇게 사악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일 놈들은 마교 밖에 없습니다.”
저 말을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다.
이번 일은 어떤 식으로든 마교가 연관된 건 분명하다.
‘……흡정마공.’
흡정마공으로 정기를 빨아 먹으면 저렇게 죽는다.
비인륜적 무공으로 분류되어 마교에서도 자체적으로 봉인한 금단의 마공이 어떻게 이곳에서 다시 나타난 거지?
* * *
사람은 각자 다양한 욕망을 품고 살아간다.
몸이 아픈 사람은 건강해지길 원할 것이고, 장사하는 사람은 한 푼이라도 더 많은 돈을 벌길 원한다.
아이가 없는 부부는 임신하길 간절히 기원할 것이고, 권력을 원하는 사람은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길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인은?
밥 먹는 것보다 수련하는 걸 좋아하는 무인은 어떤 욕망을 품고 있을까?
당연히 강해지는 거다.
일부 위선적인 정파놈들은 강해지는 것보단 참선이나 자기 수양을 위해 무공을 익힌다고 하는데 그거 다 구라다.
본인의 원초적인 욕망을 어떻게든 좋게 포장하고 싶은 거다.
그러면 자신의 존재가 우아해 보일 줄 알고.
도 닦는 게 목적이면 냉수나 한 사발 떠 놓고 기도나 할 것이지, 왜 팔다리 고생시켜 가면서 무공을 익힌단 말인가.
무인이 강해지고 싶은 건, 배고플 때 뭐라도 먹고 싶은 식욕만큼 자연스러운 욕구이자, 타당한 본능이다.
그렇다고 선을 넘는 건 안 되지만.
가령 한 푼이라도 더 벌고 싶은 상인이 길에 떨어진 돈을 주워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고 가로챘다고 치자.
상인이 잘못한 것일까?
그의 도덕관념이 부족한 것일까?
자유분방한 마교에서는 돈 흘린 놈이 바보고 멍청한 것이다.
돈을 주웠으면 당연히 주운 사람이 가져야지, 왜 돌려준단 말인가.
그럼 돈을 빼앗기 위해 사람을 죽였다면?
앞서가던 사람의 뒤통수를 돌로 내리치고 품속을 뒤져 돈을 갈취했다면?
아무리 마교라도 이건 용납 안 된다.
모든 마교도들이 탐욕스러운 그를 욕하고 손가락질할 거다.
무공도 마찬가지.
강해지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교지만, 정말 이건 아니다 싶은 몇몇 무공은 봉인시켰다.
그중 하나가 흡정마공이다.
“시신도 제대로 보전하지 못하다니, 죽은 사람만 불쌍하군요.”
정학우의 말 그대로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포식하여 저렇게 끔찍하게 죽이다니.
인륜 따윈 땅바닥의 개똥처럼 여기는 마교의 꼴통들이 봐도 이건 정말 아닌 거지.
부모를 죽인 원수도 저렇게는 안 죽인다.
물론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은 따로 있지만…….
‘그런 흡정마공이 유출되었네?’
대체 어떻게?
흡정마공의 비급은 신궁 지하 깊숙이 자리한 비고에 있고, 그곳의 정확한 위치는 교주밖에 모르는데.
이곳에 머물면서 어찌 된 일인지 알아봐야겠다.
이런 짓을 벌인 범인도 잡고.
남궁정혁이 그렇게 마음먹었을 때였다.
“남궁세가에서 나오셨다고요?”
덩치 큰 중년 사내가 다가왔다.
‘……저건 또 특이한 관상이네?’
남궁정혁이 그 사내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저렇게 생긴 사람이 흔치 않거든.
골격이 장대한 중년 사내는 턱도 크고 귓불도 크고 콧구멍도 컸다.
근데 정작 눈과 입술은 작았다.
‘거기다 눈썹도 짧고.’
보통 저런 사람이 야망이 크지.
문제는 품은 꿈에 비해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능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야망이 더 크니 늘 분란이 생길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