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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24화 (24/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24화

참혹하다.

사람들이 죽어 있는 모습에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렇다고 저번처럼 시체가 목내이처럼 변한 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더 끔찍하군.’

피해자들의 죽은 원인이 흡성대법은 아니다.

이번엔 조각 살인.

잘린 팔다리가 아무렇게나 사방에 널려 있었다.

그 잔인한 광경에 서문호가 뜨거운 콧김을 뿜으며 씩씩거렸다.

“개자식들, 이렇게 잔혹하게 사람을 죽일 필요가 있나.”

동감이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요즘 마교 얘들은 속에 쌓인 화가 많나?

왜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희롱하듯 죽였지?

‘패도와 무의미한 살상은 다른 것인데 말이야.’

서둘렀다고 서둘렀지만, 남산고개에 도착했을 땐 이미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였다.

소규모 상단이라 호위도 제대로 두지 못한 상인들은 이미 저승으로 떠났고, 마교 잔당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무척 신출귀몰한 자들이다.

남궁정혁은 죽은 자의 시체, 그중에서도 팔다리가 잘린 단면을 유심히 살폈다.

“…….”

추측할 수 없다.

상인들이 무공이라도 익혀 저항했다면 상대가 어떤 무공으로 죽였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을.

안타깝게도 상인들은 무공을 몰랐다.

짐작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그들이 일방적인 학살을 당했다는 것뿐이다.

얼굴에 선명히 박힌 공포가 그 증거다.

다만 어찌 된 연유인지 생존자가 단 한 명 있었다.

“…….”

그것참 이상하단 말이야.

사람을 가지고 놀 듯 죽인 놈들이다.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은 다 죽이면서 마지막 한 명은 살려 둔 거지?

송화문이 오는 걸 눈치채서?

그렇다고 해도 무공도 모르는 일반인 한 명을 죽이는 건 금방일 텐데.

‘……?’

굳이 왜 살려 뒀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

일단 생존자에게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들어야겠다.

단서가 많으면 많을수록 추론은 정답에 가까우니까.

남궁정혁이 사건 현장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소상히 말해 주시오.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 그것이…….”

하지만 생존자는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정신적 충격이 매우 큰 것 같았다.

겁에 질린 그는 남궁정혁이 묻는 말에 떠듬떠듬,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했다.

“고, 고개를 넘는데…… 갑자기…….”

답답하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다.

눈앞에서 동료를 잃은 사람을 채근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괜찮습니다. 이제부턴 우리가 반드시 당신을 지켜 줄 것입니다.”

그때 서문호가 옆에 붙어 등을 도닥여 주니 그의 혈색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갖다 버리려 했더니 또 이럴 땐 쓸모가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게 어찌 된 일이냐면…….”

생존자의 말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이렇다.

고개를 넘는데 검은 복면을 쓴 자, 다섯이 갑자기 나타나 동료들을 죽이고 그들이 가진 물품을 빼앗아 갔다는 것이다.

생존자는 단언했다.

“분명 마교의 잔당들입니다.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마교의 부활을 위해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당신이 엿듣는 걸 알면서도 그들이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했다고?”

“저는 동료들의 시신 사이에 몸을 숨기고 죽은 척했습니다.”

“……?”

설마 그런 허술한 수에 속았을까?

애초에 그렇게 속일 수 있을 만큼 시신이 많은 것도 아니다.

이거 어째 점점 의심스러워지는데.

남궁정혁이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생존자가 확신에 차서 다시 말했다.

“분명 마교의 짓이 맞습니다. 마지막에는 천마불패, 만마앙복이라고 외쳤다고요. 그건 마교도들이나 쓰는 구호 아닙니까?”

맞다.

천마불패, 만마앙복.

마교도들이 천마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는 구호다.

‘하지만 지금 그 구호를 쓰는 건 맞지 않아.’

천마…… 그러니까 내가 죽고 마교는 이미 망해 마교도들이 도망 다니는 상황이다.

이럴 땐 천마재림, 만마앙복이라고 해야 한다.

천마가 다시 나타나길 기원하는 거지.

그런데 뭐? 천마불패?

이미 패하여 죽은 천마가 어찌 불패란 말인가.

이런 상황에선 두 가지 경우를 유추할 수 있다.

첫 번째, 새로운 천마가 탄생했거나.

두 번째, 마교를 사칭한 자들이 어설프게 따라 하는 것.

과연 어느 쪽일까?

잠시 고민한 남궁정혁이 근처를 지나는 한 송화문도를 붙잡았다.

“하나만 물어봅시다. 목내이가 발견된 현장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나요?”

“예?”

“생존자나 목격자가 있냐고요.”

“글쎄요, 확실친 않지만 없는 것으로 압니다.”

“단 한 명도?”

“어차피 모두 같은 놈들이 저지른 짓이겠죠.”

……정말 그럴까?

“우리 먼저 가자.”

남궁정혁은 상황을 수습하는 노광근과 송화문도들을 뒤로하고 마을로 내려왔다.

지금 당장 알아봐야 할 게 있다.

*   *   *

중원에서 가장 정보에 빠삭한 이들이 누굴까?

대표적으로 두 단체가 먼저 떠오른다.

개방과 하오문.

정보를 취급한다는 점에서 두 곳은 공통점이 있지만, 다루는 정보의 성질은 조금 달랐다.

하오문이 높으신 분들의 은밀한 비밀에 강점이 있다면, 개방은 저잣거리에 흐르는 풍문에 능했다.

어느 곳이 더 뛰어나냐는 문제를 떠나 정보 수집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시대 불문, 사람 사는 곳에 거지 없는 곳은 없다.

햇볕 좋은 곳에는 항상 거지가 누워 있다.

그들이 그렇게 누워 오가는 사람들이 흘리는 말을 귀동냥했다.

그런 거지가 수만 명이나 된다면?

자연히 광범위한 정보가 축적될 수밖에.

물론 정보의 질은 떨어지거나 뜬소문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양으로 따지면 무림에서 개방을 따라올 단체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접근성도 하오문보다는 높고.

하오문은 보통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는 이유가 많은데 개방은 대놓고 있거든.

“분타주, 손님 왔습니다.”

개방 지부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대로에 누워 있던 거지에게 철전 하나를 던져 줬더니 냉큼 안내해 줬다.

분타주를 부르는 소리에 안쪽에서 귀찮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다른 손님과 있으니 나중에 다시 오라고 해라.”

“누가 왔는지 분타주님이 직접 나와서 보셔야겠는데요.”

“누군데 그래?”

당장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이 층 폐가 안에서 한 거지가 귀찮다는 듯 팔자걸음으로 걸으며 나왔다.

그러다 내 얼굴을 확인하곤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아니, 남궁세가의 남궁정혁 님 아닙니까, 여긴 어쩐 일로?”

역시 개방.

이곳엔 어제 왔건만, 벌써 신상을 파악하고 있었나 보다.

“몇 가지 질문할 것이 있어서 왔소.”

“한 다경에 은자 한 냥, 정보의 중요도에 따라 추가 요금이 붙을 수도 있습니다.”

“……?”

“개방 표준 요금입니다. 어느 분타를 가도 동일한 요금을 받지요.”

허허허, 그저 웃음만 나온다.

거지새끼 주제에 가격 정찰제라니.

지난 이십 년간 세상이 참 많이 바꿨구나.

남궁정혁이 정학우를 보았다.

그가 돈 관리를 하기 때문이다.

“……?”

근데 정학우는 당황스럽다는 듯 가만히 있었다.

“뭐 해? 한 냥이라잖아.”

“……지금 돈이 없습니다. 급히 나오느라 전낭을 챙기지 못했습니다. 돈 쓸 일이 있을 줄도 몰랐고요.”

이런 낭패가.

남궁정혁이 주머니를 털었지만 철전 몇 개가 다다.

서문호도 마찬가지고.

남궁정혁과 눈이 마주친 분타주가 딱 잘라 말했다.

“외상은 안 됩니다.”

“알잖아, 나 남궁정혁이야.”

“설사 창궁검제가 와도 외상은 절대 안 됩니다. 그것이 본 방의 영업 방침입니다.”

남궁도한테는 그렇게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안 되지.

내가 왕년에 니네 방주 몸뚱이를 반으로 뚝 잘라 준 사람이거든.

돈 갖고 다시 오기는 귀찮고, 궁금한 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 반드시 물어야겠고.

‘결국, 이 방법밖에 없다.’

남궁정혁이 우두둑, 손가락 마디를 풀 때였다.

분타 안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바쁜 것 같으니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의뢰하신 정보는 꼭 찾아 놓겠습니다.”

한데 그 남자는 남궁정혁도 아는 사람이었다.

저 싸가지는 여긴 왜 왔지?

“남궁정혁 님, 이곳엔 어찌 오신 겁니까?”

“……?”

저 새끼는 이중인격인가?

갑자기 웬 다정한 척?

우리의 첫 만남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잖아.

인상을 찌푸린 남궁정혁이 고개를 돌리자 상대 남자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다시 말했다.

“아, 저는 송화문의 차남, 노윤이라고 합니다. 노학 형님의 쌍둥이 동생이죠, 어제 저희 집에 오신 걸 멀리서 저 혼자 봤습니다.”

아, 애초에 다른 사람이었구나.

쌍둥이치고도 거의 똑같이 생겼네.

……목소리만 살짝 다른가?

“안에서 얼핏 들으니 돈이 없으신 것 같던데 우선 이거라도 쓰십시오.”

노윤이 은자 세 개를 건넸다.

형은 초면에 검을 뽑았는데 동생은 돈을 쓰다니.

참 인심도 좋아.

형제가 어쩜 이렇게 다를까.

“감사합니다. 송화문에 돌아가서 꼭 갚겠소.”

“아닙니다. 저희 집에 오신 손님인데 이 정도는 당연히 해 드려야죠.”

거기가 착하기까지.

이러면 관상학에 대한 내 믿음이 살짝 흔들리는데.

*   *   *

분타주가 물었다.

“궁금한 게 무엇입니까?”

“최근 이곳에 마교의 잔당이라 스스로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난 건 알고 있을 것이오.”

“저희도 그것 때문에 비상입니다. 놈들의 뒤를 쫓고는 있는데 흔적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그들이 맨 처음부터 지금까지,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시간대별로 알고 싶소.”

“흠, 잠시만 기다려 보시오.”

탁, 분타주가 한쪽 벽을 치자, 그것이 한 바퀴 빙글 돌았다.

뒤쪽에는 진량현 지도가 있었다.

“잘 보십시오, 사건이 일어난 순서대로 바둑알을 놓겠습니다.”

분타주가 바둑알을 놓으려고 할 때 남궁정혁이 한마디 더 덧붙였다.

“단, 조건이 있소. 흡정괴마와 복면인들이 나타난 때를 구분해 주시오.”

분타주가 고갤 갸웃했다.

“흡정괴마가 뭡니까?”

“시체를 목내이처럼 만든 살인마를 말하는 거요.”

“같은 자들이 저지른 것이 아니란 말입니까?”

“그걸 알아보기 위해서 여길 왔소.”

“흠,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분타주가 지도에 바둑알을 하나씩 놓았다.

목내이가 있는 곳은 하얀 알.

복면인들이 나타난 곳은 검은 알.

“……역시.”

내 이럴 줄 알았다.

지도에 빼곡히 놓인 바둑알을 보고 정학우도 이상함을 느꼈나 보다.

그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하얀 돌이 송화문 주위로만 있네요?”

“그렇지.”

“검은 돌은 그 반대 방향에 집중되어 완전히 분리되어 있고요.”

“맞아. 그리고 이게 과연 우연일까?”

남궁정혁이 지도를 다시 보았다.

하얀 돌이 둥글게 놓여 있다.

검은 돌이 그런 하얀 돌을 감싸고 있었고.

이렇게 보니 살짝 찌그러진 달걀구이 같기도 하네.

“이번엔 목격자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똑같은 방법으로 다시 나눠 주시오.”

고개를 끄덕인 분타주가 색을 구분하여 바둑알을 다시 놓았다.

그 결과는…….

“아까와 모양이 똑같네요.”

또다시 찌그러진 달걀구이 모양이 나왔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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