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25화
이런 말이 있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고.
연속으로 달걀구이 모양이 나온 상황.
이제는 아무도 이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궁금할 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리에서 일어선 남궁정혁이 지도를 유심히 보며 말했다.
“나무는 숲에 숨기고 돌멩이는 채석장에 숨기라고 하지.”
“복면인들이 흡혈괴마의 정체를 숨기려고 일부러 자신들이 마교도라고 떠들고 다닌다는 겁니까?”
정답.
우리 학우가 요즘 나랑 같이 다니더니 똘똘해진 거 같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복면인들이 이런 짓을 하는 이유가 뭘까요?”
“이것도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첫 번째는 흡정괴마를 보호하려는 것, 두 번째는…….”
이번에는 서문호가 그 말을 넙죽 받았다.
자기도 아는 체하고 싶다는 거지.
“……이용하려고?”
“맞다.”
“그럼 흡정괴마의 진정한 정체는 뭘까요?”
“그것도 네가 한번 맞혀 봐라.”
“확실한 건 송화문과 관련된 사람이라는 거죠.”
“왜?”
“흡정괴마 활동반경의 중심에 송화문이 있으니까요. 그걸 숨기기 위해 복면인들이 진량현 외곽에서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 것 아니겠습니까. 혼란을 주려고 말입니다.”
우리 문호 똑똑하구나.
남궁정혁이 부하들에게 말했다.
“우선 송화문에 대하여 철저히 파악해야겠다. 그러면 흡정괴마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있겠지. 더불어 복면인들의 정체도.”
그때 분타주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송화문이 이곳에서 가장 큰 문파이긴 하지만 남들에게 쉬쉬하는 사정이 있긴 합니다…….”
“그게 뭡니까?”
“…….”
분타주가 대답 대신 바둑알을 도로 바둑알 통에 넣었다.
뭐지? 왜 말하다 말아?
“지금 뭐 하는 거요? 먼저 말을 꺼냈으면 대답해 줘야 할 것 아니오.”
“…….”
하지만 그는 여전히 묵묵부답.
대신 손가락으로 한곳을 가리켰다.
그곳엔 흙이 다 떨어진 모래시계가 있었다.
“손님, 시간 다 되었습니다. 더 듣고 싶거든 추가 요금을 내십시오.”
빙긋 웃은 그가 말을 더 붙였다.
“참고로 선불입니다.”
“…….”
이 새끼가 결정적인 순간에 말을 끊어?
남궁정혁이 주먹을 꽉 쥐었다.
* * *
역시 주먹은 돈보다 효율적이다.
눈탱이가 밤탱이가 됐지만, 꼬질꼬질 더러운 얼굴 때문에 티도 잘 나지 않는 분타주가 차렷, 정자세로 보고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가 송화문의 속사정이란 것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송화문주, 노광근은 야심이 매우 큰 자입니다. 능력도 있고요, 고만고만한 문파가 도토리 키 재기 하듯 경쟁하는 이곳, 송화현에서 송화문을 가장 큰 문파로 성장시켰습니다. 그런 그에게는 쌍둥이 아들이 있습니다. 첫째 노학과 둘째 노윤이죠.
“서론이 길다. 쓸데없는 얘기는 줄이고 송화문이 쉬쉬한다는 그거나 말해 봐.”
간만에 주먹을 쓰니 옛 추억이 새록새록 샘솟았다.
중간에 서문호가 말리지만 않았다면 그 추억을 더욱 진하게 우려낼 수 있었을 것을.
“지금 그 얘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남궁정혁이 아쉽다는 듯 주먹을 매만지자 분타주의 말이 더 빨라졌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노광근은 달랐습니다. 어릴 적부터 무공에 재능있던 첫째 아들만 편애했죠. 쌍둥이라지만 둘째는 무공에 영 소질이 없었거든요.”
“근데 그게 왜?”
“송화문에 한 여자 문도가 들어오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 * *
젠장.
문주실에서 나오는 노학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방금 아버지에게 한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게 다 남궁정혁 그놈 때문이다.’
단순히 그를 의심했기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남궁세가라지만, 가문의 칠푼이라 불리는 그에게 맥없이 졌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처절한 패배였기에 아무런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무공을 가르칠 땐 엄한 적도 있지만, 자신에게만큼은 한없이 관대한 아버지였건만
그동안 정천맹에서 뭘 배웠냐고, 무공 수련을 게을리 한 것 아니냐고 추궁까지 당했다.
자신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혼난 적은 처음이다.
그러니 그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파일 수밖에.
그가 애꿎은 흙바닥을 퍽퍽 차며 걸어갈 때였다.
“가가!”
맞은편에서 한 여인이 다가왔다.
“……가가?”
노학의 얼굴을 살핀 여인의 얼굴이 굳었다.
멀리서 보고 사람을 착각했기 때문이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난 여인에게 노학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다희야, 오랜만이구나.”
그녀는 동생 노윤의 부인이다.
“잘 지냈느냐?”
불손한 말투와 눈빛이었다.
최소한 동생 부인을 대하는 태도로서는 부적절했다.
그 위화감 때문일까?
“오신지도 몰랐군요, 무탈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그럼 이만.”
다희가 재빨리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지나가려 했다. 노학이 그 앞을 재빨리 가로막아 그 뜻을 이루진 못했지만.
“무탈하지 못하다.”
“예?”
“방금 아버지한테 혼나고 오는 길이거든.”
“……아버님께서 괜히 그러셨겠습니까? 다 아주버님 잘되라고 그러셨겠지요.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다희는 노학과 함께 있다는 상황 자체가 불편한 것 같았다.
그녀가 온 길을 되돌아가려는데 노학이 보법까지 펼쳐 그 앞을 다시 막았다.
“어딜 그리 급하게 가려는 것이냐?”
“제가 방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나서요, 다시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너와 오랜만에 만난 것이 반가운데 너는 아닌가 보구나.”
“네, 저도 반갑습니다.”
가식적으로 한 말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아직 가슴이 설렌다.
갸름한 얼굴에 긴 속눈썹을 지닌 그녀의 얼굴을 보니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단 말이다.
동시에 속에서 천불이 치솟았다.
‘노윤 따위에게 뺏기다니.’
다희가 처음 송화문에 들어왔을 때 온 남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얼굴이 이쁘고 무공 습득 속도까지 빠르니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 남성 중엔 노학과 노윤도 포함되어 있었고.
두 사람은 동시에 다희에게 구애했다.
나와 사귀어 달라고, 나와 혼인해 달라고.
하지만 다희의 최종 선택은 노윤이었다.
노학이 노윤에게 생애 처음으로 당한 패배이기도 했다.
그전까지는 무공, 키 등 모든 것에서 노학이 월등히 앞섰다.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어릴 적 말문도 노학이 먼저 트였다고 한다.
걸음도 먼저 걸었고.
그렇게 아래로 내려다보던 놈한테 사랑하는 여자를 뺏기다니.
원래 좋지도 않았던 형제 사이가 더 악화되었고, 노학은 두 사람 사이를 인정하고픈 마음이 아직도 전혀 없었다.
적어도 어릴 적부터 이곳에서 그가 갖고 싶은데 갖지 못한 건 없었으니까.
갖지 못해서 부숴 버린 적은 있어도.
고개를 돌려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노학이 다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내 마음이 좋지 못하니 어디 조용한 데라도 가서 술이라도 한잔할까?”
말투가 불손하다면 손길은 극악했다.
그가 동생 부인의 귀밑머리를 살살 만졌다.
“왜 이러십니까!”
다희가 그 손길을 뿌리쳤지만, 노학의 추잡스러운 행위는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 그의 더러운 손길이 닿은 곳은 그녀의 목과 어깨였다.
“내가 정천맹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해 주마. 너도 들어보면 재밌다고 좋아할 것이야.”
“예의를 갖추십시오.”
“임신은 아직 하지 않았더냐? 하긴 노윤, 그놈이 비리비리하긴 하지. 밤에 잠이 안 오거든 내 방으로 놀러 오거라. 너에게만은 활짝 열려 있으니 말이야.”
“이 파렴치한…….”
다희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노학의 볼기짝을 때리려는 순간이었다.
“형님, 뭐 하는 거요?”
노윤이었다.
그가 부인 앞에 서자 노학이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그렇게 노려볼 필요 없다. 내가 네 부인을 잡아먹기라도 한다더냐?”
“내 아내에게 함부로 접근하지 마시오.”
“뭔가 오해한 것 같구나, 먼저 접근한 건 네 아내다. 안 그렇소, 제수씨?”
다희가 노윤 뒤로 몸을 숨기며 말했다.
“아주버님을 당신이라고 착각했을 뿐이에요.”
노학이 봐라, 나는 결백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당신이 아무 짓도 안 했다면 다희가 이리 화났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거야 네 맘대로 생각하고.”
김샜다는 듯, 노학이 그들을 지나쳐 사라졌다.
후, 한숨과 함께 다희가 남편을 뒤에서 껴안았다.
“미안해요, 나 때문에.”
“아니다, 다 내 잘못이다. 아버지에게 인정받을 힘도, 널 지킬 힘도 갖지 못한 내 잘못이야.”
노윤이 주먹을 꽉 쥐었다.
* * *
“노윤과 다희, 두 사람이 결혼한 후 노윤의 처가가 망했다고?”
“다희의 집은 진량현에서 가장 큰 양계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알 수 없는 이유로 닭이 모두 폐사하고 말았죠.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니 어느 부자인들 버틸 수 있겠습니까, 결국 다희의 친정은 그동안 번 돈을 홀라당 까먹고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게 노학의 짓이다?”
“예에.”
고개를 끄덕인 분타주가 계속 말했다.
“사람들이 대놓고 말은 못 했지만, 뒤에서는 노학이 닭 모이에 독을 탔다고 한동안 수군거렸죠. 그것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다희도 배 속의 아기를 잃었고요.”
“유산?”
“그때의 후유증인지 일 년이 지나도록 아기가 생기지 않고 있습니다.”
음…… 이게 흡정괴마와 관련이 있을까?
남궁정혁이 생각을 정리하느라 방 안을 왔다 갔다 할 때였다.
정학우가 의문을 드러냈다.
“대체 흡정괴마는 어떤 자일까요? 왜 그런 끔찍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일까요?”
“다른 건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자가 집착하는 건 힘이다.”
그런 욕망을 지닌 자만이 인륜을 저버린 흡정마공을 익힌다.
수단보다 목적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흡정마공은 누구보다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무공이었으니까.
그만큼 아주 위험한 부작용도 있지만.
남궁정혁이 분타주를 보았다.
“아까 노윤이 이곳을 찾아온 이유가 뭐냐?”
“에…… 저희는 고객의 정보를 누설하지 않는 것을 원칙을 삼기에 말씀드리기 좀 곤란합니다. 저희 신용과 관련된 것이라서요.”
우물쭈물하는 그에게 남궁정혁이 주먹을 내밀었다.
“또 맞아 볼래? 그 원칙이 주먹 몇 대에 바뀌나 확인해 볼까?”
“……복면인들의 정체를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렇게 말했어?”
“뭐가 말입니까?”
“마교 잔당이 아니라 복면인들의 정체가 알고 싶다고 했냐고?”
“그러고 보니 이상하긴 하네요. 다른 사람들은 다 복면인 대신 마교 잔당이라고 지칭하는데.”
“놈들을 찾을 단서가 있지?”
“…….”
“네가 아까 그랬잖아, 다음에 올 때 의뢰한 정보를 찾아 놓겠다고, 그들을 찾을 단서가 있으니까 그렇게 호언장담한 거 아냐.”
“……의뢰비를 두둑이 들고 왔기에 그렇게 말한 것뿐입니다. 그냥 돌려보내기 아까워서요. 요새 경기가 어려워서 그런지 남한테 얻어먹기도 쉽지 않습니다. 허허허허.”
어색하게 웃는 분타주를 보고 남궁정혁도 허허허, 같이 웃었다.
니가 아직 더 처맞고 싶은가 보구나.
그럼 사양하지 않으마.
퍼억, 남궁정혁은 망설임 없이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설마, 고통을 즐기나?’
어차피 말할 걸 왜 저리 매를 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