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27화 (27/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27화

지금에서야 솔직히 고백한다.

사실은 나도 흡정마공을 익힌 적이 있다.

그럼 나는 인륜을 저버린 극악 마공을 왜 익혔을까?

‘나도 힘을 원했으니까.’

아니, 힘이 필요했으니까.

사실 내가 역대 천마 중에서는 그다지 강한 편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워낙 밑바닥에서부터 출발하여 아득바득 위로 올라갔으니.

출발이 늦은 셈이다.

역대 천마는 마교를 대표하는 명문가, 마도 육가에서 대부분 배출되었다.

나 같은 흙수저가 교주가 된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마도 육가 사이에 내분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그 와중에 뜬금없이 당시 교주가 암살되지만 않았다면 내가 교주가 되는 일도 없었을 거란 말이다.

‘거 참 요상한 인생이기도 하지.’

부모도 없이 거리를 떠돌 때는 참 재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천마가 될 때는데 운이 따라 줬으니.

내 인생에서 일이 가장 술술 잘 풀린 시기이기도 했다.

그동안의 노력이 이렇게 보상받나?

하늘에 감사 인사까지 했다.

문제는 그 운도 교주가 되니 끝났다는 거지만.

‘그래서 취임 초기에는 힘들었지.’

무림에서 가장 말 안 듣는 골통들은 모아 놓은 곳이 마교다.

그런데 새로운 천마가 듣도 보도 못한 혈통도 없는 잡놈 출신이다?

대충 상황이 짐작되지 않나.

한쪽에서는 위대한 인간 승리를 찬양했지만, 반대편에서는 어떻게든 나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다.

뒤에서 나를 욕하고, 안 좋은 소문을 내더라고.

심지어는 고개 빳빳이 들고 대드는 놈도 있었고.

그럴 때 필요한 건 뭘까.

힘이다.

감히 나의 명을 따르지 않고 뻗대는 놈의 두개골을 빠개 줄 압도적인 힘.

근데 내가 마교에서 가장 강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네?

지지 기반도 약하고.

그때 알 게 된 것이 흡정마공이다.

천마만 들어갈 수 있는 비밀의 방, 맨 구석에 먼지만 잔뜩 싸인 채로 있더라고.

흡정마공의 구결이 적힌 비급이.

처음엔 웬 잡서가 여기 있나 했는데 찬찬히 읽어보니 흥미가 생겼다.

그래서 흡정마공을 연구해 보았지.

‘이백 년 전 당시 교주였던 천마가 만들었다고 했던가?’

기록에 따르면 악질 폭군이었다고 한다.

본인의 기분에 따라 아무렇게나 사람을 죽이는 인성 쓰레기.

자기 앞에서 재채기 한 번 했다고 입을 찢어 죽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니 이런 역천의 무공을 창안한 거겠지.

아무튼, 그때 연구는 실패했다.

내가 힘을 원하긴 했지만, 다른 사람의 목숨을 뺐을 만큼 처절히 원한 건 아니거든.

찝찝하기도 하고.

사람이 아닌 소, 돼지 등의 정기를 흡수하여 무공을 늘리는 방안이 없을까 실험해 봤는데 기운이 워낙 잡스러워 별 도움이 안 되었다.

그래도 그 덕분에 흡정마공에 대한 이해는 역대 천마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여기서 이렇게 써먹을 일이 생길 줄은 나도 몰랐지만.

“흡정마공을 익히면 몸속 음양의 조화가 깨진다. 음의 기운이 꺼지고 양의 기운이 달아올라 체온이 높아지지. 그때 양기를 북돋는 그 약재들을 먹이면 모세혈관이 확장되어 눈알까지 빨개진다.”

내 설명이 어렵나?

최대한 쉽게 말한다고 말했는데 정학우가 눈만 끔벅끔벅 떴다.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도련님은 그걸 어떻게 아는 겁니까? 꼭 흡정마공을 익힌 것처럼 말하십니다?”

아, 그게 궁금한 거였나?

“……그냥 내가 박학다식해서 그래. 예전에 어느 책에서 봤다.”

대충 둘러대니 정학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책이요? 도련님이 책을 볼 땐 잠이 안 와서 수면제 대용으로 쓸 때뿐이었잖아요.”

“……그랬나?”

“효과가 아주 확실했죠. 책만 펼치면 한 다경 안에 무조건 잠이 들었으니까요.”

하여튼 그 머저리는 이런 순간에도 도움이 안 되는구먼.

대답이 궁한 남궁정혁은 결국…….

“지금 그게 중요해? 흡정괴마 안 잡을 거야?!”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고로 무공 센 놈 다음으로 이기는 사람이 목소리 큰 놈 아니겠는가.

남궁정혁이 정학우에게 명령을 내렸다.

사람 귀찮게 이것저것 더 묻기 전에.

“빨리 닭 피에 지네 가루와 녹각을 섞어.”

그때 노윤의 집에 불이 켜지고 문이 열렸다.

아마 방금 지른 고함을 들었나 보다.

“……밖에 누군가?”

“당신 잡으러 온 사람.”

고개를 내민 노윤을 향해 남궁정혁이 달려들었다.

퍼억!

몸통박치기로 그대로 집 안으로 밀고 들어간 그가 노윤의 몸 위에 올라탔다.

무공이 약한 노윤은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왜, 왜 이러는 겁니까?”

남궁정혁이 몸을 버둥거리며 반항하는 노윤의 입을 억지로 벌렸다.

“빨리 부어.”

짙은 붉은색, 걸쭉한 액체가 노윤의 입술을 타고 들어갔다.

불길한 색깔, 고약한 냄새.

척 봐도 정상적인 건 아니라고 느꼈는지 노윤이 발버둥 쳤다.

마시기 싫다는 거지.

그럴수록 몸을 더 꽉 잡았지만.

“대, 대체 이게 뭡니까…….”

퉤퉤, 노윤이 그것을 뱉으려 했지만 남궁정혁이 그 꼴을 가만두고 볼 리가 있나.

노윤의 울대를 자극해 그것을 억지로 삼키게 했다.

꿀꺽, 꿀꺽.

고놈 잘도 마시네.

“됐다, 이제 눈알이 빨개질 것이다……?”

“으으으.”

……어?

분명 그래야 하는데 그대로네.

시간이 더 지나야 하는 건가?

노윤이 눈알 튀어나올 듯 눈을 부라리긴 했지만, 아무 변화가 없다.

아니면 양이 부족했나?

“더 먹여라, 아직 양이 모자란 모양이다.”

이제는 변하겠지.

체온이 달아올라 눈알이 서서히 빨개질…… 줄 알았는데 왜 자꾸 고대로야, 사람 짜증 나게.

“다 부어라, 다 먹여!”

악독한 놈.

아직도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걸 보니 흡정마공을 제대로 익혔나 보다.

그렇다고 내가 네 정체를 밝히지 못할 줄 알았더냐.

꼴꼴꼴.

정학우가 커다란 호리병을 노윤의 주둥이에 쑤셔 박았고, 마지막 한 방물까지 탈탈 털어 먹였다.

“꺼억~”

노윤은 배가 부른지 트림까지 했다.

그래도 변화가 없네?

대체 왜?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정학우와 눈이 마주쳤다.

“……”

“…….”

입술이 옴짝달싹하는 게 ‘대체 무슨 병신 같은 짓을 한 겁니까.’라고 말하고 싶은 걸 억지로 참는 것 같다.

아, 이러면 윗사람으로서의 위엄에 금이 가는데.

하지만 졸지에 물고문당한 노윤은 달랐다.

그는 벌떡 일어나 항의했다.

“오늘 낮에 호의를 베풀었건만 저한테 왜 이런 짓을 한단 말입니까!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란 말을 하는군요!”

물론 그런 걸 신경 쓸 남궁정혁이 아니다.

그는 그런 노윤을 외면한 채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고민했다.

‘약재 조합이 잘못됐나?’

아닌데, 분명 맞는데.

내가 괜히 천마가 된 게 아니다.

운동 신경은 당연히 뛰어났고, 두뇌는 더 뛰어났다.

그러니 천하에서 가장 어려운 무공 중 하나인 천마신공을 익혔지.

그런 내가 고작 약재 조합 따위를 헷갈린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시 기억을 복기해 봐도 분명 맞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노윤은 흡정마정을 익히지 않았다는 건데, 강문 이 새끼가 설마 거짓말을 했나……?’

잠깐.

순간 강문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 번쩍, 떠올랐다.

그가 뭐라고 그랬더라?

- 문주님이 노윤 부부를 감시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노윤 부부를 감시하라고 했다.

노윤이 아니라.

그렇다는 건…….

“지금 내 말을 무시하는 거요?”

남궁정혁이 삿대질까지 하는 노윤의 손가락을 덥썩 잡았다.

“지금, 당신 부인은 어디 있나?”

지금은 보름달이 서쪽으로 기운 늦은 밤.

집 안 어디에서도 노윤 부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있다면 이 난리가 났는데도 나와 보지 않을 리 없으니까.

“……이 늦은 시간에 남의 부인을 찾는 건 예의가 아니오.”

“나 예의 없으니까 말해 봐, 네 부인 어디 갔냐? 왜 집에 없지?”

“……당신이 그걸 왜 궁금해하는 거요?”

그거야 네 부인이 흡정괴마니까 그렇지.

그녀는 노윤과 결혼 후 집안이 망하고 배 속의 아기까지 잃었다.

이 정도면 제아무리 성인군자라도 악귀가 내민 손을 잡지 않을까?

“내가 당신 부인한테 꼭 물어볼 게 있거든.”

“……뭘 말이오?”

흡정마공을 언제 어디서 누구한테 배웠는지.

더불어 전직 천마로서 마교와 관련된 쓰레기는 내가 직접 치워야지.

“당신은 알 것 없고 당신 부인이 어디 갔는지나 말해 봐, 왜? 말 못 할 이유라도 있나?”

노윤의 눈에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뭔가 심히 찔리는 게 있는 모양이다.

남궁정혁이 그를 더욱 강하게 추궁했다.

“당신도 당신 부인이 흡정괴마인 걸 알고 있었군.”

“흡정괴마?”

“당신 부인이 사람들의 정기를 빨아먹고 죽이는 걸 알고 있었잖아.”

근데 마교를 사칭하는 복면인들까지 나타났네?

궁금했겠지, 그들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인지.

그래서 개방의 의뢰까지 한 거고.

“난……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오, 냉큼 내 집에서 나가시오!”

남궁정혁은 나갈 생각이 전혀 없는데 밖에서 그를 부르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남궁 공자, 당장 밖으로 나오시오.”

송화문주, 노광근이었다.

“늦은 시간에 윤이는 왜 찾은 것이오?”

저 양반은 내가 노윤 만나러 온 걸 어떻게 알았대?

아, 이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었다고 했지.

“당장 밖으로 나가시오.”

“당장 밖으로 나오시오.”

차별받는 아들은 나가라 하고, 차별하는 아비는 나오라고 하니 남궁정혁은 일단 밖으로 나갔다.

간만에 두 부자가 짝짜꿍이 잘 맞는 것 같으니 맞춰 줘야지.

“안 그래도 댁 아드님 만난 후에 찾아가려고 했소.”

“무슨 일로?”

노윤을 힐끔 본 남궁정혁이 턱 끝으로 노광근을 가리켰다.

“인사해.”

“……?”

“네가 그렇게 찾던 자칭 마교 잔당이시다.”

“……!”

노윤과 노광근이 동시에 같은 표정을 지었다.

깜짝 놀란 것이다.

그 의미는 서로 달랐지만.

“정말 아버지가 마교를 사칭해서 사람들을 해친 것입니까? 왜 그런 것입니까?”

어설픈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그런 짓을 벌였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눈치고.

“야밤에 윤이 집을 찾았다기에 설마 했더니 알아차렸군.”

영약한 아비는 남궁정혁이 자신 아들의 집을 찾은 이유를 눈치채고 있었다.

이제부터 뭘 해야 할지도 알고 있는 것 같고.

그가 검을 뽑았다.

“적당히 대접이나 받고 돌아갈 것이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구나.”

“며느리의 한(恨)을 이용하다니 당신도 제정신은 아니군.”

“남의 집 사정은 네가 관여할 일이 아니니 넌 네 갈 길이나 가거라.”

“설마 그 길이 황천길? 나 남궁세가 막내아들인데 뒷감당할 수 있겠어?”

스윽, 노광근이 손을 들자 숲속 너머에서 검은 복면을 쓴 자들이 한 무더기 나타났다.

아마도 저들이 노광근의 명으로 마교를 사칭한 자들 같다.

“너는 송화문이 아닌 마교의 손에 죽는 것이다. 네 호기심이 자초한 죽음이니 날 원망하지는 마라.”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감히 집도 절도 없이 쫓기는 우리 불쌍한 마교를 사칭해?

가슴속에서 뜨거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넌 오늘 뒤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