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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28화 (28/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28화

오래간만에 술에 취한 노학은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역시 고향 친구들이 최고야.”

여기서 말하는 친구란 어떻게든 자신의 비위를 맞춰 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오늘도 정천맹에서 있었던 일을 무용담처럼 푸니 그들의 반응이 대단했다.

네가 진량현의 자랑이라고 아부 떠는 친구부터, 네가 향후 정천맹주가 될 거라고 떠받들어 주는 친구까지.

사실, 푸는 얘기의 칠 할은 사실을 부풀린 과장이거나 남의 활약이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중요한 건 무너진 자존감을 오래간만에 팍팍 충전시켰다는 것이다.

“이래서 정천의용단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야 해.”

아버지는 그에게 가문의 이름을 빛내 줄 거라 큰 기대를 하고 있지만, 솔직히 버겁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우물 안 개구리라고.

설마 그게 자신일 줄이야.

사실 노학도 자신이 잘난 줄 알았다.

진량현에서는 그만큼 뛰어난 인재가 없었으니까.

무림 최고의 후기지수들만 갈 수 있다는 정천의용대 입대 시험도 단번에 합격했고.

근데 이게 웬걸?

막상 정천의용대에 들어가 보니 잘난 자들이 너무 많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웠다.

그때 느꼈던 좌절감이란…….

‘아, 진짜 아버지를 어떻게 설득하지?’

사실 이번에 내려온 것도 아버지에게 이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저, 정천의용단을 그만두겠습니다.’

그렇다고 정천의용대에서 적응을 못 해 그만두고 싶다고는 솔직히 말할 수 없다.

그런 수치심을 견딜 수도 없거니와 아버지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게 뻔하다.

어떻게든 말을 꾸며 아버지를 구워삶아야 한다.

그래야 정천의용단의 꼬리에서 진량현의 황태자로 다시 화려한 복귀를 할 수 있다.

“……지금은 아버지를 마주쳐서 좋을 게 없지.”

송화문에 도착한 노학은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가는 대신 뒤로 돌아갔다.

사실 아까 낮에 아버지가 미리 당부한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 최근 연이어 벌어진 흉사로 동네 분위기가 뒤숭숭하니 집에서 자중하거라.

자신도 웬만하면 그 당부를 지키고 싶었다.

근데 똘마니처럼 여기는 친구 놈들이 자신이 온 걸 어찌 알았는지 나오라고 불러 댔다.

거기다 대고 모양 빠지게 아버지 때문에 못 나간다고 할 순 없잖아.

그래서 노학은 혹시나 마주칠 줄 모르는 아버지를 피해 송화문 뒤쪽, 사람이 다니지 않는 으슥한 곳으로 갔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노학은 담을 넘었다.

여길 몰래 넘어가면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밖에서 술을 마시고 온 걸 모를 것이다…… 어라?

‘……도둑놈인가?’

그때 자신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담장을 넘어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자신이 못 알아볼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다희?’

분명히 그녀다.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몸에 착 달라붙는 야행복 덕에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곁눈질로 수백, 수천 번을 훔쳐본 몸매를 어찌 헷갈릴까.

수백 명의 사람 중에서도 다희는 단번에 찾을 수 있다.

‘……?’

근데 이 늦은 시간에 저렇게 수상한 복장으로 어딜 가는 거지?

얌전한 줄로만 알았던 연화의 일탈에 호기심이 일었다.

동시에…….

‘잘하면 약점을 잡을 수 있겠군.’

다희가 뭘 하려는 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하나는 알겠다.

분명 떳떳지 못한 일이다.

그러니 저렇게 몰래 나가지.

‘따라가 봐야겠다.’

그래서 남들에게 들키기 싫은 약점을 잡아 두면…… 으흐흐흐흐.

오랫동안 품어 왔던 추잡한 욕망을 풀 수 있을지도.

노학은 까치발로 연화를 뒤를 은밀히 쫓았다.

그것이 자신 인생 최악의 결정인 줄도 모르고.

*   *   *

감히 마교를 사칭하다니.

남궁정혁의 뜨거운 분노를 노광근이 알 리 없다.

그가 남궁정혁에게 소리쳤다.

“시신은 소금 쳐서 남궁세가로 고이 보내 주마.”

쪽수의 우위를 믿는 것인지 위풍당당이 서 있는 모양새가 자신이 질 거라고는 조금도 의심치 않는 모습이다.

“얘들아, 쳐라.”

게다가 치사하기까지.

자기는 뒤로 빠지고 부하들에게만 싸우라고 명령을 내렸다.

저게 한 문파의 수장이라니, 참으로 치졸하구나.

그래도 스무 명이 넘는 무인들이 달빛이 반사되는 시퍼런 검을 들고 쇄도하는 모습은 위협적이긴 하다.

남궁정혁이 부하들을 돌아보았다.

“인당 여섯에서 일곱 명씩만 처리하면 된다, 자신 있냐?”

정학우와 서문호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 누가 많이 제압하나 내기하죠.”

“그런 일이라면 제가 무조건 제가 일등입니다.”

기특한 놈들.

행여 쪽수에 쫄았으면 엉덩이라도 걷어차 줄까 했더니 그럴 필요 없겠다.

아암, 누구 부하인데 저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먼저 갑니다.”

“새치기하지 마라.”

서문호와 정학우가 경쟁하듯 가짜 마교도들을 향해 달렸다.

아랫사람들이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윗사람이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어차피 일등은 나니 너무 힘 빼지 마라.”

솔선수범해야지.

남궁정혁이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부하들의 머리를 뛰어넘은 후, 거대한 검을 내리쳤다.

쾅-!

마치 폭약이 터진 듯 굉음이 터졌다.

“죽을 놈들이 오만방자하…… 으아악!”

푸르스름한 검기가 맺힌 그의 검이 맨 앞에서 오는 적들의 몸통을 갈랐다.

“속전속결로 끝내자고.”

착지 후, 무릎을 꿇은 남궁정혁이 탄력을 그대로 살려 적들에게 돌격했다.

인원수에서 밀릴 땐 내공을 다 소진하기 전에 적들을 처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작 이 정도야?”

고작 이 정도 실력으로 감히 마교를 사칭한 거냐.

남궁정혁이 검을 시원스레 휘둘렀다.

휘이잉, 대기를 가르는 검풍에 내력이 약한 적은 뒤로 밀려날 정도였다.

“대연참영.”

나는 대연검법 중에서는 이 초식이 젤 좋더라.

제일 빠르고 강력하니까.

횡으로 파고드는 남궁정혁의 공격을 복면인들이 검으로 막았다.

결과는 당연히.

“크아아악!!”

참살이었다.

세 명의 복면인들이 검과 함께 몸이 반으로 갈라졌고 네 번째 복면인은 튕겨 나가 옆에 있는 나무에 부딪혔다.

“커억…….”

내상이 심하나?

피를 한 사발 토하는 거로 보아 저놈도 그리 오래 살진 못할 것 같다.

‘쓰읍, 언제쯤 예전 실력을 다 회복할 수 있을까?’

적들의 눈에 선명한 두려움이 깃들었지만 남궁정혁은 못마땅하기만 했다.

전생에 나의 실력이었다면 손가락 한 번 까닥이는 거로 놈들의 뼈와 살을 분리했을 것을.

그래도 이 정도 했으면 남은 적들은 부하들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남궁정혁은 주춤주춤 물러서는 잔챙이들은 뒤로한 채 우두머리에게로 다가갔다.

예상외의 실력에 깜짝 놀랐는지 검 끝이 흔들리는 노광근에게로 말이다.

“인상 펴, 그렇게 찡그리면 주름 생긴다.”

갈 땐 가더라도 염라대왕한텐 이쁘게 보여야 하지 않겠어?

*   *   *

딸꾹!

노학은 너무 놀라서 나오는 딸꾹질을 억지로 참했다.

정천의용대 단원으로서 웬만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광경을 볼 줄이야.

‘……우욱.’

바짝 말라비틀어진 시체를 보니 저녁에 마신 술과 안주가 거꾸로 올라오는 것 같다.

‘저, 정말 이게 다희가 벌인 일이란 말인가?’

송화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창선파의 담장을 넘을 때까지만 해도 호기심이 더 컸다.

그녀가 왜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는 걸까?

도둑질하러?

그런데 설마 이런 짓을 벌였을 줄이야.

그녀에게 연정을 품고 있는 노학으로서는 여간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다.

‘다희가 그 살인마였다니.’

채, 한 식경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다희는 살쾡이처럼 은밀한 움직임으로 보초를 서는 사내부터 시작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 꿈나라에 빠진 어린아이까지, 창선파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인간을 잡아먹었다.

그녀의 손이 닿자 사람들이 목내이처럼 변해 죽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그녀는 어떻게 이런 사술을 배운 것인가?

‘혼자서는 판단할 수 없다. 아버지께 보고해야 한다.’

자신의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급히 돌아가 아버지와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데…….

그때였다.

저벅.

노학이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며 검을 휘둘렀지만.

“웬 쥐새끼가 따라붙었나 했더니 너였구나.”

다희가 그 검을 맨손으로 잡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노학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누, 눈이…….”

지옥을 기어 나온 악귀의 모습이 저러할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녀의 눈은 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살기로 똘똘 뭉쳐서.

그 모습은 마치 이야깃거리에서나 나오는 마귀 같았다.

노학을 본 다희가 정말 마귀처럼 흐흐, 웃으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잘됐다. 어차피 네놈도 곧 죽일 생각이었으니.”

“네, 네년이…….”

애써 겁먹은 티를 내지 않은 노학이 잡힌 검을 빼내려 했지만, 꼼짝도 하지 않는다.

챙강!

오히려 다희가 힘을 주자 검이 반으로 부러졌다.

“그동안의 일을 생각해서 네놈의 정기는 음미하듯 천천히 뽑아 먹으마.”

“……미친년. 내가 이런 미친년을 욕심냈었다니!”

노학이 마구잡이로 정권을 찔렀다.

건장한 남성의 거센 공격에 다희가 고통을 느낄 법도 하건만 그녀는 요지부동, 아무런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크윽…….”

때리는 노학이 주먹 끝에서 고통을 느꼈다.

이건 마치 금속을 치는 느낌이었다.

사람의 피부가 어찌 이리 단단해질 수 있단 말인가.

주먹에서 피를 흘리는 그를 보며 다희가 가소롭다는 듯 비웃었다.

“너 때문에 익힌 흡정마공이다. 꽤 쓸 만하지 않으냐?”

퍼억, 그녀의 발길질에 노학은 숨이 멎는 듯했다.

내장이 진동하는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다.

공력 차이가 이리도 클 줄이야.

다희가 노학의 허리춤을 움켜잡고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크으으윽, 온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는 그의 배를 밟자 입술에서 붉은 피가 즙처럼 흘렀다.

“커억, 내가 잘못했다. 이, 이렇게 사과할 테니 살려다오.”

“우리 사이의 악연이 고작 단 한 번의 사과로 끝날 줄 알았더냐.”

“나, 나는 네 아주버니다. 네 남편의 형.”

“그리고 우리 집을 망하게 한 원수이기도 하지.”

다희가 노학의 얼굴을 덥썩 쥐자 그의 눈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가 깃들었다.

창선파 사람들이 이렇게 죽었다.

손에 얼굴을 사로잡혀 순식간에 정기를 갈취당했다.

노학이 그 손을 어떻게든 떼 내려 했지만 아무 소용 없다.

“내, 내가 한 짓이 아니다. 닭 모이에 독을 탄 것은 내가 아니란 말이다!”

그의 다급한 말에 다희가 손을 놓았다.

“뭐? 네가 아니라면 누가 그런 짓을…….”

이 기회를 놓칠세라 노학이 냉큼 말했다.

“아버지다, 아버지가 벌인 일인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구나. 아버님은 그럴 짓을 할 이유가 없다.”

다희가 다시 손을 뻗자 노학이 고개를 숙였다.

“……너도 알 것이다. 네가 결혼한 후 한동안 내가 마음을 못 잡고 술만 마시며 폐인처럼 지낸걸, 좌절한 날 위로하기 위해 아버지가 그런 것이다.”

“고작 그런 사소한 이유 때문에 우리 집이 망했다고?”

“나, 난 아무 잘못 없다. 아버지가 멋대로 벌인 일이야, 난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한 적 없다.”

비겁하고 치사한 놈.

고작 이런 놈과 엮여 집안이 망하고 배 속의 아이까지…….

분노가 피어오르는 것과 동시에 그분에 대한 고마움이 새삼 샘솟았다.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절망감에 삶을 포기하려던 그때, 손을 내밀어 준 그분에게.

“먼저 지옥으로 가 있어라.”

다희가 노학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우우우웅.

그녀의 소맷자락이 부풀어 오르자 노학의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 쳤다.

동시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마치 구름 속을 거니는 느낌이다.

“…….”

복수도 복수지만 이 쾌락 때문이라도 흡정마공을 멈추지 못할 것 같다.

풀썩, 온몸에서 수분기가 모두 사라진 노학이 쓰러졌다.

“정기, 정기가 더 필요해.”

머릿속에 노광근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가 흐느적흐느적 송화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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