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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29화 (29/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29화

이런 말이 있다.

누구에게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말이다.

주먹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어떤 권성이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노광근에게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다.

“왜 그렇게 당황하지? 당연히 네가 이길 줄 알았냐?”

남궁정혁의 말에 노광근의 검 끝이 더욱 떨렸다.

마치 수전증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게 사람 일이라는 게 항상 내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야.”

항상 뜻하지 않은 변수가 발생하지.

내가 뜬금없이 나타난 남궁도에게 졌던 것처럼.

“그렇게 인상 쓰지 말라니까, 못생긴 얼굴 더 못 생겨 보여.”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기껏 걱정해 줬더니 노광근이 이마를 더욱 찌푸리며 검을 찔렀다.

아마 젖 먹던 힘까지 다하고 싶은가 보다.

그래도 한 문파의 수장답게 제법 하네.

그의 검에 실린 기운은 다른 복면인들보다는 강하고 위협적이다.

그래도 여전히 멀었지만.

“설마 일부러 봐주는 건 아니지?”

“시끄럽다!”

남궁정혁의 몸속에 똬리 튼 영혼이 전직 천마지존만 아니었으면 통했을 수도 있었겠다.

휘익,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스치듯 검을 피한 그가 아래에서 위로 검을 올려 쳤다.

“허억.”

황급히 뒤로 후퇴한 노광근의 옷 앞섶이 반으로 갈라져 바람에 흩날렸다.

반 박자만 늦었어도 옷 대신 몸통이 반으로 쪼개졌으리라.

등 뒤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느낄 새도 없다.

남궁정혁이 쉴 틈을 주지 않고 후속 공격을 했기 때문이다.

그가 노광근의 전신 사혈을 노리고 연신 찔렀다.

크윽, 이를 악문 노광근이 그 공격들을 겨우 피했지만, 몸에 생채기는 점점 늘었다.

“헉, 헉, 헉. 이 정도 실력이라니.”

가랑비에 비 젖는다고, 몸에서 스며 나온 피가 어느새 노광근의 옷을 붉게 물들였다.

호흡도 가빠 제대로 숨쉬기 힘들어 보였다.

그런 노광근의 초라한 모습에 남궁정혁은 피식, 실소했다.

“허참, 어이가 없어서. 고작 그 정도 실력으로 마교를 사칭해?”

노광근이 실제로 마교 소속이었으면 어느 정도 위치였을까?

아마도 스무 명의 수하를 둔 조장 정도?

그 정도도 후하게 쳐준 편이다.

‘참, 시대 좋아졌다.’

이십 년 전 이런 놈이 마교를 사칭했으면 사지를 갈가리 찢어 개 먹이로 던져 줬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마교를 사칭하지도 못하지.

그 뒷감당이 무서워서라도.

‘……’

결국, 내 탓인가?

내가 남궁도에게 패배해서 이 사달이 난 거냐고.

또 다른 이유가 분노가 치민 남궁정혁이 공간이동을 하듯 순식간에 노광근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면전에 대고 말했다.

“넌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남궁정혁의 거친 숨결에 자신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킨 노광근이 반문했다.

“……뭘 말이냐?”

“내가 웬만하면 시체는 온전히 보전해 주는 편이거든. 저승길이라도 편히 가라고 말이야.”

팟!

남궁정혁이 노광근의 목만 매끈하게 잘라 버렸다.

노광근은 반응할 수 없을 만큼 순식간이었다.

그의 목이 또르륵, 땅바닥을 굴렀다.

*   *   *

“도련님, 저는 여섯 명의 적을 해치웠습니다.”

“후후, 부단주님, 저한테 졌군요. 저는 일곱 명을 처리했습니다.”

정학우와 서문호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길 바라는 똥개마냥 자신들의 전과를 자랑했다.

하나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남궁정혁의 고개는 삐딱했다.

무언가 심히 마음에 들지 않는 눈빛이다.

그 표정을 본 정학우와 서문호는 어느새 입을 닫았다.

뭐가 잘못된 거지?

가만히 부하들을 본 남궁정혁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티를 팍팍 내며 말했다.

“다쳤네?”

정학우는 어깨에서 피를 흘렸고, 서문호가 허벅지 앞쪽이 벌겋다.

“상대의 검에 스쳤습니다.”

“금창약만 바르면 금방 나을 것이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걱정?”

뭐? 걱정?

저것들이 지금 뭔가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다.

“내가 지금 슬퍼하는 것 같냐, 아니면 안타까워하는 것 같아?”

“…왠지 모르겠지만 저희가 아주 못마땅한 것 같은데요.”

“거참 다행이야.”

눈깔은 다치지 않아서 말이야.

“왜 저희를 그런 눈빛으로 보십니까?”

“저희가 뭘 잘못했습니까?”

했지, 그것도 아주 크나큰 잘못을.

놈들이 하도 기세 좋게 덤비기에 한 가닥 하는 줄 알았더니 예상외로 허접했다.

대충 이류 언저리 정도?

심지어 주먹 좀 친다는 일반인도 이길 만한 삼류 같은 잔챙이들도 몇 명 섞여 있었고.

그런데 아무리 쪽수에서 밀렸다고는 하나 이정도 놈들을 상대하고 다쳐?

게다가 뭘 잘했다고 칭찬까지 바라?

“아니다, 모두 내 잘못이다.”

그동안 너무 물러 터졌던 내 잘못이야.

그러니 저렇게 기합이 빠졌지.

“세가로 돌아가면 특별 수련이 있을 예정이니 각오해라.”

명색이 전직 천마이자, 향후 남궁세가의 가주가 되어야 할 나의 부하라면 어디 가서든 안 맞고 다닐 정도론 안 된다.

마음대로 패고 다닐 정도는 되어야지.

“내 방식이 다소 과격해도 다 너희들을 위한 것이니 이해 바란다.”

혀를 날름거리는 남궁정혁을 보며 정학우, 서문호가 왠지 모를 한기를 느낄 때였다.

“……응?”

야행복을 입은 한 여인이 등장했다.

그런데 눈이 벌겋네?

그렇다는 건 아마도 저 사람이…….

“다희야!”

노광근의 잘린 머리통 옆에서 망연자실해 있던 노윤이 고개를 들었다.

과연, 저 여인이 노윤의 아내, 흡정괴마인 것 같다.

“……?”

한데 상태가 심상치 않다.

온몸에 힘을 뺀 채 흐느적거리는 걸어오는 모습이 마치…….

“……광년이?”

반쯤 혼이 나간 사람 같다.

그렇다고 저 사람은 옆머리에 꽃 꽂고 들판으로 나들이 다니는 낭만적인 광년이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을 잡아먹은 괴물이다.

“다희야, 다친 것이냐?”

제 부인에게 가려는 노윤의 뒷덜미를 잡았다.

“잠깐.”

“개자식…… 퉤.”

노윤이 대답 대신 침을 뱉었다.

부모를 죽인 원수라 이건가.

자신을 그렇게 차별하는 아비였는데도.

부모가 없던 나는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미안함도 없고.

“네 아비가 죽인 사람들도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자식이었다.”

더는 못 들어주겠다.

짝!

노윤의 뺨을 후려쳤다.

“묻는 말에나 대답해.”

“…….”

“최근 들어 네 부인이 넋을 놓고 혼자 멍하니 있었던 적은 없나? 아니면 자다가 갑자기 깨서 고함을 지를 적은? 아는 사람을 못 알아보고 방금까지 했던 일은 까먹은 적도 없었나?”

남궁정혁의 질문에 노윤이 깜짝 놀랐다.

“어, 어떻게 알았소? 예전엔 가끔 그러더니 요즘 들어 그런 증상이 부쩍 심해졌소.”

쯧쯧, 이미 흡정마공에 거의 다 잡아먹혔군.

술만 많이 마셔도 다음 날 숙취가 있는데 흡정마공에 부작용이 없을 리 없다.

사람의 정기를 지속해서 갈취하면 마기가 골수를 침범하여 이성을 잃은 미치광이가 된다.

저렇게.

“으으으으.”

그리고 저 정도가 되면 돌이킬 방법은 없다.

오로지 죽음뿐.

“다희야……?”

자신을 부르는 남편을 그냥 지나친 다희가 노광근의 머리통을 발로 밟았다.

“네놈이었구나. 네놈이 닭 모이에 독을 탔어.”

퍽퍽, 그녀의 사나운 발길질에 노광근의 머리통이 파편처럼 사방에 튀었다.

그것이 뭐가 그리 즐거운지 그녀가 깔깔 웃었다.

“꺄하하하! 꼴 좋다, 그러게 사람이 착하게 살았어야지!”

평소에 보던 다희와는 전혀 다른 모습.

그 모습에 노윤은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저건 이미 너의 부인이 아니다. 흡정마공에 잡아먹힌 괴물이야.”

“……아까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멀쩡했소.”

“사람이 미칠 때 예고하고 미치냐? 원래 미칠 때는 한 번에 회까닥하는 거야.”

“치, 치료할 방도는 없소?”

치료?

당연히 없지.

마교가 그리 인류애가 넘치는 집단은 아니라서 말이야.

저런 상태라면 차라리 죽여 버리는 게 효율적이니까.

지금 내가 그러려고 하고.

“잠시 자고 있어, 일어나면 모든 게 끝나 있을 테니.”

퍼억, 노윤을 기절시킨 남궁정혁이 다희에게 다가갔다.

“동작 그만. 고인 능욕 그만하고 나랑 놀자.”

“저리 꺼져.”

어휴, 무서워라.

가까이서 빨간 눈을 마주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긴 한다.

진짜로 쫀 건 아니고 미지의 생명체를 대할 때 느끼는 인간의 본능적인 반응이랄까.

“궁금하지 않아?”

“뭐가 말이냐.”

“누가 노광근을 죽였는지?”

그제야 까먹은 중요한 사실을 알았다는 듯 그녀가 손바닥을 탁, 쳤다.

“맞다, 누가 노광근을 죽였지? 내 손으로 직접 죽었어야 했는데.”

저런 모습을 보니 어린아이 같기도 하다.

정신 퇴행이 제대로 온 건가?

“우리 이렇게 하자. 서로가 궁금해하는 걸 하나씩 얘기해 주는 게 어때?”

“……?”

“누가 노광근을 죽였는지 궁금하잖아, 내가 말해 줄게. 대신 너도 내 질문에 하나 대답해 줘.”

“뭐냐?”

“어떻게 흡정마공을 배웠지?”

“그건 안 돼. 말할 수 없어.”

“왜?”

“그분이 말하지 말라고 했거든.”

그분?

그분이 누군데?

남궁정혁이 아이들 다독이듯 살살 말했다.

“하지만 네가 먼저 말하지 않으면 나도 말할 수가 없는걸. 누가 노광근을 죽였는지.”

다희가 잠시 고민하다, 사실을 털어놓았다.

“엄신, 그분에게 배웠다.”

뭐? 엄신?

순간 남궁정혁의 머릿속에 마교 최고의 괴짜라고 불렸던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천수마의, 그 늙은이가 아직도 살아 있었어?’

명줄 한 번 참 기네.

마교 제일의 의원이기도 했던 그는 이십 년 전에 이미 칠순을 훌쩍 넘겼었다.

고로 지금은 백 살 가까이 되었고.

‘하긴 그 노인네가 자기 몸은 끔찍이 챙겼지.’

마교도들은 대상으로 온갖 괴상한 인체실험을 하던 또라이 주제에 자기는 몸에 좋은 것만 열심히 챙겨 먹었다.

옆에서 나도 좀 뺏어 먹었고.

어쨌든 그 덕분인지 나이에 비해 무척 동안이었다.

오십이 안 되어 보였으니.

그 미친 영감탱이라면 흡정마공을 유출했을 수도 있겠다.

애초에 흡정마공을 그와 함께 연구하였으니.

“그는 지금 어디에 있나?”

“모른다. 워낙 바람 같은 분이시라 나에게 흡정마공만 가르쳐 주시고는 어디론가 떠나셨다.”

이젠 내 차례다.

내가 대답해 줄 차례였다.

다희에게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간 남궁정혁이 말했다.

“나다.”

“뭐?”

“노광근 죽인 사람.”

“네놈이 노광근을 죽였다고?”

“그래. 그리고 널 죽일 사람이기도 하지.”

동시에 남궁정혁의 검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그의 강맹한 검이 다희를 가격했다.

순식간의 기습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그녀가 공중을 붕 날아가 담을 뚫고 지나갔다.

“네 사연은 안타깝다만, 넌 선을 너무 넘었어.”

이 세상에 사연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자기가 힘들다고 최소한의 인륜마저 저버리면 안 되지.

그래도 순식간에 죽여 줬으니 저승에서 네 죄를 반성…….

“……응?”

부스스, 흩날리는 먼지 사이로 붉은빛 두 개가 동동 떠다닌다.

이윽고, 다희가 부서진 담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멀쩡하네?”

머리가 산발이 되긴 했지만 걸어오는 모습을 보니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 같다.

어떻게?

그 정도로 날아갔으면 최소한 어디 한 군데는 부러졌어야 하는 거 아냐.

“설마 안 다친 거 아니지? 아픈데 참는 걸 거야, 그렇지?”

“…….”

싹수없는 것.

사람 말을 씹은 다희가 빠르게 공격했다.

그녀는 손톱을 세워 암기처럼 찔렀다.

손끝마저 붉게 빛나는 게 내공이 만만찮아 보인다.

하긴 그 많은 사람을 잡아먹었는데 내공이 약하면 그게 더 이상하긴 하다.

하지만.

휙휙.

남궁정혁은 산보하듯 가볍게 밝은 보법으로 모든 공격을 피했다.

위력에 비해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다.

아직 내공을 제대로 활용하는 법을 모른다.

애초에 무공이 약해서 그런 것 같다.

“이번엔 정말로 보내 주마.”

이를 꽉 깨물고 단전에 힘을 줬다.

전신에 피 흐르는 느낌이 선명해짐과 검에 그 어느 때보다 짙은 검기가 맺혔다.

“잘 가라, 염라대왕이 묻거든 남궁정혁 님이 보냈다고 하고.”

염라대황이 화내겠는데.

저놈은 영혼을 왜 이리 많이 보내 일거리를 늘리냐고.

쾅, 다희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저 멀리 있는 나무 위에 떨어졌다.

그녀의 팔, 다리가 가지에 걸쳐 덜렁거렸다.

‘휴, 간만에 힘을 제대로 썼더니 땀나네…… 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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