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30화
사람 성의가 있지.
왜 저렇게 멀쩡해?
예상과 다르게 부스스 일어난 다희가 땅에 착지했다.
비틀거리는 것이 꽤 충격을 받긴 했지만 기대했던 결과는 아니다.
몸뚱이가 어찌 저리 단단한 거지?
지금의 사태를 이해할 수 없는 남궁정혁을 두고 다희가 비아냥거렸다.
“고작 그 정도 실력으로 날 죽인다고 한 것이냐?”
그렇게 말하면 내가 상처받잖냐.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데.
내가 의외로 소심한 구석이 있어서 마음이 여리니까 말조심 좀 해 줄래?
“몸이 비리비리한 걸 보니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생겼구나.”
너 방금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렸어.
왜 체형으로 사람을 판단하냐고.
‘오냐, 한번 해 보자.’
내가 남녀노소 중 녀노소는 웬만해서 패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지만 넌 예외다.
죽을 때까지 때리면 언젠가는 죽겠지.
검을 꽉 쥔 남궁정혁이 쇄도했다.
무쌍난무!
검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쉬이익,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은 섬뜩할 정도다.
남궁정혁은 어깻죽지가 뻐근할 정도로 공격했다.
퍽퍽퍽퍽!!
다희는 아까의 패기와 다르게 그 공격이 버거운지 몸을 웅크리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씨펄.”
남궁정혁이 먼저 지쳤다.
공격을 멈춘 그가 헉헉거릴 때 다희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일어섰다.
이것도 흡정마공의 영향일까?
“…….”
아닌데.
흡정마공은 단순히 정기를 갈취하는 무공일 뿐, 몸뚱이를 단단하게 하는 기능은 없는데.
그렇다면……
“특수한 외공을 익혔더냐?”
“크흐흐흐, 엄신 님이 흡정마공와 함께 전수해 주신 금종강근공이란 것이다. 무병장수를 꿈꾸시는 그분이 개발한 것이지.”
빌어먹을 영감탱이
살 만큼 살았으면 죽을 날만 기다리며 손가락이나 빨고 있을 것이지.
뭐? 무병장수?
별 괴상한 걸 만들어서 사람 피곤하게 만들고 지랄이야.
지금 당장은 저걸 깰 만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막막하네.’
저걸 어떻게 뚫지?
단전이 찢어질 듯 뻐근하다.
여기서 더 무리하면 자칫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도련님! 저희가 돕겠습니다.”
“잠시 쉬고 계십시오.”
웬만해선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남궁정혁이 안쓰러운 것일까?
부하들이 나섰지만 남궁정혁이 손을 내 저었다.
아서라. 내 공격도 통하지 않는데 너희가 무슨 수로.
잘못하면 너희마저 그녀의 먹이가 된다.
그럼 그만큼 더 힘들어지고.
“벌써 지친 것이냐?”
이번엔 다희가 공격했다.
빠르게 쇄도한 그녀의 손이 남궁정혁의 가슴팍을 노렸다.
물론 오늘 처음 만난 여자에게 자신의 가슴을 내줄 정도로 남궁정혁은 헤프지 않았고.
그가 허리를 비틀어 공격을 피하자, 다희가 재차 공격했다.
이번엔 어깨.
그녀의 손톱을 바짝 세워 남궁정혁의 어깨를 할퀴려 했다.
저기에 걸리면 살이 한 움큼 떨어져 나가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뼈까지 부러질 것이다.
남궁정혁이 발을 놀려, 재빨리 뒤로 물러서니 다희가 쫓아오지 못했다.
“쥐새끼처럼 빠르구나.”
“네가 느린 거야.”
동작이 크고 초식이 단조로워 피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단조로운 대신 한 수, 한 수에 실린 위력이 강하다.
한 방이라도 제대로 맞으면 골로 갈 것 같은데.
그래서 남궁정혁은 몸을 이리저리 놀려 최선을 다해서 피했다.
그의 날렵한 몸놀림에 약이 오르는지 다희의 붉은 눈이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것이냐?”
이번엔 네가 먼저 지칠 때까지.
자고로 사치의 끝은 패가망신이라 했다.
지금은 내공이 넘쳐흐르지만 언젠가는 바닥을 보일 것이다.
그때, 마지막 힘을 모아 내가중수법으로 한 방에 팍!
내장을 으깨 주마.
그것이 남궁정혁의 계획이다.
그리고 인생은 계획대로 만은 흘러가지 않는 법이고.
남궁정혁이 노광근에게 말했던 것처럼.
“……응?”
턱, 누군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뭔가 싶어 내려다보니 어느새 깨어난 노윤이 원한 가득한 눈으로 남궁정혁의 발목을 꽉 쥐고 있었다.
“불쌍한 내 아내를 괴롭히지 마라.”
이런 이기적인 새끼.
네 부인이 한 짓은 원수를 부모처럼 섬기라고 했던 석가모니도 분노할 일이라고.
뻔뻔한 놈의 상판대기를 사뿐히 지르밟아 주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다희는 남편이 만들어 준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아직도 노윤을 남편이라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쾅.
온몸이 산산이 조각나는 듯한 고통이다.
명치를 제대로 가격당했다.
살살 맞아도 아픈 급소를…….
부부의 합동 움직임에 당했다.
“젠장…….”
후속 공격을 피해야 하는데 이미 늦었다.
다리가 풀려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옆구리로 훅 들어오는 주먹에 이번엔 내가 하늘을 날았다.
착륙지점은 하필 노윤의 집이었고.
그래, 너희 집이 부서지지, 내 집 부서지냐.
와장창, 남궁정혁이 창문을 부수고 집 안에 처박혔다.
온몸에 철을 두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몸이 무거워 내 맘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저벅저벅.
그때 뒤쫓아 온 다희가 바닥에 누워 쉽사리 일어나지 못하는 남궁정혁에게 손을 뻗었다.
“노광근 대신 네놈의 정기라도 흡수해야겠다.”
저 손을 피해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턱, 결국 그녀의 손이 내 머리 위에 얹어졌다.
“…….”
요상하고도 더러운 기분이다.
정수리에서 영혼이 뜯겨 나가는 것 같다.
아, 흡정마공에 당하면 이런 느낌이구나.
‘이번 생에 새로운 경험을 또 하는데.’
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도 이렇게까진 하고 싶진 않지만 어쩔 순 없다.
전직 천마로서의 자존심이 있지.
내가 천마신공의 사생아 같은 흡정마공에 당할 순 없잖아.
진짜 이거까지는 안 쓰려고 했는데.
“그거 알아?”
“……?”
“가품은 진품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걸.”
“무슨 말…….”
나도 다희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너한테만 말해 주는 거니까 잘 들어.”
“윽!”
“내가 진짜 천마다.”
나도 이십 년 만에 처음으로 흡정마공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누가 이기나 해 보자.
* * *
거참, 이놈의 재능이란.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내가 흡정마공을 제대로 펼칠 수 있을지가.
이십 년 만에, 그것도 바뀐 몸으로 펼치는 건데.
‘근데 되네.’
운기는 보통 임맥과 독맥, 흔히 말하는 임독양맥을 통해서 한다.
단전에서 흘러나온 내공이 엉덩이를 크게 거쳐 등 뒤로 타고 올라가 정수리에 도착하는 길이 독맥이요, 정수리에서 출발한 내공이 가슴을 거쳐 단전까지 내려오는 길이 임맥이다.
이 과정으로 운기하는 것을 소주천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흡정대법은?
금단의 대법이라 불리는 흡정대공은 어떻게 운기할까?
‘반대로 해야지.’
흡정대법의 핵심은 내공을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내공을 임맥으로 끌어 올려 독맥으로 내린단 말이다.
이게 말로는 쉬울 것 같아도 실제로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생각해 봐라.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강물이 갑자기 거꾸로 흐르는 것을.
천재지변이고 자연재해다.
생태계에 뭔가 어마무시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
순리대로 흘러야 할 진기를 억지로 거꾸로 돌린다면?
몸속의 오장육부와 혈관이 비명을 지를 것이다.
나한테 왜 이러느냐고.
순리를 거스르는 무공인 만큼 익히는 과정에서 주화입마에 빠질 확률도 매우 높고.
대략 열 명이 도전하면 그중 여덟아홉 명은 실패하여,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불구가 된다.
흡정마공을 금지한 또 다른 이유였다.
흡정마공이 그렇게 어렵고 위험한 무공이건만
‘……짜릿한데.’
갑자기 잘 돌아가던 진기가 거꾸로 흘러 내 몸도 놀랐는지 전신 혈도에서 신호를 보내왔다.
따끔따끔.
한데 그뿐이네?
자칫 주화입마에 빠질까 싶어 처음엔 내공을 살살 역행했지만, 지금은 몸이 적응했는지 편안하다.
이에 자신감을 얻어 속도를 올리니 내공이 강물을 세차게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역주행했다.
‘……재능으로만 치면 오히려 전생의 몸보다 낫나?’
타고난 천재란 것이 이렇게 살기 편하다.
하자고 하는 마음만 먹음, 뭐든 다 할 수 있으니.
다희도 불세출의 천재인 이 몸의 가치를 이제야 알아봤는지 두 눈을 부릅떴다.
“네, 네가 어떻게 흡정마공을…….”
“운용할 줄 아냐고? 말했잖아. 내가 천마라고.”
“……그딴 거짓말을 내가 믿을 듯싶더냐.”
믿기 싫으면 믿지 말든가.
내가 널 설득할 의무도 없고.
남궁정혁과 다희.
진실을 말한 자와 진실을 믿지 않는 자 사이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먹느냐, 먹히느냐.
한쪽이 파멸한다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과연, 누가 이길까.
두 사람이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 결과…….
“짝퉁이 함부로 설치면 안 되지.”
남궁정혁은 씨익, 웃었고, 다희의 얼굴에는 서서히 깊은 주름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역주행 속도가 느린 그녀가 정기를 빼앗기는 것이다.
‘이래서 흡정마공에 중독되는구나.’
사람을 대상으로 흡정하는 건 나도 이번이 처음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고양감과 함께 강한 쾌락이 전신을 자극했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지금처럼 기분 좋은 적은 처음이다.
이 쾌감에 중독되면 뇌가 마기에 쩔어 폐인 되는 거지.
마치 마약 중독자가 그런 것처럼.
“끄어어어억.”
다희의 몰골이 빠르게 변했다.
팽팽했던 피부에는 점점 팔자주름이 깊어지더니, 이윽고 눈가에도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이십에서 삼십 대로 변한 거지, 그다음은 사십 대.
이마에도 깊은 주름이 생기더니 이윽고 검은 머리카락이 허옇게 변했다.
그러다 이내 척추가 굽은 할머니가 되더니…….
“어어억.”
햇볕에 바짝 마른 목내이처럼 변해 쓰러졌다.
흡정마공에 당한 여느 피해자가 그렇듯.
“인간의 노화 과정을 순식간에 다 봤네.”
남궁정혁이 그런 다희를 아쉬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렇다고 불쌍한 것 아니고.
흡정마공으로 흥한 자, 흡정마공으로 죽는 법이지.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그때, 정학우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참 빨리도 온다.
흡정마공을 못 봤으니 늦게 온 게 다행인가?
“난 괜찮으니까 이 시체부터 처리해.”
“어떻게 이기신 겁니까……?”
“……?”
쟤 왜 저래?
왜 말을 하다 말고 날 그런 눈으로 본대?
“뭐 잘못됐냐?”
“크게 잘못된 것 같은데요.”
“뭐어?”
정학우가 눈을 비비더니 남궁정혁을 다시 바라봤다.
“남궁정혁 도련님 맞으신 거죠?”
이 새끼가 장난하나…….
정학우의 뒤통수를 한 대 치려던 남궁정혁이 멈칫했다.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자신이 괜찮지 않다는 것을.
“헉, 내 몸이 왜 이래?”
“도련님 몸이 우량아처럼 변했어요.”
남궁정혁은 원래 군살 없이 호리호리한 몸매였다.
그런데 지금은 물속에서 불어 터진 찐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볼살은 빵빵, 몸통은 통통.
몸이 언제 어느새 이렇게 변했지, 흡정마공의 부작용인가?
위급한 상황임에도 정학우는 그 모습이 귀엽다고 느꼈다.
마치 갓 태어난 우량아가 고대로 자란 것 같아서.
“대체 무슨 짓을 하면 그렇게 변하는 겁니까?”
“……나도 모르겠다.”
난들 알겠냐?
이런 상황 자체가 나도 처음인데.
“일단 밖으로 나가…”
남궁정혁이 발을 앞으로 내딛는 순간이었다.
푸왁.
우량아의 코에서 갑자기 코피가 흘렀다.
“도련님!”
남궁정혁이 눈 흰자위를 보이며 뒤로 쓰러졌다.
‘……이런 씨팔.’
이게 다 천수마의, 그 빌어먹을 영감탱이 때문이다.
담에 만나면 너의 무병장수, 내가 반드시 방해해 주마.
이 생각을 마지막으로 남궁정혁은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