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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31화 (31/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31화

“전 정말 도련님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도 죽겠다. 배 속이 이상해.”

“그건 아까 닭죽을 많이 먹어서 그렇습니다. 측간 다녀오세요.”

“그런 배가 아니야.”

다희가 죽은 지 만 하루.

진량현에 난리가 났다.

그동안 이곳을 공포에 떨게 했던 흡정괴마가 다희요, 그걸 이용해 마교를 사칭한 자가 노광근이라는 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가만있겠는가.

속속 송화문으로 몰려왔다.

어떤 이는 항의 하러, 다른 이는 피해보상 때문에, 또 다른 이는 그냥 구경삼아.

덕분에 자리를 보전하고 요양 좀 하려 했더니 드나드는 사람들 때문에 시끄러워 죽겠다.

“당신들 때문에 우리 가문이 망했소, 이걸 어떻게 책임질 것이오?”

“송화문의 가산을 팔아서라도 제 부인과 아버지가 한 일을 보상할 것이니 일단 고정하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쯧쯧 노윤, 네놈의 팔자도 사납다, 사나워.

원래는 어제 일 때문에 괘씸해서라도 정의의 꿀밤을 먹여줄까 했는데 불쌍해서 그냥 봐주기로 했다.

뭐, 사실 그럴 만한 몸 상태가 아니기도 하고.

‘이게 복인지, 화인지 나도 모르겠단 말이야.’

내가 어제 쓰러진 이유는 과도하게 섭취한 정기 때문이다.

지독한 쾌감 때문에 몰랐는데 다희가 지니고 있던 정기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더 많았던 것 같다.

왜 저수지도 갑자기 폭우가 오면 불어난 물 때문에 둑이 터지곤 하지 않은가.

비슷한 이치다.

‘다희가 모은 정기가 조금이라도 더 많았으면 난 폭사해서 죽었을지도.’

그래서 어제 내가 혈도가 부풀어 올라 찐빵이 된 거였다.

지금은 사태를 어느 정도 수습해서 겉모습은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하지만 진짜 문제가 남아있다.

그건 바로 몸속.

‘정기와 내공이 섞이지 못하고 따로 놀고 있어.’

마치 물과 기름처럼.

정석대로라면 정기를 조금씩 흡수하여 내공과 동화시켜야 한다.

그런데 한꺼번에 워낙 많은 양을 받아들였더니 소화불량이다.

체한 것이다.

묵직한 체기가 단전을 꽉 누르고 있어 몸을 움직일 때마다 불편하다.

‘치료할 수 있을까?’

남의 몸속에 불청객처럼 찾아온 정기를 잘 달래 흡수한다면 막대한 내공을 얻겠지만, 혹시나 잘못된다면?

단전이 쾅 하고 터져 뒤지는 거지.

몸속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설치된 느낌이다.

확실한 건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조금씩 정기를 흡수해야 한다.

그로부터 일주일, 송화문에 더 머물며 운기조식에만 집중했더니 단전을 짓누르는 최소한의 고통은 사라졌다.

이젠 남궁세가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   *   *

“저기 남궁세가가 보입니다.”

오박 육일의 마차 여행 끝에 남궁세가에 거의 다 도착했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미니 시선 끝에 남궁세가 현판이 보였다.

나는 쓸데없이 힘만 잔뜩 들어간 필체의 저 현판이 꼴 보기 싫은데 서문호의 감상은 달랐다.

남궁세가에 처음 온 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현판마저 용사비등한 것이 남궁세가는 정파의 성지입니다.”

성지는 개뿔.

내가 조만간 저 현판 뚝 부러뜨리고 마교 간판으로 바꿔 달고 만다.

“근데 정문 앞에 사람들이 많군요.”

서문호의 말대로다.

평소엔 수문위사들이 지키고 있을 뿐인 정문이 유달리 붐볐다.

“그러게, 무슨 일이 있나? 문 앞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건 또 처음 보네.”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봐도 그런 것 같다.

동시에 으흐흐흐, 실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뭐, 대단한 것 했다고.”

“네?”

“하던 일이나 하지. 뭔 마중까지 나와, 사람 부담스럽게.”

“저 사람들이 도련님을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까?”

아암, 당연히.

원래 나의 출정목표는 산적퇴치였다.

근데 그 목표를 이뤘을 뿐만 아니라 덤으로 진량현의 난리까지 해결했다.

목표를 초과 달성한 셈이지.

게다가 그 일이 벌써 일주일 전.

발 없는 말이 이곳, 합비까지 도착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쑥스럽게 꽃다발까지 준비한 건 아니겠지?”

크크크큭, 이번 일로 나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내 평판이 워낙 바닥을 기었던지라 그 효과는 더욱 극적이리라.

개선장군이라도 된 양, 위풍당당한 남궁정혁을 보고 정학우가 말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들이켜지 마시죠.”

뭣이라.

내 너를 어여삐 여겨 남수단 부단주로 임명했거늘.

감히 내 말에 토를 다는 것이냐?

“정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 잘 보십시오.”

“……!”

또각또각.

정문에 점점 더 가까워짐에 따라 사람들의 얼굴이 선명히 보였다.

근데 그 사람들이 대부분…….

“남궁수 대장로 측 사람들이네?”

“저들이 도련님을 마중 나올 리가 없잖아요.”

“……나의 영웅적인 활약에 감동하였을 수도 있잖아.”

내가 말하고도 회의감이 든다.

저들의 관점에서 난 손톱 밑에 박힌 가시.

설사 내가 극악무도한 악당에게서 무림을 구해도 뒤에서 손가락질할 거다.

끼리끼리 논다고 다들 남궁수를 닮아 전체적으로 쪼잔해 보이더라고.

그런 그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네?

그 사람이 누군지는 대충 감이 온다.

남궁세가에 한자리 씩 차지하는 저들이 발 동동 구르며 기다리는 사람이야 뻔하지.

“비켜라.”

남궁정혁의 마차가 정문 앞에 도착했을 때, 맞은편에서도 다른 마차가 도착했다.

여덟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팔두 마차로 장식이 크고 화려했다.

언제가 한번 보았던 남궁도의 마차보다도 더 비싼 거 같은데.

“대장로님.”

사람들이 몰려가자 마차 문이 열리며 남궁수가 내렸다.

역시, 네놈일 줄 알았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쉬는데 이런 일로 돌아오시게 해서 송구합니다.”

“아니다. 가문에 변고가 발생했는데 내 몸 챙길 때가 아니지.”

세가 안으로 들어가려던 그가 멈칫했다.

그제야 맞은편에 있는 남궁정혁을 본 탓이다.

아이고, 머리가 다시 지끈거린다.

그가 그동안 남궁세가의 별장에서 요양한 이유이기도 했다.

“엄백산, 머저리 같은 놈.”

일은 맡겼으면 깔끔히 처리해야지.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본인은 죽고 정작 남궁정혁은 살아남았다.

게다가 진량현에서 뭔 괴마까지 처리했단다.

그 소식에 남궁수는 신경성 두통과 불면증이 다시 도졌다.

저놈이 죽어야 자신이 무병장수할 것 같은데.

가주는 왜 하필 저런 귀신 같은 놈을 낳아서는.

“이게 다 가주 때문이다, 그가 덕이 없어 가문에 이런 불행이 내린 게야.”

“……?”

내가 없는 새, 무슨 일이 있었나?

근데 왜 나를 노려보면서 그렇게 소리 지르는 거냐?

네놈 입을 확 찢어버리고 싶어지게.

“대장로님, 일단 회의실로 가서 대책부터 논의하시죠.”

세가로 들어가는 남궁수의 등을 보면서 남궁정혁도 명령을 내렸다.

“학우야,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라.”

*   *   *

남궁수가 하도 난리를 치길래 뭔 대단한 일이 벌어졌나 했더니 별거 아니다.

초대 가주의 위패를 도둑맞았다나.

그런 거 있잖냐.

조그만 나무 조각에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고 모시는 것.

“하여튼 고리타분한 정파 놈들.”

그깟 나무쪼가리가 뭐라고.

위패에 대고 절을 하면 죽은 사람이 돌아오기를 하나, 아니면 조상이 ‘우리 후손님들 편안히 꽃길만 걸으세요.’ 하고 저승에서 보듬어 주기를 하나.

위패가 없어졌으니 차라리 잘됐지.

귀찮게 매일 닦을 필요 없고 제사도 안 지내도 되니.

물론 이건 남궁정혁 혼자만의 생각이었고 남궁세가는 난리가 났다.

조상의 혼이 담긴 위패가 없어졌다고 초상이라도 난 듯 분위기가 암울하다.

“가주님이 특별별동대까지 조직해서 백합투괴의 뒤를 쫓고 있지만, 아직 그자의 정체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백합투괴가 위패를 훔쳐 간 도둑이다.

안휘성 일대에서는 고관대작이나 부호의 집만 털기로 유명한 도둑이란다.

백합투괴라 불리는 이유는 훔쳐 간 물건 대신 그 자리에 백합꽃을 놔둬서이고.

참 실력도 좋아.

경비 무사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키는 남궁세가의 심처까지 잠입해서 위패를 훔쳐가다니.

대담하기도 하고.

천하제일세가라는 남궁세가의 물건을 훔쳐가다니.

“아직 백합투괴한테서는 편지가 안 왔냐?”

“도둑이 물건 훔쳐 간 집에 편지는 왜 보냅니까?”

“생각해 봐라. 남궁세가 입장에서야 위패가 소중하지, 다른 사람들한테는 땔감만도 못한 나무쪼가린데 왜 그걸 훔쳐갔겠냐?”

“그래서 돈을 내놓지 않으면 위패를 불태워버린다는 협박편지라도 보낸다고요?”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는 남궁정혁을 보며 정학우가 계속 말했다.

“백합투괴의 목적은 돈이 아닙니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비싼 걸 훔쳤겠죠.”

“그럼?”

“그놈은 비싼 것 대신 소중한 것을 훔칩니다. 예를 들면 추억이 깃든 물건이나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물건이요. 그래서 위패도 훔쳐갔고요.”

“특이한 놈이군.”

“변태 같은 놈이죠.”

“근데 너 아까부터 말이 많다. 운동하기 싫어서 농땡이 피우는 거 아니지?”

그 말에 정학우가 움찔했다.

“좀 쉬었다 하는 거죠.”

세가로 돌아온 지도 벌써 일주일.

저번에 마음먹은 대로 남궁정혁은 부하들을 단련시켰다.

그 첫 번째가 체력증진.

혈도를 점해 내공을 쓰지 못하게 하는 상태에서 기초체력을 향상하는 운동을 하게 했다.

팔굽혀펴기 1000번.

윗몸일으키기 1000번.

앉았다 일어서기 1000번.

달리기 10리

그것도 오전, 오후. 하루에 두 번씩.

덕분에 정학우와 서문호는 매일 밤 근육통에 시달리며 앓는 소리를 냈고, 자연히 그들의 불만도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내공을 쓰면 힘이야 저절로 강해지는데 왜 근력운동을 따로 해야 하는 겁니까? 힘만 들고 시간 낭비 같은데요.”

“내가 누누이 얘기했지. 몸은 내공은 담는 그릇이라고. 그 그릇이 더 튼튼하면 같은 내공이라도 훨씬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아∼ 그래서 도련님은 온종일 운기조식만 하는군요.”

어쭈, 말투가 꼭 비꼬는 것 같다.

“왜? 불만이냐?”

“아니, 도련님도 같이하면 좋은데 안 하시니깐 그렇죠.”

“난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니깐 넌 닥치고 가서 운동이나 계속해.”

남궁정혁이 눈을 부라리자 정학우가 나무 그늘 밑에서 쉬고 있던 서문호와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입이 한 사발 튀어나온 거로 보아 속으로 욕하는 게 분명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궁정혁은 다시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규칙적인 호흡을 통해 자신의 몸속을 관조했다.

‘이제 정기를 일 할쯤 흡수했군.’

광견병 걸린 미친개처럼 날뛰는 정기를 살살 녹여 내공과 동화시켰다.

이 속도로 가면 올여름이 다 가도록 운기조식만 해야겠다.

속도를 높이면 기간을 단축할 수 있겠지만 자칫 주화입마에 빠져 단전이 폭발할까 걱정된다.

그러니 천천히 해야지.

난 소중하니까.

‘집중하자.’

내공심법을 운용해 몸속에 순환시켰다.

그렇게 남궁정혁이 운기조식에 빠져든 지, 반 시진쯤 되었을까.

“후우~”

호흡을 정리하는데.

“아이고 도련님이 사람 잡는다. 자기는 편히 앉아서 부하들만 부려 먹네.”

정학우가 누구 들으라는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서문호마저 동참했다.

“부하들에게만 시키면 자기만 쏙 빠지는 것은 정의로운 행동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내가 사람이 너무 착해졌어.

그러니 저놈들의 주둥이가 저리 자유롭지.

소싯적엔 내 얼굴 솜털 흩날리는 것만으로도 마교 얘들이 벌벌 떨었는데 말이야.

그때였으면 눈도 못 마주치고, 그저 훈련 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반복했을 텐데.

마침 운기가 끝난 남궁정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순서가 잘못됐다.’

체력이 문제가 아니었구먼.

정신이 문제였지.

‘내가 몸과 마음을 모두 단련시켜 주지.’

마교 악마 교관의 부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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