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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33화 (33/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33화

“캬, 좋다.”

역시 묘화야.

허튼소리가 아니었어.

술이 식도를 넘어가고도 그 풍미가 코와 혀끝에 남아 있다.

더구나 지금 마시는 술이 더 맛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공짜니까.’

상상해 봐라.

남들은 다 돈 내고 마시는데 나 혼자만 공짜로 마신다고.

더구나 옥화루는 술값이 무척 비싼 곳이다.

그러니 지금 마시는 술이 얼마나 술술 넘어가겠냐.

“크하, 이거지.”

그런 남궁정혁이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자 정학우가 뭐가 맘에 안 드는 게 있는지 인상을 썼다.

“도련님, 저희 술 마시러 온 거 아닙니다. 도둑 잡으러 온 거라고요.”

“원래 도랑 칠 때 민물 가재도 같이 잡는 거야. 일석이조라고도 하지.”

“개가 똥을 못 끊는 건 아니고요?”

허허허, 우리 정 부단주가 많이 취했나 보네.

감히 그런 막말을 하는 걸 보니.

술은 한 잔도 안 마셨는데 말이야.

그것참 용한 재주야.

괘씸해서라도 꿀밤이라도 한 대 먹여 주려는 찰나.

드르륵.

문이 열리며 묘화가 들어왔다.

여전히 면사로 얼굴을 가린 채로.

“밀린 업무가 많아 이제야 인사 올립니다.”

“괜찮아, 루주가 늦게 오면 올수록 공짜 술을 더 많이 마실 수 있어서 나야 좋지.”

빈 술병들을 힐끔 본 묘화가 말했다.

“단순히 술만 드시러 온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괜히 옥화루주가 아니다.

눈치가 빠르다니깐.

먼저 판도 깔아 줬겠다, 이러면 바로 본론을 꺼내 볼까.

“백합투괴가 하오문 소속인가?”

“위패를 도둑맞은 것 때문에 찾아오셨나 봅니다.”

“내가 물은 건 그게 아닌데?”

“하오문에 그런 인재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안타깝게도 아닙니다.”

“…….”

“제 말을 믿지 못하십니까?”

글쎄, 술을 마시면서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가끔은 묘화의 과거가 궁금해지기도 한단 말이야.’

차분한 말투, 흐트러짐 없는 자세.

저런 사람이 상대하기 가장 까다롭다.

그 속내를 알 수 없으니.

단순한 기질의 문제가 아니다.

그만큼 온갖 아수라장을 헤쳐 온 경험이 몸에 밴 것이겠지.

남궁정혁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묘화가 섭섭하다는 듯 말했다.

“혹 제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니, 고놈의 행동 양식으로 봤을 땐 특정 단체 소속이 아닐 것 같긴 했어.”

“……?”

“그래도 백합투괴가 설치고 다니니 누구인지는 알아봤을 거 아냐, 같은 편으로 포섭하든지…… 아니면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동종업계에 그런 자가 설치고 다니면 저희도 피곤하긴 하죠. 아무래도 주변의 감시가 삼엄해지니. 지금처럼 의심을 받기도 하고.”

“그래서 누구야?”

후, 가벼운 한숨과 함께 묘화가 고개를 저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이토록 신출귀몰한 자는 저도 처음입니다. 스스로 놓아둔 꽃 말고는 아무런 흔적이 없습니다.”

“용의자도 없어?”

“이천 명.”

“……?”

뭐가? 용의자가 이천 명이라는 건가?

“그간 범행 현장 주변에서 목격된 자만 이천 명이 넘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네.”

“그가 밤낮 가리지 않고 안휘성 전역에서 일을 벌였기 때문입니다. 하오문이 아무리 방대한 정보망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들 모두를 일일이 조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하긴, 할 수 있다고 쳐도 어느 세월에 그걸 다 하겠는가.

아무리 하오문의 정보력이 뛰어나다고는 해도.

하지만 내가 개입한다면?

팔짱 낀 남궁정혁이 슬쩍 운을 띄웠다.

“내가 그 숫자 좀 줄여 줄까?”

“어떻게요?”

“놈이 저지른 범행일지 정도는 만들어 뒀겠지?”

“당연히요.”

“가져와 봐.”

남궁정혁과 하오문의 첫 번째 공조 수사가 시작되었다.

*   *   *

자, 보자.

남궁정혁이 상 위에 놓인 두루마리를 유심히 살폈다.

그곳엔 괴도가 언제 어디서 도둑질을 했는지가 자세히 적혀 있었다.

맨 처음 한 도둑질부터 최근의 남궁세가까지 다.

“……”

딱 보니 어느 정도 견적이 나오네.

“이것만 분석해 봐도 여러 가지 단서를 얻을 수 있지. 그중 첫 번째.”

손가락 하나를 세운 남궁정혁이 말했다.

“이놈은 도둑 주제에 비싼 걸 훔치는 게 아니야. 남궁세가에서도 위패를 훔쳐 갔잖아. 일반적인 도둑과 가장 큰 차이점이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돈이 궁하지는 않아서?”

“그렇지, 그놈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자야, 그러니 재물을 탐하지는 않지. 동시에 여기서 두 번째 단서도 얻을 수 있지.”

두 번째 손가락을 세운 남궁정혁에게 묘화가 물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자가 왜 남을 집 담을 넘을까? 잡히면 도둑으로 낙인찍히고 벌도 받을 텐데 말이야.”

“저도 그자의 범행 동기가 궁금하긴 했습니다. 그 부분이 이해가 안 가더군요. 왜 구태여 다른 사람이 소중히 여기는 물건을 훔치는 걸까요? 자신에게 무슨 이득이 있다고?”

묘화가 고개를 갸웃하자 남궁정혁 단언했다.

“쾌락. 놈은 쾌락범이다.”

“……도둑질할 때의 긴장감을 즐긴단 말입니까?”

“그렇지.”

마교에 워낙 꼴통들이 많다 보니, 그중에 상상의 범위를 초월하는 또라이도 간간이 섞여 있었다.

그중엔 백합투괴 비슷한 놈도 있었고.

그놈도 돈 되는 것 대신 주변 사람의 소중한 물건만 훔쳤다.

잡고 보니 하는 말이 기가 찼지.

피해자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행복감을 느꼈다나.

남의 불행이 곧 자신의 기쁨인 것이다.

백합투괴는 그놈과 비슷하면서도 결이 다르다.

그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괴마가 처음 도둑질은 한 곳은 시골의 작은 장원이었다. 그런데 점점 경비가 삼엄한 곳을 털더니 최근에는 남궁세가까지 털었어, 겁도 없이 말이야.”

“범행 난이도가 서서히 올라갔군요.”

“그만큼 도둑질 중에 느낀 긴장감과 쾌락도 클 테고.”

“처음엔 한 잔의 술로도 금방 취하지만, 주량이 늘수록 점점 더 많은 술을 필요로 하는 것과 같은 이치네요.”

“이런 짓을 벌이는 자들은 대부분 마음속에 억눌린 욕망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욕망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모르지. 아니면 풀 수 없는 상황이거나. 그래서 도둑질을 하면서 그 불만을 해소하는 거지.”

이 대목에서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정학우가 손들고 질문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욕망이요?”

“종류야 다양하지. 이를테면 신분의 차별에서 오는 열등감, 능력 부족에서 오는 자괴감, 또는 신체 능력의 하자에서 오는 열패감 등등?”

자리에서 일어난 남궁정혁이 손가락 세 개를 세웠다.

“자, 세 번째 단서. 놈은 왜 꽃을 남겼을까? 자칫하면 자기를 추적하는 단서가 될 수도 있는데.”

“음…… 도둑질한 사람이 자기라는 걸 알리고 싶어서?”

정답.

“맞아. 자기가 백합투괴라는 걸 자랑하고 싶은데 정체를 밝힐 순 없으니 그런 흔적을 남겼을 거다. 여기서 추측할 수 있는 건 그자가 과시욕이 큰 사람이라는 거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성향을 지녔을 게 분명하다.”

“백합투괴가 의외로 주변에 이름이 알려진 사람일 수도 있다는 거군요.”

“그렇지, 아마 그 지역에서는 유명인사일 거야.”

남궁정혁이 손가락 네 개를 세웠다.

“마지막 단서는 놈의 범행 시간으로 추측할 수 있다.”

“도련님, 제 생각이 맞는지 말해 봐도 될까요?”

남궁정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학우가 자신의 추측을 말했다.

“백합투괴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범행을 벌였습니다. 그러려면 직업이 없는 백수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니면 한 조직의 우두머리 격인 존재라 시간 활용이 자유롭든지. 안휘성 내를 자주 오가는 일이라면 더욱 안성맞춤이겠죠.”

“오호.”

정학우, 제법 예리했어.

역시 그 정도는 해야 남수단 부단주라 할 수 있지.

기특해서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려는 찰나, 그가 한마디 더 덧붙였다.

“저는 방금 추리한 네 가지 조건에 딱 들어맞는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저와 아주 가까운 사람이죠.”

“그래? 그 사람이 누구냐?”

이거 의외로 쉽게 백합투괴를 잡을 수 있겠는데.

“…….”

하지만 정학우는 대답 대신 남궁정혁을 지그시 노려봤다.

“……?”

왜 날 저런 눈빛으로 보지?

왠지 기분이 나빠지는데.

“도련님의 자백 잘 들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자수하시면 가주님이 용서…….”

나 말고 새꺄.

딱! 정학우의 뒤통수에 커다란 혹이 생겼다.

*   *   *

다음 날, 옥화루에 갔더니 묘화가 세 장의 서찰을 건넸다.

“남궁 도련님의 말대로 추린 용의자들입니다.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이 딱 세 명 있더군요.”

“하오문은 일 처리가 빠르군, 적어도 삼사일은 족히 걸릴 줄 알았더니.”

“부하들이 어젯밤을 지새우긴 했죠.”

남궁정혁이 용의자들의 신상 내력이 적힌 서찰을 유심히 살폈다.

그중 첫 번째 후보는…….

“왕소단?”

“천하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천금전장의 젊은 장주입니다. 이곳 합비에 본점이 있죠.”

이력만 놓고 보면 부족한 게 없는 자다.

채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평생 다 쓰지도 못할 부를 이뤘으니.

그렇다고 물려받은 재산도 아니다.

부모에게 작은 전장을 받긴 했지만, 본인의 능력으로 몇 배나 크게 키웠으니.

그런데…….

“……고자?”

서찰을 내려가던 남궁정혁이 움찔했다.

있어야 할 소중한 구슬이 없단 말인가.

그래서 남의 소중한 것을 훔친다?

“어릴 적 개에 물려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단 소문이 있습니다.”

“단순 소문만으로 이 명단에 이름을 올리진 않았을 텐데?”

“그는 고자가 확실합니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왕소단은 합비에 살면서도 옥화루에 단 한 번도 오지 않았으니까요. 고자가 아닌 이상 그럴 수 없습니다.”

“자부심이 넘치는군.”

“옥화루는 안휘성, 아니 중원 제일의 기루니까요.”

다음 서찰을 보았다.

“진한표국의 양민?”

“가문의 첫째이면서도 능력이 부족해 동생에게 소국주 자리를 빼앗겼습니다.”

“게다가 표국 일을 하면서 안휘성 곳곳을 누비고 다녔군.”

“도련님이 말한 조건과 딱 일치하는 자죠.”

마지막으로는.

“성운상단의 홍인걸?”

이자의 이력도 상당히 특이하다.

“궁중 화가였군.”

“어릴 적부터 그림 신동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하옵니다. 그 실력을 인정받아 궁궐에서 황족의 초상화까지 그렸고요.”

“근데 지금은 왜 상단 일은 하고 있대?”

“상단주의 외동아들이니깐요, 아버지의 강요로 붓을 꺾고 가업을 이어받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속에 쌓인 불만이 많겠군,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니.”

남궁정혁의 시선이 세 서찰 속에 그려진 초상화를 유심히 보았다.

누굴까?

어느 놈이 백합투괴일까?

“사람을 붙여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까요?”

“그건 좋은 방법이 아냐.”

그도 바보가 아닌 이상 자기가 한 일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주변에 수상한 자들이 얼쩡거리는 것을 들킨다?

아예 정체를 감추고 도둑질 자체를 그만둘 가능성도 있다.

이럴 땐 놈이 스스로 나서게 만들어야 한다.

남궁정혁이 탁자 위에 놓인 술을 쭉 들이킨 후, 말했다.

“루주, 너구리 사냥하는 법을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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