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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34화 (34/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34화

“너구리 잡는 법?”

뜬금없는 물음이었지만 묘화는 순순히 답했다.

“가장 흔한 건 너구리 굴에 연기를 피워 잡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 선량한 너구리가 제집에서 편안히 지내는데 사악한 인간이 연기를 피워 굴에 집어넣잖아. 그러면 너구리는 콜록콜록, 신선한 공기를 찾아 굴 밖으로 나왔다가 덫에 걸리고.”

“그 말은……”

“우리는 연기를 피우자고. 백합투괴가 덫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오게끔.”

별거 아니라는 듯 쉽게 말하는 남궁정혁을 보며 묘화가 물었다.

“어떻게요?”

“그자의 자존감을 완전히 뭉개버리는 거지.”

범죄 현장에 꽃을 남기는 백합괴마는 자신의 도둑질에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월감마저 느끼고 있을 수도.

‘멍청한 놈들, 네놈들이 아무리 애써 봐도 나를 잡을 수는 없다’라고 생각하면서.

거기다 백합투괴는 나름의 철학도 있다.

의적도 아니면서 가진 자들 집만 털고 있으니.

타인의 평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거지.

그런데 이때 백합투괴가 치사한 도둑질을 한다면?

“객잔의 그릇이나, 옷가게의 옷 같은 걸 훔치는 거야. 그리고 그 현장에 백합을 두는 거지.”

“사람들은 백합투괴가 훔쳐 갔다고 생각하겠군요.”

“진짜 백합투괴는 그 자리에 펄쩍 뛰겠지. 대도라는 자부심으로 내면의 욕망을 해소해 왔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잡범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다 여길 테니.”

“그렇다고 자기가 진짜 백합투괴라고 밝힐 수도 없고요.”

“이때 가짜 백합투괴에 관한 소문을 저잣거리에 슬쩍 흘리는 거야. 진짜 백합투괴가 추적해 올 수 있도록.”

우리는 그때 놈을 잡으면 되는 거지.

남궁정혁의 계획에 묘화가 무릎을 탁, 쳤다.

“그것참 좋은 생각입니다. 아주 뛰어난 묘안이군요. 부하들에게 시켜 당장 실행하겠습니다.”

“그래.”

후후, 뛰는 도둑 위에 나는 천마 있느니라.

볼 일이 마친 남궁정혁이 묘화의 배웅을 받으며 옥화루를 나서는데 한쪽에서 우당탕,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손님, 이곳은 기예를 파는 청루이옵니다. 예의를 지켜 주십시오. 몸을 파는 계집을 원하시면 홍루로 가시던지요.”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리 튕기는 것이냐, 많은 돈을 냈으니 그 값을 해야 할 것 아니냐.”

대충 들어 보니 또 어느 진상이 술에 취해 기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 같다.

또 내가 저런 꼴은 못 참지.

남궁정혁이 묘화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간 먹은 술값도 할 겸 내가 처리해 줘?”

“이곳 일은 이곳 사람들이 처리해야죠. 더는 배웅 나가지 못함을 이해해 주십시오.”

*   *   *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저잣거리 곳곳에서 백합이 발견되었고, 사람들은 백합투괴를 욕하기 시작했다.

사소한 물건을 훔치는 천하의 잡범이라고.

내 의도대로 된 거지.

지금쯤 진짜 백합투괴는 속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일 거다.

감히 어느 놈이 본인을 사칭하는지가 궁금해서.

아마 분해서 잠도 잘 못 자지 않을까?

“남궁 도련님, 오셨습니까?”

다음 단계를 논의하기 위해 옥화루로 가니 묘화의 모습이 이상하다.

평소 침착한 그녀답지 않게 당황한 티가 역력하다.

“무슨 일이 있나?”

“왕소단, 양민, 홍인걸, 세 사람의 행방이 어제부터 묘연합니다.”

“……?”

이건 또 뭔 개소리래?

황당해하는 남궁정혁에게 당황한 묘화가 말했다.

“각자의 가문에서도 그들의 행방을 모르는 걸 보니 아무래도 세 사람 모두 실종된 것 같습니다.”

이건 계획에 없는 일인데.

어린아이도 아니고 다 큰 어른들이 왜 실종돼?

그것도 세 명 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난 거지?’

세 사람이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 한날에 똑같이 사라지다니.

다 큰 성인인 그들이 손잡이 사이좋게 가출했을 리도 없을 터.

그렇다면 정황상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다.

“……납치?”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세 사람이 백합투괴 용의자란 것 말고 다른 연결고리가 있나?”

묘화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아무런 친분이 없습니다.”

“그들 외에 실종된 다른 사람은?”

“그들만 사라졌습니다.”

이러면 백합투괴와 관련된 일 때문에 납치당했다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다.

근데 어떻게 알고?

그들이 용의자라는 걸 아는 사람은 우리 측에서 정학우와 서문호.

하오문 측 사람 중엔……?

남궁정혁이 쳐다보자 그 의미를 이해가 묘화가 고개를 숙였다.

“송구하옵니다.”

“……?”

“도련님이 제시한 조건에 따라 용의자 분류 작업을 한 부하 중 한 명이 어제부터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쯧쯧, 거기서 정보가 샜네.

묘화, 이번엔 좀 실망이야.

“하오문은 문도들 사이의 유대감이 돈독하기로 유명하다더니 그것도 아닌가 보군.”

“……모두 다 제 불찰입니다.”

그 부하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간덩이가 큰놈이로다.

조직을 배신한 대가는 쓰디쓴 것이건만.

중원이 아무리 넓다 한들 하오문의 눈을 피해 어디로 도망가려고.

잡히면 큰 벌을 받을 텐데.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들겼다.

똑똑.

“들어와.”

방으로 들어온 하오문의 한 조직원이 묘화에 귀에 대고 속삭이자,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 부하의 시체가 애인 집 뒤뜰에서 발견되었다는군요.”

근데 이미 대가를 치렀다네?

“고문의 흔적이 있었나?”

“심장만 깔끔하게 쪼개졌답니다.”

“그러면 정황상…….”

“어떤 대가를 보장받고 정보를 줬는데 살해당한 것 같습니다.”

악독한 놈들이로다.

자신을 도와준 조력자를 죽이고 사회적 위치가 있는 용의자들을 한꺼번에 납치하다니.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과격하게 일을 벌이는 건 정파의 방식은 아니다.

평판을 중요시하는 정파 놈들은 이렇게 처리하지 않는다.

왠지 사파의 향기가 솔솔 풍긴단 말야.

그래서 물었다.

“피해자 중 사파와 관련된 자가 있나?”

“저도 사파 쪽 인물이 의심되어 조사해 보았지만 그런 곳은 없었습니다.”

그래? 그것 이상한데.

“다만…….”

묘화가 주먹을 꽉 쥐는 걸 보니 짐작되는 곳이 있는 모양이다.

“일주일 전 옥화루를 나설 때 난동을 피우던 사람을 기억하시는지요?”

“술에 취해 기녀에게 행패를 부리던 그 진상?”

“무공이 꽤 강하길래 뒷조사를 해 보았더니 흑두문 조직원이었습니다.”

“흑두문?”

“안휘성의 중소도시, 온성의 뒷골목을 장악한 패거리입니다. 그들이 근래 부쩍 합비에 자주 왔더군요.”

“그냥 왔을 수도 있잖아. 촌놈들이 대도시 구경하러.”

“술에 취한 다른 조직원이 기녀에게 말한 적이 있답니다. 자기들은 물건을 찾으러 온 거라고.”

“백합투괴가 물건을 훔친 곳 중에 사파는 없다며?”

“없는 게 아니라 도둑맞고도 그 사실을 다른 곳에 알리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

그렇지.

혹시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한 것이라면 도둑맞고도 입 닫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면 남들이 알면 안 되는 중요한 물건이라든가.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자기들끼리 찾으려고 하는 거지.

“걔네들 한 명, 한 명 잡아다 족쳐 보면 알겠지, 찾고 있는 게 백합투괴와 진짜 관련이 있는지.”

“합비에 있던 흑두문 조직원들이 전부 어젯밤 사라진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온성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이 새끼들 봐라, 앞뒤가 딱 맞아 떨어지네.

자기들이 범인이라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는 건가?

이러면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

“학우야, 남궁세가에서 제일 빠른 말이 어떤 거냐?”

내 위패, 내 건물아. 잠시만 기다려라.

내가 너를 곧 구하러 간다.

남궁정혁은 당장 온성으로 달려갔다.

*   *   *

이틀 후, 온성의 한 찻집.

늦은 밤이라 그런지 한산한 그곳에 신체 건장한 세 명의 사내가 들어왔다.

“손님, 무엇을 마시겠습니까?”

“꽃제비차로 주게.”

“저희 가게에는 그런 차가 없습니다.”

“차림표에는 없지만 오랜 친구에게는 내주지 않나, 차갑게 부탁하네. 얼음 동동 띄워서 말야.”

그 말에 찻집 주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오랜 친구, 얼음.

자신이 속한 조직의 암구호였기 때문이다.

“어디서 오신 분들입니다.”

“합비, 묘화가 이곳에 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

남궁정혁이 묘화에게 받은 은색 동전을 내밀자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저는 하오문 온성 분타의 분타주를 맡고 있는 안진석이라고 합니다.”

그가 주위를 살피더니 조용히 아뢰었다.

“당주님의 전서구를 받았습니다. 귀한 분이 오시니 적극적으로 협조하라고 하시더군요.”

당주?

어느 정도 예상을 했지만 하오문 내에서 묘화의 위치가 생각보다 더 높았던 모양이다.

한 지역을 책임지는 분타주가 저리 극존칭을 쓰는 걸 보니.

“저를 따라오십시오.”

그가 안내하는 데로 찻집 뒤쪽에 있는 별채로 갔다.

“흑두문과 관련된 일 때문에 오셨다 들었습니다.”

그 이상은 몰랐다.

눈앞의 사내들이 흑사파와는 어떤 인연으로 엮여 있는지.

알 필요도 없고.

다만 무슨 요구를 하든 협조하라는 명령만 받았을 뿐이다.

“흑두문의 세력이 어떻게 되지? 절정급 이상 고수는 몇 명이나 되고?”

자신이 관리하는 구역인 만큼 안진석은 온성에서 무림 밥 먹는 사람들의 인적사항쯤은 줄줄 꿰고 있었다.

“흑사파의 조직원은 약 50명, 대부분이 낭인 출신으로…….”

그의 입에서 흑사파의 구성원이 몇 명인지, 두목의 실력이 어느 정도쯤인지 술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상입니다?”

눈앞의 사내 반응이 이상했다.

부들부들.

같은 남자로서 질투가 느껴질 만큼 수려한 외모의 저자가 세 명 중 대장인 것 같은데, 그가 눈을 감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설마 흑두문의 세력을 듣고 쫄았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주님이 직접 명하신 만큼 저희 하오문 온성지부에서 필요한 인원을 지원하겠습니다.”

“흑사파 두목이 절정 고수라고? 그것도 이제 갓 절정으로 올라간.”

“예, 사파 쪽에서는 제법 명성이 알려진 고수입니다.”

“그 정보 틀림없는 거야?”

“설마 저를, 아니 하오문의 역량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아니, 너무 어이가 없어서.”

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도 화끈하게 일을 벌였길래 어느 정도 족보가 있는 무림 방파인가 했더니 예전 마교의 일개 지부보다 못하다.

내가 고작 이런 놈들 상대하려고 엉덩이에 땀띠 나도록 말을 타고 온 거야.

고작 이렇게 허접한 놈들한테 내 집 마련의 꿈을 방해받은 거냐고.

그렇게 생각하니 속에서 열불이나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수밖에.

이 정도면 진량현에서 상대했던 송화문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아니 조금은 더 낫나?

“몇 명이나 필요하십니까? 흑두문과 결전을 벌이실 거라면 인근 분타에도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됐어.”

남궁정혁이 딱 잘라 거절하자 안진석은 자신도 모르게 반문했다.

“예에?”

“됐다고, 뒷골목 삼류 양아치 같은 놈들 상대하는 데 도움은 무슨. 우리 세 명이면 충분해.”

“…….”

삼류 양아치라기에 너무 거대한 조직인데요.

흑두문이 삼류 양아치면 사파연맹 사도련은 일류 양아치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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