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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36화 (36/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36화

일반적으로 무인들의 실력을 분류할 때, 삼류 이류 일류 절정 초절정 등등으로 나눈다.

그 기준이 뭘까?

가장 큰 기준은 내공이다.

검기를 쓸 수 있냐, 없냐.

검강을 쓸 수 있냐, 없냐.

아주 틀린 건 아니다.

특별한 기연을 만나지 않은 이상, 내공은 투자한 시간만큼 늘고, 그 시간만큼 초식의 숙련도도 올라갈 테니.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내공이 부족하더라도 초식의 응용력이 더 뛰어나다면?

하수도 고수를 충분히 이길 수 있다.

내가 지금 그걸 정학우를 통해 증명할 거고.

“지금부터 귀를 활짝 열고 내 말을 들어라.”

남궁정혁이 관천악 앞에선 정학우에게 또다시 소리쳤다.

“보폭이 너무 넓다. 넌 키가 작으니까 발 사이를 좁혀.”

“이것들이 아까부터 뭐 하는 거야, 내가 우습냐!?”

자신을 농락한다 여긴 관천악 선공했다.

그의 자신의 무기, 낭아봉을 붕붕 휘둘렀다.

‘……이크’

정학우는 기겁했다.

도련님의 강권에 못 이겨 용기를 내길 했다만, 자신이 어떻게 저자를 이기냐고.

낭아봉에 맺힌 퍼런 강기를 보니 도저히 승산이 없을 것 같다.

‘어머니, 이 불효자는 저승으로 먼저 떠납니다.’

도련님은 귀신이 돼서라도 쫓아다닐 거고요.

정학우가 그렇게 원망하는 순간, 남궁정혁이 외쳤다.

“좌측으로 한 보 이동해서 허리를 앞으로 숙여.”

낭아봉이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뒤로 반보만 이동해서 고갤 오른쪽으로 돌려.”

이번에는 관천악의 찌르기 공격을 피했다.

“제자리에서 허리 높이까지만 뛰어.”

그렇게 남궁정혁의 지시를 따르니…….

‘이게 진짜 되네.’

정학우는 절정 고수의 공격을 모두 피했다.

그것도 꽤 여유롭게.

“이제야 내 말을 믿겠냐?”

“예.”

그렇지, 믿는 자에게 복이 따르리라.

아니, 실력이 느는 건가?

남궁정혁이 다시 외쳤다.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순 없잖아, 이젠 공격이다.”

“아까부터 무슨 개수작이냐?”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관천악은 짜증이 날 수밖에.

척 봐도 자신보다 못한 놈이 이상한 지시를 받고 공격을 다 피하니.

그것이 그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관천악이 전신 공력을 폭발시켰다.

“이것도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피하지 말고 정면에서 부딪혀.”

도련님, 그러기에는 상대의 기세가 너무 매서운데요.

하지만 정학우는 남궁정혁을 믿었다.

그가 설마 자신을 죽게 하겠는가.

“검을 곧추세우고 상대의 공격을 기다려…… 지금이다. 적의 겨드랑이 사이를 노려라. 그곳이 유일한 허점이다.”

“……!”

관천악은 매우 놀랐다.

저놈이 이걸 어찌 알았지?

그의 최고 절초, ‘흑호시강초’를 펼칠 때는 겨드랑이가 무방비 상태가 되는걸.

‘크윽.’

황급히 봉을 회수한 그가 방어에 나섰다.

시점이 약간 늦긴 했지만, 다행히 상대가 자신보다 약하니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 응?

‘……겨드랑이를 공격하는 것 아니었나?’

관천악이 두 눈을 치켜떴다.

공격에 대비해 겨드랑이를 좁혔는데, 상대의 검이 다른 곳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그곳은 바로 턱밑.

‘……왜 여길 공격하지?’

그것이 그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아무리 실력 차가 난다 하더라도 뜻밖의 기습을 막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촤악!

턱 밑으로 들어간 정학우의 검이 관천악의 목을 잘라 버렸다.

“하아, 하아.”

정말 이겼다.

제 검으로 절정고수를 이기고도 아직은 믿기지 않는다.

그가 남궁정혁을 보았다.

“……도련님.”

“잘했다.”

내 ‘지시’대로 잘 따라 주었어.

남궁정혁이 눈도 감지 못한 관척악의 머리통을 보았다.

‘멍청한 놈, 어딜 공격한다고 미리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남궁정혁의 계략이었다.

겨드랑이를 공격하라고 말해 놓고는 ‘전음’으로 따로 명령을 내렸다.

관천악이 겨드랑이를 방어할 때, 딴 곳을 공격하라고.

정학우는 그 지시를 잘 따라 주었고.

“문, 문주님이 죽다니.”

“이제 우린 어떡해야 하지?”

관천악의 흑두문도들이 동요했다.

예상치 못한 패배였는지 많이 놀란 모양이다.

이제 마무리를 지어 볼까.

남궁정혁이 정학우에게 왕소단을 휙, 던졌다.

“잘 보호하고 있어.”

그가 두목의 시체 앞에서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흑두문 무인들에게 말했다.

“자자, 진정하고 내 말 잘 들어.”

분위기 환기 차원에서 박수 친 남궁정혁이 계속 말했다.

“혹시 여기 절정급 이상 고수 더 있으면 손?”

웅성웅성.

흑두문 문도 중에 손드는 사람은 없었다.

“없는 거지? 나 너희들 믿어.”

“뭔 헛소리냐?”

내가 너희들을 일일이 처리하기 귀찮아서 말이지.

척, 남궁정혁이 검을 하늘 높이 들었다.

우우우웅. 그 검이 파르르 떨리더니 어느새 파란색 검기가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며 서서히 빛나기 시작했다.

흡정마공 덕에 내공은 확실히 늘긴 했단 말이야.

단전을 출발한 내공이 전신 혈도를 맹렬히 달렸다.

그 모든 기운을 검에 응축시켜 한순간에 폭발시켰다.

파사사삭!

순간 눈이 부실만큼 남궁정혁의 검이 대기를 찢었다.

검에서 쏟아져 나온 반원 모양의 검기가 흑사파 무인들을 덮쳤다.

“…….”

“…….”

고요하다.

조금 전만 해도 시끌벅적했던 공간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투둑둑툭.

흑사파 무인들은 모두가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몸이 반으로 갈렸다.

“헉.”

남궁정혁의 부하들은 입을 너무 크게 벌리느라 턱이 빠졌다.

“잔챙이들은 사방으로 도망치기 전에 한 방에 죽이는 게 좋아.”

누가 그걸 몰라서 안 하나요.

못하니깐 안 하는 거지.

“대물은 낚시로 잡지만 피라미는 족대로 한꺼번에 잡는 것과 같은 이치야.”

시산혈해 속에 홀로 우뚝 서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하는 남궁정혁을 보며 왕소단을 직감했다.

“좆됐다.”

그것도 아주 크게.

*   *   *

남궁정혁 일행은 곧바로 하오문 온성 분타로 돌아왔다.

그전에 의원에 잠깐 들러 양민, 홍인걸을 던져 놓았고.

두 사람은 고문 후유증이 심한지 발견했을 땐 이미 실신 상태였다.

의원이 알아서 치료하겠지.

남궁정혁은 발목을 붕대로 꽁꽁 동여맨 왕소단에게 직접적으로 물었다.

“귀영신투와는 어떤 관계냐?”

허를 찔린 왕소단이 당황했다.

“스, 스승님을 아시오?”

알지, 잘 알다마다.

이십 년 전 무림을 종횡무진할 때 여러 인물과 인연을 맺었다.

그중 한 명이 당시 천하제일대도로 명성을 날리던 귀영신투고.

정파놈들한테 쫓기던 그를 구해 준 것을 계기로 가끔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싸움은 지지리 못해도 뜀박질 하나는 기가 막힌 친구였지.

그 친구의 흔적을 아까 흑두문에서 왕소단이 도망칠 때 봤다.

쩔뚝거리긴 했지만 딱 귀영신투의 경공이더라고.

“그의 소망은 이루어졌나?”

“……?”

“황실 비고 말이야.”

“그것까지 어떻게?”

그는 술에 취하면 항상 떠들어 댔었다.

자신의 마지막 소원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보물이 있고, 가장 경계가 삼엄한 황실 비고를 터는 것이라고.

“사부님이 유언이었소.”

“뭐가?”

“비록 자신은 실패했지만, 나라도 꼭 황실을 털어서 스승님의 한을 풀어 달라고 하셨소.”

비장하게 말하는 왕소단을 보니 피식, 실소가 나온다.

참 대단한 가업 나셨다.

무슨 도둑질을 대대손손 내려서 하냐.

남궁정혁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위패 어디 있냐?”

“……위패?”

“네놈이 남궁세가 초대 가주의 위패를 훔쳐 갔잖아.”

“남궁세가에서 나오신 분이었소?”

어째 무공이 범상치 않더라니.

남궁세가에서 이 정도로 젊은 고수라면…….

“……남궁강혁?”

따악!

왕소단이 머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했다.

남궁정혁이 손가락 두 개를 뾰족하게 새워 꿀밤을 먹였기 때문이다.

이게 사람을 헷갈려도.

남궁강혁인지, 뭐시긴지 아직 얼굴도 못 봤다.

“남궁정혁이다.”

“……남궁세가의 수치?”

따악, 꿀밤을 한 대 더 먹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도둑놈한테 그런 소리 들으면 기분 나쁘지.

“난 네놈이 도둑질하든 말든 상관없으니깐 위패만 내놔.

그 말에 왕소단의 눈에서 희망이 반짝였다.

안 그래도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지가 고민이었다.

하필 붙잡혀도 남궁세가라니, 천하제일세가 남궁세가라니.

이건 돈으로 입을 막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공으로 이길 수는 더더욱 없고.

근데 먼저 거래를 제안해 오네?

과연 별종이로다.

“물론 추가 조건이 하나 더 있긴 하지.”

“……?”

남궁정혁이 친한 척 왕소단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지금부터 형이 하는 말 잘 들어.”

“…….”

내가 너보다 나이 많다. 이놈아.

그래도 왕소단은 반박하지 않았다.

무림에선 싸움 잘하는 사람이 형이긴 하지

남궁정혁의 요구사항은 간단했다.

“남수단으로 들어와라.”

그러자 왕소단이 대답하기도 전에 주변에서 난리가 났다.

특히 서문호가 그랬다.

“저 사람은 도둑질을 범죄자입니다. 정의로운 남수단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어째 한동안 잠잠하다 했더니 저놈의 정의 타령.

고질병이 도졌다.

그는 뭐가 그리 맘에 안 드는지 침까지 튀겨 가며 열변했다.

“저자와 한솥밥을 먹느니 차라리 제가 남수단을 탈퇴하겠습니다.”

어? 그래?

그거 반가운 소리다.

“네 입으로 나간다고 했다. 내가 쫓아낸 거 아니니까, 어디 가서 내 욕하고 다니지 마라.”

“그, 그게…….”

“채 한 달은 못 채웠지만, 퇴직금 준다 생각하고 한 달 녹봉은 다 줄게.”

이정도면 훌륭한 고용주 아니냐.

“단주님, 어찌 저처럼 정의로운 무인과 변태 같은 도둑놈 중에서 도둑놈을 선택할 수 있단 말입니까?”

서문호는 상처받은 얼굴로 항변했다.

변태 같다는 말에 왕소단의 눈초리가 파르르 떨리는 거로 보아 그도 상처받은 것 같고.

이것이 일타이피?

정학우도 왕소단이 그리 마음엔 들지 않는 것 같다.

“도련님, 굳이 도둑까지 받을 필요가 있을까요?”

응, 있어.

“어디든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그의 능력이라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전생에서도 왕소단의 스승인 귀영신투와는 상부상조하는 관계였다.

그를 괴롭히거나 열 받게 하는 놈이 있으면 내가 대신 패줬다.

귀영신투는 내가 원하는 물건들을 구해다 줬고.

덕분에 구하기 힘든 영약이나 무기 등을 쉽게 구했지.

“어른들이 항상 말하잖아, 기술 배우라고. 왜 그러겠어? 특수 능력을 지닌 기술자는 어디 가서든 대접받는 법이거든.”

“저자가 또 도둑질하면 어떡합니까? 방관하실 겁니까? 두고만 보실 거냐고요?”

“내가 단원들의 자유로운 사생활은 보장하는 편이라, 너희들한테도 간섭 안 하잖아.”

“도련님!”

한편 이 상황을 지켜보는 왕소단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은 아직 승낙도 안 했는데 왜 지들까지 지지고 볶고 싸운담?

자신이 당연히 승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 자존심 상해.

그도 어딜 가면 항상 대접받는 사람이었다.

“저는 남수단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왕소단의 단호한 거절을 남궁정혁이 다시 거절했다.

“아니, 넌 꼭 남수단에 들어와야 해.”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요?”

“내가 지금이라도 저잣거리 한복판에 나가서 혓바닥 좀 풀어 볼까? 천금전장의 장주가 백합투괴라고. 남궁세가 정문 한복판에 모가지만 덜렁덜렁 걸려 볼래?”

쳇, 명문정파의 자손이라는 자가 치사하게 협박은.

“근데 그거 진짜냐?”

“……?”

“진짜 고자냐고?”

“……!”

왕소단은 지금 결심했다.

설사 자신의 정체를 까발리더라도 절대 남수단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남의 가장 아픈 상처를 아무렇지도 않게 후벼 파는 저런 자와는 절대 함께할 수 없다.

“표정을 보니 진짜인 것 같네.”

“광견병 걸린 미친개한테 하필 그곳을 물려…….”

남궁정혁이 고개 숙인 왕소단에게 제의했다.

“남수단에 들어오면 내가 고쳐 줄게.”

“……?”

이걸요?

어떻게요?

이게 치료가 가능한 거였나.

순간 혹했던 왕소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치료할 수 없는 건 제가 제일 잘 압니다.”

자신이라고 이 병을 치료할 생각 안 해 봤겠나.

더구나 돈이라면 넘치도록 있다.

중원에 용하다는 의원을 백방으로 수소문해 찾아다녔지만, 모두가 고개를 흔들었다.

불치병이란다.

“천하에서 단 한 명, 내가 아는 그 사람이라면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그자가 누굽니까?”

남궁정혁의 머릿속에 한 남자가 떠올랐다.

천수마의.

죽은 자의 영혼도 끌어와 갖다 붙이는 재주를 지닌 그라면 남성 의학에도 능통하지 않을까.

실제로 오줌발이 시원찮은 마교의 늙다리들이 그의 방 문턱을 닳도록 넘나 드나들었다.

“나를 믿어라. 내 너에게 인생의 새로운 즐거움을 알려 주마.”

“…….”

자신만만한 태도와 말투.

즐거움이라는 단어에 고간이 꿈틀거리는 기분이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찾아오는가.

이성의 영역이 아니다.

가슴이 시킨다.

저자의 말을 믿으라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 믿어 보자고.

“나와 함께 하겠는가, 왕소단.”

왕소단은 남궁정혁이 내민 손을 덥석 잡았다.

“예, 함께하고 싶습니다.”

정학우와 서문호가 인상을 썼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너도 이제부터 내 새끼다.

“그래서 위패는 어디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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