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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37화 (37/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37화

전장은 금융업이다.

하는 일은 크게 세 가지.

첫 번째, 사람들이 맡긴 돈을 보관해 준다.

세상이 워낙 각박하고 도둑들이 설치고 다니다 보니 제 발로 돈 맡기러 오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두 번째,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 준다.

약간의 이자를 받고.

그 금액은 각자의 신용에 따라 다르다.

세 번째, 천장의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한다.

돈을 금고에 보관만 하는 건 큰 의미가 없으니.

왕소단이 이걸 잘해서 큰돈을 벌었단다.

“제가 또 물건 보는 눈은 아주 탁월하거든요. 그게 땅이든, 도자기든, 그림이든. 제가 딱 짚기만 하면 무조건 올랐죠, 여태껏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온성에서 합비로 돌아오는 길.

마땅히 할 말도, 구태여 빨리 돌아갈 일도 없기에 전장에서 주로 하는 일이 뭔지 모르니 저렇게 자기 자랑이다.

그 모습이 눈꼴사나운지 정학우가 작게 속닥였다.

“도련님 말이 맞는데요.”

“……?”

“백합투괴가 자기과시 욕구가 강한 사람이라고 하셨잖아요. 저렇게 온종일 자기 자랑만 하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

우리가 이해해 주자.

같은 남자로서 그의 고통을 이해하잖냐.

너그러이 받아 줘야지.

남궁정혁이 그답지 않은 아량을 베푼 지 5일 후.

남수단은 합비에 도착했다.

“저곳입니다.”

왕소단이 가리킨 곳은 천금전장 바로 뒤에 있는 커다란 언덕이었다.

크르르릉.

그가 열쇠를 꽂자 커다란 바위가 스스로 움직이며 문이 열렸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비밀 금고란다.

“우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천 평도 넘을 것 같은 넓은 공간.

온갖 금은보화들이 가득 차 있었다.

천장에는 작은 태양처럼 빛나는 야명주들이 촘촘히 박혀 있고.

이것들만 다 팔아도 안휘성 절반은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가장 안쪽에 조그만 방이 있었다.

그곳에 있는 물건들은 의외로 소박했다.

밖에 있는 물건들처럼 휘황찬란한 보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왕소단에겐 여기 있는 물건들이 가장 의미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선반까지 짜서 저렇게 전시해 뒀겠지.

“여기 있습니다.”

그가 가장 상단에 놓인 위패를 건넸다.

보니 이렇게 적혀 있네?

- 남궁정인

남궁정인?

초대 가주의 이름인가?

“맞나 확인해 봐.”

남궁정혁이 아무렇지도 않게 휙, 뒤로 집어 던지자 정학우가 기겁하며 그걸 받았다.

그리곤 이내 꼼꼼하게 위패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남궁세가의 위패가 맞습니다.”

남궁정혁이 왕소단에게 물었다.

“정렬 기준이 뭐냐? 저딴 나무쪼가리를 왜 가장 높은 곳에 둔 거냐?”

그가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즐거움이요, 남궁세가 담을 넘을 때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긴장감을 느꼈습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짜릿하네요.”

음…… 아무래도 이 새끼, 진짜 변태 맞는 것 같은데.

남수단엔 왜 이리 제정신 박힌 얘들이 없냐.

그나마 내가 제일 정상이군.

나머지 단원들이 알면 경악할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남궁정혁의 눈에 한 물건이 들어왔다.

“……응? 이건?”

원통형의 막대였다.

“특이하네.”

그 물건의 표면에 새겨진 기하학적 무늬가 그의 흥미를 끌었다.

진법인가?

언뜻 보면 아무 의미 없는 선처럼 보이지만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

남궁정혁은 한때 마교를 통솔했던 절대자답게 진법에도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었다.

전문가라 자부하기엔 손색이 있을지언정 최소한 진법에 빠져 죽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그런 그가 보기에 막대에 새겨진 무늬는 분명 일정한 법칙을 따른 진법을 응용한 것이다.

직접 들어 보니 무게 또한 상당하다.

촉감으로 보아 단순한 철로 만든 건 아닌 것 같고, 만년 한철인가?

흔들어 보니 덜컹거리는 느낌이 나는 것이 안에 뭔가 들어있는 것 같은데

“…….”

오묘하다.

진법은 진법이되 군데군데 맥이 끊겼다.

게다가…….

“……돌아가네?”

막대기는 열 개의 마디로 나뉘어 각각의 부위가 돌아갔다.

틀린 그림 맞추기라도 하라는 건가?

“이거 어디서 난 거냐?”

“흑두문에서 훔친 게 그것입니다. 원래는 다른 물건을 훔치려고 했는데 그걸 보는 순간 눈에 띄어서 가지고 왔죠.”

관천악은 이 물건을 찾으려고 그 난리를 친 건가.

괜한 호승심 돋네.

군데군데 틀린 진법을 보니 뭔가 간질간질하다.

심장에 개미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랄까.

이걸 꼭 맞추고 싶다.

“이거 나 줘.”

왕소단의 입이 삐죽 튀어나오는 거로 보아 주기 싫은 모양이다.

그래도 어쩔 텐가.

내가 가지고 싶다는데.

“남수단 입단 기념 선물로 받을게.”

“그런 건 보통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주는 거 아닌가요?”

“그런 고리타분한 생각을 버려. 너도 이제 남수단 단원이니 네 것은 내 것, 내 것은 내 것이다.”

“…….”

방금 뭔가 발음이 이상했던 것 같은데요.

네랑 내를 확실히 구분해서 해 주시죠.

왕소단은 막대기를 어깨에 턱 하니 걸치고 금고 밖으로 나가는 남궁정혁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뭔가 큰 실수를 한 것 같은데.

벌써 탈퇴하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무를 수 없나.

그런 왕소단의 표정을 본 정학우가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왕소단의 심정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게 들어오지 말라니깐…….

*   *   *

지난밤, 어수선한 마음에 잠을 잘 자지 못해서 그렇나.

두 눈을 감은 남궁도는 관자놀이를 꾸욱 눌렀다.

질끈, 두통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방금 가주실로 몰려온 자들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게 다 가주 때문이요.”

“가주가 덕이 없으니 가문에 횡액이 든 것 아니겠소.”

“왜 아직도 위패를 찾지 못한 것이오? 찾을 방도는 있는 것이오?”

“능력이 부족하면 가문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가주직에서 스스로 내려오시오.”

남궁수와 그의 측근들이 매일같이 찾아와 맹공을 퍼부었다.

가주의 자질부터 시작해서 책임 소재까지 광범위하게 물고 늘어졌다.

‘이번 일은 내 잘못이다.’

문제는 저들의 주장이 틀린 게 아니라는 것.

자신이 가주를 맡고 있을 때 이런 수치스러운 일이 발생하다니.

오롯이 그가 감당해야 할 문제였다.

남이 대신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가주님.”

무영각주 모단수가 가주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왔다.

최근 자신과 함께 현재 상황을 해결하느라 근심 가득했던 그의 표정이 밝다.

설마…….

“위패를 찾았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남궁수가 그의 어깨를 꽉 잡았다.

“해냈구먼, 역시 내가 믿을 사람은 자네밖에 없어.”

“제가 찾은 게 아닙니다.”

“……?”

그럼 누가?

*   *   *

남궁세가 가장 안쪽에 있는 사당.

그곳에 역대 가주들의 이름이 적힌 위패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가장 앞쪽에 하나만 빼고.

짝짝짝짝!

남궁정혁이 그 빈자리를 채우자 큰 박수 소리와 함께 환호가 쏟아졌다.

“정혁 도련님이 이렇게 큰일을 해내실 줄 몰랐습니다.”

“역시 도련님은 가주님의 아들입니다. 피는 못 속이는군요.”

“앞으로 도련님을 칠푼이라고 욕하는 사람이 있으면 제가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눈물까지 글썽였다.

정작 남궁정혁은 아무 감흥이 없었지만.

뭐 대단한 거 했다고 사람들이 이리 많이 모였데?

남궁정혁이 위패를 찾아왔다는 소식에 세가 내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이 사당으로 모였다.

그들의 눈은 남궁정혁에게 고정되어 있어 떠날 줄을 몰랐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흠모의 시선이기도 했다.

아마, 처음이지 않을까.

그들이 남궁정혁을 그렇게 쳐다보는 건.

“…….”

남궁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제 아들을 매우 대견스럽게 바라보았다.

“장하다, 네가 가문의 정기를 다시 세웠구나.”

이 사람의 칭찬을 들으니 내가 뭔가 크나큰 잘못을 한 것 같다.

저놈의 나무쪼가리, 그냥 확 불태워 버릴 것 그랬나.

“네 덕분에 죽어서도 조상님을 뵐 면목이 선다.”

글쎄, 당신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니까.

나를 위해서 한 거야.

남궁수의 뜨거운 시선이 부담스러운 남궁정혁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사람은 어디에 있나?’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뤄 줄 그 사람은 어디 있냐고?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 남궁학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설마 안 왔나?’

까치발까지 들고 찾으니 모인 사람들 가장 끝에 남궁수 일당이 보였다.

다들 손뼉은 치고 있는데 왠지 떨떠름한 표정이네.

위패를 다시 가져온 게 마음에 안 드나?

그래도 얼굴에 그렇게 티 내면 안 되지.

사람들이 오해할 수도 있잖아.

가주를 헐뜯을 기횔 놓쳐 아쉬워한다고.

“길 좀 터 줘요.”

남궁정혁이 사람들 사이를 해치고 남궁학에게 다가갔다.

“약속은 지키시겠죠?”

“……무, 무슨 약속?”

거봐라, 내 이럴 줄 알았다.

남궁정혁이 품속에서 서찰 한 장을 꺼냈다.

위패를 찾아오면 새 건물을 주겠단 내용증명서였다.

남궁학의 지장까지 찍혀 있는.

“벌써 치매가 오셨나?”

남궁정혁이 그 서찰을 남궁학 눈앞에 들이대자, 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렇게 약속을 지키기 싫으실까?

그럼 여기서 확답을 받아야겠다.

남궁정혁이 주위를 둘러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저는 괜찮다고 하는데 남궁학 장로님이 위패를 찾은 포상은 하시겠다네요. 남수단 전용 건물로 서른 명이 동시에 지낼 수 있는 건물을 주겠다는데 제가 받아도 되겠습니까?”

말이 끝남과 동시에 또다시 큰 박수가 터졌다.

“장로님! 남궁세가에서 가장 좋은 건물로 주세요.”

“아무렴, 이렇게 장한 일을 했는데 당연히 그러시겠지.”

남궁학, 이렇게까지 했는데 입을 싹 닦진 않겠지?

그땐 내가 당신을 때려도 무죄야.

남궁세가 사람들도 다 이해할 만큼.

*   *   *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른 느낌이다.

“여기 모래가 모자란다, 좀 더 갖다 줘.”

“망치질 똑바로 안 해? 나무 사이에 틈이 없어야 집이 튼튼하다.”

남수단 전용 건물이 새로 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궁학은 약속을 지켰다.

약 서른 명이 동시에 지낼 수 있는 5층 전각에 연무장까지 딸린 건물을 새로 내줬다.

근데 매우 낡았더라고.

문을 삐걱거리고 지붕에는 틈이 있어 비가 오면 빗물이 샐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남궁학이 수작을 부린 것 같았다.

약조했으니 지키지 않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순순히 따르자니 배가 아프고.

그래서 고심 끝에 지금 자리를 내준 것 같다.

끝까지 치사하기는.

‘뭐, 크게 상관은 없지만.’

그런 이유로 기존의 전각을 허물고 새로운 전각을 지는 중이다.

차라리 잘됐지.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새로운 남수단도 새로운 건물에서 시작하는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우리에겐 왕소단이 있으니깐.

건축자금은 그가 냈다.

남수단에 들어오려면 입단비가 필요하다고 금자 삼백 냥만 내라고 했더니, 군말 없이 가져다줬다.

내가 호구, 아니 물주…… 이것도 아닌가.

어쨌든 단원은 제대로 뽑은 셈이지.

“도련님, 이런 상황도 고려해서 왕소단을 남수단에 넣은 겁니까?”

처음엔 왕소단에게 부정적이던 정학우도 지금은 그를 좋게 봤다.

왕소단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인 줄 알았으니까.

그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라졌지.

왕소단이 돈을 잘 벌지만, 더 잘 쓴다는 걸 이제는 알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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