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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38화 (38/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38화

내가 위패를 찾은 후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한 질문이 이거다.

“백합투괴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그는 어디에 있습니다.”

답해 줄 수 없는 질문이기도 했다.

내가 어떻게 내 입으로 백합투괴의 정체를 밝힐 수 있겠는가.

그가 천금전장의 왕소단이라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하다고, 이렇게 말하기로 입을 맞췄다.

“극악무도한 흑두문이 백합투괴의 장물을 노리고 총 ‘네 명’을 납치했다.”

남궁정혁이 위패를 찾는 과정에서 그 ‘네 명’을 구했고, 억울한 피해자 왕소단은 남궁정혁의 협의에 감동하여 남수단 자진 입단했다고.

그렇게 둘러댔더니, 위패를 찾아 갑자기 내 신용도가 확 올라갔는지 사람들이 믿더라고.

건물이 지어지는 걸 지켜보던 정학우가 문득 물었다.

“왕소단이 정말 약속을 지킬까요?”

뭐, 그것도 지켜보면 알겠지.

사람들에게는 백합투괴가 자신의 죄를 눈물로 반성하고 도둑질에서 손 씻었다고 전했다.

사실 나야 왕소단이 도둑질을 하고 다니건 말건 별 상관없었다.

내 물건만 훔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도련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죠.”

“단주님, 우리는 정의의 수호자가 아니었습니까?”

근데 정학우와 서문호가 끝까지 반대했다.

자신들은 현역 도둑과는 함께 할 수 없다고.

혹시나 다른 곳을 털다가 또 잡히면 남수단까지 같이 욕먹는다나.

들어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왕소단에게 도둑질을 그만두게 했다.

그 과정에서 훔친 장물들도 다시 원주인들에게 돌려주었고.

덕분에 지난 한 달간 물건을 되찾은 피해자들이 남궁세가까지 찾아와 고마움을 표했다.

한데 몇몇은 그냥 무시했다.

괘씸해서 왕소단에게 다시 훔쳐 오라고 시킬까 하다가 착한 내가 그냥 참았다.

내가 이렇게 너그러운 사람이다.

“왕소단이 먹고살기 힘들어서 도둑질한 것도 아니고 약속 지키게 해야지.”

“어떻게요?”

“걔가 시간이 남고 할 일이 없으니까 도둑질이나 하고 다닌 거야.”

삶의 여유가 있고, 억눌린 욕망도 동시에 있으니 나쁜 길로 빠질 수밖에.

이럴 땐 딴생각 못 하게 무조건 굴리는 게 최고다.

“왕소단도 너희들하고 같이 훈련하잖아. 집에 가서 자기 바쁠걸.”

“그래도 합숙은 안 하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왕소단은 본업이 있으니 남궁세가 안에서 합숙까지 같이할 수는 없었다.

해서 일과 시간을 마친 저녁에 남궁세가로 들어와서 수련을 시켰다.

팔다리가 후달달 떨릴 때까지.

자고로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것 아니겠는가.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집으로 가자마자 곯아떨어질 거다.

이제는 자기가 피곤해서라도 도둑질 안 할 거고.

아니, 못 하는 거지.

*   *   *

아침, 점심, 저녁으로 무공 수련만 하던 남궁정혁에게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이번에도 안 맞네.’

틀림 그림 맞추기.

틈틈이 관천악이 도둑맞았던 그 막대기를 가지고 놀았다.

분명 진법을 응용한 그림 같은데 맞추기가 어렵네.

뭔가 하나만 풀리면 술술 풀릴 것 같은데, 그 하나의 느낌이 안 온다.

그래서 더 도전 정신이 샘솟는 거지.

‘대체 안에 뭐가 들었길래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었을까?’

생각 같아서는 이놈의 막대기 확 부숴 버리고 싶은데 만년한철이라 그것도 어렵다.

만년한철은 검강으로만 자를 수 있다.

설사 자를 수 있다 한들 안에 있는 내용물이 훼손될 수도 있고.

그렇게 막대기를 붙잡고 한참을 씨름하는데 정학우가 손님을 데려왔다.

“단주님, 담양에서 오신 유중원 대인입니다.”

수수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나이도 훨씬 많은 그가 남궁정혁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남궁 공자 덕분에 도둑맞았던 그림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죽은 아내를 그린 초상화지요.”

아, 왕소단이 훔친 장물을 돌려준 것 때문에 왔나 본데…… 늦게 왔네.

남궁정혁의 고개가 삐딱하게 꺾였다.

뭔가 심히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온 게 불만은 아니고.

‘……빈손이네.’

이제껏 왔던 사람들은 다들 양손 두둑이 선물을 들고 왔다.

값비싼 술, 비단, 등등 말이다.

그런데 이 노인은 고맙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안 들고 왔다.

그렇다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선물을 준비 못 한 것도 아닐 테고.

왕소단이 부잣집만 털지 않았는가.

“대인께서는 청빈한 삶을 추구하시나 봅니다.”

“네?”

“물질적으로 초연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차∼암 보기 좋습니다.”

“허허, 속세의 것에 연연하지 않는 삶을 살긴 하지요.”

게다가 눈치까지 없다.

내가 그런 뜻으로 말했겠냐.

남궁정혁의 말뜻을 이해한 정학우가 작게 속닥였다.

“말조심하십시오. 유중원 대인은 기관진식의 대가로 황궁의 증축에도 참여하신 분입니다. 조정에 많은 연줄이 있고요.”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 빈손으로 온 거였어?

사회생활도 할 만큼 하신 분이.

“인사 잘 받았습니다. 조심히 살펴 가십시오.”

명백한 축객령, 집으로 가라고 등을 떠밀었는데도 유중원은 그 자리에 서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궁정혁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오른손을 말이다.

“재밌는 물건이군요.”

응? 이거요?

남궁정혁이 손에 든 물건을 들어 보였다.

그의 손에는 그 막대기가 들려 있었다.

“제가 자세히 좀 봐도 될까요?”

얼마든지.

막대기를 건네자 유중원이 그것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태을건곤진법이라…… 요새는 잘 쓰지 않는 진법인데 왜 이런 식으로 새겨 넣었을까요?”

괜히 명성을 날린 건 아닌가 보다.

한 번 본 것만으로도 진법의 정체를 파악하다니.

“그림을 맞출 수 있겠습니까?”

“잠시만요.”

그가 손을 놀려 위에서부터 그림을 맞춰 내려가기 시작했다.

중간중간에는 헷갈리는 부분이 있는지 고민해 가며.

약 반 각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가 열 번째 마디를 돌리는 순간, 철컥.

맨 위에 있는 덮개가 열렸다.

“여기 있습니다.”

막대 속을 들여다보니 돌돌 말린 종이가 있었다.

“이만 저는 가 보겠습니다.”

유중원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때론 기이한 물건이 분란을 일으키기도 하는 법이죠. 방금 일은 저에게 없었던 일입니다.”

진법 맞춘 것을 모른 척해 준다는 말이다.

저렇게 알아서 빠져 주면 나야 고맙지.

‘아아, 남궁정혁아,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고작 선물 따위에 눈이 멀어 저런 인격자를 몰라보다니.

“문호야, 귀인을 대문 밖까지 배웅해 드려라.”

대인에게 고맙다고 거듭 인사한 남궁정혁은 집안으로 들어와 막대기 속 종이를 꺼내 보았다.

누렇게 변질된 종이의 상태로 보아 막대기 속에 봉인된 지 최소 몇십 년은 된 듯했다.

삭은 종이가 행여나 찢어질까, 돌돌 마린 종이를 살살 펴 보니.

“……!”

초반부터 살벌한 내용이 적혀 있다.

- 연 자여, 목숨이 아깝다면 지금이라도 이 서찰을 불태워 버리길 바란다.

이 글을 적은 사람의 의도가 진짜 이 서찰을 불태워 버리길 원했다면 그건 실패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하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

이 글귀를 보면 관심 없던 사람도 오히려 더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건 남궁정혁도 마찬가지.

더구나 그는 타고난 반골 중의 반골 아니던가.

뭔 대단한 내용이 적혀 있길래 이런 경고가 있나 싶어, 오히려 흥미를 느끼면서 서찰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   *   *

인도에서 넘어온 달마대사가 소림사를 창건한 이래로 시작된 무림의 역사가 천 년.

수많은 영웅이 하늘의 별처럼 떠올랐다가 유성처럼 사라졌다.

그들의 이야기는 신화나 전설이 되어 후대로 전해져 왔고, 그건 비단 사람만은 아니다.

그 영웅들이 썼던 신비하고 기이한 무기들도 역사의 한 막을 장식했다.

근데 그 이야기가 이 서찰에 쓰여 있었다.

“주인을 죽이는 검, 주살검이라…….”

오래전 한 장인이 있었다.

뛰어난 실력으로 그 당시 모든 대장장이의 존경과 추앙을 한 몸에 받는.

그런 그에게 왕이 명령했다.

- 천하에서 가장 단단하고 날카로운 검을 만들어 바쳐라.

하지만 장인은 거부했다.

백성을 보살피지 않고 전쟁만 벌이는 왕이 싫었기 때문이다.

오만한 왕은 분노했다.

한낱 대장장이 주제에 천하에서 가장 높은 자신의 명을 거역하다니.

즉시 병사를 파견해 그의 일가족을 인질로 잡고 장인을 협박했다.

- 검을 만들지 않으면 네 가족을 죽이고 너도 죽이겠다.

장인은 협박에 못 이겨 즉시 작업에 착수했다.

화로에 불을 붙이고 쇳물을 녹여 검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눈에서는 핏물이 흘렀다.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은 이미 자신의 가족을 죽였고 자신도 검을 완성하는 순간 죽일 거라는 걸.

폭군인 왕은 이 세상에서 지금 만드는 검보다 더욱 뛰어난 검이 나오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백일의 작업 끝에 검이 완성되었다.

장인의 한과 독기가 집약된 마검이기도 했다.

- 오, 걸작이구나. 보는 것만으로도 시력이 상할 것 같은 예기를 품고 있어.

장인이 왕에게 검을 건네는 그 순간.

- 커억!

장인이 왕의 심장에 검을 박아 넣었다.

가족의 복수였다.

그가 자신 인생 최후의 역작을 완성한 이유이기도 했다.

결국, 왕은 죽고, 왕을 죽인 장인도 죽임을 당했다.

이후, 시대를 거쳐 그 검을 여러 주인을 만났다.

권문세가의 후계자부터 거리를 떠도는 거지까지.

비록 그들의 출생은 다를지라도 결말을 같았다.

천하제일인.

그 검을 주인이 된 자는 반드시 중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검을 두려워하고 꺼렸다.

검의 주인들이 천하제일인이 된 직후, 마치 저주라도 받은 듯 모두 어이없게 죽었기 때문이다.

오백 년 전, 천하제일인으로 칭송받았던 검제는. 밥을 먹다 음식이 식도에 걸려 질식사했다

삼백 년 전, 중원을 공포로 떨게 했던 살성, 검귀는 길 가다 참외 껍질을 밟고 미끄러져 뒤통수가 깨져 죽었다.

백 년 전, 여인으로서는 최초로 천하제일인이 되었던 검후는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을 맞고 죽었다.

가장 최근에 죽은 사람은 오십 년 전, 정천맹의 맹주이기도 했던 검존.

그는 애인과 뜨거운 밤을 보내다 복상사했다고 전해진다.

당대 천하제일인들이 죽을 만한 이유는 절대 아니었다.

그들이 바보도 아니고 고작 그런 이유로 죽겠는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공통점이란 같은 검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이런 연유로 그 검에 붙은 명칭이 주살검.

주인을 죽인다는 뜻이다.

“그깟 미신을 믿다니, 단순한 우연의 일치겠지.”

서찰의 작성자는 오십 년 전, 정천맹의 군사였던 제갈헌.

주군을 어이없이 잃은 허탈감에 이 글을 쓰고 막대기 속에 넣어 놨단다.

“마지막엔 지도가 그려져 있군요.”

정학우가 손가락으로 짚은 곳을 보니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이 그려져 있다.

섬 이름이 비양도?

제갈헌이 이곳에 저주받은 마물, 주살검을 숨겨놨단다.

한 사람으로서는 주살검을 파괴하고 싶었으나, 어쨌든 그도 무공을 익힌 무인.

뛰어난 성능의 무구를 차마 제 손으로 없앨 수는 없었기에 이렇게 봉인시켜 놨다고.

- 연자여, 주살검을 취하는 것은 그대의 자유지만, 각오하라. 그 대가는 목숨이라는 것을.

서찰을 끝까지 읽은 남궁정혁과 정학우의 눈이 마주쳤다.

“그렇다네요.”

“그렇군.”

“어쩌실 겁니까?”

뭘 당연할 걸 물어.

“여기서 비양도까지 얼마나 걸리냐?”

집에 궁둥이 좀 붙이고 진득하게 수련 좀 하려고 했더니 상황이 안 도와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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