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39화 (39/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39화

사람들은 말한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장담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 중 진정한 장인은 없다고.

본인이 그 경지에 도달해 보지 못했으니 그딴 헛소리를 내뱉는 거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라.

도구가 중요하지 않겠나?

실력이 비슷한 사람끼리 싸운다면 누가 이기겠냐고?

당연히 도구가, 무기가 좋은 사람이 훨씬 더 유리하다.

뭘 하든 장비가 받쳐 줘야 하는 법이지.

내가 지금 비양도로 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련님, 주인님을 잡아먹는 검이라는 데 괜찮겠습니까? 자칫 도련님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정학우는 가는 내내 이 소리다.

소심한 놈, 무인이라는 놈이 저리 기가 약해서야.

“그딴 건 다 헛소리야, 검은 단순한 고철 덩어리다. 단지 더 날카롭냐, 덜 날카롭냐의 차이만 있을 뿐. 검이 무슨 수로 사람을 죽이겠냐?”

“그래도 그 검의 주인들이 진짜로 다 죽지 않았습니까?”

“우연의 일치야, 아니면 잘못된 소문이 퍼진 걸 수도 있고.”

“이 세상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일이 종종 일어나곤 합니다.”

……그건 그렇지.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당장 나만 해도 이십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환생하지 않았는가.

‘…….’

갑자기 궁금해지네.

이번 생에서도 죽으면 또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는 건가?

그렇다고 일부러 죽어 볼 수도 없고.

“그나저나 비양도는 정말 멀군요. 배를 타고 가는 것도 이제는 지겹습니다.”

내리쬐는 햇볕은 손으로 가리는 정학우.

그의 말에 남궁정혁도 동의했다.

“그러게 말이다. 제갈헌, 그 양반은 하필 검을 숨겨도 왜 그리 먼 곳에 숨겼대?”

비양도는 동해안에 있었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포구에서 세 시진이나 걸리는 먼바다에.

돈 걱정은 없기에 가장 빠른 배를 빌렸는데도 그렇게 걸린단다.

돈은 왕소단이 주었고.

비양도에 따라올래, 여행 경비를 내놓을래, 물었더니 고민도 하지 않고 돈을 내놓았다.

그럴 줄 알고 선택권을 준 거긴 하지만.

자기는 거기까지 갈 시간에 일하는 게 훨씬 더 이득이란다.

덕분에 남궁정혁과 그의 부하들은 지금 동해안 어느 망망대해를 지나고 있었다.

작은 점처럼 보이던 육지도 어느새 보이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봐도 오직 파란 바닷물만 넘실거릴 뿐.

언제쯤 도착할까, 이제 반은 왔나?

남궁정혁이 지루하단 표정으로 하품하자 배의 선장이 충고했다.

“아직 두 시진은 더 가야 하니, 잠이라도 자 두십시오, 파도가 그리 거칠지는 않지만, 뱃멀미가 올 수도 있습니다.”

물론 남궁정혁은 무시했다.

촌스럽게 뱃멀미라니.

그딴 건 배를 처음 타 보는 사람이나 하는 것 아닌가.

“사실 저는 아까부터 속이 울렁거립니다.”

근데 그런 촌놈이 여기 있었네?

“배 처음 타는 거였냐?”

“강이나 호수에서 잠깐 타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오래 타는 건 처음입니다.”

정학우의 눈 밑이 점점 까매지는 걸 보니 속이 많이 안 좋은가 보다.

결국, 그는 배 난간을 붙잡고, 배 타기 전에 먹은 음식을 토했다.

“욱…… 우욱……!”

물고기들만 포식하겠네.

남궁정혁은 그런 정학우의 등을 직접 두드려 주었다.

“너무 고마워하지는 않아도 돼.”

이 정도면 자상한 윗사람 아니냐.

내가 사람들한테 막 하는 것 같아도 내 사람만은 확실하게 챙긴다.

이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으니깐.

더구나 정학우는 이 몸의 원래 주인이 남궁세가의 칠푼이라 불리며 무시당할 때부터 따르던 부하 아닌가.

의리에는 의리로 보답하는 법이다.

“도련님은 괜찮으신 겁니까?”

“당연하지.”

나야 천마이던 시절에 배를 타고 바다를 누빈 적이 있다.

저 멀리 한반도부터 시작해서 동영까지 가 봤으니.

그러니 그까짓 뱃멀미쯤이야 남의 일이다…….

“……!”

분명 그래야 하는데.

“내가 왜 이러지?”

남궁정혁도 속이 슬슬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하는 그를 보며 정학우가 말했다.

“도련님도 바다에서 배 타 본 적이 없잖아요.”

젠장, 나도 처음인 거였냐…… 우욱.

결국, 남궁정혁도 배 난간을 붙잡고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출발하기 전 밥을 조금만 먹을 걸 그랬다.

“웩…… 우에엑.”

아니, 아예 안 먹었어야 했나.

“욱…… 우우욱.”

“웩…… 우에엑.”

남궁정혁과, 정학우,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물고기에게 밥을 주자 서문호가 그 모습을 실망스럽다는 듯 쳐다보았다.

“애도 아니고 다 큰 어른들이 무슨 추태입니까, 오늘만큼은 여러분이 저와 같은 단원이라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너는 괜찮냐?”

“저는 배 자체를 오늘 처음으로 타 보지만 그딴 것 하지 않습니다. 적응력이 좋은 편이죠.”

하지만 일각 후, 서문호도 결국 토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가장 많이.

그가 밥을 가장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   *   *

“도착했습니다.”

아이고 죽겠다.

남궁정혁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배에서 겨우 내렸다.

뱃멀미에 하도 시달려서 그렇나.

육지에 왔는데도 지진 난 것처럼 발밑이 흔들리는 것 같다.

하여간 이놈의 빌어먹을 몸.

이제 겨우 다 적응했나 싶었는데 아직도 불편한 데가 많다.

“도련님, 저는 제갈헌이 왜 이곳에 주살검을 숨겼는지 알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다.”

정학우와 남궁정혁 사이에서 서문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이곳에 숨겼는데요?”

그는 하도 토를 해서 입에 게거품 문 자국이 선명했다.

“샘나서지.”

“예?”

“중원 본토가 얼마나 넓냐, 그 넓은 땅에 검 하나 숨길 데가 없어서 여기까지 왔겠냐? 자기가 갖기에는 꺼림칙하고 남이 갖는 걸 보기엔 배가 아플 것 같아, 이 먼 곳에 가져다 놓은 게 분명하다.”

주살검을 가지려는 자, 생고생이나 해봐라.

뭐, 이런 거지.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건 제갈헌, 그 양반이 쪼잔한 성격일 수도 있다는 거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대체로 그런 특징들이 있더라고.

과거에 집착하고, 사소한 거에 삐지고,

“분명 그럴 성격일 거야.”

자신의 추측을 확신하며 고갤 끄덕이는 남궁정혁을 향해 정학우가 물었다.

“어쩌시겠습니까? 바로 주살검이 있는 곳은 찾으실 겁니까?”

“글쎄, 어쩔까?”

원래 계획은 이랬다.

비양도에 도착하자마자 지도에 그려진 그림을 토대로 주살검이 숨겨진 장소 찾기.

소나무가 양쪽에 있는 폭포.

거기에 주살검이 있단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비양도가 생각외로 크다.

척 봐도 이곳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듯했다.

“우선은 좀 쉬면서 원기부터 회복하죠.”

그래야 할 것 같다.

이곳까지 오는 것만으로 진을 다 뺐다.

구토를 하도 하느라 그새 볼살이 홀쭉해진 것 같다.

남궁정혁뿐만 아니라 그의 부하들도 모두.

“뭐라도 먹고 빈속 좀 채우자.”

남궁정혁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선착장 근처에 작은 객잔이 보였다.

*   *   *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남궁정혁이 그릇에 담긴 국물을 훌훌 마셨다.

육지에서 먼 촌구석에 있는 음식점이라 맛이 괜찮을까 했는데 괜한 걱정이다.

바다 한복판에 있는 섬답게 풍부한 해산물로 낸 국물이 일품이다.

그것을 들이켜자 뒤집힌 속이 좀 진정되는 것 같다.

“너희들 입에도 맞냐?”

부하들이 입안 가득한 음식 때문에 말은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때 객잔의 주인장이 와서 권했다.

“국물이 부족하시면 더 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배가 불러서요.”

게다가 친절하기까지.

꽤 괜찮은 객잔이군.

그렇게 그들이 만족스러운 포만감에 배를 두드릴 때였다.

“우리 왔다.”

한 무리의 젊은 사내들이 객잔 안으로 들어왔다.

“늘 먹던 거로.”

보아하니 여기 단골인가 보다.

……아닌가?

저들이 들어온 후로 객잔 주인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갑자기 큰 걱정이라도 생긴 듯 표정이 어둡다.

“뭐 해? 빨리 음식 내오라니까, 목이 컬컬하니 술도 가져오고.”

객잔 주인이 그들에게 주춤주춤 다가갔다.

“그전에 그동안 먹은 음식값부터 치러 주시죠. 쌓인 외상값이 금자 한 냥을 넘어갑니다.”

“우리가 그 돈 안 준대? 나중에 한꺼번에 다 줄 테니 걱정하지 마.”

“저번에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꼭 좀 주십시오. 저도 상인에게 줘야 할 식재료값이 밀렸습니다.”

“그래? 그럼 줘야지.”

한 사내가 품속에 손을 넣자 주인이 다가갔다.

“감사합니다…….”

짝! 불쾌한 소리가 객잔 내에 울렸다.

돈을 꺼내는 척하던 사내가 순식간에 주인의 뺨을 후려쳤기 때문이다.

그의 코에서는 피가 뚝뚝 흘렀다.

“옜다, 음식값. 좀 더 줄까?”

다른 사내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고만해라, 그러다 울겠다.”

“형님, 이 자식이 건방지잖아요. 우리한테 돈을 내라니.”

“그래도 너보다 나이 많은 어른한테 손찌검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제가 잘못한 겁니까?”

“앞으론 발로 때려라. 발찌검.”

형님이라 불린 자의 시답잖은 농담에 다른 사내들이 푸하하하, 비웃었다.

객잔 주인은 흐르는 코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다.

“가서 음식 안 가져와? 진짜 발찌검 해 줄까?”

사내가 발목을 놀려 객잔 주인을 톡톡 찼다.

그 모습을 본 남궁정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똑같구먼.

힘 있는 놈들이 약한 자를 괴롭히고 조롱하고.

하지만 남궁정혁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만 있을 뿐이다.

관여할 생각은 없었다.

“이놈들, 감히 어디서 행패냐?”

협객 놀이에 심취한 서문호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들을 노려봤다.

이마에 핏대가 불끈 선 것이 무지 열 받나 보다.

그가 우선은 객잔 주인에게 다가갔다.

“피부터 닦으시죠.”

서문호가 소맷자락을 부욱 찢어 객잔 주인의 콧구멍에 쑤셔 넣으려고 할 때였다.

“네 이놈, 감히 어디서 행패냐?”

방금 서문호가 했던 말을 또 다른 사람이 했다.

지금 막 객잔에 들어온 사람이었다.

‘등에 활을 멘 걸 보니 사냥꾼인가?’

호리호리한 체형에 얼굴까지 길어 꼭 오이처럼 생긴 사내가 서문호에게 삿대질했다.

“왜 선량한 사람은 괴롭히는 거냐? 네놈들이 몰려다니면서 행패를 부리니 동네 분위기가 흐려지잖아.”

아무래도 착각한 것 같다.

서문호가 저들과 한패라고.

“오해했나 본데…….”

“오해는 무슨 오해? 안 그래도 언제가 한 번은 혼쭐 내줄 거라고 맘먹고 있었는데 오늘 잘 걸렸다.”

오이남이 다짜고짜 주먹부터 날리자 서문호가 고개를 돌려 피했다.

“어쭈, 제법 실력은 있구나.”

“우선 내 말부터 들어 보고…….”

“나중에 들어 주마, 네놈을 흠씬 두들겨 팬 후에!”

오이남은 성격이 무척 성급한 것 같다.

그가 서문호의 말을 무시하고 연이어 공격했다.

오이남이 주먹을 쉬지 않고 서문호를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짜증이 난 서문호도 반격을 시작했다.

“경솔한 놈,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그들의 팔다리가 엇갈렸다.

두 사람이 서로의 급소를 노리고 팔, 다리를 뻗었다.

‘오호, 제법 하는데.’

남궁정혁이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벌써 이십여 수 넘게 주고받은 그들의 실력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서문호랑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이런 촌구석에도 인재는 있구나.

“이제부터 제대로 상대해 주마.”

“흥, 누가 할 소릴.”

호흡을 고른 오이남이 이번에는 발차기를 했다.

키가 커서 그런지 확실히 다리도 길다.

그가 발끝으로 총총 뛰어다니며 연신 발차기를 날렸다.

사각에서 휘어져 들어오는 오이남의 발에 서문호는 낭패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이한 보법이군요.”

“…….”

정학우가 남궁정혁에게 말했지만, 그는 아무 대답이 없다.

“도련님?”

남궁정혁의 모든 신경은 오직 오이남의 발끝에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교의 무공?’

분명 맞다.

‘환각궁마의 각법?’

나의 친우이자 동료였던 그의 무공을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