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40화
내가 전생에서 마교 교주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당연히 내가 가장 잘나서이다.
비록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흙수저였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포기하지도 않았다.
고아라고 무시하는 놈 대가리를 빠개고, 거지라고 괄시하는 놈 어금니를 뽑아 주면서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그렇게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가니 주변 사람들이 어느새 날 이렇게 찬양하더라고.
“위대한 천마지존이시여.”
인간승리의 표본이지.
이 정도면 나의 일대기를 책으로 만들어 중원의 어린이들에게 보급해야 하지 않을까.
보고 배우라고.
아무튼, 내가 나의 능력과 노력으로 마교 교주가 되긴 했지만, 주변의 도움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내 등 뒤를 받쳐주고 팔, 다리가 되어 주었던 고마운 동료들이 있었다.
나에게는 그들이 가족인 셈이지.
그중 한 명이 환각궁마이다.
‘그의 흔적을 여기서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내가 열여덟 살, 마교의 한 전투부대에 들어갔을 때였다.
마교에 있는 수많은 전투부대 중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곳이기도 했다.
당시 무공이 낮은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그런 곳밖에 없더라고.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면 고수들이 도착하기 전에 시간을 버는 인간방패, 그게 우리의 역할이었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생각했지, 오늘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루하루가 치열했다.
잠시라도 눈을 돌리면 어느새 동료가 죽어 있었다.
나와 환각궁마 황균은 그런 지옥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수많은 고비를 함께 넘겼다.
그 와중에 우애는 점점 더 단단해졌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일 년이 지났을 때 그 부대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나와 황균밖에 없었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되는 친구였지.’
내가 마교 교주가 되었을 때 황균은 장로가 되었다.
그동안 나를 묵묵히 지원해 준 보답이었다.
정학우가 남수단의 부단주가 된 것처럼.
황균은 긴 다리를 이용한 각법이 일품이었다.
더불어 활도 잘 쏘고.
‘그런 그의 흔적을 여기서 발견할 줄이야.’
초식을 변형해서 흔적을 지우려 한 것 같긴 한데, 분명 마교의 무공이다.
호박에 줄 그어 놓는다고 해서 수박이랑 헷갈릴까?
그것도 마교의 무공에 통달한 내가.
남궁정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호야, 비켜라.”
아마도 저자는 황균의 진전을 이은 제자 같다.
둘이서 더 싸우다 행여 누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모두에게 좋지 않은 일.
싸움을 말리기 위해 남궁정혁이 그들이 사이에 섰다.
남궁정혁이 오이남에게 물었다.
“어디서 배운 무공인가? 네 스승은 아직 살아 있나?”
“남의 스승 안부를 네가 왜 물어? 무슨 상관이라고”
황균도 오이남처럼 성격이 급하고 입이 험했지.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오해도 곧잘 사고.
그런 그와 성격을 꼭 닮은 오이남을 보니, 황균과의 추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한때 무림을 같이 질주했던 가슴 뜨거운 기억이 말이다.
“내가 묻는 말에 답해 주면…….”
“내 스승이 살아 있으면 뭐? 내 사제로 들어오려고? 너희 같은 놈들은 백날 배워도 내 발가락 때만도 못해.”
허허허, 마교의 제자라면 저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기상이 호탕한 것이 과연 마교의 상남자로다.
“새꺄, 뭘 쳐다봐, 그 눈깔 확 뽑아 버리기 전에 눈 안 깔아?”
좀 지나치나.
황균아.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의 인성교육은 시켰어야지.
내가 이런 핏덩어리한테 욕까지 들어야겠냐.
‘첫 만남마저 비슷하군.’
나중에야 듬직한 동료가 되었다지만, 황균의 첫인상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거든.
- 네가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이냐?
- 선배를 봤으면 냉큼 인사부터 해야지, 어디서 빤히 쳐다봐?
- 가서 갈근차나 하나 타 와라.
그날 환각궁마, 황균이 나한테 뒤지게 얻어터졌지, 아마.
피식, 그래도 옛 추억을 떠올리니 즐겁네.
‘어디서 저렇게 성격마저 비슷한 제자를 구했을까?’
하지만 남궁정혁의 웃음이 되려 오이남을 자극했다.
“이 새끼, 너 지금 날 무시하는 거냐, 오늘 이 양일남 님이 저승 구경시켜 줘?”
오이남, 아니 양일남이 바짓단까지 접어 올리면 본격적으로 실력 행사를 하려고 할 때였다.
“일남아, 그만해라.”
객잔 주인이 나섰다.
“이런 새끼들은 가만 놔두면 안 돼요. 다시는 설치치 못하도록 단단히 혼쭐을 내야 합니다.”
“이분들은 나를 도와주려고 하셨다.”
“……뭐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두 눈만 끔벅끔벅 뜨는 양일남에게 객잔 주인이 방금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렇게 된 거란다.”
“저들이 한패가 아니었다고요?”
흠흠, 양일남이 눈알을 굴려 남궁정혁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도 인간이라고 최소한의 민망함은 있는가 보다.
“미안하게 됐다…….”
남궁정혁은 뒷말을 더 기다렸지만 이게 끝이다.
“그게 다냐?”
“뭐?”
“좀 더 진심을 담아 간절히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지금까지는 내가 참아 줄 수도 있을 것 같거든.
네 사부와의 인연을 생각해서 말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 좀 할 수 있지. 그리고 방금 미안하다고 했잖아.”
뻔뻔한 것까지 아주 제 사부랑 판박이다.
황균도 가끔 제 성격을 못 이겨 사고 치고도 오히려 저렇게 당당히 나서곤 했다.
“내가 나쁜 뜻으로 한 것도 아니고 오해 좀 한 거 가지고 일일이 사과해야 해? 속이 좀생이처럼 좁으시구먼.”
그래, 사람이 살다 보면 오해도 할 수 있지.
하지만 나한텐 하면 안 되지.
네 말처럼 내가 속이 좁거든.
거기다 주먹도 잘 쓰고.
으드득. 남궁정혁이 친우의 제자에게 몸소 인성교육을 행하려고 할 때였다.
“이것들이 미쳤나, 왜 지들끼리 싸우고 난리야? 우린 눈에도 안 보이냐?”
현재의 사태를 유발한 불량 패거리들이 품속에서 각자의 무기를 꺼내 위협했다.
“비양도에서 우리 심기를 거스르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아, 미안.
뜻밖의 인물을 만난 반가움에 너흴 깜빡하고 있었네.
“지금이라도 손가락을 자르고 용서를 빌면…….”
이놈들을 상대로 시간 끌 생각은 없다.
남궁정혁이 맨 앞에서 단도를 휘두르는 사내의 머리를 한 손으로 덥석 잡아 출입문 밖으로 던졌다.
피융, 거참 잘도 날아간다.
족히 삼 장은 날아간 것 같다.
자유비행을 마친 그가 땅바닥에 착륙했다.
그것도 머리부터.
그러니 어찌 됐겠는가.
머리에서 흐른 피가 땅바닥을 촉촉이 적셨다.
꿈틀꿈틀하는 걸 보니 살아는 있네.
“네가 정녕 죽고 싶은…….”
남궁정혁이 방금 입을 연 사내의 머리통을 잡고 또 던졌다.
행위가 같으니 결과도 같고.
그 사내 또한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그렇게 두어 명 더 집어던지니 불량배들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또 불만 있는 사람 앞으로 나와. 새처럼 날게 해 줄게.”
있을 리가 있나?
동료들이 초주검이 되었는데.
“없는 거지?”
남궁정혁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들을 보며 경고했다.
“여기서 한 번만 더 행패 부리면…….”
콰직, 남궁정혁이 손에 힘을 주자 탁자가 으스러졌다.
“알지?”
이제는 식은땀까지 흘리며 객잔을 나가려는 그들을 남궁정혁이 붙잡았다.
“갈 땐 가더라도 밀린 외상값이랑 부서진 탁자값은 보상하고 가야지.”
“탁자는 당신이 부순 거잖아요…….”
피융, 그 사내도 새처럼 하늘을 날았다.
때론 진실 앞에 침묵해야 할 때도 있어야 하건만.
눈치가 없으면 대가리가 성치 못한 법이다.
“그래서 돈 다 내고 제 발로 걸어 나갈래? 아니면 내가 나가게 해 줄까?”
“여, 여기 있습니다.”
불량배들이 부서진 탁장 위에 돈을 놓고 줄행랑쳤다.
그것도 대가리 깨진 동료들은 그냥 놔두고.
의리는 없는 놈들.
시골 시정잡배가 다 저렇지.
“이제야 단둘이 오붓하게 대화할 수 있겠네.”
남궁정혁이 몸을 빙글 돌리자 양일남이 어이없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뭐 저렇게 무식한 놈이 다 있단 말인가.
성인 남자를 한 손으로 가볍게 던지는 것으로 보아 무공은 제법 익힌 듯하다.
“비양도에서 본 적은 없고, 본토에서 온 것이냐?”
허허허, 이 새끼가 아직도 반말이네.
마교에서 마주쳤으면 눈도 똑바로 못 쳐다볼 햇병아리 같은 놈이.
네 스승도 몇 대 맞으니 고분고분해졌지.
으드득, 으드득. 고개를 좌우로 비튼 남궁정혁이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부터 내가 너를 때리는 건 미워서가 아니다. 다 너의 정신수양과 예절 교육을 위한 것이니 이해해라. 이는 꽉 깨물고, 아니면 어금니 나간다.”
“……?”
저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
근데 왜 갑자기 으스스한 게 내 몸에 한기가 돋지?
* * *
“하늘 천, 땅 지.”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검을 현, 누를 황!”
비양도의 유일한 서당.
그곳의 훈장, 황균이 먼저 말하자 학동들이 그걸 따라 했다.
그 모습에 황균의 입가에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맺혔다.
조막만한 것들이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말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얼굴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제자들의 모습만 봐도 마음이 절로 흐뭇했다.
‘진즉에 이렇게 살 것을.’
그가 모종의 사유로 비양도에 정착한 지도 어언 이십 년 가까이 되었다.
참, 파란만장한 인생이었지.
치열하기도 했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손에 그리 많은 피를 묻혔을까.
이곳 사람들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지금은 한낱 훈장에 불과한 그가 한때는 중원에서 명성을 날리던 무공 고수였다는 사실을.
이제는 모두 부질없지만.
“스승님,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저희한테는 수업 중에 딴생각하지 말라고 혼내시면서 스승님이 딴생각하시면 어떡합니까?
요 맹랑한 놈들.
저마다 손을 들고 항의하는 모습마저 귀엽다.
꼭 병아리가 삐악대는 것 같달까.
“갑자기 오랜 친구가 생각나는구나.”
“어떤 친구였는데요?”
한참을 고민 후 황균이 말했다.
“글쎄다, 뭐라 말하기가 어렵구나.”
자신에게 천하를 꿈꾸게 해 준 친구?
그 넓은 등만 따라가면 모든 걸 이룰 수 있을 것만 같던 친구?
결국, 한여름 밤의 허무한 꿈처럼 그 친구도 아스라이 사라졌지만.
그때, 자신의 꿈도 사라졌다.
‘어젯밤 꿈에 그 친구가 나와서 그렇나, 오늘따라 유독 보고 싶네.’
수업을 마친 황균이 서당 밖으로 나오자 나무 위의 까치가 울었다.
“…….”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던데…… 근데 진짜 손님이 오긴 왔다.
반가운 손님인지는 모르겠지만.
“넌 얼굴이 왜 그렇냐?”
외출에서 돌아온 양일남의 얼굴이 엉망진창이다.
두 눈은 시퍼렇게 멍들고, 코 주변에 핏자국이 있는 거로 보아 코피까지 흘린 모양이다.
그것도 쌍코피.
“이분이 저에게 무공을 가르쳐 준 스승님입니다.”
“……?”
같이 온 자들이 누구이기에 저놈이 저리 깍듯하게 고개를 숙인단 말인가?
그가 아는 자신의 제자는 엉덩이에 뿔 난 못된 송아지 같은 놈이다.
그래서 그 성질 좀 죽이라고 그렇게 말해도 안 듣더니 지금은 왜 저리 얌전하지?
“이분들이 스승님을 뵙고 싶다고 하기에 모셔왔습니다.”
“그, 그래.”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죽는다던데… 아니면 어디서 죽을 만큼 맞았나?
그것이 궁금한 황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