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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41화 (41/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41화

‘진짜 서당 훈장이 되었네.’

남궁정혁은 양일남에게 예절 교육을 몸소 실천한 후, 믿을 수 없는 얘길 들었다.

“……뭐? 네 스승이 서당 훈장이라고?”

그래서 오해했다.

이 새끼가 아직 덜 처맞았나, 감히 거짓말을 해?

그의 스승은 황균이 분명한데, 그가 서당에서 코 찔찔 흘리는 얘들이나 가르치고 있다고?

한때 마교의 미친 황소로 불리었던 그 황균이?

“제 스승님은 서당 훈장님이 맞습니다. 직접 확인해 보시면 될 거 아닙니까?”

헛소릴 하는 것 같아 몇 대 더 때려 줄랬더니, 양일남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한편으론 당당하기도 하고.

최소한 거짓말을 하는 태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반신반의했건만.

근데 직접 와서 보니 진짜로 시골 서생이 다 되었네?

‘……제법 잘 어울리는구나.’

내 기억 속의 그는 검이 잘 어울리는 무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황균에게 머리 위에 쓴 유건이 저리도 잘 어울릴 줄이야.

남궁정혁이 봐도 그는 이제 영락없는 서당 훈장이었다.

‘많이 늙기도 했고.’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다.

나에게는 삼 개월 만의 재회이지만 황균에게는 아니지 않은가.

이미 이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팽팽했던 그의 눈가에는 주름이 자글자글 자리를 잡았고, 칠흑같이 검었던 머리는 허옇게 변했다.

더구나.

‘한쪽 팔이 없네?’

대체 무슨 이유로?

오랜 친우의 몸을 찬찬히 내려보던 남궁정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황균의 왼쪽 팔은 손목부터 잘려나가 있었다.

정마대전에서 잃은 것일까?

그 모습에 더욱 마음이 먹먹하다.

‘대체 누가 널 그렇게 만든 것이냐?’

그런 남궁정혁의 모습에 황균은 의아함을 느꼈다.

자신의 왜 저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걸까?

“혹시 저를 아십니까? 왜 그렇게 저를 보는 것입니까?”

“제 친구와 닮았기에 그만 실례를 하고 말았습니다.”

“허허, 그쪽도 저의 오랜 친구와 많이 닮았습니다. 특히 눈빛이 그래요, 순간 그 친구 살아 돌아온 줄 착각했지 뭡니까.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서당 안에서 황균이 직접 내린 차를 남궁정혁에게 대접했다.

“저를 만나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뭐라, 대답해야 할까.

오랜 친우가 그리워 찾아왔다고 할 수도 없고.

내가 전직 천마, 제운강이라고는 더더욱 말할 수 없고.

적당한 대답을 찾던 차에 양일남이 가지고 있던 활이 떠올랐다.

“제자 분이 활을 메고 있더군요. 무림에 활을 쓰는 분이 흔치 않아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왔습니다.”

궁핍한 이유였지만 황균은 허허 웃으며 대답해 줬다.

“다 옛날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팔이 이래서 활을 잡을 수도 없죠.”

그가 왼쪽 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황균에 표정에는 아쉬움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홀가분한 표정이다.

남궁정혁은 그래서 의아하지만.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팔이 왜 그렇게 됐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업보지요, 제가 과거에 저지른 짓에 대한 업보.”

“팔을 그리 만든 자에게 복수하고 싶단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

“허허, 처음에는 그랬지요.”

씨익, 웃은 그가 윗옷을 들어 올리자, 배꼽 아래에 상흔이 보였다.

끔찍한 모습이기도 했다.

저 정도면 아마도…….

“내공까지 잃은 겁니까?”

“스스로 폐했습니다.”

이십 년 전 정마대전에서 패하고, 정파의 추적을 피해 이곳 비양도로 숨었다.

그때만 해도 복수심에 불타올랐지.

몸을 추스른 후, 자신의 팔을 이리 만든 자를 꼭 죽일 거라고 맹세까지 하고.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주었지만.’

그렇게 일 년, 이 년, 평화로운 비양도에서 지내고 보니 황균의 생각이 바뀌었다.

자신은 그동안 왜 그리 아등바등 살았던 것일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곳 사람들은 물고기 몇 마리 더 잡은 것만으로 행복해하며 사는데.

더구나 이제는 그에게 삶의 목표를 제시해 줄 친우도 죽고 없지 않은가.

그래서 스스로 단전을 폐하고 비양도 주민으로 남기로 했다.

마지막 남은 미련까지 버린 것이다.

이후에 물고기를 공짜로 나눠 주는 주민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서당도 열었고.

“허허, 옛 친우를 닮아서 그런가, 처음 만난 분에게 말이 많았습니다.”

“아닙니다.”

황균이 찻잔에 차를 따랐다.

“드셔 보시지요. 속에 열을 내려 주는 갈근차입니다.”

이것만은 변하지 않았군.

황균은 예전부터 갈근차를 즐겨 마셨다.

가끔 그의 집에 놀러 가면 지금처럼 이 차를 대접해 주곤 했지.

차를 한 모금 마신 남궁정혁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편안해 보이십니다. 지금 생활에 만족하십니까?”

“아주 편안합니다, 왜 진작 이렇게 살지 못했나 후회할 정도로요.”

담담히 말하는 그의 모습이 무척 평온해 보인다.

남궁정혁이 갈근차를 쑥 들이켰다.

“…….”

마음이 따뜻해진 친구가 내린 차라 그렇나, 분명 속에 열을 풀어준다고 했는데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것 같다.

“차 잘 마셨습니다.”

그래, 친구야. 네가 좋다면 나도 좋다.

젊은 날, 지나치게 치열하게 살았으니 여생이라도 푹 쉬어라.

남궁정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주살검을 찾으러 가 볼까?

*   *   *

이런 말이 있다.

백언이 불여일타.

어려워서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별로 어려운 말도 아니다.

그냥 쉽게 말하면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패는 게 낫다는 말이다.

남궁정혁이 살면서 터득한 가장 큰 삶의 진리이기도 하다.

“저만 믿고 따라오시면 됩니다.”

자, 봐라.

처음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양일남의 저 고분고분한 태도를.

그가 눈웃음까지 살살 지으며 남궁정혁 일행을 안내했다.

“산과 들로 사냥 다니다 보니 비양도에서 제가 모르는 곳은 없습니다.”

양일남이 지도에 그려진 폭포를 안단다.

덕분에 나는 주살검이 숨겨진 장소를 찾는 수고를 덜었지.

그곳이 어딘지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양일남이 굳이 그곳으로 직접 데려다주겠단다.

남궁정혁 일행 앞에서 가던 그가 말했다.

“길이 험하니 튀어나온 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래도 양일남의 교육 효과는 극적이긴 하다.

사뿐히 어루만져졌을 뿐인데 사람이 저리 착해지다니.

“폭포가 여기서 머냐?”

서문호가 묻자 양일남이 발끈했다.

“뭐 이 새꺄, 너 나한테 반말했냐?”

아닌가?

저놈 저거 표정까지 싹 바뀌는 거 보소.

아무래도 양일남, 저놈은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것 같은데.

서당에서 출발한 그들이 비양도 가운데 우뚝 솟은 산을 한창 오를 때였다.

“배가 들어오네요.”

바다 저쪽에서 큰 범선이 커다란 돛을 펄럭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양일남이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별일이네요, 비양도에 저렇게 큰 배가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는데.”

“그래?”

그러거나 말거나.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난 주살검만 찾으면 그만이다.

“대협이 찾는 곳은 산 정상 부근입니다. 그래도 멀지 않으니 금방 도착할 겁니다.”

“그래.”

초여름이라 그런지 정수리 위에 뜬 햇볕이 따갑다.

등 뒤는 이미 땀을 젖어 축축하고.

그렇게 울퉁불퉁한 산길을 오르길 한 시진쯤 지났을까.

어느새 물줄기가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에 도착했다.

“도련님, 여기가 맞는 것 같습니다.”

“단번에 찾아왔군.”

정학우의 말에 남궁정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폭포 양쪽에는 바람에 흩날리는 버드나무 두 그루가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지도에 나온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저 폭포 뒤에 동굴이 있어야 한다는 건데.

그때 양일남이 말했다.

“저 폭포 뒤쪽에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동굴이 있습니다.”

“너는 들어가 봤냐?”

“호기심에 한 번 가 본 적이 있는데 너무 어둡고 개미굴처럼 복잡해 금방 나왔습니다.”

정학우가 등 뒤에 멘 봇짐에서 지도를 꺼냈다.

“지도상으로도 매우 복잡하긴 합니다. 까닥했다는 동굴 안에서 길을 잃을 갇히겠는데요?”

음…… 확신한다.

제갈헌, 이 양반은 분명 쪼잔한 성격인걸.

그러니 굳이 저 동굴 안으로 기어 들어가 주살검을 숨겼지.

“대협, 근데 저 안에서 뭘 하려기에 여기까지 온 겁니까?”

그래, 일남아. 너도 궁금하겠지.

사람인 이상 호기심이 있을 거야.

하지만.

“꼭 알고 싶어?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말해 줄까?”

남궁정혁이 양일남의 팔뚝을 꽉 쥐자, 그가 흠칫했다.

“하하, 아닙니다, 대협이 여기까지 오신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궁금하지 않습니다.”

이놈은 오래 살 거다.

눈치가 빨라서.

그때, 정학우가 봇짐에서 미리 준비한 그것을 꺼냈다.

“우리에겐 이것과 지도가 있으니 길 잃은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입니다.”

봇짐에서 꺼낸 건 주먹만 한 크기의 야명주였다.

겉은 감싼 천을 벗기자 그것이 태양 아래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것을 본 양일남이 깜짝 놀랐다.

“이걸 어떻게 구하신 겁니까?”

특별한 반응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라도 아마 양일남처럼 굴 것이다.

그만큼 야명주는 값비싼 물품이었다.

비싼 이유는 아주 희귀한 금속이니까.

아마 이것만 갖다 팔아도 비양도에 사는 사람, 모두가 일 년은 풍족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빌렸다.”

“이런 귀한 걸 누가 빌려줍니까?”

누구긴 누구야?.

당연히 우리 남수단의 특별단원인 왕소단이지.

예전에 그의 집무실에 한번 놀러 간 적 있는데 야명주를 크기별로 진열해 놓았더라고.

그래서 하나 집어 왔다.

그 많은 것 중에 하나 없어졌다고 설마 알겠어?

“문호야, 너는 여기서 일남이랑 같이 입구를 지키고 있어라. 둘이 싸우지는 말고.”

동굴탐방에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는 않을 터.

서문호를 밖에 남겨 두고 남궁정혁과 정학우가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도련님, 구멍이 점점 작아지는데요.”

동굴 입구부터 비좁긴 했지만, 그래도 허리는 펼 수 있었다.

이제는 불가능하지만.

동굴 안으로 점점 들어갈수록 천장이 낮아져 이제는 허리를 숙이고 다녀야 했다.

거기다 동굴 속은 얼마나 복잡하고 어두운지.

‘지도와 야명주가 없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군.’

그런 동굴을 헤매길 한참.

“도련님, 저곳인 것 같습니다.”

겨우 막다른 길에 도착했다.

“지도는 여기까지 표시되어 있는데 길이 막혔군요.”

“사방의 벽을 두드려 보아라.”

명색이 정천맹 군사까지 지낸 사람이 이런 거로 장난쳤을 리는 없을 테니, 이곳 어딘가에 주살검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자연동굴에 문 같은 것을 대놓고 만들지는 않았을 터, 아마 막힌 길 너머에 비밀 공간이 있지 않을까?

앞쪽과 양옆을 주먹으로 뚝뚝, 두드려 본 정학우가 말했다.

“두꺼운 암벽입니다. 비밀 공간 같은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 확인 안 한 곳이 있잖아.”

“어디요?”

씨익, 웃은 남궁정혁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천장!”

손은 뻗은 정학우가 주먹으로 천상을 툭툭 쳤다.

통통…….

소리가 울린다.

천장 위가 비어 있음이 분명하다.

“비켜 봐.”

남궁정혁이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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