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43화
사방의 흩어지는 부하들은 보며 남궁강혁이 못마땅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남들은 후기지수들 사이에서 고르고 고른 정천의용대니 뭐니 하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아직 한참 부족한 부하들이었다.
‘우둔하기는.’
사방이 바다로 막힌 섬이다 보니 결국 종요는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놈의 생각에는 육지에서 먼 이곳에 숨으면 찾지 못할 거로 생각했겠지만, 오히려 자충수가 된 셈이지.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고립된 섬에서 무슨 방법으로 탈출하겠는가.
이곳의 큰 배부터 작은 배까지 모두 정천의용대의 감시하에 있는데.
헤엄? 본토에 도착하기 전에 물속에 가라앉아 고기밥이나 되겠지.
결국 종요는 독 안의 든 쥐라는 소리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않나.
하물며 상대는 악명이 자자한 오대 악인 중 한 명.
아주 흉악한 놈인 것이다.
행여 그런 놈이 도망 다니다 일반 백성에게 피해라도 끼친다면?
“…….”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는 듯 남궁강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자신의 이력에 큰 흠집으로 남을 뿐만 아니라 가문의 명예에도 누가 된다.
그런데.
“뭐? 종요가 인질을 붙잡아 농성 중이라고.”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했다네?
혹시나 했던 일이 일어나자 남궁강혁은 이마를 붙잡았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다음 보고에 의아함이 들었다.
“근데 그게 인질이라고 해야 할지, 동료라고 해야 할지…….”
“그게 무슨 소리야?”
동료가 있었나?
분명 놈 혼자 여기로 도망친 걸로 알고 있는데.
“직접 가서 보시죠.”
입술을 질끈 깨문 남궁강혁이 그 현장으로 달려갔다.
비양도에서 단 하나뿐이라는 서당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도착해 아주 기막힌 모습을 보았다.
“더는 다가오지 마, 내 말 무시하는 놈들은 오늘 피 보는 거야.”
“…….”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저놈이 왜 여기 있단 말인가?
“너 방금 선 넘었다. 뒤지고 싶냐?”
그것도 자기가 종요의 호위무사라도 되는 양.
“……남궁정혁?”
눈앞의 현실이 믿어지지 않아 두 눈을 비벼 봐도 분명 그가 맞다.
합비에 있어야 할 저놈이 저기서 뭐 하는 거지?
아니, 그보다 종요랑 아는 사이였나?
그럴 리가 없잖아.
‘…….’
팽세웅이 남궁강혁과 남궁정혁을 번갈아 가며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대주님, 종요의 공범이 대주님이랑 무척 닮았는데요.”
팽세웅의 말에 뭐라 대답할 말이 없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런 그에게 종요와 멀찍이 떨어져 있던 한 사람이 다가왔다.
“강혁 도련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정학우?”
“이런 곳에서 이렇게 만나 뵙게 될 줄을 몰랐군요. 정혁 도련님 때문에 많이 놀라셨죠?”
둘의 대화를 들은 팽세웅이 다시 한번 더 고개를 갸웃했다.
“저자의 이름이 정혁입니까? 단주님이랑 이름까지 비슷하네요.”
이 얘기를 들은 정학우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저분은 남궁정혁, 강혁 도련님의 하나뿐인 동생입니다.”
그러자 남궁강혁이 발끈했다.
“나에게 동생은 없다. 난 아버지의 외동아들이다.”
그런 남궁강혁을 가뿐히 무시한 정학우가 팽세웅에게 계속 말했다.
“저희 도련님이 또 민폐를 끼치는군요, 제가 대신 사죄드리겠습니다.”
“대주님의 동생…… 흠흠, 어쨌든 남궁세가의 핏줄이 저기서 왜 저러고 있는 겁니까?”
“에휴, 저도 참 말하기가 민망하긴 한데…….”
정학우가 한숨과 함께 남궁정혁이 저런 추태를 부리는 이유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 * *
“그러니까 오대 악인이 정천맹에서 공개수배령을 내린 후안무치한 악당 다섯 명이라고?”
남궁정혁이 묻자 서문호가 답했다.
“예. 오대 악인은 무공의 강함보다 죄의 크기로 정해졌습니다. 그렇다고 무공이 약한 건 아니고요. 오죽하면 정천맹에서 수배령까지 내렸겠습니까.”
“그중 종요란 놈은 스승을 죽였고?”
“맞습니다.”
이거 아주 쓰레기 같은 놈이네.
무림인에게 있어 스승이란 자신을 낳아 준 부모와 같은 존재이거늘.
심지어 마교에서조차 무공을 가르쳐 준 스승은 극진히 모신다.
‘하여튼, 인간말종은 정파에 더 많다니까.’
종요는 어릴 적 무당파 제자로 들어갔다고 한다.
무공에 재능을 보여 그의 스승이 직접 발탁했다고.
하지만 타고난 살성을 감추지 못하고 매일 같이 다람쥐, 토끼 등을 잡아 산 채로 해부하느라 스승과 늘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미운 자식도 자식이라고 스승을 그걸 사문에 감췄고.
어처구니없는 일이지.
살생을 금지하는 도가에서 생체 해부하는 제자나 그걸 숨기는 사부나.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종요는 그가 한 짓을 무당파에 걸렸고, 그로 인해 감옥에 갇혔다.
이후 근맥이 잘리고 파문당하기 직전, 스승까지 죽이고 도주했다고 한다.
자신이 벌인 짓을 스승이 결국 무당파에 고발했기 때문에 들켰다고 생각했다나.
“그런 악당이 이곳에 숨어 있었군요.”
“그래, 여기라면 안 잡힐 줄 알았겠지.”
아무래도 사람 생각하는 것은 비슷하니까.
이런 외딴 섬에 숨으면 찾지 못할 거로 생각했겠지.
실제로 황균은 이십 년 동안 잘 숨어 있었고.
“단주님, 우리도 정천의용대를 도와 종요를 함께 붙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우리는 정천의용대를 돕지 않는다.”
남궁정혁이 딱 잘라 말하자 서문호가 실망했다는 듯 항의했다.
“정의가 살아 있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그런 자는…….”
“가만히 둬서는 안 되겠지.”
“예에? 웬일이십니까?”
“내가 정천의용대를 돕지 않는다고 했지, 종요를 붙잡지 않는다고 했냐?”
안 그래도 주살검을 얻은 기념으로 뭐라도 썰고 싶었는데, 스승을 죽인 악인이라니.
그런 놈이라면 사지를 잘라 죽여도 무죄 아닐까?
정천맹에서 상을 내려 줄지도.
의롭고 착한 무림인이라고.
“우리가 정천의용대보다 먼저 잡는다. 내가 오늘 반드시 종요를 처단할 것이다.”
“네, 단주님!”
남궁정혁의 들끓는 정의감(?)에 서문호가 호응할 때였다.
“저리 비켜라.”
갑자기 한 사내가 서당의 담을 뛰어넘어 들어왔다.
그런데 표정이 무척 다급해 보이는 게 꼭 호랑이한테 쫓기는 멧돼지 같다.
실제로 정천맹 무사들이 꼬리처럼 따라붙었네?
“비키라니까, 죽고 싶지 않으면 저리 비켜.”
멧돼지 같은 놈이 검까지 휘두르며 길을 트려 했다.
“단주님, 설마 저자가……”
“정황상 그런 것 같다.”
남궁정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참 가는 날이 장례 날이라더니, 하필 도망쳐도 이쪽으로 오냐.
종요, 너도 참 재수가 없구나.
“일남아, 스승을 모시고 서당 안에 들어가 있거라.”
비록 황균을 잡으러 온 것이 아니긴 하나, 그를 알아볼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정천맹 무복을 본 황균의 얼굴도 급격히 굳었고.
상황을 모르는 황균은 자신을 잡으러 온 건 아닌지 혼란스럽겠지.
그들이 마주치지 않게 해야 한다.
“뭐 해? 들어가라니까.”
“네, 네.”
자, 보자.
황균이 서당 안으로 들어간 걸 확인한 남궁정혁이 시원스레 검을 휘둘렸다.
“우선은 팔이다.”
주살검이 대기를 가르며 종요를 습격했다.
지금의 일격으로 저놈의 오른팔을 어깨에서부터 싹둑 자를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
종요가 갑작스러운 공격임에도 불구하고 허리를 비틀어 피했다.
그의 동작에는 무당파 특유의 부드러움이 녹아 있었다.
“이 새끼, 정천맹 놈들과 한패였냐?”
입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종요, 정천맹이 애를 먹는다더니 제법 하는구나.
‘그래서 더 재밌겠지만.’
호승심을 불태우는 남궁정혁.
그가 종요의 앞을 막을 때, 정천의용대 대원들도 속속 도착하여 서당을 둥글게 감쌌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와준 거 아니야.”
“예?”
“저놈은 내가 침 발랐어, 그러니깐 너희들은 꺼져.”
그런 남궁정혁을 잠시 황당하게 바라보던 정천맹 무사가 말했다.
“……지금 정천맹의 행사를 방해하겠다는 거요?”
“방해는 지금 니들이 하고 있고. 저놈의 목은 내가 쳐야겠으니 저리 꺼지라고. 아니면 얌전히 구경이나 하고 있든가.”
“말이 통하지 않는 자군. 이자를 당장 끌어내라.”
정천맹의 무사 일부가 남궁정혁에게 다가갔지만, 그게 문제였다.
남궁정혁은 자신을 양쪽에서 붙잡으려는 그들의 목덜미를 가격해 순식간에 기절시켰다.
“아, 실수. 내가 반사신경이 워낙 좋아서 말이야.”
물론 이런 핑계가 통할 리 없었다.
동료들이 쓰러지는 걸 본 정천맹 무사들의 표정이 급격히 굳었다.
“감히 정천의용대를 공격하다니, 이자도 우리의 적이다. 종요의 동료일 수도 있으니 같이 포박하라.”
정천맹 무사들이 남궁정혁을 중심으로 서서히 포위망을 좁히기 시작했다.
* * *
“여기까지가 정혁 도련님이 종요의 공범으로 오해받게 된 이유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정혁이가 종요를 직접 잡으려다가 이 사달이 났다는 거잖아.”
“……욕심이 많으신 분이라.”
끄응, 남궁강혁이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대체 찬란히 빛나는 남궁세가에서 저런 별종이 어떻게 나왔단 말인가.
괜히 가문의 수치라 불리는 게 아니다.
그 수치가 또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랑 싸우고 싶으면 일렬로 줄 서서 덤벼, 치사하게 한꺼번에 덤비지 말고.”
제발, 그 입 좀 다물어라.
부하들 앞에서 창피해 죽겠다.
내가 그동안 정천의용대에서 근엄하게 보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길을 터라, 우선은 내가 종요부터 붙잡겠다.”
결국, 이 난리의 원인은 종요다.
저자부터 붙잡고, 정혁이는…… 끙.
머리가 아프니 나중에 생각하자.
남궁강혁이 부하들 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나가려고 할 때였다.
“종요는 정혁 도련님께 맡겨 보시죠.”
정학우가 그런 남궁강혁의 팔목을 잡았다.
“정혁 도련님이 저렇게 하고 싶어 하잖습니까, 동생을 위해서 양보해 주시죠.”
뒷말은 속으로만 삼킨 정학우를 보며 남궁강혁이 혀를 찼다.
“너 그러는 거 아니다.”
“네에?”
“네가 정혁이 때문에 고생이 많았던 건 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모시는 주인을 차도 살인을 하려고 하다니.”
그 말을 들은 정학우가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차도 살인이라니요.”
오해받은 그가 억울한 듯 말했다.
“웬 모함입니까, 제가 왜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도련님을 죽입니까?”
“종요는 초절정에 근접한 고수다. 그런 자를 정혁이가 무슨 수로 이긴단 말이냐, 단 한 수도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게 분명하다. 그게 차도 살인이 아니면 뭐냔 말이냐?”
“아…….”
이 사람이 무슨 오해를 하나 했더니 정보 갱신이 늦구먼.
하긴 정천의용단이 한가하게 앉아서 일을 보는 곳도 아니고.
“그동안 아주 바쁘셨나 봅니다.”
“뭐?”
“세가 소식을 듣지 못한 걸 보니 말입니다. 정혁 도련님은 예전의 그분이 아닙니다.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될 정도로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무공 수련도 열심히 하고, 무엇보다 매우 강해지셨죠.”
“저놈이 강해져 봤자 얼마나 강해졌다고 그러느냐?”
“혹시 정혁 도련님이 걱정되시는 겁니까?”
남궁강혁이 또다시 발끈했다.
“무슨 소리를! 누가 저런 놈을 걱정해!”
“그럼 맡겨 보시죠. 자신이 있으니까 본인이 저리 나선 것 아니겠습니까.”
끄응, 잠시 고민한 남궁강혁이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종요는 저자에게 맡기니 정천의용대는 지금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마라!”
그러자, 정학우가 남궁정혁에게 소리쳤다.
“도련님 들으셨죠? 도련님이 종요만 잡으면 상황 종료됩니다. 힘내십쇼.”
“……?”
저들끼리 어떻게 의견 조율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종요를 잡으면 되나 보다.
그러면 사양할 필요할 필요 없지.
남궁정혁이 주살검을 들고 종요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남궁강혁은 그 모습을 유심히 보았고.
“걱정할 필요 없다니까요.”
정학우의 말을 남궁강혁이 또다시 부정했다.
“크흠, 걱정 안 한다니까.”
“그럼 검을 왜 그리 꽉 쥐고 계십니까? 혹시나 정혁 도련님이 위기에 처하면 도우려고 하시는 거 아닙니까?”
흠흠, 남궁강혁이 헛기침했다.
“혹시나 가문의 명예에 먹칠하는 행동을 또 할까 봐서이다.”
피식, 정학우는 속으로 웃었다.
하여튼 솔직하지 못한 분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