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49화
오만철은 남궁정혁을 빤히 바라보았다.
의문을 느꼈던 것이다.
‘석문은 이런 자를 어찌 알고 있을까?’
귀티나게 생긴 외모, 거기다 값비싸 보이는 옷까지.
저자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알겠다.
제법 있는 집 자식이라고.
거지 굴 같은 보육원에서 부모도 없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석문과는 전혀 어울리는 않는 자다.
남궁정혁을 처음 본 오만철은 그렇게 느꼈다.
‘근데 말하는 것을 보니 석문을 무척 아끼는 것 같단 말이야.’
그래서 크게 불렀다.
저자가 석문을 위해 말값을 지급할 수 없도록.
제아무리 부자라도 천이백 냥은 부담스러운 금액.
‘그 돈을 주면 나야 좋지.’
앉은 자리에서 천이백 냥을 고스란히 버는 거니 말이야.
마방을 확장하는 것보다 그 돈을 얻는 게 더 큰 이익이다.
오만철이 점점 고개가 삐딱해지는 남궁정혁에게 말했다.
그것이 자신의 명줄을 줄이는 행위인 줄 모르고.
“왜? 그 돈 없어? 그럼 꺼져.”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보자.”
“뭘?”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냐? 그런 억지를 쓰는 이유가 뭐냐고?”
“내가 원하는 건 간단해, 그냥 너희가 보육원에서 꺼져 주면 돼.”
“이제는 절반으로 후려친 땅값도 주기 싫으니 몸만 나가라?”
“석문이 감옥 안에서 죽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그래야 할 거다. 그 쓰레기만도 못한 살림살이들은 꼭 들고 가고.”
허허허, 어이없는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 새끼 좀 보소.
내가 살 기회를 줬는데도 제 발로 차 버리네?
“내가 오늘은 정말 착한 마음으로 왔거든.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싶어서, 근데 당사자가 안 도와주니 내가 어떡해야 할까?”
“하하하, 평화적으로 해결 안 해도 돼. 내가 원래 평화적인 사람이 아니니까. 얘들아.”
탕탕, 오만철이 손바닥으로 탁자를 치자 방주실 문이 열리며 건장한 사내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한 놈, 두 놈, 세 놈…… 대략 열 명이 넘나?
“내 부하들이 요즘 욕구불만이야, 힘은 넘치는데 쓸데가 없어서.”
“아, 그래서 보육원에 가서 욕도 하고 행패를 부렸나 보구나.”
“얘들아, 내가 원하는 게 뭔진 알지? 이놈을 처리해라.”
오만철의 명령에 그의 부하 중 가장 체격이 큰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당장 무릎을 꿇고 보육원 땅을 넘기겠다는 각서를 써라. 안 그럼 몸 성히 돌아가지 못할 것이야.”
“내가 잘못했다.”
자신의 우람한 몸집에 겁먹었다 생각한 것일까?
사내가 더욱 윽박질렀다.
“빈다고 될 일이 아니다. 당장 각서를 쓰라고.”
“아니야, 이번 일은 내가 잘못했어.”
이런 놈들을 상대로 평화를 논하다니
아암, 내가 잘못했지, 크나큰 잘못을 했어.
“허튼소리 말고 당장…….”
“이리 와 봐.”
남궁정혁이 자신의 말을 끊고 손목을 흔들자, 사내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본인을 무시한다 느꼈기 때문이다.
“네놈이 정녕 겁이 없구나……응?”
뭐지? 왜 손가락을 오므리지?
지금이 장난칠 때냐, 사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
딱!
남궁정혁의 사내의 이마에 대고 딱밤을 때렸다.
마치 애들 장난처럼.
분명 곁에서 볼 때는 그랬는데.
“으아아악.”
뒤로 데굴데굴 구른 사내가 이마를 붙잡고 절규했다.
이마가 움푹 들어간 거로 보아 두개골이 부서졌나.
저거 원래대로 안 돌아올 텐데.
그래도 괜찮다.
원래부터 못생긴 얼굴이었으니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왜 딱밤에 사람이 날아가?”
그것도 살살 친 것 같았는데.
오만철과 그의 부하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은 향해 남궁정혁이 싱그러운 웃음을 지어 주었다.
“별거 아냐, 너희들도 곧 이렇게 될 거거든. 다들 이마 까 봐.”
그래, 나도 이게 편하다.
안 그래도 안 하던 짓거리 하려니까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려던 참이었거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오만철이 부하들에게 외쳤다.
“저자를 쳐라, 모두 한꺼번에 공격하라고.”
그의 부하들이 합심하여 남궁정혁을 공격했지만, 통할 리가 있나.
숫자와 상관없이 그 능력이 이미 하늘과 땅 차인데.
오만철의 부하들도 곧 땅바닥에 드러눕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악.”
자신들의 이마를 부여잡고.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단 한 명.
바로 오만철이다.
“하하하, 무림의 고수셨군요. 그럼 그렇다고 미리 얘기해 주시지. 그에 걸맞게 대접해 드렸을 텐데.”
“아니야, 괜찮아.”
난 고마워.
그 덕분에 속에 쌓인 화를 풀 수 있었으니.
마지막 딱밤이 오만철의 이마에 작렬했다.
이제껏 친 딱밤 중 가장 강력한 딱밤이었다.
* * *
“많이 아파?”
“……아니요, 괜찮습니다.”
“내가 나쁜 뜻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야. 다 네가 착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에 그런 거야, 내 맘 알지?”
“그럼요, 대협의 뜻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오만철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지금 자신에게 어깨동무를 한 남궁정혁이 지옥에서 거슬러 온 마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체 석문은 이런 자를 어떻게 안단 말인가.’
한 사람에 한 대씩.
남궁정혁이 딱밤을 칠 때마다 부하들이 머리를 움켜쥐고 쓰러졌다.
글공부 좀 해서 머리가 돌아가는 응삼이부터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돌대가리 철호까지 전부 다.
지위의 고하에 상관없이 모두가 공평하게 이마가 움푹 꺼졌다.
이거 원상복구는 가능할까.
반드시 되어야 하는데.
쪽팔려서 앞으로 이마도 못 까고 다니겠다.
“나도 너희들 때리느라 손가락이 아프잖아! 호~ 해 줘.”
“…….”
진짜 이 새끼가 누굴 놀리나.
“어? 표정 뭐야? 지금 불만이라도 있는 건 아니지?”
“아, 아닙니다. 불만이라뇨.”
자신은 지금 대가리가 깨질 것 같은…… 아니, 대가리가 깨져 걸을 때마다 골이 띵하니 울리는 게 당장이라도 누워서 쉬고 싶은데.
하지만 어쩌겠나.
힘없는 게 죄지.
오만철이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남궁정혁의 손가락에 호~ 입김을 불어 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오순도순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는 사이 관아에 도착했다.
“아니, 오만철 방주님 아닙니까? 이 밤중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입구를 지키는 포졸이 아닌 밤에 방문한 오만철을 보고 묻자 그가 순순히 대답했다.
“……자수하러 왔네.”
“자수라뇨? 방주님이 무슨 죄를 저질렀습니까?”
“크흠.”
딱밤을 맞은 직후 그는 남궁정혁에게 순순히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석문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석문은 말을 훔친 적이 없네. 내가 거짓 고발을 한 게야. 그러니 석문을 풀어 주게.”
오만철의 뜬금없는 고백에 포졸이 당황했다.
난데없이 나타나서 한다는 소리가 누명을 씌웠다니.
포졸은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머리를 긁적였다.
“아, 예. 일단 현감님께 보고부터 하겠습니다.”
“……그렇지! 우선 현감님에게 말해야겠지.”
이제껏 썩은 동태눈깔 같았던 오만철의 눈에 희망의 빛이 감돌았다.
어쩌면 현감이라면, 곡아현에서 가장 높은 그라면 지금의 이 지옥 같은 상황을 타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 지금까지 꾸준히 뇌물도 갖다 바쳤고 말이야.
“가서 잘! 말해 주시게. 이 오만철이 왔다고 말이야. 하하.”
“…….”
그런 그의 검은 속내를 남궁정혁이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이런 놈을 한두 번 보나.
나도 관아에 오기 전부터 대충 이런 상황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다.
그래서 오만철과 함께 여길 왔다.
‘인간이 그렇게 쉽게 변할 리 없지.’
남궁정혁이 오만철의 두 눈을 마주 보며 씨익 웃었다.
“네놈의 몸 중앙에 딱밤을 치면 어떻게 될까? 좌우 구슬에 한 방씩, 내가 어릴 때부터 구슬치기를 참 좋아했거든.”
“……!”
순간 등골이 서늘하다.
이 흉악한 놈은 진짜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남자 구실을 제대로 못 하느니 차라리 무고죄로 옥에서 몇 달간 썩는 게 낫다.
그간 현감에게 잘 보였으니 어쩌면 더 빨리 나올 수도.
계산을 마친 오만철이 재빨리 말했다.
“오, 옥이 어딘가? 내 발로 들어가겠네.”
“방주님, 일단 현감님부터 만나보시고…….”
“아니야, 난 옥에 갇히는 게 당연한 인간이야. 당장 그리로 안내해 주게.”
어딜 가나 역시 매가 답이지.
거기선 나올 때는 좀 더 바른 인간이 되어라.
* * *
임숭재의 방.
임사홍이 호통치는 소리가 문밖으로 흘러나왔다.
“우둔한 놈, 아직도 수양이 부족한가 보구나, 낮에 그런 ‘실수’를 하는 걸 보니.”
“죄송합니다, 아버지. 면목이 없습니다.”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아느냐?”
“제가 거짓말을 해서요…….”
임사홍의 미간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못난 아들은 아직도 저의 잘못을 모른다.
“아니, 내가 화난 이유는 네가 들통날 거짓말을 해서이다.”
“……네?”
“아까 그곳에는 사건 당사자들 말고도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순간의 위기를 모면코자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해? 그것은 너 스스로 낭떠러지에 발을 내민 것이나 다름없다.”
“예…….”
“조정에서 출세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아느냐?”
잠시 생각한 임숭재가 답했다.
“……업무 능력 아닐까요?”
“아니다.”
단호하게 부정한 임사홍이 아들에게 가르침을 내렸다.
“처신이다. 상황에 따른 올바른 행동, 그것이 곧 너의 평판이 되니까,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선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임사홍이 참판까지 승진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때론 겸손하게, 때론 강직하게,
필요하다면 아부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번 경우만 해도 그렇다.
아들의 실수를 덮기 위해 미천한 것들에게 고개까지 숙이지 않았던가.
굴욕은 잠깐이다.
고개 숙여 사과하자 오히려 피해자들이 황송해하는 꼴이란.
그들에게 자신은 높은 벼슬임에도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청렴결백한 관리로 보일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거지.
자신의 선행을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해 주면 더욱 좋고.
그렇게 속내를 숨기고 평판 관리를 한 덕분에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최종적으로 종 3품 참판이 될 수 있었다.
“너에게 이득이 된다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아니 해야 한다. 단 절대 들키지 않을 상황에서 해야 한다.”
“아버지의 깊은 뜻을 소자가 이제야 깨닫습니다.”
임숭재가 아버지의 가르침에 큰 감명을 받았을 때였다.
“현감님.”
“무슨 일이냐?”
밖에서 부하가 그를 불렀다.
그리곤 생각도 못 한 이름이 들렸다.
“오만철 방주가 찾아왔습니다.”
“……?”
그가 기별도 없이 갑자기 왜?
그것이 이 밤중에.
‘또 부탁할 것이 있나?’
일주일 전 그의 부탁을 받고 석문이라는 놈을 옥에 가둬 주었다.
그 대가로 받은 옥가락지를 애첩, 춘실이에게 갖다 주니 참 좋아했었지.
“자수하러 왔답니다.”
더 뜬금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수?”
“그가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석문에게 누명을 씌웠다고요.”
“……뭐?”
가둬달라고 사정할 땐 언제고 갑자기 웬 자수?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꼈나?
절대 그런 걸 느낄 인격자가 아닌데.
“하도 자기를 가둬 달라고 사정사정해서 우선은 옥 안에 넣어 놨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의 연속인지.
자신이 직접 가서 상황을 확인해 봐야겠다.
임숭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임사홍에게 양해를 구했다.
“갑자기 일이 생겨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니다. 뭔 일이 생긴 것 같으니 나도 같이 가 보자.”
이 달밤에 찾아온 자수자라니.
흥미를 느낀 임사홍도 아들을 따라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