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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51화 (51/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51화

정학우는 생각했었다.

자신이 남궁정혁에 대해서 잘 안다고.

그를 옆에서 모신 지 삼 년이 넘었으니 모르는 게 더 이상하다고.

예전의 남궁정혁은 참 단순한 사람이었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모든 행동이 일차원적이니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변했단 말이야.’

절벽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친 후부터였다.

그때부터 아예 다른 사람이 된 듯 모든 행동 양식이 변했다.

심지어 식성마저도.

예전의 남궁정혁은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입에도 안 댄다.

오직 고기만 처드신다.

식단 관리도 무공 수련의 일환이란다.

그래서 그렇나.

이제는 방귀 소리마저 바뀌었다.

그럼에도 예전과 똑같은 건 단 하나.

여전히 싸가지는 없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없어졌나.

사고 치는 규모가 비교도 안 되게 더 커졌으니.

그래도 예전에는 수습 가능한 선에서 날뛰었지만, 지금은 뭐?

뭘 했다고?

“현감을 때렸다고요?”

남궁정혁이 석문을 업고 왔기에 어떻게 데려왔냐고 물으니 현감을 때려눕히고 데려왔단다.

어찌나 태연하게 말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현감이 옆집에서 키우는 개 이름인 줄 알겠다.

“도련님, 관리를 때리면 안 된다는 것은 다섯 살 꼬마애도 당연히 아는 상식입니다.”

“쓸데없는 잔소리하지 말고 의원이나 불러와라. 석문 상태가 안 좋다. 고문을 당했어.”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곧 도련님도 상태가 안 좋아질 거라고요. 관리 폭행죄로 끌려가서 곤욕을 치를 테니.”

이제는 모르겠다.

저 인간의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대체 어떤 생각을 하면 현감을 팰 수 있는 겁니까? 남들은 꿈속 속에서라도 그런 짓을 하면 벌벌 떨 텐데.”

“그게 뭔 대수라고.”

“네?”

“참판도 팼어.”

“……?”

정학우가 눈을 끔뻑였다.

내가 지금 뭘 들었지?

누굴 팼다고요?

“참판이 설마 그 임사홍 어른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요? 이 동네에 참판이라는 미친개가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그 개를 때린 걸 거예요. 제발 그렇다고 말해 주세요.”

정학우가 간절히 애원했지만 남궁정혁이 그 기대를 싹둑 잘라 버렸다.

“겉으로만 깨끗한 척하는 위선자였다. 내가 또 그런 꼴은 못 보거든. 정신 차리라고 아주 잘근잘근 밟아 줬지. 나중에는 제발 살려 달라고 빌더라고.”

아이고, 남궁도 가주님, 이 사태를 어찌합니까.

저 불효자가 가주님보다 먼저 염라대왕께 문안 인사 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고위 관리를 폭행했으니 참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도련님 목이 날아갈 거라고요.”

“그래도 후회는 없다. 석문을 구할 수 있었으니.”

아니, 옥에 갇힌 건 양일남 스승의 지인인데 왜 자기가 저렇게 뜨거운 열정으로 나선데.

남의 일에 언제부터 그렇게 관심이 있었다고.

누가 보면 석문이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불알친구라도 되는 줄 알겠네.

하지만 정학우는 이제 남궁정혁을 이해하는 걸 포기했다.

저 인간은 이미 자신의 상식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   *   *

“감사합니다. 덕분에 누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석문이 옥에서 나온 지도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다.

처음엔 의식 없이 물 삼키기도 힘들어하더니 의원의 실력이 좋아서일까?

아니며 남궁정혁의 지극정성이 통해서일까?

이제는 미음을 삼킬 정도로 몸이 회복되었다.

그가 다시 한번 남궁정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저를 구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새 보육원을 마련해 주신다니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일이란 게 다 돌고 도는 게 아니겠습니까. 당신이 언제가, 누군가에게 베풀었던 은혜가 이제야 돌아온 것이니 부담 가질 필요 없습니다.”

이건 남궁정혁의 진심이기도 했다.

그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던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던 가족 같은 사람 아닌가.

그런 그에게 그깟 새 보육원 마련해 주는 것쯤이야 전혀 아까울 것도 없다.

어차피 내 돈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을 오랫동안 보살피려면 무엇보다 건강이 우선입니다. 지금은 몸 상태를 회복하는 것만 생각하세요.”

이미 왕소단에게 서문호를 보냈다.

합비 인근, 한적하고 경치 좋은 곳에 새 보육원을 마련하라고.

그곳으로 이전하면 틈날 때마다 간간이 들릴 생각이다.

“그럼 푹 쉬어요.”

남궁정혁이 석문의 방을 나가려고 할 때였다.

“남궁정혁이 이곳에 있나!?”

밖에서 쩌렁쩌렁한 고함이 들렸다.

동시에 당황한 정학우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거봐요, 내 말이 맞잖아요.”

“……?”

“도련님을 잡으러 조정의 정규군이 출동할 거라고 했잖아요.”

밖으로 나가 보니 갑옷을 차려입은 병사들이 어느새 보육원을 둥글게 포위하고 있는데 그 기세가 매우 위풍당당하다.

역시 제대로 훈련받은 정규군이라 이건가.

번쩍이는 갑옷, 수백 명이 넘는 인원, 절도 있는 행동.

그들이 주는 위압감에 살짝 주눅 든 정학우가 남궁정혁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러게 제가 진즉에 도망치라고 했잖아요. 이제는 늦었습니다.”

그는 이미 수차례 독촉했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깊은 산속이나, 아니면 차라리 새외로 몸을 숨기라고.

물론 남궁정혁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헛소리였지만.

자신이 뭘 잘못했다고 도망치냐.

맞은 놈들이 맞을 짓 해서 때린 것뿐인데.

무엇보다 죽었으면 죽었지.

내 인생에서 도망이란 있을 수가 없어.

“참 많이도 왔다. 요즘 군사가 남아도나.”

이런 남궁정혁을 보는 정학우의 속은 어떻겠는가.

진짜 이걸 욕할 수도 없고, 때릴 수는 더더욱 없고.

차라리 여기서 죽을 거라면 지금 당장 뒤통수라도 한 대 때릴까?

그의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갈 때 한 병사가 포승줄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남궁정혁은 앞으로 나서라.”

정학우가 다급히 말했다.

“도련님, 지금은 얌전히 있어야 합니다. 난동 피우면 절대 안 됩니다.”

“나보고 순순히 잡혀가라고?”

“남궁세가가 조정에 닿은 연줄을 총동원해 어떻게든 선처를 구해 볼 테니 우선은 얌전히 잡혀가세요.”

“선처? 그러면 어떤 벌을 받는데?”

“잘하면 옥살이 10년 정도로 마무리되지 않을까요.”

이게 장난하나.

나보고 옥에서 10년이나 썩으라고?

남궁정혁의 표정에서 그 속내를 짐작한 정학우가 말했다.

“목이 붙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히 여기세요.”

별로 감사하지 않은 남궁정혁은 이 대목에서 고민했다.

저것들을 다 때려눕혀?

‘…….’

음, 만만찮겠다.

일단 숫자가 너무 많거니와, 그중 상당수가 무공을 제법 익힌 듯 눈빛이 날카롭다.

이것들 제대로 준비하고 왔구나.

그렇다고 내가 겁먹을 줄 알고?

‘니들은 오늘 다 뒤졌다.’

남궁정혁이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결전을 준비할 때였다.

“병조판서, 유학성 대감 납시오.”

정면에 서 있던 병사들이 양옆으로 쫙 갈라지며 길을 텄다.

그 사이로 말을 탄 중년 사내가 유유히 들어왔다.

옛 삼국시대 관우의 모습이 저러할까.

엄청난 덩치에 긴 수염이 바람에 흩날렸다.

게다가 한 손에는 거대한 청룡언월도까지 들고 있네.

‘…….’

저 정도면 노린 거 아닐까.

일부러 비슷하게 보이려고.

“저자가 남궁정혁이 맞습니다.”

그런 그의 옆에는 임숭재가 같이 있었다.

팔과 발에 부목을 대고 쩔뚝거리며 걷던 그가 남궁정혁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저놈이 현감으로서 정당한 공권력을 행사하려는 저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중간에서 말리는 아버지까지 폭행하여 갈비뼈를 부러뜨렸습니다. 의원 말에 따르면 아버지는 최소 3개월 이상은 요양해야 몸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고놈 참 말도 빨리 잘하네.

이럴 줄 알았으면 혀를 뽑아 버릴 걸 그랬다.

병조판서 유학성이 말에서 내리더니 남궁정혁을 향해 물었다.

“이자의 말이 사실인가?”

인제 와서 부정할 생각은 없다.

피할 생각도 없고.

“때릴 만해서 때렸소.”

남궁정혁의 당돌한 대답에 정학우가 난리가 났다.

“도련님, 예의를 갖추십시오, 병조판서면 이 나라의 군권을 책임지는 총 책임자입니다. 게다가 저분은 황제의 총애를 받는 충신이라고 소문난 분이라고요.”

그런 대단한 분이 여기까지 왜 직접 오셨대?

이 일이 병조판서까지 나설 만큼 대단한 일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정도는 아닌데.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다.

“한가하신가 보오, 수도인 남경에서 여기까지는 제법 거리가 먼데 말입니다.”

남궁정혁의 도발에 유학성이 푸하하, 파안대소했다.

“듣던 대로 재밌는 놈이로다.”

그가 포승줄을 들고 있는 부하에게 명했다.

“체포하라.”

“예.”

유학성의 명령에 병사가 오라를 씌었다.

그런데…….

“왜 나를 묶는 것이오? 내가 아니라 남궁정혁, 저놈을 잡으라니까.”

남궁정혁이 아닌 임숭재를 포승줄로 묶었다.

대체 왜?

“끌고 가라.”

“판서님, 설명이라도 해 주십시오, 제가 뭘 잘못한 것입니까?”

임숭재가 발버둥 치며 저항했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병사가 그를 질질 끌고 병사들 너머로 사라졌다.

‘……?’

대체 이게 무슨 짓거릴까.

날 잡으러 온 게 아니었나?

그럼 이 많은 병사는 다 뭐고?

황당한 남궁정혁에게 유학성이 먼저 제안했다.

“단둘이서 얘기 좀 나누지.”

*   *   *

보육원의 어느 방.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남궁정혁, 임숭재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임숭재는 왜 잡혀간 겁니까?”

“죄를 지었으니까.”

“무슨 죄요?”

“그가 작년 과거에서 장원급제한 건 알고 있나?”

“예.”

“부정행위였네.”

“예?”

“그의 아비, 임사홍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사전에 시험 문제를 유출했어. 그래서 임숭재가 장원급제할 수 있었지. 지금쯤 임사홍도 옥에 갇혔을 게야.”

웬 버러지가 장원급제했나 했더니 그런 내막이 있었군.

“부끄러운 일이지, 조정에 그런 비리가 있었다니.”

유학성의 한탄은 계속되었다.

“나라 곳곳이 썩어가고 있네.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할 관리들이 부패하여 제 배 속만 채우고 있어. 결국, 피해 보는 건 일반 백성이야. 이를 바로잡아야 하는데 조정의 가장 높은 곳부터 시작해서 낮은 곳까지 썩은 내를 풍기지 않는 곳이 없어.”

“예…….”

판서 양반의 고충은 잘 알겠는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이렇게 독대까지 하자고 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유학성이 남궁정혁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난 자네 같은 인재를 기다렸어.”

“……?”

“무고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부패한 권력에 당당히 맞섰다지. 난 자네처럼 정의로운 사람이 필요해.”

뭔 말을 하려나 했더니, 이 양반이 아주 큰 착각을 하고 있다.

정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정의, 정도, 의협, 이런 거다.

사람이 실속이 있어야지.

그런 쓸데없는 가치관 찾다간 제 명을 다 못산다.

“오해하셨나 본데 전 그냥 임숭재 부자가 마음에 안 들었을 뿐입니다.”

“하하, 겸손할 필요 없네. 단순히 마음에 안 든다고 관리를 패는 사람이 어디 있나. 그것도 정3품 관리를. 내 평생 그렇게 단순무식한 사람은 본 적이 없어.”

“……그래서 저한테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유학성이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보니 동그란 금속 안에 용이 각인 되어 있다.

“이게 뭡니까?”

“용패, 암행무사의 상징이지.”

“암행무사? 그건 또 뭡니까?”

“황제의 밀명을 받아 무림에서 활동하는 무인일세. 주로 황궁에서 직접 개입하기 어려운 비밀작전을 수행하지.”

“그런 걸 여기서 꺼냈다는 건……?”

“암행무사가 되어 주게. 평상시에는 자네 할 일을 하다가 간간이 내려오는 명령만 수행하면 되네.”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요. 제가 은근히 바쁜 사람이라.”

“자네한테 거부권이 있을까?”

으흠, 헛기침한 유학성이 말을 이었다.

“이 용패를 받으면 자넨 암행무사로서 부패한 임숭재 부자를 정당하게 처벌한 걸세.”

“안 받으면요?”

“관리 폭행죄로 처벌받겠지.”

“임숭재 부자가 비리를 저질렀다면서요?”

“그렇다고 자네에게 그걸 처벌한 권리가 있는 건 아니지. 용패가 없으면 자넨 일반 백성일 뿐이니.”

임학성이 용패를 남궁정혁 눈앞에서 흔들었다.

“어떤가? 왕의 밀명으로 정의를 지키는 암행무사가 될 텐가, 아니면 죄인이 되어 목이 잘릴 텐가.”

음, 아쉽게도 선택의 여지가 없나?

“……그래서 나라를 위한 일이란 게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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