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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52화 (52/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52화

남궁정혁은 유학성의 제안을 딱 잘라 거절했다.

“싫습니다. 저는 못 합니다.”

“자네가 지금 거부할 입장이 아닐 텐데.”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겁니다.”

남궁정혁이 딱 잘라 거절하자 유학성이 재차 권유했다.

“이 일은 관에 대한 충성심으로 맡아 주게.”

아 글쎄. 저는 나라에 대한 충성심 자체가 없다니까요.

거기서 나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차라리 다른 일을 하겠습니다. 다른 일을 맡겨 주십시오.”

“이 일을 하기 싫은 이유가 뭔가? 그 이유라도 말해 보게.”

“…….”

하지만 남궁정혁은 묵묵부답,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갑갑함을 느낀 유학성이 탁자를 쳤다.

“고작 감옥에 잠입하는 일이야, 그렇게까지 심유도에 가기 싫은 이유가 대체 뭐냐고?”

그야 그 섬이 육지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그렇죠.

비양도까지 배로 세 시진 걸렸는데 심유도는 그 세 배인 아홉 시진이나 걸린단다.

거의 하루 꼬박 배를 타야 하는 거지.

욱, 상상만으로도 구토가 올라오는 것 같네.

‘왜 하필 섬을 감옥으로 만든 거야.’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심유도 안에 감옥이 있는 게 아니라 망망대해 한복판에 있는 그 섬 자체가 감옥이다.

그곳에 갇힌 죄수들은 평생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일종의 유배이자 격리 수용인 거지.

주로 관리에게 죄를 저지른 무림인들이 그곳에 갇혀 있단다.

“이 일은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야, 자네가 이번 임무만 완수하면 동창, 그 여우 같은 놈들의 목줄을 꽉 쥘 수가 있어.”

동창은 이 나라의 첩보기관이다.

각계각층의 정보를 수집하고 조정 대신들의 동태를 감시하여 황제에게 보고하는.

황제의 눈과 귀 역할을 대신한다고 보면 된다.

문제는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는 동창이 너무 비대해졌단다.

“고인 물이 썩듯이 지금의 동창은 썩어 빠졌어. 정보를 다루는 그들이 부패했으니 지금 조정 상황이 어떻겠나.”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다.

대신들의 부정부패를 감시해야 할 동창이 도리어 타락했으니 탐관오리들이 맘 놓고 설칠 수밖에.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겨 놓은 격이다.

“심지어는 동창이 대신들의 약점을 잡고 뇌물까지 뜯고 있어.”

“그러니까 그게 제가 심유도에 가야 하는 이유와 무슨 상관이 있죠?”

“동창의 부패에 분개한 한 요원이 있었네. 그가 내부에서 동료들의 비리를 수집했지.”

휴, 깊은 탄식과 함께 유학성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의 숭고한 행동을 결국 동료들에게 발각됐어. 그가 자신들의 비리를 캐고 다닌다는 걸 안 동창은 그를 사고로 위장하여 죽여 버렸지.”

거봐, 내 말이 맞지.

괜한 정의감에 불타면 저렇게 죽는 거다.

자신의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가지며 고갤 끄덕이는 남궁정혁을 보며 유학성이 의아해했다.

“갑자기 웬 혼잣말인가? 뭐가 맞다고?”

“아닙니다, 계속 말하시죠.”

“불행 중 다행이랄까, 본인의 죽음을 직감했는지 그가 내부비리를 적은 서찰을 죽기 전, 자신의 친우에게 맡겼네.”

“그리고 그 친우가 심유도에 있다?”

“맞네, 그 친우는 동창의 추적을 피하고자 스스로 심유도로 갔네.”

고놈, 머리가 제법 돌아가네.

제 발로 감옥에 간 걸 보니.

어느 누가 도망쳐도 심유도로 도망쳤을 거라 생각하겠는가.

“결국, 제가 그 사람을 데리고 나와라, 이 말이군요.”

“동창보다 먼저 기철, 그자를 데려와야 하네.”

“판서님 밑에도 부하들 많잖아요. 당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병사 중에서도 똘똘해 보이는 사람들 많더만.”

남궁정혁이 심드렁하게 말하자 유학성의 애가 탔다.

“조정 곳곳에 동창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이 없어. 나도 이런 말 하기 부끄럽지만, 내 부하 중에도 분명 동창의 첩자가 있을 걸세.”

나한테 목을 매는 이유를 알겠다.

상황이 그러니 조정과 아무 상관이 없는, 그것도 종 3품 나리를 팰 수 있을 만큼의 배짱을 지닌 내가 필요하다는 거군.

“이번 일은 무엇보다 보안 유지가 중요한 일이야. 꼭 자네가 해야 하네.”

“안타깝지만 제가 이번 일을 하기엔 치명적인 결함이 있어서요.”

“……결함?”

“제가 뱃멀미가 아주 심합니다. 심유도에 도착하기 전에 탈수로 죽고 말걸요.”

“하하, 난 또 뭐라고.”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유학성이 말했다.

“나한테 아주 좋은 약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   *   *

철썩, 처얼썩.

파도가 배에 부딪혔다.

그에 따라 배가 위아래로 출렁였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누구나 속이 더부룩하고 구역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유독 심한 사람이 있었으니…….

“우웩, 우에웩.”

남궁정혁이 난간을 붙잡고 구토를 했다.

어찌나 많이 했는지 이제는 내용물도 없다.

그저 혓바닥을 타고 맑은 위액만이 흘러내릴 뿐.

‘빌어먹을 유학성.’

사기를 쳐도 제대로 쳤다.

뭐? 멀미에 좋은 특효약이라고?

개뿔, 어느 돌팔이가 만들었는지 아무 효과가 없다.

그래서 남궁정혁은 심유도로 향하는 호송선을 탄 지 한 식경도 지나지 않아 토를 하기 시작했다.

“우에엑.”

이거 혹시 판서 나리의 계략 아닐까?

내부비리 서찰은 핑계고, 관리 폭행죄로 날 말려 죽이려는 거 아니냐고.

허튼 생각을 계속할 틈도 없다.

속에서 쉬지도 않고 역한 느낌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유안, 너처럼 토를 심하게 하는 사람은 처음이다.”

유안, 이번 작전에서 쓰는 내 가명이다.

보안이 중요하다고 유학성이 만들어 준 가짜 신분.

이름이 유치해서 별로 마음에 안 든다고 했더니 그냥 닥치고 쓰란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어떻게든 사람 꼬드길 때는 언제고.

이럴 줄 알았으면 승낙 조건에 작명도 넣을 것 그랬다.

“우욱.”

부하들은 집에 잘 갔을까?

토를 하는 와중에도 정학우, 양일남이 생각났다.

이번 작전이 기밀을 요하는 단독 작전이니 보니 그들과는 함께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난 따로 볼일이 있다고 대충 둘러대고 그들은 먼저 합비로 보냈다.

그게 벌써 일주일 전 일이다.

석문과 함께 무사히 도착했어야 할 텐데.

“그만 토하고, 자리로 돌아가.”

저렇게 싸늘하게 말하는 사람은 간수다.

난 지금 죄수의 신분으로 심유도로 끌려가는 거고.

여기서 또 어이가 없는 게 나의 죄명이 뭔 줄 아냐?

간통이란다.

어느 관리의 부인과 바람이 나서 심유로로 끌려가는 거라고.

이왕 신분 조작하는 거 제대로 된 거로 좀 해 주면 어디가 덧나나.

하여튼 유학성, 이 사람 감각이 없어.

그렇게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배 바닥에 누워서 가다 보니 어느새 심유도 근처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려라.”

그러면서 간수가 바다에 작은 통나무 하나만 던져 주네?

“설마 저걸 잡고 심유도로 가라는 건 아니죠?”

“심유도는 주변 해류가 특이하다. 섬을 향해서만 거센 파도가 치지. 그래서 밖에서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도 안에서는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건 이미 유학성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원래 무인도였던 저 섬에 죄수들을 가둬 놓은 가장 큰 이유라고.

“통나무를 잡고 있으면 자동으로 섬에 닿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좀 불안한데요. 혹시나 물에 빠져 죽으면 어떡합니까?”

“거기까지가 네 운명인 거지.”

아무리 죄수라지만 말 한번 심하게 하네.

그래도 어쩌겠나.

까라면 까야지.

“네 발로 가지 않으면 엉덩이를 차 주마.”

남궁정혁이 배에서 폴짝 뛰어내려 통나무를 잡자마자 거친 파도가 그를 덮쳤다.

배를 타고 있을 때가 그나마 나았다.

파도가 매우 높을 줄은.

삼 장은 족히 넘는 것 같다.

이 정도면 거의 해일 아닌가.

“흡, 푸우!”

입, 코를 통해 바닷물이 들이닥쳤다.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들고.

진짜 이러다 심유도 가기 전에 죽는 거 아냐.

남궁정혁이 통나무를 꽉 쥐었다.

지금은 이게 유일한 생명줄이니까.

그렇게 바다와 사투를 벌인지 한 식경쯤 되었을까.

남궁정혁은 심유도의 한 해변에 닿았다.

*   *   *

“아이고 죽겠다.”

남궁정혁이 모래 백사장에 대 자로 드러누웠다.

뱃멀미에 이어 바다 위를 떠다녔더니 온몸의 진이 다 빠졌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은 했지만, 더 힘드네.

하여튼 바다랑 나랑은 안 맞아.

그래도 남궁정혁이 근처에 있는 나무 막대기를 주워 겨우 몸을 일으켰다.

‘백중사리 때 이 섬을 탈출해야 한다’

백중사리는 일 년 중 조수간만의 차이가 가장 큰 날.

그날에만 심유도 주변의 해류가 변한단다.

밖에서 안으로 치는 파도가 잠잠하다고.

그래서 백중사리에는 심유도 주변 해역을 해군의 군함이 돌아다니면 감시한다.

혹시 섬을 탈출하는 죄수가 없는지.

나는 유학성의 측근이 함장으로 있는 그 군함을 타고 육지로 돌아가야 하고.

행여나 그 군함을 타지 못한다면?

일 년간 이 섬에서 더 썩는 거지.

그런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참고로 백중사리 때까지 3일 남았다.

그때까지 어떻게든 기철을 만나야 한다.

‘그전에 물부터.’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하도 구토를 했더니 심한 갈증이 난다.

식수로 마실 만한 물이 어디 있을까, 해안선을 따라 돌면 물이 나오지 않을까?

그때 해변 뒤쪽에서 인기척이 들리나 싶더니 세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 꼴이 가관이다,

걸레만도 못한 누더기를 입고 나무칼을 들었다.

‘……원시인도 아니고.’

한편으로 저 모습이 이해가 된다.

자신도 이곳에 들어올 때 갈색 죄수복만 입고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었으니.

이 섬엔 아무것도 가지고 들어오지 못한다.

그래서 주살검은 미리 정학우에게 맡겨 두었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새로 온 신입인가?”

“요즘은 신입이 자주 오네, 삼 일 전에도 한 명 왔었잖아.”

“비리비리해 보이는 게 이곳에서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군.”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들의 본 남궁정혁의 눈이 번뜩였다.

“……물!”

그들의 허리춤에 가죽으로 된 수통이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물 좀 주시오.”

정중한 부탁.

남의 것을 달라고 할 땐 이 정도 예의는 있어야지.

그래야 물 한 모금 얻어 마시지.

“이 섬에 물이 얼마나 귀한데 너한테 나눠 주겠냐.”

하지만 상대방이 거절하네?

뭐 여기까지는 좋다 이거야.

자신의 것을 꼭 다른 사람에게 나눠 줘야 할 의무는 없으니까.

“얼굴이 홀쭉한 것 보니 뱃머리를 심하게 했나 보구나.”

“아니면 엄마가 보고 싶어서 계집애처럼 훌쩍훌쩍 울었냐.”

“하하, 그만해라, 곧 울겠다.”

근데 조롱까지 하네.

죄수답게 예의가 없구나.

뭐 그래도 저렇게 나와 주면 나야 고맙지.

“고맙다.”

남궁정혁의 말에 상대방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미친놈이 왔네.”

“그러게 말이야, 뭐가 고맙다는 거지?”

“엄마 얘기에 감동이라도 받았나?”

아니야, 난 정말 고마워.

“내가 너희들은 때려눕혀도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것 같거든. 그냥 물만 놓고 사라지면 용서해 줄 수도 있고.”

남궁정혁의 말에 그들이 낄낄 웃었다.

“진짜 미친놈이군.”

“처음 올 땐 누구나 다 저래, 똥오줌 쌀 때까지 맞아 봐야 정신을 차리지…….”

퍽, 방금 말한 사내의 입에서 피가 튀었다.

남궁정혁이 막대기로 후려쳤기 때문이다.

“이 새끼가 비겁하게 기습을…….”

그럼 나쁜 놈 상대로 싸우면서 ‘지금부터 공격하겠습니다’ 예의 차릴까?

남궁정혁이 막대기로 방금 말한 사내의 머리를 내리쳤다.

퍼억, 얼마나 단단한 돌대가린지 막대기가 부러졌다.

“헤헤, 어떡하냐, 이제 무기가 없어졌으니.”

한 대도 맞지 않은 사내가 횡재했다는 듯 나무칼을 들고 공격했지만, 네가 제일 재수 없어.

이제부터 주먹으로 때릴 거거든.

혹시나 까먹을까 봐 다시 말하면 전생에서 나는 권을 썼다.

내 주먹이 웬만한 흉기보다 더 무지막지하다는 말이다.

퍽퍽퍽, 그 사내의 전신을 다진 고기처럼 부위별로 잘 패 주었다.

그러자 나머지 두 사람의 낯빛이 시퍼렇게 질렸다.

“너희들도 더 패 줄까? 막대기로 맞은 거로는 부족해?”

도리도리, 두 사내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고개만 저었다.

“꿇어.”

남궁정혁의 단 한마디에 세 사내가 나란히 무릎을 꿇었다.

크으, 이 맛에 사람 패는 거지.

“아이고, 죽겠다.”

그나저나 없는 기력에 움직였더니 삭신이 쑤시네.

“물!”

남궁정혁이 말에 세 사람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제 것은 내놓기 싫다 이거지.

그래서 남궁정혁이 눈치 싸움 할 필요 없게 해 주었다.

“세 개 다 내놔!”

캬,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순식간에 물통 세 개를 다 비운 남궁정혁이 본격적인 용건을 꺼냈다.

“너희들 기철이라고 아냐? 한 달 전쯤에 여기 왔을 텐데.”

그 말에 세 사람이 깜짝 놀랐다.

“기철은 어찌 아십니까?”

“저희도 지금 그놈을 쫓고 있었습니다.”

기철은 쫓아? 왜에?

무슨 이유로?

혹시 동창이 먼저 손을 쓴 건가?

“도주가 기철을 잡기 위해 혈안이 돼 있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찢어 죽인다고.”

“……도주?”

“심유도를 지배하고 있는 도주, 막사현 말입니다. 그가 이 섬에서 가장 강합니다.”

“그 사람이 왜 기철을 죽이려고 하는데?”

“그건…….”

혹시 동창의 입김이 닿아 그런가 했더니 또 그건 아니다.

들어 보니 예상치 못한 악연이 그들 사이에 얽혀 있었다.

하긴 이런 게 무림이긴 하지.

그나저나 기철, 이 양반 참 재수가 없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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