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53화 (53/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53화

재수 없는 상황을 가리켜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한다.

내가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건 기철이 지금 딱 이런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하필 여기서 가문의 원수를 만나다니.’

저들의 말을 정리하면 이렇다.

심유도의 도주, 막사현은 원래 혈사문이란 문파의 문주였다고 한다.

사파에서는 꽤 유명한 고수였다고.

그런 막사현 때문에 인근에 있는 작은 정파, 태진파는 기를 펴지 못하고 혈사문의 눈치만 살폈단다.

그런데 구름이 걷히고 햇볕 쬘 기회가 왔다.

막사현이 어느 날, 인근을 지나던 누군가와 시비가 붙어 그를 죽였는데 그 사람이 하필 군부에 속한 사람이었단다.

그래서 막사현은 그 시신을 몰래 뒷산에 묻었다고.

근데 그걸 태진파에 딱 들켰다.

군자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고 태진파 문주는 당장에 그 사실을 조정에 알렸고, 이걸 안 조정이 가만히 있었겠는가.

당장에 군의 고수들이 대거 출동하여 막사현을 이곳에 잡아넣었다.

그러니 막사현이 태진파에 대해 얼마나 깊은 원한을 품고 있겠나.

자면서 잠꼬대까지 했단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에서 탈출해 태진파를 찢어 버린다고.

그런 상황에 한 달 전에 새로운 신입이 들어왔다.

바로 기철.

“기철은 태진파 문주의 아들입니다.”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호랑이를 피해 바다를 건넜는데 늑대가 아가리를 쫘악 벌리고 있다니.

막사현을 본 순간 기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고, 막사현은 부하들을 총동원해 그를 찾고 있단다.

“기철이 무공은 별로 강하지 않은데 경공은 아주 빠릅니다. 그래서 아직도 도망 다닐 수 있었죠.”

지금 무릎 꿇고 있는 이들도 막사현의 닦달에 숲을 뒤지다 나를 만났단다.

“도주의 성격이 아주 포악합니다. 기철의 사지를 하나씩 뽑아 죽일 게 분명합니다.”

그러면 안 되지.

그는 내가 여기서 무사히 데려가야 한다.

그것도 삼일 안에.

“이곳에선 도주의 말이 법입니다. 그 누구도 그의 말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막사현이 이곳의 도주가 된 것은 그가 단지 가장 강해서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나?”

“심유도는 이곳만의 법칙이 있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도주의 명령에 절대복종 해야 의무가 있는 대신 그에게 도전할 권리도 있습니다. 도주는 반드시 도전을 승낙해야 하고요.”

죄수들이 폐쇄된 공간에 몰려 있으니 그들만의 법칙을 만들었나 보다.

“막사현도 오 년 전, 전 도주를 이기고 도주가 되었습니다.”

한편으론 합당하네.

가장 센 놈이 가장 높은 자리에서 군림하는 게 무림의 법칙 아니겠는가.

“저…… 근데 이제는 마을로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마을?”

“심유도에 있는 사람 대부분은 한 마을에 모여 살고 있습니다. 산지가 많은 이곳에서 유일한 평지죠.”

세 사내 중 뻐드렁니가 아쉬운 투로 계속 말했다.

“곧 식사 시간입니다. 지금 가지 않으면 점심을 먹지 못합니다.”

“식사시간까지 따로 정해져 있나?”

“이곳은 공동체 생활을 합니다. 각자의 역할이 정해져 있죠. 예를 들면 무공이 강한 사람은 자경단, 사냥을 잘하는 사람은 사냥단, 음식을 잘하는 사람은 급식단, 이렇게요.”

이것 또한 나름 체계적이다.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저 방법이 효율적이긴 하지.

꼬르륵.

먹는 얘기를 해서 그런가.

남궁정혁의 배 속이 울렸다.

당연한 신체 반응이기도 하고.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구토만 했으니.

“같이 가서 저희랑 식사하시죠. 심유도에 오셨으니 이제 같은 주민 아닙니까?”

“아무나 마을 주민이 될 수 있는 건가?”

“도주의 허락만 받으면 됩니다. 기철 같은 특수한 경우만 아니면 다 마을 주민이 될 수 있고요. 어차피 다 같은 처지니까요.”

음, 어쩔까?

기철을 먼저 찾아볼까, 아니면 저들을 따라가?

“빨리 가야 합니다. 늦게 가면 음식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 장가계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배부터 채우자.

“음식은 맛있냐?”

“재료가 부실하긴 하지만 먹을 만합니다.”

사내들을 따라간 마을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범죄자 놈들이라 움막 같은 곳에서 대충 살 줄 알았더니 아름드리 통나무로 만든 집들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다.

제법 솜씨가 좋네.

“한 채에 다섯 명씩 삽니다.”

“마을 주민이 총 몇 명인데?”

“약 백 명 정도 됩니다.”

뻐드렁니, 홍재가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저곳이 도주의 집입니다.”

통나무 집 중 유독 큰 2층짜리 집이었다.

“도주님께 인사드리고 난 후 잘 부탁드립니다.”

“뭐가?”

“무공이 강하신 걸 보니 분명 마을의 치안 유지를 하는 자경단에 들어가실 수 있을 겁니다.”

“그게 되면 좋은가?”

“도주님 다음으로 힘센 사람들이 자경단원입니다. 배식도 제일 먼저 받고 이런저런 혜택이 있죠.”

이놈들이 아까부터 어째 설설 기더라니.

이곳도 나름의 계급체계가 있나 보다.

‘…….’

가만, 이곳은 모든 것이 힘의 논리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런데 내가 막사현과 싸워서 이기면 도주가 되는 거잖아.

한판 붙어……?

고민하는데 배 속에서 또다시 울리는 소리.

꼬르륵.

아니다.

일단 배부터 채우자.

걷기도 귀찮은데 뭔 싸움이냐.

“식당이 어디냐?”

“신입이 오면 무엇보다 먼저 도주님께 인사부터 올려야 합니다. 그게 이곳의 예절입니다.”

“먼저 밥부터 먹고.”

“인사부터 하세요, 예절을 지켜야 합니다.”

범죄자한테 예절 지키란 말을 듣는 게 어이없어서 무시했다.

내가 이 몸의 생물학적 아비인 남궁도한테도 안 지키는 예절을 범죄자한테 지킬까.

남궁정혁이 홍재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빨리 식당으로 가자.”

“그러다 나중에 도주님이 아시면 큰일 날 텐데…….”

그가 걱정했지만 그게 뭔 대수랴.

내가 지금 당장 배가 고프시다는데.

“고기반찬은 나오냐?”

*   *   *

아, 배부르다.

아쉽게도 고기는 없었지만 그래도 만족한다.

일단 배를 채웠다는 게 어딘가.

꺼억, 트림하는 남궁정혁에게 홍재가 다시 재촉했다.

“이제 도주님께 인사하러 가시죠.”

“잠깐만, 소화 좀 시키고.”

“인사하는데 뭔 소화까지 필요합니까?”

그야, 여차하면 한판 붙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

나 정도면 되면 척 봐도 어느 정도 견적이 나온다.

저 사람이 내 상대가 될지 안 될지에 대해서.

좀 이따 봐서 별거 아니다 싶으면 당장에 도주 자리를 뺐어야지.

그게 편할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도주만 고기반찬을 먹을 수 있단다.

이것만 봐도 막사현이란 놈이 얼마나 극악무도한지 알 수 있다.

원래 먹는 거로 차별하는 게 제일 치사한 거 아니겠는가.

남궁정혁이 나무 그늘에 앉아 혀로 입안을 정리할 때였다.

“막사현!”

한쪽 눈이 없는 애꾸가 도주 집 앞에 서서 고함을 질렀다.

“너에게 도전을 신청한다. 당장 나와라!”

아차차, 선수를 뺏겼네.

좀 이따 내가 도전하려 했더니 저 애꾸가 먼저 신청했다.

“저 사람이 삼 일 전에 섬에 들어온 사람입니다.”

홍재가 옆에 있으니 편하네.

그가 섬에 관한 정보를 알아서 알려 주니.

정학우가 생각나는데?

그나저나 저 애꾸, 제법 거친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

상의를 벗어젖힌 웃통을 앞뒤로 흉터가 꽤 많다.

그만큼 실전 경험이 많다는 거겠지.

본인 실력에 자신이 있으니 저리 당당히 나선 거고.

“나는 마창수라고 한다.”

어느새 도주의 집 근처로 많이 사람들이 모였다.

무료한 섬 생활에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그런 그들이 애꾸의 이름을 듣고 술렁였다.

“마창수라면 강소성의 그 마창수?”

“예전에 자기 심기를 거스른 정파 고수 다섯을 죽이고, 그 심장을 씹어먹었다는 마창수?”

나는 저자가 누군지 당연히 모르는데 저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사파에서 한가락 하는 고수인 것 같다.

“낮잠 자는데 시끄럽구나.”

끼익, 도주 집 문이 열리고, 도주 막사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놈 덩치 한번 크네.

내가 이번 생에서 만난 사람 중 덩치가 가장 큰 사람은 병조판서 나리, 유학성이다.

그런데 막사현도 그에 뒤지지 않는다.

키가 7척 가까이 될 듯하다.

게다가 인상까지 참 드럽고.

애꾸도 험악한 인상이지만, 막사현에 비할 바가 아니다.

관상학적으로 봐도 저 사람은 죄를 짓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달까.

존재 자체가 무림 평화에 별 도움이 안 되게 생겼다.

그런 그가 마창수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구나, 그렇게 죽고 싶으면 당장 죽여 주지.”

“흥, 애송이들 사이에서 언제까지 왕 노릇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더냐?

두 사람은 권을 쓰는 듯했다.

그들이 주먹을 쥐고 대치했다.

‘재밌겠네.’

남궁정혁은 그 모습을 흥미진진한 눈으로 지켜보았고.

자고로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구경거리 중 하나가 남 싸우는 거 아니겠는가.

소화하는 데 이만한 유흥도 없지.

선공은 마창수가 했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거리를 좁힌 그가 양 주먹을 휘둘렀다.

막사현은 덩치에 비해 민첩했고.

상체를 두어 번 젖힌 것만으로 공격을 피가 그가 반격을 시작했다.

첫 번째 주먹은 마창수의 관자놀이.

그가 한 발자국 물러서며 피하자 이번엔 왼손으로 가슴을 노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허무하게 허공을 가를 뿐이다.

마창수가 자신만만하게 비아냥거렸다.

“고작 그 정도 실력으로 도주 자리에 있었던 것이냐?”

“네놈보다는 낫지.”

다시 두 사람이 부딪혔다.

서로를 향해 열렬히 주먹을 뻗었다.

그들의 주먹은 상대의 치명적인 급소만을 노렸다.

마창수가 명치를 겨누면, 막사현은 태양혈을 노리는 식으로.

중요한 건 아직 서로에게 제대로 된 유효타를 적중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몸놀림이 그만큼 빨랐기 때문이다.

“와아.”

“난 저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아.”

관전하는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제법 수준 높은 결투였다.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두 사람의 실력이 비슷하군.”

다만 저 말은 틀렸다.

‘막사현은 아직 여력이 있어.’

마창수는 주먹 하나하나에 전력을 다했지만, 막사현은 아니다.

그는 힘을 아껴 두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알 수 있지.

실제로 팽팽하던 승부가 슬슬 막사현에게로 기울었다.

“헉헉…….”

마창수는 거친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지만 막사현은 평온하다.

“이제 너와 나의 수준 차이를 알겠냐?”

“……아직 승부는 나지 않았다.”

조급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정면으로 주먹을 찌른 마창수의 어깨가 흔들린다.

힘을 너무 과도하게 줬다는 증거.

그만큼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크아아악.”

몸을 옆으로 비틀어 피한 막사현이 마창수의 오른쪽 눈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둘 중 성한 그 눈을 말이다.

막사현이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혀로 날름거렸다.

“이제 앞이 안 보이겠네?”

“개자식!”

막사현의 일방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아니, 희롱한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한 방으로 깔끔하게 죽일 수 있음에도 막사현은 가지고 놀 듯, 마창수를 구타했다.

그렇다고 시력을 상실한 그가 제대로 된 반격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살려 주시오, 내가 잘못했오.”

종래에는 마창수가 막사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빌었지만, 이제 와 통할 리가 없다.

“버러지 같은 놈, 감히 내 자리를 노려?”

오히려 막사현의 주먹에는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끄아아아악.”

결국, 온몸의 뼈가 부러진 듯한 마창수가 바닥에 누워 거친 숨만 헐떡였다.

“차라리 죽여…….”

굳이 부탁하지 않아도 막사현은 마창수의 유언을 들어 주었다.

으드득, 그가 마창수의 목을 힘으로 뜯었다.

‘굳이 저렇게 잔혹하게 죽일 필요는 없을 텐데.’

일종의 과시 같다.

감히 나한테 도전하면 너희도 이렇게 된다는 경고.

‘그래도 생각보다는 강하네.’

강기의 정도만 봐도 절정은 훌쩍 넘었다.

아마도 초절정?

절정과 초절정의 경계에 살짝 걸쳐 있는 것 같다.

나쁜 놈들만 모아 놓은 곳에서 가장 강하려면 저 정도는 해야 하는구나.

‘도전은 일단 보류.’

그렇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

내가 막사현에게 쫀 것은 아니고 진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니.

그럼 왜 보류냐?

‘최상의 몸 상태로 상대해야 하는 상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뱃멀미로 몸이 축나서 몸 상태가 말이 아니다.

온종일 토하고 아무것도 못 먹고.

그런 상태에서 겨우 한 끼, 그것도 고기반찬 없이 풀때기로 배를 채워서 이길 수 있을 만큼 막사현은 어설픈 상대가 아니다.

최소한 오늘 하루는 푹 쉬어야 할 것 같다.

그럼 내일은 자신 있냐고?

‘당연하지.’

나 전직 천마야.

비록 내공은 내가 부족하지만, 힘만 세다고 무조건 싸움 잘하는 거 아니잖아.

나의 경험과 기술이라면 막사현쯤이야, 덩치가 큰 만큼 손맛도 더 짜릿하겠지.

꽤 좋은 승부가 되겠어.

“크크크큭.”

“…….”

이 사람은 왜 이럴까?

홍재는 고갤 갸우뚱했다.

사람이 저렇게 잔혹하게 죽은 모습을 보고 어떻게 웃을 수 있지?

너무 충격이 커서 정신이 나갔다?

그는 혼자 웃는 남궁정혁을 보며 오해했다.

‘무공은 좀 세더만 생각보다 마음이 여리구나.’

그러면 심유도에서 살아남기 힘들 텐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