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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54화 (54/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54화

상쾌한 아침이다.

비록 폭신한 솜이불은 아니었지만, 푹 잘 잤다.

볏짚 위에서 잔 건 오랜만이지만 의외로 잘 만하네.

하긴 전생에서 거리를 떠돌던 옛 추억도 생각나고.

그땐 볏짚도 왕초만 잘 수 있는 호사였다.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났군.’

다른 사람들은 아직 꿈나라다.

통나무 집 밖으로 나가자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희뿌연 여명이 밝아 오고 있었다.

그럼 난 남들이 다 자는 새벽에 왜 혼자 일어났을까?

‘막사현과의 결투를 준비하기 위해서지.’

전생부터 이어져 온 나의 습관이다.

중요한 대결이 있을 땐 새벽부터 일어나 몸 상태를 점검하고 머릿속으로 상대와의 가상 대결을 상상한다.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아주 중요하다.

내가 일대일 결투에서 높은 승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고.

‘그 전에 화장실부터.’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려고 뒷간에 가서 속을 비웠다.

그다음 하나둘, 하나둘, 주변을 가볍게 뛰며 관절과 근육을 풀었다.

음, 몸 상태 괜찮네.

특별히 결리거나 아픈 데도 없고.

자 이제는…….

휙휙, 남궁정혁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 운기조식 할 만한 데가 없는지 찾기 위해서.

운기조식을 할 땐 외부의 충격이 있으면 안 되니까.

재수없이 누가 건들면 내공의 흐름이 꼬여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보통 믿을 만한 사람이 주변을 지켜 주는데 여긴 죄수들의 섬 한복판 아닌가.

믿을 만한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이럴 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조용히 일을 치러야 한다.

남궁정혁이 마을 뒤쪽, 산에 올라가 바위틈에 자리 잡았다.

“후욱, 후욱.”

들숨, 날숨 규칙적인 호흡에 따라 잠잠했던 내공이 나무를 타고 오르는 구렁이처럼 전신 혈도를 휘감기 시작했다.

‘운기조식도 잘되는군.’

왜 그럴 때 있지 않나.

평소에 매일 똑같이 하는 운동인데 어느 날만 유독 몸이 가볍고 경쾌한 느낌.

남궁정혁에게 오늘이 그런 날이다.

이거 운까지 따라 주는구먼.

크큭, 이 정도면 내가 막사현을 조져 버리라고 하늘이 점지해 준거 아닐까.

이어진 머릿속 상상 대결.

어제 봤던 막사현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대결을 상상해 봤다.

그가 공격하면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서.

그렇게 대결을 준비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어째 덥더라.’

분명 해가 수평선 너머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을 때 시작했는데, 눈을 뜨니 해가 어느새 중천에 걸린 건 아니고, 중천 반쯤은 올라왔다.

대충 사시?(오전 9~11 사이)

마을로 내려가니 홍재가 다가왔다.

“어디 있었던 겁니까? 아침 배식이 끝났습니다.”

“어차피 먹을 생각도 없다.”

결투를 앞두고 밥이라니.

몸을 무겁게 할 뿐이다.

날렵하게 움직이기엔 빈속이 편하지.

막사현을 이기고 당당히 고기를 먹겠다.

그렇게 결심한 남궁정혁이 도주의 집 앞에서 가서 크게 외쳤다.

“막사현, 나와라.”

안에서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아직도 자나?

그래서 더 큰 목소리로 불렀다.

“막사현, 나오라니까.”

그래도 안 나오네?

이때 홍재가 다시 다가왔다.

“도주님 이름은 왜 그렇게 막 부릅니까? 설마…….”

“응, 한판 붙으려고.”

남궁정혁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홍재가 기겁했다.

“어제 마창수가 목이 뜯겨 죽은 거 못 봤습니까. 당장 그만두십시오.”

“내 모가지 관리는 내가 알아서 하니깐 넌 걱정할 필요 없다, 그나저나 막사현은 왜 안 나오는 거야?”

“도주님이 안에 없으니까 그렇죠. 아까 마을 밖으로 나갔습니다.

막사현, 참 운도 좋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도주 자리에 있을 수 있으니.

“언제쯤 오는지는 알아?”

“기철을 잡았다고 전갈을 받고 거기에 갔으니 좀 오래 걸리지 않을까요? 지금쯤 신나서 사지를 찢고 있을지도요.”

“……!”

뭐라고!

남궁정혁이 깜짝 놀랐다.

아니, 걔는 이때까지 잘도 도망 다니더구먼, 하루만 더 버티지.

왜 하필 오늘 붙잡힌 거야.

*   *   *

헉헉헉, 이렇게 전속력으로 달리는 건 오랜만이다.

홍재의 말에 따르면 오늘 아침, 자경단이 마을 반대편에 있는 능선에서 기철을 붙잡았단다.

해안가를 따라가다 보면 그곳이 나올 거라고.

남궁정혁이 지금 발바닥에 땀띠 나도록 질주하는 이유다.

‘제발 살아만 있어라.’

이제껏 내가 안 했으면 안 했지, 하고자 마음먹은 것 중에 실패한 것은 없다.

단 한 번, 남궁도한테 져서 무림 정복에 실패한 것 말곤.

그런데 기철이 죽어 버린다면?

‘아니다, 불길한 생각 하지 말자.’

이건 자존심 문제다.

이번 생에서는 어떤 사소한 실패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건 내가 용납할 수 없다.

남들은 잘 모르는데 내가 완벽주의자거든.

“……!”

근데 그런 일이 이미 벌어진 건가?

남궁정혁이 마을 반대편 산 능선에 막 도착했을 때 막사현이 한 인물의 머리를 후려쳐 죽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도 진정이 안 되는지. 씩씩거리며 시체를 걷어찼다.

“도주님, 진정하십시오.”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는구나. 너무 쉽게 죽였어.”

제기랄, 기철이 벌써 죽은 건가.

고작 막사현 따위에게 발목 잡혀 임무에 실패하다니.

이걸 유학성에게는 뭐라고 보고한단 말인가.

‘제가 운기조식하는 동안 기철이 죽었네요.’라고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곤란함보다는 분노가 먼저 치민다.

막사현, 저 새끼는 사지를 찢어 죽인다더니 왜 머리통을 박살 내서 한 방에 죽인 거야?

사지를 찢었으면 팔 한쪽이 없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살릴 수는 있었잖아.

“헉헉헉.”

남궁정혁이 막사현과 그의 부하들 앞에 도착했다.

“넌 뭐냐? 왜 이곳에 왔어?”

지금 남궁정혁에게 물은 사내는 자경단의 대장이다.

어제 홍재한테 이름을 들었는데 뭐였더라?

덕천이라고 했지, 아마.

심유도에서는 막사현 다음으로 강하다고.

“묻잖아, 왜 이곳에 왔냐고?”

“잠시만, 숨 좀 고르고.”

쉬지 않고 경공을 펼쳤더니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복장도 터질 것 같고.

그래서 호흡과 더불어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안 그러면 내가 너희들을 갈가리 찢어 죽일 것 같거든.

그런데 상대가 남궁정혁의 이런 배려를 몰라 주네?

덕천이 손가락으로 남궁정혁의 가슴을 꾹꾹 질렀다.

“너 어제께 온 신입이지? 어디서 건방지게 반말이야?”

“그만해라, 너는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 은혜를 베풀고 있거든.”

“무슨 은혜?”

“네가 세상을 더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은혜.”

“이게 미쳤나, 어디서 헛소리를.”

자신의 머리를 때리려는 덕천의 손목을 남궁정혁이 잡았다.

“이거 안 놔?”

놔줬다.

휘익, 땅바닥에 패대기쳐서.

“크윽.”

땅바닥을 구른 덕천이 벌떡 일어나더니 나무칼을 꺼냈다.

“죽여 주마.”

“비켜라, 내 상대는 네가 아니니.”

“그럼 네놈 상대가 누구라는 거냐……?”

저벅, 그를 지나쳐 막사현에게 다가갔다.

“너에게 도전한다. 당연히 받아 주겠지?”

“애송아, 객기가 과하구나.”

“그건 당신이 걱정할 문제가 아닐 텐데.”

“좋다, 아직 분이 다 풀리지 않았는데 네놈 심장이 뛰는 걸 네놈 눈으로 직접 보게 해 주마.”

태생적으로 잔인한 걸 즐기는 것 같다.

변태 같은 놈.

“지금 여기서 바로 싸워도 되겠지? 관객도 충분하고.”

남궁정혁이 훠이, 손을 내저으니 덕천과 자경단원들이 알아서 뒤로 물러났다.

한편으로는 어이없다는 눈치다.

겉모습은 새파랗게 젊은 내가 막사현에게 도전한다는 것이.

뱁새인 너희들이 황새인 나의 가치를 어찌 알아보랴.

“선공해.”

강자의 특권인 발언을 하자 막사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건방진 놈.”

그러면서 또 공격은 한다.

솔직히 거절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실용주의자구나.

그의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남궁정혁의 미간을 노렸다.

슬쩍 피한 남궁정혁이 막사현의 품속으로 파고들어 손바닥으로 그의 턱을 올려쳤다.

“……아깝네.”

고개를 뒤로 젖힌 막사현이 공격을 피하자, 남궁정혁이 뒷걸음질 쳐 거리를 벌렸다.

“처음부터 전심전력을 다 하는 게 좋을 거야. 난 그럴 거거든.”

남궁정혁은 알고 있었다.

선공할 때 막사현이 주먹에 전력을 싣지 않았다는 걸.

어제 마창수와의 대결 때 본 그의 주먹은 이보단 훨씬 더 강했다.

“너 따위한테 감히 얕보일 내가 아니다.”

으득, 어금니를 깨문 막사현이 주먹을 고쳐 쥐자 시퍼런 강기가 일렁였다.

그도 이제야 남궁정혁이 자신의 생각보다 쉽지 않은 상대임을 깨달은 것이다.

“내가 방심하지 않은 이상 너에게 승산은 없다.”

그럴 리가.

남궁정혁은 이미 아침에 머릿속에서 그와의 대결을 상상했었다.

승률은?

10전 10승 무패.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지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더라고.

물론 어떤 사람은 반박할 수 있다.

상상과 현실은 다르다고.

근데 나 그런 사람 아니다.

되지도 않은 망상으로 정신승리나 하는 얼간이 아니라고.

자, 봐라. 지금 그걸 증명하잖아.

퍽퍽,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남궁정혁의 양 주먹이 막사현의 가슴팍에 꽂히자, 막사현이 쿨럭, 기침했다.

그런데 피까지 섞여 나온다.

갈비뼈가 부러진 거지.

“이 버러지가!”

분노한 막사현이 소리쳤지만, 남궁정혁은 다시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그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이게 이번 싸움, 남궁정혁이 선택한 전법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막사현의 허점을 노리다 순식간에 찌르기.

그러니 막사현은 분통이 터질 수밖에.

분명 내공이 자신이 강한데, 단 한 방만 제대로 맞히면 놈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한 방을 맞히기가 어렵다.

마치 자신이 어딜 어떻게 공격할지 아는 것처럼 피한다.

“후, 나랑 정면에서 싸우기 두려우냐?”

“응.”

솔직하게 인정했다.

분하지만 현재의 나보다 내공이 강한데 내가 미쳤다고 정면에서 맞붙냐.

남궁정혁이 치고 빠지는 전법을 선택한 이유다.

퍽퍽퍽, 남궁정혁의 주먹이 또다시 막사현을 가격했다.

게다가 마지막 한 방은 턱이다.

그게 결정적이었는지, 막사현의 거대한 몸이 휘청거렸다.

“이게 마지막이다.”

남궁정혁이 막사현의 관자놀이를 치려고 접근하자, 그의 눈이 번뜩였다.

“걸렸구나.”

사실은 함정이었다.

놈의 몸놀림이 하도 재빠르기에 일부러 허점을 노출했는데 그게 먹였다.

‘이 한 방으로 승부를 결정짓겠다.’

막사현이 모든 내공을 오른손 주먹에 모아 분출했다.

이제 저놈은 대가리 깨져 비참하게 죽을 것이다……!

‘……그런데 왜 저놈이 웃고 있지?’

그렇다.

어느새 자신의 눈앞까지 다가온 상대는 분명 웃고 있었다.

죽을 때가 돼서 미쳤나?

“알고 있었어.”

“……?”

“네놈이 일부러 연기하는 거 알고 있었다고.”

연기하려거든 제대로 할 것이지.

어설프기는.

그쪽 방면으로는 영 재능이 없구먼.

막사현의 예상된 공격을 피한 남궁정혁이 그의 앞에 우뚝 섰다.

“잘 가라.”

남궁정혁의 주먹이 막사현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의 손이 막사현 등에서 튀어나왔다.

“커어억.”

남궁정혁이 손이 빼자 그의 손의 새빨간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이게 뭐게?”

두 눈을 부릅뜬 막사현을 향해 남궁정혁이 싱긋 웃어 주었다.

“네 심장.”

기철의 복수다, 이 새끼야.

푸왁, 막사현은 피를 토하며 죽었다.

“히익, 도, 도주님이 죽었어.”

“이제 저 애송이…… 아니 저분이 새로운 도주인가.”

막사현의 비참한 최후에 자경단원들이 경악했다.

이런 결과를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그런 그들에게 남궁정혁이 심장을 던졌다.

“이제부터 내가 새 도주다. 불만 있는 놈은 지금이라도 덤벼.”

불만은 없는 것 같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걸 보니.

“마을로 돌아간다. 기철 시체를 챙겨.”

그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 줘야겠다.

지금 내가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는 게 속 쓰리네.

그런 남궁정혁에게 자경대장 덕천이 다가와 공손히 물었다.

“기철의 시체가 어디 있습니까?”

방금까지 욕하던 놈이 태세전환 한번 빠르네.

전형적인 간신배로다.

게다가 멍청하기도 하고.

기철 시체가 어디 있냐니.

“저기 있잖아.”

남궁정혁이 바닥에 놓인 그의 시체를 가리키자 덕천이 고개를 저었다.

“뭔가 오해하신 것 같은데 저건 기철이 아닙니다.”

“……?”

그럼 누군데?

*   *   *

덕천의 말을 들어 보니 내가 단단히 오해했다.

막사현이 기철을 죽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그럼 저 시체는 누구냐?

“죽은 사람은 저의 부하입니다.”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막사현이 혼자 화나서 씩씩거리고 있었던 걸 떠올렸다.

그게 저 사람 때문이란다.

붙잡은 기철을 묶어서 마을로 데려가려고 했는데 저 사람이 어리바리하게도 밧줄을 어설프게 묶었단다.

그래서 감시가 느슨한 틈에 타 기철이 도망쳤다고.

그러니 그 성질 더러운 막사현이 가만히 있었겠는가.

단번에 머리통을 깨 죽였지.

‘휴, 다행이다.’

어쨌든 기철은 죽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제 그를 찾아 이 섬을 떠나기만 하면 된다.

“그는 어디로 도망쳤냐?”

“찾으시게요?”

“나도 걔한테 볼일이 있거든.”

“찾을 필요 없습니다. 아니 찾을 수 없습니다.”

“왜?”

“그의 경공이 빨라서 저희도 애를 먹었습니다. 이미 멀리 도망갔을 테니 다시 찾으려면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기철의 경공이 빠르다고 한들, 설마 나보다 빠를까.

“그리고 이제는 그도 사실상 죽은 목숨이라고 봐야 하거든요.”

“……?”

“그가 다급했는지 ‘사신’의 둥지로 도망쳤습니다. 그곳에 들어가면 다시는 살아서 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곳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사신? 그게 뭔데?”

“이 섬에 살고 있는 무시무시한 괴물이죠.”

괴물?

이건 또 뭔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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