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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56화 (56/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56화

무공이 강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내가 경험자로서 말하자면 여러 이점이 있지만, 가장 좋은 것 중 하나는…….

‘내가 패고 싶은 사람을 마음대로 팰 수 있다는 것이지.’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 사람과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나와 맞지 않은 사람도 있지 않은가?

뭐, 이유야 다양하지.

성격이 무례해서 싫은 사람이 있을 것이고, 생긴 게 마음에 안 들어서 싫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개중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놈이 나한테 시비 걸고 열 받게 한다?

심지어 내가 남색가라고?

‘자비도 없는 거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패는 거다.

그러면 속에 쌓인 울분도 쫙 풀리면서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무공이 이렇게 심리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 마음이 안 드는 놈이 나보다 더 강하다면?

“…….”

이런 상황을 오랜만에 경험해서 그런지 내성이 약해졌나?

속에서 무럭무럭 화가 치솟는다.

“노인장, 꼭 장수해야 해.”

“……?”

“오래 살라고, 그래야 내가 나중에 다시 찾아와서…….”

남궁정혁이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꽉, 죽여 주지.”

“정말 죽고 싶은가 보구나.”

“어차피 살려 둘 생각도 없었잖아, 지금도 잘못했습니다, 싹싹 빌면 살려 줄 거야?”

그러면 내가 무릎이라도 꿇는 거 고려해 볼게.

아무리 그래도 자존심보다는 목숨이 더 소중하니까.

“고통 없이 죽여 줄 수는 있지만, 넌 이미 늦었다.”

말투 한번 싸늘하다.

심기를 너무 건드렸나, 진짜 화났나 본데.

“노인네, 쪼잔하군.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더욱 너그러워져야 하는데 말이야.”

애써 여유 있는 척하지만, 남궁정혁은 손이 점점 축축해지는 걸 느꼈다.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지?

그것도 사신에 손아귀에 붙잡힌 기철을 데리고.

“머리 굴릴 필요 없다, 무슨 수를 쓰든 네놈은 살아서 돌아갈 수…… 응? 옹달샘이 왜 저렇지?”

남궁정혁에게 다가가던 사신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여기서 옹달샘이란 기철이 빨래했던 그 웅덩이를 말한다.

“물이 왜 저리 더러워졌어?”

옹달샘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던 사신이 코를 막았다.

저놈 똥 냄새가 좀 지독하기 하지.

“크흡, 대체 이게 무슨 썩은 내……!”

하의 탈의한 기철과 바위에 널린 그의 바지를 번갈아 보던 사신이 그제야 눈치챘다.

옹달샘이 왜 저리 더러워졌는지.

“……이놈이 내가 마시는 물에서 빨래를 했구나!”

사신이 그 어느 때보다 화가 났다.

그의 눈에 빨간 핏줄이 선 걸 보니.

그래도 이건 기철이 잘못한 거 맞지.

아무리 그래도 남의 식수에 똥을 풀면 되나.

“저 물에 코를 박고 죽게 해 주마.”

사신이 옹달샘에 기철의 얼굴을 처박으려고 할 때 남궁정혁이 먼저 움직였다.

쾅!

그가 내공을 응축시킨 장으로 옹달샘 표면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러니 어떻게 됐겠는가?

“네놈이…….”

졸지에 똥물을 뒤집어쓴 사신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틈에 남궁정혁이 연속 공격을 했다.

그가 검으로 사신의 오른 손목을 집요하게 노렸다.

여기서 검이란 덕천이 가지고 있었던 나무 검을 말한다.

표면에 독을 묻힌.

사신이란 인물이 얼마나 강할지 몰라 무턱대고 챙겨 왔는데 잘 가져온 것 같다.

이런 위급한 상황엔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없는 거보단 나으니까.

타닥탁탁, 순식간에 십여 초가 오갔다.

‘젠장, 임기응변으로 이길 만한 상대가 아니다.’

남궁정혁은 그동안 자신보다 내공이 강한 상대도 수월하게 이겼다.

비록 힘에서 밀린다지만, 그에게는 수많은 실전 경험과 초식 응용력이 있었으니.

하지만 사신에겐 그게 통하지 않았다.

애초에 내공의 크기가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큰 데다, 사신도 거친 인생을 살아온 듯 실전 경험이 많은 것 같다.

남궁정혁이 예측이 불가능한 각도에서 사신의 급소만 골라 노렸는데도 모두 피했다.

그것도 한 손에 기철을 들고, 산보하듯 여유롭게.

‘최소한 천무십존의 아래는 아니다.’

혹시 까먹을까 봐 말하자면, 천무십존은 이십 년 전 정마대전 때, 정파를 대표하던 10명의 초고수를 말한다.

사신은 그들과 비슷한 경지의 고수였다.

‘대체 이런 자가 왜 심유도에 있는 걸까,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거 자칫 잘못하면 오늘 여기서 뼈를 묻어야 할 수도 있겠다.

꿀꺽, 극도의 긴장감에 나도 모르게 침이 넘어간다.

‘…….’

아니, 유학성 이 양반은 대체 뭘 한 거야.

이런 초고수가 있으면 있다고 미리 말을 해 줬어야지.

그래야 마음의 준비라도 할 거 아냐.

‘……사실 이런 괴물이 웅크리고 있는 줄 알았으면 애초에 안 왔지.’

그래서 말 안 했나?

거부할 줄 알고.

“사람 들고 싸우면 불편하지 않나? 나이 들어서 곧 팔에 힘이 떨어질 텐데.”

눈짓으로 기철을 가리키며 말하자 사신이 코웃음 쳤다.

“네놈 머릿속이 빤히 보인다. 이놈과 함께 어떻게든 도망치려는 거 아니냐.”

“우리가 도망치면 잡을 자신이 없나 봐? 사내가 그리 담이 작아서야, 무공 실력이 아깝네.”

남궁정혁의 도발은 계속됐다.

“하긴 나이가 들면 하체가 후달리는 법이지.”

솔직히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저자의 손아귀에서 기철을 빼내 올 자신이 없다.

‘이게 통해야 하는데.’

남궁정혁이 이때까지 만난 초고수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이 넘친다는 것.

남궁정혁도 그러했고.

천하에서 손꼽힐 만한 실력을 지녔으니 근거 있는 자부심이 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 그것이 흘러넘치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상대를 얕보기도 하고.

그걸 방심이라고 한다.

하수가 고수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약점이기도 하지.

“그래도 의리는 있구나.”

사신이 귀찮은 짐짝 내려놓듯 기철을 앞으로 툭, 던졌다.

“혼자서 도망치려고 시도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는 않는 걸 보니 말이다. 그 의기를 봐서 이놈은 놔주마.”

커억, 목에 시뻘건 손자국이 남은 기철이 남궁정혁의 등 뒤로 후다닥 도망쳤다.

“내가 원래 하고자 마음먹은 건 꼭 이뤄야 하는 성격이라서요.”

“그건 나랑 비슷하구나, 나도 한번 마음먹은 건 반드시 이뤄야 하거든. 지금 내가 마음먹은 건…….”

우우웅, 사신의 분위기가 변했다.

기철을 순순히 놔주길래 혹시나 방심한 건 아닐까 했는데 젠장.

저 노인네 왜 저렇게 진지한 거야.

그에게서 나오는 위압감이 장난 아니다.

갑자기 주변 공기가 무거워져 숨이 턱 막힌다.

“너희들을 죽이는 것이고.”

쏴아아악, 유영화된 강기가 화살처럼 쏟아졌다.

하나만 맞아도 몸에 바람구멍이 생길 것 같다.

상대가 고작 우릴 둘뿐인데 저 노인네는 왜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거야, 사람 부담스럽게.

“내공을 너무 낭비하는 것 아닌가? 나이를 생각하셔야지.”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는 법이다.”

남궁정혁이 내공을 최대로 끌어올려, 검으로 원을 그렸다.

티-잉!

하지만 검막에 부딪힌 강기가 허무하게 튕겨 나갔다.

“크윽.”

동시에 남궁정혁은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만큼 강기 하나하나에 실린 위력이 막강했다.

“입만 산 애송인 줄 알았더니 제법 검을 쓸 줄 아는구나.”

자신의 공격이 막힐 줄 몰랐다는 듯, 사신이 눈을 치켜떴다.

이어지는 후속 공격.

“이건 막을 수 없겠지.”

사신이 양손을 휘젓자, 그를 중심으로 무시무시한 돌풍이 불었다.

마치 바람을 조종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 그가 손을 앞으로 뻗자 돌풍이 남궁정혁을 덮쳤다.

“바람의 칼날이 네 몸을 산산조각…… 호오.”

사신이 감탄을 내뱉었다.

이번에도 검을 휘두른 남궁정혁이 공격을 막았기 때문이다.

“재밌는 놈이로다.”

외모로 추정컨대 이제 스무 살쯤 되었을까?

저 나이에 방금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중원 전체를 뒤져도 얼마나 될까?

확실한 건 자신도 저 나이 때는 그 공격을 못 막았을 거다.

그러니 저 젊은이의 성취가 놀라울 수밖에.

“이것도 막아 보아라.”

사신이 이번에는 손바닥을 펼쳐 직접 타격했다.

황급히 뒷걸음친 남궁정혁이 몸을 비틀어 가까스로 피하자, 빗나간 장이 커다란 바위를 쳤다.

그러자 우수수, 큰 바위가 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

아니, 저 노인네 진짜 왜 저렇게 무리하는 거야.

우리가 무슨 가문의 원수도 아니고.

자기 영역에 좀 들어왔다고 그게 저렇게 열 낼 일인가.

어차피 이곳이 당신 땅도 아니잖아.

남궁정혁은 그렇게 항의하고 싶었지만, 이 말을 할 틈조차 없다.

사신이 연이어 압박했기 때문이다.

휘이잉, 귀를 스쳐 지나가는 파공음에 소름이 돋는다.

저 공격에 제대로 맞으면 분명 즉사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사신이 자신만 공격한다는 거다.

기철을 공격했으면 그는 진즉에 죽었다.

‘……기분 나쁘네.’

사신의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

놀이라도 하듯 흥미 가득한 그의 눈빛이.

지금의 상황이 그에게는 결투가 아닌 듯하다.

그럼 뭐냐?

일종의 놀이랄까.

과연 이놈이 어디까지 나의 공격을 버틸까, 시험이라도 하듯이.

언제까지 피할 수만은 없다.

어떻게든 반격해서 저 노인네한테 한 방 먹여야 하는데.

‘…….’

사실 굳이 방법을 찾자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할 뿐.

내 몸속에는 아직 다 놓여내지 못한 흡정마공의 정기가 절반가량 남아 있다.

이걸 한 번에 다 흡수하면 저 재수 없는 노인네, 앞니 정도는 부러뜨릴 수 있을 것 같긴 하단 말이야.

‘다만 실패하면 내 몸이 터진다는 건데.’

높지 않은 확률에 승부를 걸어야 하나.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렇게 허무하게 수비만 하다 죽느니, 꿈틀거리기라도 해 봐야지.

‘대영침공.’

남궁정혁이 운기할 틈을 벌기 위해 반격했다.

그의 검이 사신의 왼쪽 눈을 노렸다.

대연침공은 일체의 변화를 배제하고 오직 찌르기만을 강조한 첨검, 언뜻 보면 점창파의 사일검법과 비슷하기도 하다.

순수 속도만 보면 대연검법에서 가장 빠른 초식이기에 사신도 순간, 움찔했다.

그렇다고 이 공격이 통할 거라고는 나도 생각지 않지만.

이게 통했으면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겠나.

‘그래도 잠시의 틈은 만들어 줄 수 있겠지.’

과연 검을 피하고자 사신이 발을 뒤로 놀렸다.

순간 그와의 거리는 열 보 이상 벌어졌다.

가깝다면 가까울 수도 있는 거리.

‘하지만 충분하다.’

한 집에서 사이 나쁜 남매처럼 따로 놀고 있는 내공과 정기를 합치기에는 말이다.

남궁정혁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도박하려고 할 때였다.

“무공은 어디서 배웠나?”

이 와중에 호구조사는.

남궁정혁이 무시하고 내공을 합치려는데…….

“내가 심유도에 온 지 너무 오래되어 긴가민가했는데 방금 초식을 보고 확신했어. 자네 남궁세가 출신인가?”

지금 와서 그게 중요한가?

자꾸 말 걸지 마라.

너는 몰라도 나는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일을 하고 있으니.

집중력 흩트리지 말라고.

“…….”

대답하지 않고 뭐 마려운 사람처럼 얼굴이 벌게진 남궁정혁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사신이 손바닥을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자네, 남궁도를 닮았군. 혹시 그의 아들인가?”

응? 갑자기 사신의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남궁도를 지칭할 때 무척 다정하게 말하네?

“내가 그의 생물학적 아들은 맞습니다만.”

그러자 사신이 하하하,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마터면 내가 은인의 아들을 죽일 뻔했군.”

“……?”

“뭐 하냐? 아버지의 친우를 봤으면 큰절부터 올려야지.”

“…….”

남궁정혁이 멀뚱멀뚱 서 있자 사신이 재차 말했다.

“나는 네 아비의…… 하여튼 엄청 가까운 사이다.”

인제 와서?

사람을 패 죽이려고 할 땐 언제고.

‘…….’

아, 고민되네.

목숨을 걸고 한 판 붙냐, 아니면 자존심 굽히고 절을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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