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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57화 (57/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57화

“남궁정혁이 인사 올립니다.”

“허허허, 그래. 매사에 진지한 남궁도가 자식은 재밌게 키웠구나.”

고민은 잠깐이었다.

우선은 살고 봐야지.

생존을 선택한 남궁정혁이 갑자기 다소곳하게 절을 하자 사신은 흡족한 듯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말투며 하는 행동은 아비와 정반대지만 외모는 남궁도와 무척 닮았어. 그의 젊은 적 모습과 판박이로다.”

남궁도가 무공만 강한 게 아니라 피도 유독 강하긴 하지.

이복형제임에도 나와 남궁강혁이 친형제로 오해받을 수 있을 만큼 닮았으니.

“성격은 어머니를 닮은 것이더냐?”

“…….”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만난 적이 없는데.

내 친어머니든, 이 몸 원래 주인의 어머니든.

남궁정혁이 대꾸 없이 묵묵히 서 있자 사신이 다시 물었다.

“어디가 불편한가? 혹시 결투 중에 다친 것이더냐?”

“아뇨, 그건 아니고…….”

아까부터 왠지 귀가 간지럽네요.

누가 내 뒤에서 욕하나?

사신에게 무릎 꿇었다고.

‘그래도 후회는 없다.’

내 이런 모습을 본다면 나의 선택에 실망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정기를 흡수하여 사신과 한판 뜨길 원하는 사람도 있겠지.

난 그런 그들에게 당당히 말하고 싶다.

‘남의 목숨이라고 너무 함부로 다루는 거 아니냐, 너네 같으면 그렇게 하겠냐고.’

일단 정기를 내공과 합치는 일 자체가 무척 큰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만약 실패한다면?

나는 찢어진 돼지 오줌보처럼 전신이 산산이 조각나서 죽겠지.

내가 그렇게 비참하게 죽으면 너희들이 시신 수습해서 장례까지 치러 줄 거냐고?

뭐, 좋다.

운 좋게 성공했다고 치자.

아직 더 큰 문제가 남아 있다.

사실 이게 내가 절을 한 가장 큰 이유인데.

‘꼭 사신을 이긴다는 보장이 없단 말이야.’

그는 무려 화경급 고수다.

지금 당장 무림에 나가도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초특급 고수.

그런 고수와 정면으로 맞붙는다?

어금니 한두 개 발치하는 것까지는 자신 있지만, 승부는 장담할 수 없다.

설사 내가 어찌어찌 이긴다 하더라도 나 역시 크게 다칠 것이 분명하고.

사신이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도 아니고 꼭 이런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할까.

‘…….’

그러고 보면 전생의 난 참 대단하긴 했어.

사신 정도 되는 고수를 식전 운동 삼아 가볍게 찜 쪄 먹었으니.

아무튼, 자존심이 밥 먹여 주는 거 아니다.

‘사람이 성공하려면 상황에 따라 고개도 숙여야 할 줄 알아야 하지.’

전생에서 수만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올라갔던 사람의 충고이니 반드시 새겨들어라.

그리고 난 아직 완전히 포기한 것도 아니다.

향후, 그때가 언제가 됐든 사신을 내 발밑에 무릎 꿇릴 것이니.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최후의 웃는 승자가 진정한 승자라고.

“자네, 아까부터 뭐라고 혼자서 중얼거리나?”

사신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남궁정혁을 바라보았다.

혹시 머릴 다쳤나?

분명 한 대도 맞지 않았는데.

“귓속에 개미가 들어간 것 같아서요. 그나저나 남궁도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귀를 후비며 묻는 말에 사신이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자넨 왜 아버지를 아버지라 안 부르고 이름으로 부르나?”

버릇없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지만, 가정 교육은 제대로 못 받은 것 같긴 했다만.

“그건 남의 집안 사정이라, 너무 자세하게 말하지 않아도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놈이로다.

고지식할 정도로 답답한 남궁도 밑에서 어떻게 저런 자식이 나왔을꼬.

얼굴 빼곤 닮은 게 하나도 없군.

아, 하나 더 있다.

나이를 초월한 무공.

천하를 오시할 무재가 대를 이어 내려왔다.

“제가 물은 말에 아직 대답을 안 했습니다만, 혹시 남궁도와 친우라는 게 거짓말은 아니겠죠?”

“허허허.”

자신이 거짓말을 해서 얻을 이득이 뭐가 있다고.

하지만 이해는 한다.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원래 말투가 저런 것 같으니.

무엇보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의 아들 아닌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일세…….”

사신이 남궁도와의 인연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   *

“아, 네…….”

그의 얘기를 다 들은 남궁정혁이 나오는 하품을 억지로 참았다.

절까지 하라고 해서 특별히 친한 사인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사신이 적에게 쫓기다 내공의 흐름이 꼬여 주화입마에 빠질 뻔했단다.

피가 역류하여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

그때 남궁도가 나타나 꼬인 내공을 풀어 줬다나.

그 사건을 계기로 친분을 쌓아 가끔 만났단다.

만나서 같이 밥도 먹고 온천욕도 하고, 무학에 관해서 토론했다고.

그래서 대연검법도 알아볼 수 있었단다.

이제 사신이 할 말은 다 한 것 같고…… 내가 궁금한 걸 물어볼까?

“심유도에는 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까 싸우기 전에 분명히 그랬다.

그는 이곳에 스스로 들어왔다고, 그래서 죄를 짓고 온 버러지들과는 다르다고.

대체 그에게 무슨 사연이 있길래 이곳에 왔을까?

남궁정혁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지만, 그가 고개를 저었다.

“나도 개인적인 사정이라…… 자네도 이해해 주리라 믿네.”

말하기 싫어하는데 구태여 캐묻기도 그렇지.

남궁정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었다.

“잠시지만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내려가 보지요.”

마을로 돌아가려는 남궁정혁을 사신이 붙잡았다.

“여기서 나와 함께 지내는 게 어떻겠나? 경치도 좋고, 안락해서 마을보다는 살기가 좋을 거야.”

“저는 괜찮습니다.”

왜냐면 어차피 내일 섬을 떠날 거거든요.

“자네가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밑에 있는 놈들은 진짜 범죄자일세, 괜히 물들까 염려가 되는군.”

이 양반, 사람이 그리웠나?

엄청 붙잡네.

괜스레 미안하게.

“사실 저는 내일이면 이 섬을 떠납니다. 그래서 말동무가 되어 줄 수가 없겠네요.”

그럼 이만.

산에서 내려가려는 남궁정혁을 사신이 또다시 붙잡았다.

“내일이면 백중사리? 탈옥하려는 건가? 불가능한 일이야, 군함들이 섬을 지키고 있거든.”

“저는 나갈 수 있습니다.”

“불가능하다니까. 이 섬에서 탈옥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

아, 진짜 귀찮네.

그래서 남궁정혁이 내일 자신이 이곳을 나갈 수 있는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뜻밖의 말이었는지 사신은 놀랐고.

그가 기철을 보면서 말했다.

“저 사람을 데리고 가면 군함을 탈 수 있다고?”

“네, 그러니 저는 이만 가 볼게요. 만수무강하세요.”

남궁도한테 안부 정도는 전해 줄게요.

심유도에서 잘 지내고 있더라고.

이번엔 진짜 가려는데 사신이 다시 붙잡았다.

“잠깐만.”

아 진짜.

왜 또 뭐요?

이 양반 되게 질척거리네.

사람 질리게.

“나도 함께 갈 수 없을까?”

“……?”

언제는 이곳에 제 발로 들어왔다면서요.

설마 화경급 고수씩이나 되면서 거짓말한 거였나?

이거 좀 실망스러운데.

남궁정혁이 미간을 찌푸리자 사신이 한숨을 푹 쉬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말할 수밖에 없겠군.”

그가 심유도에 제 발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찬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고아였네. 부모 얼굴은 본 적도 없지…….”

어찌 내 사연이랑 비슷하네.

남궁정혁이 사신의 말을 유심히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외롭지 않았어. 형이 있었으니까. 친형은 아니야. 길거리를 헤매다 만난 형이지, 나의 유일한 가족이었다.”

당신 호적 관계까지는 알고 싶지 않으니까, 심유도에 들어온 이유나 말해 봐요.

나 혼자 마을로 내려가기 전에.

“형님과 나는 무공에 재능이 뛰어났네. 그래서 힘을 합쳐 명성을 날리고 문파를 세웠지. 그때부터였네.”

“뭐가요?”

“문파가 커지자 형님이 날 견제하더군. 내 존재가 부담스러워진 거지. 문주는 형님이 맡았지만 무공은 내가 훨씬 더 강했거든.”

쯧쯧, 보통 이런 경우가 많지.

밑바닥에서부터 함께 고생했는데 나중에 성공해서 분란이 생기는 경우가.

“아마 형님은 친자식에게 문파를 물려주고 싶었던 모양이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 하더군.”

이 대목에서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지 사신은 잠시 눈을 감고 진정했다.

“차라리 나한테 직접 말했으면, 문파에서 떠나면 좋겠다고 말했으면 군말 없이 떠났을 것을, 형님은 치졸한 방법을 쓰더군.”

“치졸한 방법?”

“나한테 누명을 씌웠어. 내가 술에 취해 아전을 때려죽였다고.”

“그런 이유로 심유도에 들어왔다고요?”

저 말이 사실이라면 차라리 도망가면 될 것 아닌가?

하지도 않은 일에 자수한 것도 아니고 왜 제 발로 심유도로 온담?

남궁정혁이 미심쩍은 표정을 짓자 사신이 그때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했다.

“날 잡으러 온 사람이 누군지 아나?”

“군부의 고수?”

사신을 잡으려면 군부에서 날고 긴다 하는 고수들이 총출동해야지.

“아니, 내 수하들이었네. 나와 함께 전장을 누비던 동료들이 날 잡으러 왔더군.”

그러기에 평소 인덕 관리를 잘 했어야지.

그래야 위기에 빠졌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지.

평상시 행동을 얼마나 개차반으로 했으면 부하들이 잡으러 올까……?

“수하들이 울고 있었네.”

“……?”

“형님이 수하들의 가족을 인질로 잡고 협박했다더군. 나를 잡아 오지 못하면 그들을 다 죽이겠다고?”

“그래서 순순히 잡혀 줬다?”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자 마음먹었으면 못할 것도 없지만, 수하들과 그 가족들이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네.”

자기 발로 스스로 들어왔다는 게 저 말인가.

의외로 의리가 있구먼

남궁정혁의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기철이 물었다.

“형님과 함께 만들었다는 그 문파가 무엇입니까?”

좋은 질문이다.

사실 나도 궁금했거든.

사신 정도의 인물이 평생을 바쳐 만들었다면 단체가 뭔지.

“파천문일세.”

“파천……!”

경악하는 기철에게 남궁정혁이 물었다.

“알아요?”

“파천문을 몰라요?”

“꼭 알아야 하나요?”

“아니…… 무림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으니까 그렇죠.”

시큰둥한 남궁정혁의 반응에 기철이 설명했다.

“파천문은 사파에서 가장 큰 문파 중 하나로 사도련 6대 문파 중 하나입니다.”

“사도련? 그건 또 뭔데요?”

사도련도 몰라?

이 인간, 정말 무림인 맞나?

뭔 산속에 틀어박혀 몇 십 년 있던 사람도 아니고.

어이없긴 하지만 기철은 이번에도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어쨌든 남궁정혁은 자신은 구하러 와 준 은인 아닌가.

“사도련은 사파인들이 모여 만든 연합체로 단순 인원수만 본다면 정천맹보다 규모가 큰 곳입니다. 가만, 설마……!”

잠시 뭔가를 생각한 기철이 또다시 놀랐다.

“혹시 철패부왕, 장표이십니까?”

“맞네.”

사신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이자 기철이 딸꾹, 경기까지 일으켰다.

“우내십이존 중 한 명이 여기 있었을 줄이야.”

우내십이존?

그건 또 뭔데?

남궁정혁이 눈만 멀뚱멀뚱 뜨자 이제는 그러려니 한 기철이 말했다.

“우내십이존은 현재 무림에서 가장 강한 열두 명의 초인을 말합니다.”

이제야 사신의 정체를 안 기철이 황송하단 눈빛으로 장표를 흘깃 쳐다보았지만, 남궁정혁은 글쎄.

별 감흥이 없다.

장표가 그 정도 되는 고수인 건 진즉에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괜히 절한 게 아니지.

“무림에 퍼진 소문이 잘못되었던 것이군요.”

“무슨 소문?”

“파천문 부문주의 실종은 한때 무림에서도 큰 화제였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수많은 억측이 난무했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기철이 슬쩍 장표를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장표님이 부하의 처를 희롱했다고. 그래서 분노한 부하들이 합심하여 장표님을 처단한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실제로 파천문 내에서 장표님이 부하들에게 가기도 했고, 파천문 측에서 별다른 입장 발표를 하지 않아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졌죠.”

“뭣이라!”

화를 참지 못한 장표가 꽝, 나무를 쳤다.

“누명을 쓴 것도 모자라 내가 그런 쓰레기만도 못한 놈이 되었다고.”

그의 분노를 이해한다.

차라리 살인자가 낫지.

부하의 여자를 탐한 파렴치한이라니.

남들이 뒤에서 욕하기 딱 좋은 소문 아닌가.

“형님이, 형님이 일부러 낸 소문이 분명하다. 그러기 위해서 부하들을 보낸 거였어. 파천문 내에서 나를 추종하는 자들의 마음을 끊기 위해.”

장표가 남궁정혁의 손을 꼭 잡았다.

“나는 반드시 돌아가야 하네. 꼭 돌아가서 복수해야 해.”

당신의 억울한 사정은 알겠는데…… 이것 참 곤란하네.

“군함에는 저와 기철, 두 사람만 탈 수 있습니다.”

“내 사정은 자네도 듣지 않았나, 이대로는 억울해서 죽을 때 두 눈도 감지 못할 걸세.”

“저한테 부탁하지 말고 본인의 능력으로 탈옥해 보지 그래요. 무려 화경급 고수이신데.”

“나라고 평생 이 섬에서 살 생각이었겠나?”

그가 상의를 훌러덩 벗자, 등 뒤의 화상 자국이 보였다.

“작년 백중사리 때 입은 상처일세. 작은 배를 만들어 섬 밖으로 나가려고 했더니 군함에 타고 있던 병사들이 폭약 달린 쇠뇌를 비처럼 쏘더군. 결국, 일 리도 못 가서 배는 부서지고 몸만 상했네.”

아무리 그래도 나한텐 장표를 군함에 태울 권한이 없는데 어떡하지?

오늘 처음 만난 사이에 꼭 도와줄 의무도 없고.

남궁정혁의 반응이 시큰둥하자 장표가 몸이 달았나 보다.

그가 더욱 간절히 사정했다.

“내 이렇게 부탁함세. 난 자네 아버지의 친구 아닌가.”

그러니까 더 도와주기 싫네.

그냥 놔두고 가?

“어떻게 하면 자네가 내 부탁을 들어줄 텐가? 나를 데려가면 자네가 원하는 건 뭐든 하겠네.”

……뭐든?

그럼 무릎 꿇고 빌 수도 있나?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거였는데 장표가 들었나 보다.

“자네가 원하는 게 그건가? 내 기꺼이 함세.”

확실히 화경급 고수라 그런지 귀가 밝네.

실행력도 빠르고.

장표가 넙죽 무릎을 꿇더니 빌었다.

“날 데리고 가 주게.”

“일어나세요.”

나보다 나이도 많은 사람이 저러고 있으니 괜히 민망하네.

“…….”

근데 내 한쪽 입술은 왜 자꾸 올라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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