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58화
사람들은 말한다.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고.
그래서 나도 착한 일을 해 보기로 했다.
“머리 더 넣어요. 그러다 들킬라.”
남궁정혁은 지금 통나무를 나무줄기로 엮은 배를 타고 심유도 밖으로 나가고 있다.
어제 자기도 데리고 가 준다니 장표가 신나서 만든 배이기도 했다.
괜히 화경급 고수가 아니지.
그가 강기로 통나무를 잘라 불과 한 식경이 지나기도 전에 배를 뚝딱 만들더라고.
물론 그만큼 허접하긴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심유도 주변 바다에 떠 있는 세 척의 군함 중, 돛 색깔이 빨간 군함까지만 가면 되는데.
배 앞에는 기둥을 세워다가 남궁정혁와 기철의 윗옷을 묶어 바람에 펄럭이게 했다.
이게 유학성과 사전에 합의한 신호다.
남궁정혁이 기철을 데리고 나가는 거니 쇠뇌를 쏘지 말라는.
아니면 군함에서 폭약 달린 쇠뇌를 쏴 심유도 밖으로 나가는 배는 모조리 침몰시킨단다.
“영차, 영차.”
남궁정혁과 기철은 열심히 노를 저었고, 이제는 그 군함과 꽤 가까워진 상태.
다행히 신호를 인지했는지 군함의 공격은 없다.
“고개 더 넣어요. 밖에서 다 보인다니깐요.”
“나도 그러고 싶네만, 코로 자꾸 물이 들어와.”
“참아요, 자유를 얻기가 그리 쉬울 줄 알았어요?”
장표는 통나무 배 꽁무니를 붙잡고 따라오고 있었다.
몸은 물속에 숨긴 채로.
“아씨, 진짜. 이제 군함 가까이 다 왔어요. 이러다 들키겠네.”
남궁정혁이 장표의 머리를 꾹 누르자, 물속에서 꼬르륵 거품이 올라왔다.
원래 고통 없는 자유는 없는 겁니다.
‘다행히 군함에 있는 병사들은 아직 눈치 못 챈 것 같군.’
어제 몇 번을 고민했다.
장표를 어찌 데려갈지에 대해서.
장표가 누명을 썼든 아니든 병사들이 어찌 알겠는가.
그들에게 장표는 아전을 죽인 죄수일 뿐인데.
그런 그를 어떻게 하면 군함에 태울 수 있을까.
결국, 몰래 타는 것밖에 정답이 없더라고.
그래서 지금처럼 물속에 몸을 숨긴 채 군함 가까이만 가면 장표가 알아서 타기로 했다.
“우리 먼저 갑니다.”
군함 위에서 밧줄을 엮어 만든 사다리가 내려왔다.
기철이 먼저 올라가고 그 뒤를 남궁정혁이 따랐다.
갑판 위에 도착해서 슬쩍 밑을 내려 보니 장표가 보이지 않는다.
잠수해서 군함 뒤쪽으로 돌아갔나?
화경의 고수니 알아서 배에 올라탔겠지.
아니면 말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다 했다.
‘배가 크구나.’
전생에서 먼바다의 거친 파도를 견딜 수 있는 큰 배를 타고 여러 나라를 둘러보았지만, 지금처럼 큰 배는 처음이다.
족히 수백 명은 탈 수 있을 것 같다.
확실히 군함이라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
이 정도 크기면 장표가 어디 구석에 박혀서 하루 정도는 충분히 숨어 지낼 수 있겠다.
“고생 많았네.”
듬직한 풍채의 중년 사내가 다가와 인사했다.
입은 옷 상태로 볼 때 이 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것 같은데.
“함장, 영기라고 하네.”
거봐, 내 말이 맞지.
“자네가 유안인가?”
고갤 끄덕인 남궁정혁이 기철을 가리켰다.
“이쪽이 기철입니다. 유학성 대감이 그토록 만나고 싶어 하는 인물이죠.”
영기가 남궁정혁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정말 큰일을 했어, 자네 덕분에 조정의 기강이 바로 설 걸세.”
조정의 기강 따윈 내 알 바 아니지만, 이젠 내 몫은 다 했다.
다만 내 개인적으론 아직 큰일이 남아 있지만.
젠장, 빌어먹을 멀미.
육지까진 또 어떻게 가나.
“안색이 핼쑥해 보이는구먼, 섬에서 제대로 먹지 못했나? 식사부터 하지.”
이 사람이 무슨 소릴, 날 죽이려고 하나?
“아니요, 됐습니다.”
“배 안이라 제대로 된 음식이 없을까 봐서? 육포와 말린 옥수수뿐이긴 하지만 당장의 허기는 채울 수 있을 걸세.”
“그게 아니라 제가 뱃멀미가 심해서요. 빈속이 편합니다.”
그러자 영기가 껄껄 웃었다.
“군함은 처음 타나 보는군.”
“……?”
“어선이나 여객선 같은 배들은 크기가 작아 파도에 출렁거리지만, 군함은 다르네. 특히 이 배는 수군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군함이야. 파도에 흔들리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 없어.”
“오, 정말요?”
“내 이제껏 이 군함을 타고 뱃멀미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육지에 있는 것처럼 편안할 걸세.”
“그럼 육포부터 주십쇼, 고기가 먹고 싶었거든요.”
남궁정혁이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점점 멀어지는 섬을 바라보았다.
‘잘 있거라. 심유도야.’
나는 간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웠어.
그렇다고 다신 오지 않을 거지만.
남은 죄수들은 자기들끼리 알아서 지지고 볶고 잘 살겠지.
“옥수수도 줘요.”
오랜만에 고기를 씹어서 그렇나.
식욕이 동한다.
비록 건식이지만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먹으니 맛있네.
남궁정혁은 양껏 배를 채웠다.
그리고 잠시 후…….
“우웩.”
또다시 물고기 밥을 기부하고 있다.
……뭐? 뱃멀미를 안 해?
이거 상관이나 부하나 다 사기꾼들 아냐.
유학성은 쥐똥보다도 못한 걸 뱃멀미약이라고 주더니, 영기는 거짓말을 했다.
군함에서는 뱃멀미를 안 한다며?
근데 왜 나는 하는 거냐고?
내가 이상한 건가?
이럴 줄 알았으면 음식을 안 먹었지.
“우웨엑!”
그렇게 공수래공수거.
심유도에 빈속으로 왔던 남궁정혁은 다시 빈속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러니 절로 욕이 뛰어나올 수밖에.
‘하필 다시 태어나도 왜 이렇게 지랄 맞은 몸으로 한 거야.’
물론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건 남궁도 아들이라는 거지만.
남궁정혁이 갑판 위에 드러누웠다.
하늘이 빙빙 도는 것 같다.
그렇게 시체처럼 누워 있기를 얼마나 됐을까?
“……응?”
배가 돌연 멈추었다.
활짝 퍼졌던 돛이 내려갔기 때문이다.
‘벌써 도착했나?’
그럴 리는 없는데.
아직 한참 남았을 텐데.
겨우 일어나 난간 너머를 보니 분명 망망대해 한복판이다.
“배가 갑자기 왜 멈춘 거……!”
마침 선실에서 올라오는 영기를 보고 묻던 남궁정혁이 말을 멈췄다.
그의 등 뒤에 기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썩은 표정의 그를 병사들이 양옆에서 붙잡고 있네?
마치 그가 죄인이라도 된 양.
‘…….’
대충 어떤 상황인지 감이 온다.
‘등신 같은 유학성.’
그가 예전에 그러지 않았는가.
자신의 부하 중에서도 분명 동창의 첩자가 있을 거라고.
근데 누군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최측근을 심유도로 보낸다고 했는데 그 최측근이 동창의 첩자?
고양이한테 생선 조림을 맡긴 거지.
병조판서라는 양반이 이렇게 우둔할 수가.
하긴 그가 눈치가 없긴 했지.
임사홍을 두드려 팼다고, 날 정의의 투사로 착각했으니.
남궁정혁이 영기에게 말을 건넸다.
“유학성 대감에게 미안하지 않나?”
“내가 왜?”
“그를 배신했잖아.”
푸하하하, 영기가 웃었다.
“사람이 출세하려면 줄을 잘 서야지.”
“그게 배신의 이유인가.”
“난들 어쩌겠나? 유학성보다 동창이 더 많은 것을 주겠다는데.”
조금의 미안함이나 부끄러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유학성이 사람 보는 눈이 어지간히 없구나.
“설마 우릴 살려 둘 건 아니지?”
“물론, 넌 이곳에서 바다에 던져 버리고, 이놈은 육지로 데리고 가 서찰을 회수한 후 죽일 것이다.”
스릉, 영기가 검을 꺼내 남궁정혁에게 겨누었다.
“아까워서 어쩌냐?”
“뭐가?”
“최후의 만찬을 모두 토해 버려서.”
“육포와 옥수수가 최후의 만찬이라니, 너무 초라한 거 아닌가?”
어째 배부르다고 하는데도 계속 주더라.
“동창의 일을 방해하는 놈에게는 그것도 과분하다.”
“이런 봬도 내가 미식가거든. 억울해서라도 그런 걸 먹고 죽을 순 없지.”
“세상살이가 어디 네놈 맘대로 된다더냐?”
슥, 영기가 손을 들자 병사 네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
분명 옷차림은 일반 병사와 큰 차이가 없지만 척 봐도 알겠다.
저들이 뛰어난 실력의 고수라는 걸.
“네놈을 없애러 특별히 동창에서 파견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괜히 왔군.”
비웃음을 흘린 영기가 계속 말했다.
“그렇게 뱃멀미가 심할 줄 알았다면, 내 부하들로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야.”
일견 타당한 의견이로다.
지금 뱃멀미를 한 상태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우니까.
서 있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해롱해롱하거든.
“크크큭.”
그런데 왜 자꾸 웃음이 날까?
“이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해.”
“갑자기 뭔 소리냐? 네가 이제껏 착하게 살았으면 널 살려 두기라도 할 줄 알았더냐?”
아니, 그거 말고.
“내가 어제 잠깐 고민을 했거든. 굳이 이 사람을 데려가야 하고, 나한테 이득 되는 것도 없는데 말이야.”
어지러워서 난간에 몸을 기댄 남궁정혁이 말을 이었다.
“근데 사정이 참 딱한 거야. 그래서 사람 하나 살린다 생각하고 함께 가기로 했지. 그 보답을 지금 당장 받을 줄을 나도 몰랐지만.”
“아까부터 무슨 헛소리냐?”
영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상황에 맞지 않은 남궁정혁의 느긋한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가 비장의 수가 있는 건가?
“그 사람이 누구냐? 나 몰래 누가 이 배에 탔다는 거냐?”
“지금 알게 될 거야.”
남궁정혁이 내공을 담아 큰 소리로 말했다.
“다 보고 있죠? 이제 나와요.”
웅성웅성, 갑판 위에 있던 병사들이 사방을 둘러 보았다.
영기도 마찬가지고.
그가 정체불명의 인물이 나올 것에 대비해 검을 꽉 쥐었다.
“어서 나오라니까요. 이놈들 좀 싹 쓸어버려요.”
……그런데 아무도 안 나오네?
왜지?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설마 못 탄 건가?
“머저리 같은 놈, 어설픈 연극으로 날 속이려 한 거냐? 그래 봤자 얼마나 더 산다고.”
아, 씨.
영기가 날 거짓말쟁이 취급해도 할 말이 없다.
지금 내 인생의 구명줄인 장표가 나타나지 않았으니.
진짜 이 양반 배에 못 탄 건가?
무슨 화경의 고수가 이렇게 어설퍼?
하여튼 남궁도와 관련된 사람치고 제대로 된 인간이 없다니깐.
“심유도에서 평생 썩어 문드러져라.”
“그거 지금 나보고 한 소리냐?”
“……!”
목소리의 들리는 방향을 쫓아 고개를 돌리니 장표가 바지를 걷어 올리며 선실 밑에서 올라왔다.
“뭐 하다 이제야 나타난 거예요?”
그가 손에 든 육포를 흔들었다.
“식품저장고에 숨어 있었거든, 안 먹던 걸 먹어서 그런가, 배가 아파서 측간에 있다 왔다.”
휴, 어쨌든 다행이다.
남궁정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인생의 은인이 명하니, 수군들을 모조리 쓸어버려요.”
“갑자기 왜?”
“저것들이 배신자거든요.”
“뭐? 배신자?”
본인이 배신을 당해서 그런지 몰라도 장표는 배신이라는 단어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 잠깐만요.”
“왜? 배신자라며, 다 죽여 버릴 거야.”
“그래도 배를 운항할 사람을 살려 둬요. 육지까지는 가야죠.”
“아, 근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구분하지?”
남궁정혁이 손가락으로 영기를 가리켰다.
“저 사람한테 물어봐요, 여기 대장이니.”
“내가 그걸 말해 줄 것…… 어어?”
영기가 허공에서 버둥거렸다.
장표가 허공섭물로 그를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그의 목줄을 꽉 쥔 장표가 물었다.
“누구지? 배를 운항할 줄 아는 사람이?”
누구 물음이라고 대답을 안 할까?
태어나서 이런 초고수는 처음이다.
영기가 입술을 덜덜 떨며 말했다.
“주, 주황색 옷을 입은 병사들이 항해병입니다.”
“알려 줘서 고맙네.”
“저도 살려 주시는 겁니까?”
“아니, 배신자를 살려 줄 수야 없지.”
푸확!
풍덩, 영기의 잘린 목이 허공을 날아 바다로 떨어졌다.
“걸리적거리니까 주황색 옷을 입은 사람은 구석으로 빠져라.”
일방적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장문이 손을 휘두를 때마다 병사들 수십 명이 한 방에 죽었다.
“끄아아악!”
“커헉!”
동창이 파견한 고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심상치 않은 고수다.”
“합공해라.”
그들도 맡은 바 임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기개와 다르게 몸이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
누가 사파 출신 아니랄까 봐, 손속 한번 잔인하네.
겁에 질린 일부 병사들은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아무 소용 없겠지만.
아무리 수영을 잘한다 한들, 아무것도 없는 바다 한복판에서 어찌 살아남으랴.
바닷물이나 배 터지게 마시다가 죽겠지.
피가 뛰고, 살이 찢어지는 대살육의 현장 한복판에서 남궁정혁은 다시 갑판에 드러누웠다.
‘아이고, 나도 죽겠다.’
대체 이놈의 멀미는 언제 나을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