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62화
“가주님, 이번 일만큼은 가주님이 경솔하셨습니다.”
“…….”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지는 것도 정도가 있지, 가주님이 왜 대장로를 형이라 불러야 한단 말입니까?”
삼 일 전, 내기한 후부터 모단수는 계속 저랬다.
남궁수를 졸졸 쫓아다니며 똑같은 소릴 했다.
그가 저렇게 잔소리가 많은 성격이었던가.
“대장로가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형이라 부른다 한들 그게 무슨 흠이 되겠는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건 가주님이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난 잘 모르겠는데.”
남궁도가 능청 떨자 모단수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대장로가 가주님께 사사건건 시비 거는 건 세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호칭을 높이다뇨? 가주님의 권위가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 내가 거절했어야 했나.”
“당연하죠.”
“대장로는 자기 자식을 믿는다고 했는데 나는 내 자식을 믿지 못하는 못난 아비였어야 했다?”
모단수가 순간 당황했다.
“그것이 아니라…….”
“더구나 자네는 아까부터 정혁이가 질 것이라 이미 단정 짓고 있네. 대장로의 자식보다 내 자식이 더 부족해 보이는가 보군.”
이 말을 하는 남궁도는 정말로 섭섭한 듯했다.
“정혁 도련님이 부족하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현무단주와 현무단의 능력은 가주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남궁남호가 비록 성정이 오만하다고는 하나 젊은 나이에 현무단주를 맡을 만큼 그 능력은 특출납니다. 게다가 백 명의 현무단원들은 또 어떻고요?”
“그들이 나서면 웬만한 중견문파는 하룻밤 사이에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무너지겠지.”
“저도 이런 말씀을 드려 송구하나, 강혁 도련님도 아니고, 정혁 도련님이라면 버겁습니다.”
“그래도 나는 정혁이를 믿네.”
나마저 내 자식을 믿지 못하면, 그 누가 내 자식을 믿어 주랴.
‘내기도 내기지만,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와야 할 텐데.’
뒷짐 진 남궁도가 남궁정혁이 떠난 남쪽을 바라봤다.
정혁이는 지금쯤 뭐 하고 있을까?
* * *
검은 도구다.
사람을 죽이는 도구.
날카롭고 단단한 칼날 앞에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하물며 그 검이 무림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검이라면?
“크윽.”
주살검을 막은 서문호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대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심상치 않기에 설마 했더니.
저 빌어먹을 단주가 자신을 죽이려고 아주 작정했나 보다.
지금도 검을 막은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여기서 밀릴 순 없다.
팔에서 조금이라도 힘이 빠지는 순간 주살검이 그의 머리를 반으로 쪼개 버릴 테니까.
“단주님, 훈련인데 너무 진심으로 하는 것 아닙니까?”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 몰라?”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잖아요. 진짜 죽을 것 같습니다.”
“다 네 업보다 생각해라. 그러게 누가 맞고 다니래?”
남수단이 남궁세가를 출발한 지 삼 일이 지났다.
목적지는 강시가 출몰한다는 시약산.
안휘성과 호북성 경계에 있는 산이란다.
위급한 사안인 만큼 남수단, 그리고 현무단은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말을 타고 질주했다.
그러니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잠깐의 휴식 시간도 없이 온종일 말 위에만 있었으니.
남수단원들은 허리가 결리고 엉덩이가 배겨 조금이라도 더 많이 쉬고 싶었다.
하지만 인생사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게 얼마나 있겠는가.
“모두 검 챙겨서 따라와라.”
부하들이 편안히 쉬는 꼴을 보면 눈에 다래끼가 나는지 남궁정혁이 야간 훈련을 시행했다.
그것도 남궁세가를 떠난 첫날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매일.
자연히 남수단원들의 입은 앞으로 댓발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피곤하니까, 빨리 자고 싶으니까.
하지만 이 불만을 감히 표현할 수 없다.
“이번 공격도 막아 보아라.”
저 인간이 진심이었으니까.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검기 다발에 기겁한 서문호가 필사적으로 발을 놀렸다.
“단주님, 제발 좀 살살하라고요.”
지금 피곤한 게 문제가 아니다.
까닥하다간 진짜 죽게 생겼다.
오죽하면…….
“도련님, 시약산에 도착하기 전에 남수단이 먼저 전멸하겠습니다. 저희한테 불만이 있으면 차라리 벌을 내리세요. 밤새도록 머리 박고 있겠습니다.”
정학우가 저렇게 사정할까.
문제는 저 악마 같은 단주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거지만.
“내가 너희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이러는 것 같냐? 훈련은 실전…….”
“……처럼 해야 하지만, 저는 지금껏 살면서 이렇게 살벌한 실전을 치러 본 적이 없습니다. 왜 훈련이 실전보다 더 빡센 겁니까?”
그동안 쌓인 게 많았는지 정학우가 연거푸 말을 쏟아 냈다.
“저 요즘 매일 아침 하늘에 감사드립니다.”
“왜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요. 제가 왜 삼십 년 동안 살면서 느낀 생명의 위협보다 지난 일주일간 느낀 생명의 위협이 더 많아야 합니까?”
돌연 정학우가 그 자리에서 벌러덩 뒤로 누웠다.
“더는 못 합니다. 이렇게 훈련할 거면 차라리 죽이십시오.”
그가 배 째라 나오자 다른 단원들도 동참했다.
“훈련은 핑계고 사실 저희를 괴롭히는 게 목적 아닙니까?”
“아무리 훈련도 중요하지만 최소한의 수면권을 보장해 달라고요.”
어허, 참 안타까운 일이다.
저것들이 나의 진심을 몰라 주다니.
이 서운함을 폭력으로 풀까 하다가 우선은 좋게 대화로 해결해 보기로 했다.
이 정도면 훌륭한 윗사람 아니냐.
“나도 힘들어, 피곤하다고. 나라고 온종일 말 타고 이동하다 잠자는 시간 쪼개서 훈련시키는 게 안 힘들 것 같냐?”
“그럼 안 하면 되잖아요.”
“다 너희를 위해서다. 또 어디 가서 맞고 다닐래?”
“아무리 그래도 훈련 강도가 너무 셉니다. 이게 어떻게 훈련입니까, 생존 시험이지.”
“원래 사람은 극한 상황에 처하면 자기가 지닌 능력 이상을 발휘하는 법이다.”
솔직히 말하면 네놈들 때문에 나까지 쪽팔려서 좀 더 강하게 몰아붙이긴 했다만, 그게 나쁜 건가.
다 자기들 잘되라고 그런 건데.
“이제는 내 맘 알겠지?”
“아니요, 모르겠는데요.”
정학우를 비롯해, 서문호, 양일남, 게다가 왕소단마저 한마음 한뜻으로 대답했다.
그러니 내 속이 얼마나 상하겠는가.
진짜 저것들을 저승사자랑 단체 모임 하게 만들어 줘?
남궁정혁이 최후통첩을 날렸다.
“일어나, 계속 수련해야지.”
“…….”
“안 일어나? 진짜 죽는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이렇게 편안히 누워서 죽음을 맞이하겠습니다.”
아, 그래?
죽음 앞에 초연한 태도를 보니 남궁세가를 출발할 때 이미 유서는 써 놓고 왔나 보다?
“지금 검기 꽂힌다. 하늘에서 네 개의 벼락이 떨어질 거야.”
남궁정혁이 주살검을 머리 위로 들었다.
“안 피하면 진짜 죽어.”
“맘대로 하십시오. 어차피 우리 부하 죽습니까, 도련님 부하 죽지.”
“난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축하드립니다. 도련님 혼자서 남수단 단주에 부단주, 평단원까지 다 하면 되겠네요.”
이제는 자존심 싸움이다.
질 수 없다.
우우웅, 남궁정혁의 검에 파란 검기가 맺혔고, 남수단원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피해.”
언제나 그렇듯 최후 승자는 남궁정혁이었다.
남수단원이 가까스로 피한 자리에서는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정말 우리를 죽일 생각이었습니까?”
“설마, 내가 너희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데.”
……근데 땅이 왜 저리 움푹 파인 겁니까?
조금만 늦게 피했다간 돌아가신 조상님께 혼났겠는데요.
왜 이리 빨리 저승에 왔냐고요.
그렇게 아옹다옹하길 삼 일 후, 남궁정혁과 남수단은 시약산에 도착했다.
물론 그동안 지옥 훈련은 계속되었고.
다행히도 사상자는 없었다.
* * *
“어서 오십시오,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궁정혁 일행과 현무단이 시약산 인근 마을, 삼서현에 도착하자 눈썹까지 흰 노인이 다가왔다.
“저는 일타문의 문주, 우도석입니다. 제가 남궁세가에 도움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노인의 차림새가 무척 초라하다.
낡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한 문파의 수장이라기보다는 시골 촌노 같은 모습이다.
남궁세가 무사들이 자신을 그리 본다는 것을 눈치챈 것일까.
노인의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
“일타문이 시골의 작은 문파이지만, 저와 제 가족이 지나기에는 풍족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한숨 쉰 노인이 말을 이었다.
“한 달 전, 순리를 거스른 마물들이 쳐들어와 제 가족들을 모두 죽이고 일타문도 망했습니다. 저희뿐만 아니라 그들의 습격에 망한 곳이 이제는 다섯 손가락을 넘어갑니다.”
순간, 목이 멘 노인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저도 죽은 자식과 손주들을 따라가고 싶었지만, 저까지 죽으면 제 일가족의 복수는 누가 합니까. 부디 하돈, 하식, 그 악귀 같은 형제들을 잡아서 저의 억울한 마음을 풀어 주십시오.”
말을 마친 노인이 이제는 뜨거운 눈물을 펑펑, 쏟아 냈다.
차라리, 적의 목을 치는 게 쉽지.
이런 상황은 겪을 때마다 곤란하다.
내가 모든 게 완벽한 것 같지만,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는 재주는 없거든.
남궁정혁이 서문호에게 눈짓했다.
노인의 눈물을 그치게 하라는 의미로.
저놈이 또 그런 재주는 있거든.
“힘들겠지만, 꿋꿋이 사셔야죠.”
하지만 먼저 나서는 이가 있었다.
“하늘에 먼저 간 가족도 바라고 있을 겁니다. 문주님이라도 여생을 행복하게 마무리하길 말입니다.”
현무단 소속 무인이었다.
아마도 이름이 남궁건?
현무단의 5조장이라고 했던가.
얼굴선이 곱고 인상이 선해 무인보다도 학자가 더 어울릴 것 같은 그가 노인의 두 손을 꼭 잡아 주었다.
“하돈, 하식 형제는 저희가 꼭 잡을 테니 집에 가서 쉬고 계십시오.”
남궁남호의 부하답지 않게 마음이 따뜻한 놈이로다.
아니면 가식적인 거거나.
현무단과 얽힌 악연 때문인지 저자의 다정함이 마냥 좋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뭔가 속에 검은 꿍꿍이가 있을 것 같거든.
뭐? 내 마음이 삐뚤어진 거라고?
당신들도 자식이 남의 집 가서 맞고 와 봐라.
그 집 부모들이 좋게 보이는지.
어쨌든 그의 말이 위로되었는지 노인이 눈물을 그쳤다.
“역시 남궁세가라면 우리를 도와줄 줄 알았소.”
“강시를 부리는 그자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노인이 몸을 돌려 등 뒤의 산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는 시약산, 저곳을 본거지로 해서 움직이고 있소.”
산이라고 해서 봉우리 하나 우뚝 솟은 곳인 줄 알았더니, 규모가 굉장하다.
구름을 찌른 여러 봉우리가 남북으로 길게 연결된 것이 저 정도면 산이 아니라 산맥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놈들이 깊고 험한 산에서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니 도통 그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래 봤자, 항마 문파의 찌꺼기일 뿐입니다. 저희가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노인의 다독여 준 남궁건이 남궁남호에게 다가갔다.
“단주님, 이곳에서부터 강시를 쫓는 게 어떻겠습니까?”
“알았다.”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남궁건이 오른손을 들었다.
그러자 이런 상황을 예측이라도 한 듯, 현무단원들이 마차 안에서 미리 준비한 그것을 꺼냈다.
“컹컹!”
코가 뾰족하고 몸매가 날렵한 것이 잘 훈련된 사냥개 같았다.
그걸 본 정학우가 말했다.
“도련님, 어떡합니까?”
“뭘 어떡해?”
“현무단은 강시를 쫓으려고 저런 개까지 준비했는데 우린 아무것도 없잖아요.”
“저런 게 있다고 유리했으면 나는 백 마리도 넘게 데리고 왔다.”
“그럼 어떻게 해야 유리한데요?”
“이거.”
남궁정혁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짚었다.
“머릴 써야지. 우린 더 똑똑한 방법으로 놈들을 추적한다.”
“따로 생각해 둔 방법이 있는 겁니까?”
당연히 있지, 있고말고.
“우선 지관부터 만난다.”
“지관이요? 설마 땅의 기운을 살펴 풍수지리를 논하는 그 지관을 말하는 겁니까?”
“맞다.”
머리를 쓰기는 개뿔.
남궁정혁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정학우가 어이가 없었다.
“지관이 무슨 수로 강시를 찾아요? 차라리 무당을 찾아가 굿을 하세요, 강시 어디 있는지 찾아 달라고요.”
그게 훨씬 더 과학적이겠네.
씩씩대는 정학우를 남궁정혁이 한심하다는 듯 쳐 보았다.
나의 최측근이라는 놈이 저리 기초 상식이 부족하다니.
‘…….’
아닌가, 일반 사람이라면 강시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 당연한가?
으흠, 한껏 무게 잡은 남궁정혁이 강시란 무엇인가에 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움직이려면 뭘 먹어야 하지?”
“……밥?”
“그래, 사람은 밥심으로 움직인다, 그럼 강시는? 시체로 만들어진 강시는 대체 뭘 먹기에 움직일 수 있는 걸까?”
“……글쎄요.”
그 정답이 지관과 연관돼 있다, 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