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63화
사람이 밥을 먹는 이유는 뭘까?
간단하다.
살아남기 위해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영양 섭취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아침, 점심, 저녁, 규칙적으로 식사한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 먹지는 말고.
영양 과잉 섭취는 비만, 당뇨 등 각종 질병을 유발하여 무병장수에 해가 되니까.
“…….”
얘기가 잠시 딴 데로 샜는데 아무튼 강시는?
그럼 죽은 사람으로 만든 강시는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 걸까?
그것들이 삼시 세끼, 흰 쌀밥에 고기반찬을 먹을 리도 없고.
그 비밀은 강시를 만드는 대법과 연관돼 있다.
“음기.”
남궁정혁이 단호하게 말했다.
“강시는 이미 체내의 생명 활동이 멈춘 시체이다. 원래라면 살이 썩어 문드러져야 하지. 그래서 강시를 만들 땐 음의 기운이 강한 땅에서 만들어야 한다. 음기로 몸의 부패를 막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꾸준히 음기를 보충해 주어야 하고. 안 그러면 강시가 힘을 못 쓰거든.”
왜 어른들이 그런 말 하지 않나.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고.
제때 밥을 안 먹으며 힘을 못 쓴다고.
그런 거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강시에게는 음기가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이란 말이다.
“…….”
어려운 내용을 간단히 축약해서 잘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정학우가 미심쩍다는 듯 눈을 흘겼다.
지금 내 말을 의심하는 거냐?
“도련님이 또 그걸 어떻게 압니까?”
그야 당연히 내가 전직 천마지존이니까.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교에 설마 강시가 없었을까?
아마 중원에서 강시술이 가장 발달한 곳이 마교일 거다.
그러니 마교의 가장 높은 자리에서 군림했던 내가 강시에 대해 모르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이 사실을 솔직하게 말할 수도 없고 매번 답답하구먼.
그래서 얼렁뚱땅 말했다.
“내가 원래 박학다식해, 모르는 것 빼곤 다 알거든.”
“그래서, 지관을 만나려는 겁니까?”
“시약산에서 가장 음기가 가장 곳, 강시는 분명 그곳에 있다.”
“도련님의 말이 사실이라고 칩시다. 그렇다고 또 지관은 어느 세월에 찾습니까? 지관이 그렇게 흔한 사람이 아닌데요.”
흐흐흐, 현무단이 사냥개까지 데려왔는데 나라고 빈손으로 왔을까.
이런 일을 대비해서 미리 준비한 게 있지.
자, 보자. 그것을 어디에 뒀더라?
남궁정혁이 주머니를 뒤져 동그란 금속패를 꺼냈다.
“이게 뭔지 알겠냐?”
정학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금속패에 적힌 글자를 읽었다.
“용? 그게 뭡니까?”
아차차, 잘못 꺼냈다.
용패를 꺼냈구나.
“이거 말고.”
그것을 품속에 넣은 남궁정혁이 은색 동전을 다시 꺼냈다.
“본 적 있지 않냐?”
“그것은…….”
그래, 알아보는구나.
“……뭔데요?”
저런 허당 같은 놈.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나는 모양인데 자세히 봐라.”
남궁정혁이 은색 동전을 눈앞에 갖다 대자 그제야 정학우가 알아보았다.
“이건 옥화루주, 묘화님의 신분을 증명하는 패 아닙니까?”
“맞다.”
예전 왕소단이 납치되었을 때 이걸 가지고 가서 하오문 지부의 도움을 받았었지.
“이번에도 그걸 빌려왔다는 것은?”
“묘화가 여러모로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구나.”
참 고마운 여인이야.
이 은혜는 어찌 갚을꼬?
* * *
하오문 삼서현 지부는 객잔이었다.
그것도 이곳에서 가장 큰 객잔.
덕분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니 이곳을 알더라고.
“하오문 삼서현 지부장 임호, 남궁가의 도련님께 인사 올립니다.”
궁금하다.
나를 특실로 안내한 지부장이 저리 공손히 인사하는 건 내가 남궁세가의 자식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묘화의 위치가 하오문 내에서 높기 때문일까?
어쩌면 둘 다일 수도.
“묘화님의 서신을 받았습니다. 지관을 찾고 계신다고요?”
“그는 이곳에 있나?”
남궁세가를 출발하기 전 묘화를 찾아갔었다.
혹시 아는 지관이 있는가 해서.
아무래도 그쪽 방면으로는 그녀의 발이 넓은 것 같았거든.
-하오문 소속 지관이 있긴 합니다. 주로 부잣집 묫자릴 찾아 주는 일을 하죠.
역시 그녀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하물며 왜 지관을 찾는지도 묻지 않았고.
- 다 필요가 있으니 찾으시는 거겠죠. 남궁 도련님이 삼서현에 도착할 때쯤 맞춰 지관이 그곳에 가 있도록 조처해 놓겠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고맙단 말이야.
눈치도 빠르고 배려심도 있고.
일개 루주를 맡기엔 아까운 여인이야.
“지관은 이미 삼 일 전,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불러올까요?”
“지금 당장.”
지부장이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한 중년 사내가 들어왔다.
한쪽 옆구리에 둘둘 마린 종이 더미를 끼고선.
아마도 지도이지 싶다.
“저는 땅을 기운을 살피는 지관…….”
“시급한 일이니 자기소개는 그냥 넘어가고, 자네는 내가 묻는 것에만 대답해 주면 고맙겠네.”
“제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시약산에서 가장 음기가 가장 곳이 어딘가?”
“안 그래도 귀한 분이 저를 찾는다기에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근방의 지형부터 연구해 보았습니다.”
그가 옆구리에 끼고 온 종이를 펼쳤다.
과연, 지도가 맞다.
그것도 매우 상세한.
지도에는 산의 높이뿐만 아니라 큰 바위나 산속 건물 위치까지 그려져 있었다.
“시약산은 오른쪽엔 봉황이 날개를 폈고, 서쪽으로 고양이가 몸을 웅크린 형상입니다. 그래서…….”
“설명은 됐고, 시약산에서 음기가 강한 곳이 어딘지나 가르쳐 주게.”
어차피 들어 봤자 무슨 말인지도 모르니까.
“저도 삼 일 전 도착한 관계로 시간이 없어 시약산 전부를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지도로 분석한 결과, 이곳, 이곳, 이곳입니다.”
지관이 차례로 세 곳을 짚었다.
어딘가 싶어 자세히 보니 첫 번째 장소는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분지. 두 번째는 큰 계곡의 물줄기가 시작되는 발원지, 세 번째는 작은 습지였다.
지관이 남궁정혁의 눈치를 슬쩍 보며 말했다.
“왜 음기가 강한지도 설명하지 마요?”
“그것보단 다른 것이 궁금하네. 이건 뭔가?”
남궁정혁이 습지를 짚었다.
그곳에 묘지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관운묘입니다.”
관운묘? 무신 관우의 혼을 모시는 사당?
그걸 왜 하필 물이 고여 있는 습지 한복판에 지었대?
“추측하기로는 이곳의 음기를 다스리기 위해서가 아닌가 합니다. 이 습지는 시약산 전체에서 흘러내리는 음기가 한 곳으로 모이는 장소라 다른 두 곳보다 특히 더 음의 기운이 강하거든요.”
그래? 이상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다.
관운묘 밑으로 지렁이 같은 것이 길게 그려져 있었다.
“이건 또 뭔가?”
설마 오 백 년 묵은 이무기를 이런 식으로 그려 놓은 건 아닐 테고.
아마도…….
“그건 동굴입니다. 습지 밑에 큰 동굴이 있습니다.”
이제 시약산에서 음기가 강한 곳은 찾았고, 다음 문제가 남아 있다.
어느 곳부터 가 봐야 할까.
시약산이 크다 보니 이동 동선을 잘 짜야 한다.
되도록 헛걸음하지 않도록.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딘가?”
남궁정혁이 묻자 지관이 지도에 선을 쭉 그었다.
“분지, 발원지, 습지 순으로 거리가 멉니다.”
이러면 우선순위가 정해졌다.
첫 번째는 분지, 그곳에 없으면 발원지 근처를 수색해 봐야겠다.
습지는 맨 마지막이고.
“고맙네.”
왕소단에게 눈짓하자 그가 전낭에서 금자 열 자를 꺼내 지관에게 건넸다.
“자문료라고 생각하게.”
“묘화님께서도 적지 않은 돈을 여비로 챙겨 주셨는데. 감사합니다.”
의례적인 말이 아니다.
돈을 넉넉하게 줘서인지 진짜 감사한가 보다.
연신 고갤 숙이는 지관을 뒤로하고 남궁정혁이 객잔 밖으로 나왔다.
지금 바로 강시를 찾으러 가야지.
남궁경호는 사냥개까지 동원해서 강시를 쫓고 있는데 나라고 늦장 부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비가 오네요.”
정학우의 말대로다.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것도, 쏴아아아.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이.
어째, 늦은 오후부터 하늘이 꾸리꾸리하더라니.
갑자기 김이 팍 새네.
“도련님, 출발하시죠.”
정학우가 신발 끈을 바짝 맸다.
쟤는 왜 저리 의욕 충만한 거야?
“이 일에는 남수단뿐만 아니라 가주님의 명예까지 걸려 있습니다. 당연히 열심히 해야죠.”
“비가 저렇게 많이 오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있지, 아주 큰 상관이.
“나도 어서 빨리 강시를 찾고 싶다. 하지만 이미 해가 진 데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비가 많이 와. 더구나 시약산은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초행길 아니냐.”
“그래서 가지 말자고요?”
“길 잃고 헤매는 것보단 낫지.”
내가 산, 한두 번 타 봤나.
내가 원래 살던 곳이 중원에서 가장 험한 십만대산이다.
웬만한 산악전문가보다 산을 더 잘 안다는 말이다.
이런 날 무리하다간 무슨 사고를 당할지 모른다.
더구나 하늘을 가득 메운 먹구름을 보니 쉬이 그칠 기세도 아니고.
내일쯤 멈추려나?
“밥이나 먹자, 아직 저녁도 안 먹었잖아.”
남궁정혁이 몸을 돌려 객잔 안으로 다시 들어가자 정학우가 실망했다는 듯 말했다.
“현무단은 사냥개까지 동원해서 강시를 찾고 있는데 지금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
“쓸데없는 짓이야.”
“……네?”
“비가 이렇게 오는데 사냥개가 무슨 소용이냐? 냄새도 다 쓸려 갔을 텐데. 걔들도 어차피 곧 내려올걸.”
“안 내려오면요?”
“개고생이지, 사람과 개가 함께 하는 고생.”
* * *
“남궁건 조장님, 단주님께 다시 말 좀 해 보세요. 산에서 내려가자고요.”
“소용없다. 벌써 몇 번을 말했지만 듣질 않으신다.”
“대원들이 너무 지쳤습니다. 더 이상의 수색을 무립니다.”
난들 그걸 모를까.
현무단원들의 어깨가 축 처졌다.
단순한 체력의 문제가 아니다.
비가 너무 와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동료들과의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하다.
게다가 밤이 되자 기온까지 내려갔다.
평소라면 아무 문제 없을 터이지만, 젖은 옷 때문에 한기까지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무공의 고수들이 산길에 뾰족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려 연신 넘어졌다.
상황이 이런데 사냥개라고 멀쩡할까.
개들도 포기했는지 땅바닥에 배를 대고 주저앉아 혓바닥을 드러내며 헥헥거렸다.
총체적 난국인 것이다.
그래서 남궁건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남궁남호를 찾았다.
“단주님, 더는 수색이 의미 없습니다. 오늘은 그만 산에서 내려가고 비가 그치면 다시 올라오죠.”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마라. 우리는 오늘 꼭 강시를 찾는다.”
현무단주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자신이 목표를 정하면 그것을 완수하기 위해 부하들을 가혹하게 몰아붙였다.
그래서 현무단이 뛰어난 실적을 올릴 수 있었지만 문제는…….
“저 언덕 너머는 가 보지 않았지? 3조를 보내서 수색해라.”
자기는 가만히 앉아서 지시만 내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현무단원들이 단주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부단주님, 차라리 저희만이라도 산에서 내려가죠.”
남궁남호의 몇몇 최측근만 빼고는 온화한 성격의 남궁건을 더 따르는 형국이었다.
“그건 항명이다. 싫든 좋은 우린 단주님의 명령을 따라야 해.”
“차라리 남궁건 조장님이 단주 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쉿, 말조심해라, 다른 사람이 들을 수도 있다.”
남궁건이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댔지만, 부하의 볼멘소리는 계속되었다.
“솔직히 궂은 일은 조장님이 다 앞장서서 하잖아요. 단주님은 뒤에서 명령만 내리고. 그러면 누가 단주 못 하나요?”
“대신 단주님은 가장 어려운 걸 해냈잖냐.”
“그게 뭔데요?”
“잘 태어났잖냐.”
남궁남호는 남궁세가의 실세 중의 실세인 남궁수 대장로의 아들이니 작은 공을 세워도 금방 눈에 띄지만, 남궁건은 아니다.
그는 이름 앞에 남궁이란 성이 붙어 있지만, 방계 가문이다.
아무도 그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는다.
그러니 출세하려면 남들보다 더욱 열심히 할 수밖에.
“저 언덕에도 없으면 그 옆에 있는 숲을 뒤져 봐라.”
비를 피할 수 있는 커다란 바위 밑, 그곳에 혼자 앉아 육포를 쩝쩝 씹으며 지시 내리는 남궁남호 때문에 현무단원들은 밤을 꼴딱 새웠다.
그럼 강시는 찾았냐?
강시가 아무리 지능이 없더라도 최소한의 날씨는 살피고 움직인다.
결국 남궁정혁의 말대로 개고생을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