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64화
와, 날씨 좋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언제 비가 왔냐는 듯,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이다.
게다가 공기는 또 어떻고.
휴우, 깊게 숨을 들이쉬자 촉촉한 수분을 머금은 공기가 폐부 가득 들어왔다.
간만에 몸 상태 좋네.
“도련님, 좋은 아침입니다.”
“어젯밤 푹 잤습니다.”
그건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갓 잠에서 깨어서 부하들도 몸이 가벼워 보인다.
“이곳 침구가 아주 편안하더군요.”
“부단주님, 특실 아닙니까, 비싼 값을 해야죠.”
남궁세가에서 이곳, 삼서현까지 오는 동안은 주로 노숙했다.
낮에는 말을 타고 열심히 달리고, 밤에는 낙엽 등을 끌어모아 대충 잤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삼서현에 도착하기 위해.
아무래도 현무단과 경쟁하다 보니 서두를 수밖에 없더라고.
그런데 침대라니.
그것도 이 객잔에서 가장 비싼 특실.
그렇다고 따로 돈 내고 묵은 건 아니다.
섬서현 지부장이 알아서 모시더라고.
묘화가 신신당부했다나.
우리가 지내는 데 불편함 없이 잘 모시라고.
덕분에 푹 잘 쉬었다.
“이제 강시를 찾으러 가 볼까?”
따뜻한 국물로 속을 채우고, 시약산에 올랐다.
어제 비가 많이 오긴 많이 왔는지 땅이 질퍽인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진흙탕으로 변한 산길에 발이 푹푹 빠진다.
‘차라리 신발을 벗는 게 나으려나?’
지금도 이런데, 한창 비가 왔던 어젯밤 산속을 누빈다?
어휴, 상상만으로 피곤하다.
잘하려면 열심히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쓸데없는 체력 낭비를 하면 안 되지.
효율이 더 중요하걸랑.
“도련님, 저기 웬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무단인 것 같은데요.”
시약산을 오른 지 한 시진쯤 지났을까.
산 중턱에서 현무단을 만났다.
그런데.
‘저것들, 설마 산속에서 밤을 새운 건가?’
처음엔 현무단인지도 몰랐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산속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길래, 웬 거지들이 단체로 등산을 왔나 했다.
‘……아닌가?’
거지랑 비교하는 건 개방에 대한 실례인가.
아주 난민이 따로 없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는 아무렇게나 헝클어졌고, 눈은 퀭하다.
게다가, 또 옷은 어떻고.
진흙 범벅이라 차라리 벗는 게 더 깔끔할 것 같다.
대체 뭔 짓을 하면 하루아침에 사람이 이리 꼬질꼬질해질 수 있는 거냐.
남궁정혁이 바위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남궁건에게 물었다.
“왜 이제껏 산속에 있었지? 비가 너무 와서 하산할 시기를 놓쳤나?”
슬쩍, 남궁정혁을 본 그가 힘없이 고개를 흔들흔들 저었다.
“밤새 강시를 찾았습니다.”
“뭣 때문에? 어젯밤 같은 상황이면 사냥개도 쓸모가 없었을 텐데.”
“……단주님이 그래야 한다고 했으니까요.”
대충 상황을 알겠다.
의욕만 넘치는 남궁남호가 주변 상황을 고려치 않고 부하들을 갈아 넣었나 보다.
쯧쯧, 너희들이 상관을 잘못 만나 고생이 많구나.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일지만.
강시를 찾았냐고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허탈한 저들의 표정이 결과를 말해 주고 있으니.
‘그래서 스스로 강시화된 건가?’
넋 나간 듯 널브러진 현무단원들의 모습이 강시와 흡사하다.
“자, 길 좀 비키자.”
남궁정혁이 그들 사이를 지나가려 할 때였다.
“어이.”
누군가 그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누군지 알겠다.
현무단에서 어느 누가 감히 그를 저렇게 건방지게 부를 수 있을까.
그래서 무시하고 제 갈 길 가려는데 등 뒤에서 다시금 남궁정혁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 내 말 안 들려?”
잘 들리는데 예의가 없네.
그래서 굳이 아는 척하고 싶지 않아.
내가 싸가지 없는 놈이랑은 말을 나누지 말자는 주의라.
주먹은 나눠도 말이지.
“먹을 게 좀 있으면 주고 가라.”
남궁정혁이 발걸음을 멈췄다.
지가 먼저 아쉬운 소리를 하는 걸 보니, 남궁남호 저놈이 어지간히 배고픈 것 같다.
‘그래도 제일 멀쩡하네.’
부하들은 강시인지 사람인지 헷갈리는데 남궁경호는 그나마 사람답다.
옷도 비교적 깨끗하고.
그래서 더 문제지만.
이건 스스로 증명하는 꼴 아닌가.
본인은 뒷짐 지고 물러나서 부하들만 부려 먹었다는.
“아침을 먹지 못했다. 뭐 있냐? 육포? 건량?”
지금도 남의 음식을 꽁으로 먹으려 하고.
“어제 육포를 너무 먹어서 질린다. 건량 있으면 줘라.”
아무리 봐도 남궁수가 자식을 오냐오냐 키운 것 같다.
왜 내가 당연히 나눠 줄 거라 생각하지?
우리 사이가 그렇게 정겨운 사이도 아닌데 말이야.
저놈은 자기 비위를 맞춰 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란 게 분명하다.
“건량이라…….”
혹시나 몰라 비상식량으로 챙겨 온 게 있긴 하다.
남궁정혁은 품속에서 건량을 꺼냈다.
“물도 있으면 줘 봐…… 너 지금 뭐 하냐?”
보면 모르냐?
건량 씹고 있잖아.
남궁정혁이 음식을 건네받기 위해 손을 내민 남궁경호를 무시하고 건량을 자기 입에 쏙 넣었다.
“형이라고 해 봐.”
“……뭐?”
“형, 건량 좀 주세요, 해 보라고.”
어차피 나중에 해야 할 텐데 예행연습 한다고 생각하고.
“자존심이 밥 먹여 주는 거 아니다.”
“……그깟 건량으로 날 농락할 셈이냐?”
싫음 말고.
네가 아쉽지, 내가 아쉽냐.
남궁정혁이 입안에서 잘근잘근 씹은 건량을 퉤, 바닥에 뱉었다.
“배고프다고 주워 먹지 마.”
“네놈이 여기서 죽고 싶은가 보구나.”
“……!”
남궁정혁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그렇다고 눈앞에서 흥분하여 검을 꺼내려는 남궁남호 때문은 아니고.
‘아무도 신경을 안 쓴다?’
현무단주가 모욕을 당했는데 일부를 제외한 많은 단원이 본체만체다.
마치 남의 일인 것마냥.
이런 일이 발생하면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같이 화내는 게 정상 아닌가.
그것도 목숨 걸고 함께 싸우는 무림의 전투부대라면 더더욱.
‘이거 콩가루 집안이구먼.’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현무단의 내부 결속력은 그다지 단단하지 않은 것 같다.
* * *
산을 오르긴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높이가 높고 길이 험해서 시약산 정상 밑에 있다는 분지까지 가는 게 힘들 거라고.
근데 생각보다 더 힘들다.
경공이 뛰어나다 자부하는 나조차도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고되다.
그러니 다른 남수단원들은 어떻겠는가.
“헤엑, 헤엑.”
혓바닥을 길게 늘어뜨리고는 거침 숨을 몰아쉬었다.
다만 왕소단을 달랐다.
“빨리 좀 와요, 사내들이 그렇게 느려 터져서 어떡합니까?”
확실히 경공은 그가 남수단에서 가장 뛰어나다.
아니, 어쩌면 중원 전체를 뒤져도 손꼽을 수 있을지도.
그래서 이번 일에 데려왔지만.
무리의 맨 앞에서 날렵한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던 그가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아마 저것인 것 같습니다.”
이제 겨우 도착했나.
가파른 경사길이 뚝 끊기고, 바닥이 움푹 꺼진 땅이 보였다.
지관이 왜 이곳을 시약산에서 음기가 가장 곳 중, 한 곳으로 꼽았는지 알겠다.
‘왠지 으스스하군.’
사방이 높은 봉우리로 둘러싸여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햇빛이 거의 들지 않았다.
게다가 바람이 지나는 통로인가?
분지 주변에만 유독 강풍이 불었다.
게다가 소리는 또 어떻고.
쉬이이잉, 고막을 자극하는 소리가 마치 귀신의 울음소리 같아 소름 끼친다.
딱, 강시가 살기 좋은 명당이란 말이다.
물론 사람한테는 흉당이고.
이런 데 살면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면서 수명이 팍팍 깎일 거다.
‘자, 강시는 어디에 있을까?’
수풀 사이에 몸을 숨겨 분지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저 반대편에 거적때기로 만든 움막이 보였다.
허접하긴 해도 이 분지 안에 있는 유일한 인공구조물이다.
아마도 저곳에 강시와 그 강시를 부리를 영환술사가 있지 않을까?
확인해 봐야겠다.
“소단아.”
“예.”
“이제 너의 능력을 보여 줄 차례다.”
“뭔 능력이요?”
“가서 확인해 봐, 저기 강시가 있는지 없는지.”
남궁정혁이 나지막하게 말하자 그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제가 왜 그래야 하나요?”
그야 네가 남수단의 척후병이니까.
남궁정혁이 왕소단을 영입한 가장 큰 이유였다.
“넌 척후병을 하기 위해 태어난 몸이야.”
척후병이란 정찰 임무를 맡은 병사를 뜻한다.
상대편 진영에 침투하여, 적의 인원은 어떻게 되는지, 그들은 뭘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
그것이 척후병의 임무다.
그럼 왕소단의 특기는?
아무리 감시한 삼엄한 곳이라도 몰래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다.
누가 봐도 척후병에 딱 맞지.
사람은 적성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
“뭐 해? 안 가고?”
남궁정혁이 재촉하자 왕소단이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저는 못 합니다.”
“왜? 들킬 것 같아서?”
아니, 그것 아니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왕소단이 쭈뼛대며 말했다.
“그렇게 안 보이겠지만 제가 의외로 여리거든요.”
“그래서 강시가 무서워?”
“솔직히 말하면 저는 밤에 귀신 나올까 봐 혼자 잠도 못 잡니다.”
그래서 집사하고 같이 자요.
“괜찮아, 귀신은 실체가 없지만, 강시는 그냥 시체야. 네 능력이면 절대 들킬 일 없으니까 후딱 다녀와.”
그렇게 남궁정혁이 좋게 달랬지만 왕소단은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그래서 결국.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중 누가 더 무서운지 가르쳐 줘? 내가 같은 말을 세 번 반복할 만큼 성격이 좋아 보이냐?”
남궁정혁이 으드득, 손가락 관절을 꺾자, 왕소단이 마지못해 나섰다.
‘쳇, 이래서 오면 안 됐어.’
일한다고 바쁘다는 사람, 억지로 끌고 올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이렇게 부려 먹으려고 데려온 거구먼.
앞으로 고생길 훤히 열린 것 같은데.
마지못해 나서는 왕소단의 등 뒤에서 남궁정혁이 말했다.
“가서 보고 주령도 훔쳐 올 수 있으면 훔쳐 와, 그게 네 주특기잖아.”
“……?”
주령? 그게 뭡니까?
* * *
으~ 소름 끼친다.
온몸에 닭살이 올랐다.
세상 살면서 이렇게 많은 시체를 본 건 처음이다.
‘강시를 본 것도 처음이고.’
움막 천장으로 은밀한 잠입한 왕소단의 눈 밑으로 분칠한 듯, 얼굴이 하얀 강시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숫자는…… 약 이십여 구?
‘오십 구라고 안 했나? 나머지는 삼십 구는 어디 갔지?’
왕소단이 기척을 완전히 숨겼다.
부스럭, 한쪽 구석에서 인기척이 났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 영환술사인가?’
작은 키에 비해 머리가 비정상으로 큰 사람이 강시들 사이로 돌아다니며 일일이 강시의 눈을 까뒤집어 보고 있었다.
“이제 음기가 거의 다 채워졌구나.”
어두워서 잘 몰랐는데 강시가 누워 있는 자리에 이상한 문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진법인가?
“이게 다 ‘그분’ 덕이다. 그분이 가르쳐 주신 음한급충진법 때문에 강시의 음기 충전이 더 빨리 되는구나.”
왕소단이 자신의 머리 바로 위에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 영환술사가 흡족한 듯 계속 혼잣말을 했다.
“천운이야, 그분을 만난 건, 그렇지 않다면 어찌 가문의 복수를 꿈꿀 수 있었으랴.”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저 위에 강시를 놓으면 음기가 충전되나 보다.
그나저나 영환술사는 왜 또 한 명이야?
분명 두 명이라고 했는데.
어쨌든 됐다.
강시와 영환술사가 있는 걸 확인했고, 숫자도 확인했다.
이제 돌아가 자신이 본 걸 남궁정혁에게 말하기만 하면 된다……?
‘저게 주령인가?’
왕소단의 눈이 반짝였다.
주령, 그것은 강시를 조종하는 방울이었다.
주령을 흔들면 그 소리에 반응한 강시가 움직인다고.
그것이 영환술사의 오른쪽 허리춤에 매달려 있었다.
가져갈까?
‘아니, 됐다.’
강시들의 몸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 때문에 코가 썩는 것 같다.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할 필요도 없고.
애초에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남궁정혁에게 등 떠밀려 왔을 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다.
그래서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고 은밀히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손이 근질근질하네.’
자기도 모르게 눈이 자꾸만 주령을 향한다.
그냥 가자니 뭔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느낌이다.
뒷간에서 볼일 보고 안 닦은 것처럼 찝찝하기도 하고.
‘……이게 직업병인가? 훔쳐?’
순간 스승님, 신투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 진정한 도둑은 생각하기 전에 행동한다. 훔칠지 말지, 고민할 시간에 하나라도 더 훔쳐라.
그 말을 떠올린 순간 부끄러워졌다.
‘나는 아직도 부족하구나.’
파악!
왕소단이 영환술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스승의 가르침을 행하기 위해.
스승님, 저 하늘나라에 보고 계십니까? 제자가 오늘 한 단계 성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