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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65화 (65/108)

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65화

“단주님~”

뭐가 저렇게 좋은 걸까?

움막을 빠져나온 왕소단이 아주 해맑은 표정으로 뛰어왔다.

그것도 한 손에는 주령을 들고.

“제가 해냈습니다!”

오래간만에 도둑질을 해서 욕구불만이 해소됐나?

왕소단이 저렇게 기분 좋은 건 또 처음 본다.

아주 미소가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천진난만하기 그지없다.

“네 이놈!”

그런 그의 뒤를 한 청년이 급히 뒤쫓았다.

“내 손에 잡히면 강시로 만들어 주마.”

저놈이 영환술사인가?

하지만 그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도 왕소단과 그와의 거리는 점점 더 벌어졌다.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

경공 하나만큼은 천하 일절인 그를 일개 영환술사가 어찌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그것도 머리가 지나치게 커, 인체 비율까지 좋지 않은 그가.

달리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머리가 작고 다리가 길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저 영환술사는 정반대이고.

그래도 참 열심히는 뛴다.

그만큼 주령이 중요한 물건이긴 하지.

“자, 잠깐만. 주령만 내놓으면 목숨은 살려 주마.”

이제 쫓기를 포기한 영환술사가 사정했지만, 왕소단이 멈출 리가 있나.

그가 곧 남궁정혁에게 닿았다.

“여기 주령 있습니다.”

아이고, 내 새끼, 해냈구나.

그냥 말해 본 거였는데 진짜로 주령을 훔쳐 왔어.

덕분에 일을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주령 없는 강시는 주정 없는 술이자, 독 없는 뱀이니까.

그것들은 이제 일반 시체와 크게 다른 바 없다.

남궁정혁이 왕소단의 어깨를 두들겨 줄 때 영환술사도 도착했다.

“헉헉, 그것을 내놓아라.”

근데 왜 한 명이지?

영환술사는 두 명이라고 안 했나?

남궁정혁도 왕소단과 똑같은 의문을 품을 때, 왕소단이 말했다.

“움막 안에는 저 사람, 혼자였습니다.”

그래? 나머지 한 명은 어디 외출했나?

이것은 그리 대수롭지 않은데.

“강시도 이십여 구밖에 없었습니다.”

이 말은 그냥 넘길 수 없다.

왜 강시의 수가 모자라지?

다행히 그 의문을 해결해 줄 사람이 금방 제 발로 왔었다.

“어디서 온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시를 부려 네놈들 목을…… 컥컥.”

목 운운하기에 남궁정혁이 영환술사의 목을 움켜쥐었다.

‘역시 무공은 약하군.’

무림에 통하는 기본 상식 중의 하나가 강시를 부리는 영환술사는 무공이 약하다는 거다.

왜 그런 말이 나왔을까?

이제껏 무림에 등장한 거의 모든 영환술사가 그러했으니까.

애초에 본인 무공에 자신이 없으니 강시라는 마물의 힘을 이용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번에도 그런 경우였고.

“커억, 컥.”

다리가 짧아서 슬픈 영환술사여.

그가 허공에서 버둥거렸다.

“네놈은 하돈이냐, 하식이냐.”

삼서현에 처음 도착한 그날 들었다.

영환술사는 두 명의 형제라고.

이놈은 형일까, 동생일까.

남궁정혁이 물었지만, 아무 답이 없다.

그건 목을 더 졸라도 마찬가지.

“이제 말할 생각이 드나?”

고통에 컥컥대긴 하지만 말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남궁정혁을 노려보는 눈길에 독기까지 서려 있다.

대가 센 놈인가?

하긴 가문의 복수를 위해 강시까지 동원하는 놈인데 어련할까.

원하는 답을 얻긴 위해선 일단 놈을 좀 고분고분하게 만들어야겠다.

“내가 원래는 이걸 아주 잘했어, 아무 후유증 없이 뼈와 살만 깔끔하게 잘 분리했는데 오랜만에 하는 거라 잘 될지는 나도 모르겠네.”

분근착골을 해 볼 참이다.

뼈와 살을 뒤틀리게 해서 고통을 주는 기술.

무공에서 가장 유명한 고문법이기도 하지.

가장 유명한 이유는 가장 고통스러우니까.

“근데 잘 참네?”

비꼬는 게 아니다.

고통에 대한 내성이 강한 건지, 고집이 센 건지, 영환술사는 정말로 잘 참았다.

내가 이제껏 수많은 사람을 어루만져 줬지만,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아직도 말할 생각이 없냐?”

그래서 더욱 열심히 관절을 뽑아 뱅뱅 돌려 줬지만 말이다.

“크아아악, 다 말하겠습니다.”

놈이 결국, 백기를 들었다.

남궁정혁이 묻는 말에 술술 대답을 했다.

“네놈의 이름은.”

“……하, 하식입니다.”

“네놈의 형은 어디 갔냐?”

“시약산 너머에 있는 관운묘로 갔습니다.”

“설마 습지 위에 지어졌다는 그 사당?”

“맞습니다.”

“그곳엔 왜 갔는데?”

“그건…….”

하식이 대답을 주저하자 남궁정혁이 그의 손가락 관절을 하나 더 뽑았다.

“왜 갔냐고?”

“크윽, 강시를 강화하기 위해서입니다.”

강시 강화?

강시의 능력을 향상한다고?

일반적으로 강시는 처음 만들어질 때 그 능력이 정해진다.

그런데 무슨 수를 더 강하게 한다는 거야?

사람처럼 무공을 수련하는 것도 아니고.

“너, 이 새끼. 생각보다 더 겁대가리가 없구나, 감히 거짓말을 하는 걸 보니 말이다.”

남을 속이는 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지.

감히 전직 천마 지존님에게 구라를 쳐?

남궁정혁이 이번엔 발목 관절을 통째로 뽑으려 하자 얼굴이 하얗게 질린 하식이 다급히 말했다.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그곳에서는 강시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땅이거든요.”

“……?”

“저희도 처음 그곳을 발견하고는 놀랐습니다. 시약산에 그런 장소가 있을 줄을 꿈에도 몰랐으니까요.”

습지가 그리 대단한 곳인가?

저리 호들갑을 떨면서 말할 만큼.

“그곳은 아마 중원 전체에서도 가장 음기가 가장 센 장소 중 한 곳일 겁니다. 일반 사람은 하루만 지내도 객사하고 말걸요.”

“그래서 그곳의 음기를 이용하면 강시의 능력이 올라간다?”

사람으로 치면 일종의 영약 같은 건가?

왜 무림인도 진기가 응축된 약을 먹으면 내공이 올라가지 않나.

강시도 음기를 더욱 보충해 능력을 강화하는 방법이 있나 보다.

‘……그러고 보니 그런 방법을 개발했다고 누가 자랑했었던 것 같은데.’

하식이의 얘기를 들으니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누가 비슷한 말을 했던걸.

그 사람이 누구였지?

남궁정혁이 과거 기억을 회상하며 고갤 갸웃할 때 왕소단이 말했다.

“단주님, 그분이 누구인지도 물어보십쇼.”

“……그분?”

그 사람은 또 누군데?

“아까 제가 움막에 잠입했을 때 저자가 혼잣말하는 걸 똑똑히 들었습니다. 그분 덕분에 복수를 꿈꿀 수 있었다고 하는걸. 아마 그자에게 강시술을 배운 건 같습니다.”

오호, 좋은 정보 감사.

남궁정혁이 다시금 하식이를 보았다.

“저 말이 맞냐?”

“……예, 맞습니다.”

이번에도 뻗대면 하식이의 몸 중앙에 있는 소중한 구슬의 좌우 위치를 바꿔 줄까 했더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사람이 누군데?”

“엄신.”

“……뭐, 누구?”

“엄신, 그분이 저희에게 강시술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엄신이면 천수마의?

그 영감탱이 이름이 여기서 왜 또 나와?

*   *   *

아무래도 천수마의, 그 영감이 세상을 살 만큼 살아서 인생이 따분한가 보다.

그러니 여기저기 쓸데없이 남의 일에 개입해서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흡정대법만으론 부족했나?’

다들 기억할 것이다.

천수마의 때문에 송화문이 있는 진량현 일대에 피바람 불었던 것을.

가슴에 한을 품을 여인에게 괜히 흡정대법을 가르쳐 줘서 여러 사람이 피 봤지.

시체도 온전히 남기지 못하고 죽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번 강시 사건도 천수마의가 연관되어 있다?

“비참한 인생이었습니다. 정마대전이 끝난 후 모든 사람이 저희 가문을 비겁하다고 손가락질했습니다…….”

이제는 자포자기했는지 하식이 자기의 과거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뭐, 간략히 요약하면 정파를 배신하고 마교에 붙었던 일 때문에 가문이 멸망해서 힘들게 살았다는 이야긴데, 사실 그리 와 닿지는 않는다.

황균과 석문의 경우와는 달리 책임감을 느끼지도 않고.

누가 마교 편에 서라고 칼 들고 협박했나?

자신들의 이익을 따져 유리한 곳에 붙은 거지.

사실 정마대전 때 마교가 승리했다 한들, 하식의 가문 태을문은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런 박쥐 같은 놈들, 이용 가치가 떨어지면 갖다 버려야지, 왜 끝까지 안고 가겠는가.

내가 원체 의리를 중시해서 말이지.

더구나 한편 남을 배신한 사람은 다음에는 더 쉽게 하는 법이다.

이런 남궁정혁의 생각을 알 리 없는 하식의 하소연이 계속되었다.

“삶의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져 하루하루 목수만 연명하고 있을 우리 앞에 나타난 사람이 엄신. 그분입니다. 우리 형제의 딱한 사정을 듣고는 은혜를 내려 주셨죠, 그게 강시술입니다.”

이 대목에서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뭐? 천수마의가 남의 사정을 딱하게 여겨?

‘그럴 리가.’

마교에서 가장 괴팍하고 이기적인 인간이 엄신이다.

전염병이 돌면 해부할 시체 늘어서 좋다고 손뼉 치는 인간이 남을 동정할 리가.

그렇다면 그는 왜 강시술을 하식 형제에게 가르쳐 주었을까?

그 이유는 대충 짐작이 된다.

‘강시를 계속 연구했었나 보군. 그래서 그 연구 결과를 하식 형제를 통해 확인하고 싶었나?’

마교에서 강시에 가장 심취한 사람이 천수마의였다.

그 인간의 취향에 딱 맞았으니.

대체 어릴 적에 어떤 가정 교육을 받았는지, 천수마의는 시체 가지고 노는 걸 좋아했다.

그러니 죽은 사람이 다시 움직이는 강시에는 환장할 수밖에.

실제로 내가 마교 교주일 때 숱하게 제의도 했었고.

강시로만 이루어진 특별부대를 만들자고.

내가 흥미를 보이자 더욱 열심히 설득했다.

그때 뭐랬더라.

‘강시가 사람보다 나은 10가지 이유?’

강시는 주어진 명령만 따르니 사람보다 말을 더 잘 듣고, 밥과 술을 먹일 필요도 없으니 유지비가 사람보다 싸다?

대충 그런 내용이 적힌 커다란 두루마리를 가져와 열심히 발표했었다.

결국, 그 계획은 실패했지만.

그 이유가 뭐냐고?

‘강시는 강시를 만드는 것보다 강시를 만들 시체를 구하는 게 더욱 어려우니까.’

누군들 죽은 다음에는 땅에 편안히 묻히고 싶지, 완전히 산 것도 아니요, 죽은 것도 아닌 강시가 되고 싶겠는가.

그렇다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마교가 공동묘지에서 시체를 훔쳐 올 수도 없고.

우리가 아무리 패도를 추구한다고 해도 최소한의 선을 지킨다.

‘그래서 천수마의가 아주 난리를 쳤지. 강시 만들 시체 구하기가 어렵다고.’

결국, 나한테까지 와서 웬 종이를 내밀었다.

시신 기증 서약서.

내가 죽으면 시신을 강시로 만드는 것에 동의한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싫다고 하니, 교주인 나부터 앞장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나.

강시는 생전 무공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센 강시가 되니, 나 정도면 훌륭한 강시가 될 거라고 설득했다.

- 교주님의 시신으로 역대 최강의 강시를 만들겠습니다.

물론 내가 그 종이에 순순히 서명할 리가 없잖아.

하도 어이가 없어서 천수마의, 그 미친 노인네의 대갈통을 깨부술까 하다가, 날 찾아온 용기만은 가상해 천수마의의 한쪽 팔은 부러뜨리는 것으로 용서해 주었다.

아무튼, 그때 해소하지 못한 욕망을 지금 이렇게 풀고 있는 것 같다.

“관운묘로 데려간 강시는 얼마나 강해지는 거냐?”

“혈강시가 됩니다. 지금쯤 거의 다 완성했을 겁니다.”

혈강시라,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해지네?

하식의 대답에 남궁정혁이 움찔하자, 정학우가 물었다.

“도련님은 혈강시가 뭔지 압니까?”

물론.

“강시는 보통 손을 앞으로 뻗고 깡총깡총 뛰어다니잖아, 혈강시는 다르다. 일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능력도 일반 강시보다 훨씬 더 강하고.

“혈강시는 보통 절정고수급 이상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강시가 서른 구?

현재 남수단의 전력으로는 상대하기 버거운데.

까닥하다간 몰살당하겠다.

이 사태를 어찌 해결할까?

팔짱 끼고 머릴 굴리니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지금 시약산에서 강시를 찾는 게 우리뿐만은 아니잖아.’

이이제이?

적은 다른 적으로 제거한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현무단이 수고 좀 해 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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