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세가 막내아들은 천마지존 66화
전생, 천마이던 시절 무림을 누비며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렇다고 내가 인맥 형성을 위해서 굳이 노력한 건 아니고.
당시 내 사회적 위치가 상당히 높다 보니 그들이 먼저 다가오더라고.
나랑 친하게 지내면 뭔가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싶어서.
그중에는 노름판에서 거의 나만큼이나 유명하다는 도박사도 있었다.
그 바닥에서는 신의 손으로 통한다나.
그런 그가 나한테 물은 적이 있다.
- 천마님, 노름판에서 호구를 벗겨 먹을 때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십니까?
글쎄,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패를 바꾸는 일?
그렇게 말하자 신의 손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라고.
-호구를 판에 앉히는 일입니다. 일단 앉히기만 하면 입고 있는 속옷까지 탈탈, 털어먹는 건 일도 아니죠.
그럼 우리의 호구, 아니 현무단은 어떻게 사당으로 데려갈까?
일단 그곳에 데려가기만 하면 그들이 혈강시와 알아서 신나게 싸울 텐데.
나는 그 혼란을 틈타 하식이 형, 하돈이를 잡으면 되고.
그렇다고 내가 현무단한테 가서 ‘저기에 가면 강시 있다’라고 직접으로 말할 수는 없잖아.
그들도 최소한의 눈치는 있을 테니.
괜한 의심만 살 것이다.
왜 우리한테 강시가 있는 곳을 말해 주지? 무슨 함정이 있는 건 아냐, 라고.
그렇게 호구를 판에 앉힐 방법을 고심하는데.
‘…….’
손에 든 주령이 보였다.
이걸 한번 써 봐?
남궁정혁이 하식이에게 물었다.
“강시술을 엄신에게 배웠으니, 주령을 사용하는 법 역시 엄신에게 배웠겠지?”
“그럼요.”
강시술을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죽은 사람을 각종 약물에 절여 강시로 만드는 강시제조술.
나머지는 주령을 흔들어 강시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주령술.
‘예전에 쓰던 방법을 아직도 쓰나?’
주령을 쓰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얼핏 듣기에 똑같은 방울 소리 같아도 자세히 들으면 미세한 차이가 있단 말이다.
안 그러면 옆집 강시를 그 옆집에 사는 영환술사가 부릴 수 있게.
강시는 처음에 각인된 소리에만 반응하여 움직인다.
‘굳이 귀찮게 바꾸진 않았겠지?’
엄신이 쓰는 주령술은 나도 쓸 줄 알았다.
전생에 그한테 직접 배운 적이 있으니까.
엄신이 방울 하나만으로 강시를 말 잘 듣는 애완동물처럼 부리는 게 신기하더라고.
그래서 가르쳐 달라고 했지.
마교 최고 권력자의 요구이니만큼 당연히 수용할 줄 알았는데 엄신이 처음엔 거절했다.
자신만의 비기를 남한테 함부로 노출할 수 없다나.
사실 그건 핑계고 삐친 것 같았다.
내가 기증서에 서약 안 했다고.
그래서 또 두들겨 맞았지만.
아무튼 이제까지의 행적을 보면 알겠지만, 그 영감탱이도 스스로 매를 버는 유형이었다.
마교 최고 의원이란 실력만 없었다면 나한테 진즉에 맞아 죽었을 거다.
아무튼, 그래서 엄신의 주령술이라면 나도 할 줄 아는데.
“움막으로 가 보자.”
내가 아무리 담이 크다 해도 강시 스무 구가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소름 끼치긴 한다.
게다가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는 어떻고.
이런 거 보면 강시술사도 참 대단해.
저런 마물들과 어떻게 함께 지내는 걸까?
꿈자리 뒤숭숭하지 않나, 밥은 제대로 넘어가고?
마음 같아서 지금 당장 저 강시들, 모조리 불태워 버리고 싶다만…….
‘이렇게 하는 거였나?’
딸랑딸랑
엄신에게 배운 대로 손목을 살살 흔들자.
“섰다!”
“강시가 움직였다.”
남수단원들의 호들갑대로 눈 뜬 강시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놈의 재능, 여기서도 이렇게 통하는구나.’
꽤 오래전에 배운 건데 까먹지도 않고 말이야.
아쉽네, 이럴 줄 알았으면 혈강시를 움직이는 주령술도 배워 둘걸.
종류가 다른 만큼 일반 강시와 혈강시를 부리는 주령술은 다르다.
혈강시가 희귀한 존재인 만큼 써먹을 데가 있을까 싶어 따로 배우지 않았고.
지금에 와서는 약간 후회도 되지만.
이래서 사람은 뭐든 배울 수 있을 때 배워 놔야 해.
나중에 다 쓸모가 있거든.
‘그래도 이거라도 있는 것에 만족하자.’
일반 강시라도 부릴 수 있는 게 어딘가.
딸랑, 주령을 한 번 더 흔들자 강시들이 움막 밖으로 나갔다.
이제 이 강시들을 미끼로 써야겠다.
현무단을 낚을 미끼.
이것들로 현무단을 관운묘로 살살 유인해야지.
“현무단이 지금 어디 있는지 찾아봐라.”
그렇게 왕소단에게 명령을 내리려는데 이미 턱이 빠진 건 아닐까?
입을 쩍 벌린 정학우가 말했다.
“도려니믄 어떠게 강시수까지 아는 거니까?!”
뭐라는 거야?
똑바로 말 못 해?
“턱이나 닫고 다시 말해라.”
“대체 도련님은 어떻게 강시까지 부리는 거냐고요? 정녕 도련님이 제가 아는 그 남궁정혁 도련님이 맞습니까?”
“내가 원래 박학다식하다고 했잖아. 웬만한 건 그냥 다 할 줄 알아.”
이번에도 얼렁뚱땅 넘어가려 했는데 통하지 않는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것일까?
정학우가 집요하게 물었다.
“그냥 어떻게 강시를 부립니까?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워낙에 타고난 재능이 좋아서 그래.”
“이건 재능의 영역이 아닙니다. 재능이 뛰어나면 남들보다 빨리 배울 순 있지만, 배우지 못한 걸 혼자서 할 순 없잖습니까.”
거참, 귀찮네.
빨리 현무단 꼬시러 가야 하는데 말이야.
진짜 사실을 말해 줘?
감당할 수 있겠어?
“내가 사실 전직 천마야, 그래서 할 줄 알아.”
“도련님,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 좀 진지해지자고요.”
……어쩌라고, 난 분명 사실은 말했는데.
네가 안 믿은 거다.
* * *
“요즘 남궁건 조장이 건방진 것 같지 않아?”
“그놈은 요즘이 아니라 항상 건방졌어. 남궁이란 성을 쓴다고 자기가 진짜 남궁세가의 혈족인 줄 안다니깐.”
“방계 중의 방계 주제에. 그 정도면 대장로님하고는 사돈의 팔촌보다도 더 먼 사이 아닌가?”
현무단의 1조장과 2조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동료를 욕했다.
그것도 그들 곁을 몇몇 현무단원들이 힐끔거리며 지나가는데도 말이다.
그럼 그들이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뭘까?
행여나 남궁건이 자기 욕한 걸 전해 들을 수도 있는데 현무단 1조장과 2조장은 왜 저리 당당한 걸까?
그 이유는 당연히.
“단주님, 저희 말이 틀렸습니까?”
“조만간 남궁건 정신교육 한번 시키시죠.”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현무단에서 남궁건보다 직위가 높은 사람, 현무단주 남궁남호 말이다.
“놔둬라. 쓸모는 있는 놈이니.”
남궁남호라고 눈치가 아예 없는 바보 천치는 아니니 어찌 모를까.
현무단의 많은 단원들이 자신보다 남궁건을 더 믿고 따른다는 것을.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지금의 자리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잠시 거쳐 가는 자리일 뿐이니.
그에게는 거창한 꿈이 있었다.
‘다음 남궁세가의 가주는 나다.’
그래서 아버지의 한을 풀어 드릴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꼭 아버지의 한이 아닌,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라도 가주가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실적이 중요하고.
당장 남궁도만 해도 천마를 이기고 정마대전을 종식했단 이유로 가주가 되지 않았는가.
반쪽짜리 핏줄, 서자 따위가 말이다.
남궁남호가 부하들의 사정 따윈 봐주지 않는 이유였다.
그들은 어차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일 뿐이니까.
남궁건은 그중 가장 훌륭한 도구다.
그 역시 출신이 천해서 그렇나.
출세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했다.
그 공적은 현무단주인 자신의 몫이었고.
“단주님이 직접 나서기 뭐하면 저번처럼 우리가 나설까요?”
“……저번 일?”
스윽, 1조장이 이번에는 주위에 누가 없는지 살피더니 말했다.
“남수단원들을 손봐 준 일 말입니다.”
아, 그 일.
남수단원과 현무단원이 다툰 것은 사실 우연이 아니다.
남궁남호가 시킨 것이다.
1조장 강문환과 2조장 영달에게 남수단원들 좀 때려 주라고 명령을 내렸었다.
자신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은 임무를 훌륭히 완수했고.
그럼 이 대목에서 궁금할 것이다.
남궁남호는 왜 그런 명령을 굳이 내린 것일까?
한집안 식구끼리 사이좋게 지내지는 못할망정.
‘아버지는 남궁정혁이 왜 그리 싫은 걸까?’
단순히 숙적, 남궁도의 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보단 좀 더 본능적인 혐오랄까?
가끔 대화를 나누다 남궁정혁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아버지는 움찔했다.
고고한 척, 감정 표현을 잘하지 않는 아버지가 그렇게 질색하는 걸 보면 오히려 남궁도보다 남궁정혁을 더 싫어하는 것 같단 말이야.
그러니 남궁남호인들 남궁정혁이 이뻐 보이겠는가.
당연히 싫지.
그렇다고 단지 그 이유만으로 일부러 시비 걸라고 한 건 아니다.
‘고작 새 건물 하나 생겼다고 우쭐대는 꼴이란.’
저 멀리서도 눈에 띌 만큼 화려한 남수단 새 건물이 왠지 눈에 거슬렸다.
새 건물 생겨서 좋다고, 목에 힘 빳빳이 주고 다니는 남수단원들은 더 꼴 보기 싫었고.
그래서 제 주제 좀 깨달으라고 일을 벌였다.
이번엔 남수단주, 남궁정혁 차례이고.
내기에서 이겨 그놈의 자존심을 납작하게 짓밟아 버려야겠다.
효도가 별건가, 이게 효도지.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딸랑딸랑.
어디서 방울 소리가 들렸다.
“……?”
이상하다.
보통 방울 소리는 맑지 않나?
그런데 뭐냐?
음침한 것이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 돋는 이 방울 소리는.
“……단, 단주님.”
영달이 화들짝 놀라 한곳을 가리켰다.
“……!”
강시가 나타났다.
어젯밤 그렇게 찾을 때는 코빼기도 안 비치던 놈들이 저 언덕 너머에서 스스로 모습을 나타났다.
그 자리에서 벌써 일어선 남궁남호가 외쳤다.
“전 대원, 전투준비.”
* * *
다행이다.
현무단원들은 아까 산에 오를 때 만났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아마도 진이 빠져 계속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듯싶은데…… 그러게 왜 무리해서 밤을 새웠어?
나야 찾는 수고 덜어서 좋긴 하다만.
“강시를 격퇴하라.”
그래도 현무단이 괜히 남궁세가의 전투부대로 명성을 날리는 게 아니다.
언덕을 뛰어오르는 저들의 날렵한 몸놀림을 보니 전원이 일류 고수 이상이다.
그중 상당수는 절정 고수이고.
‘잘 쫓아와라.’
현무단원들이 언덕을 거의 다 올랐을 때쯤, 남궁정혁이 또 방울을 울렸다.
그러자 강시들이 콩콩콩, 또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습지로 가는 거지.
그러니 현무단원들은 얼마나 짜증이 나겠는가.
실컷 쫓아가면 강시들이 저리 도망가니.
특히 남궁남호가 그랬다.
“네 이놈, 비겁하게 왜 자꾸 도망가는 것이냐? 당당하게 승부를 겨루자.”
그가 강시를 이끄는 영환술사에게 소리쳤다.
물론 그 영환술사는 남궁정혁이고.
그는 움막에 있던 검은색 거적때기로 온몸을 꽁꽁 감쌌다.
“내가 무섭냐? 나랑 승부를 가리자.”
덕분에 남궁남호도 영환술사가 남궁정혁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현무단을 살살 꾄 지, 한 시진쯤 되었을까?
사당이 멀기는 더럽게 멀었다.
그 먼 거리를 쫓아 온 현무단원들도 대단하고.
저들에 끈기에 박수 쳐 주고 싶네.
행여나 중간에 포기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네 손에 잡히면 내 놈을 갈기갈기 찍어 죽이겠다.”
독이 바짝 오른 남궁남호가 무려 맨 앞에서 씩씩대며 쫓아오는 걸 보니 그런 걱정을 할 필욘 없었지만 말이다.
이것이 내기를 통한 능률 상승?
그렇게까지 나를 잡고 내기에서 이기고 싶은가?
의외로 승부욕이 있구나.
그렇게 남궁남호에게 온갖 쌍욕을 먹어 가며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물이 고인 작은 습지가 보였다.
‘그리 크지는 않네.’
농사지을 때 쓰려고 물을 모아 두는 작은 웅덩이 정도?
발목까지 잠기는 물을 헤치고 습지 중앙에 있는 낡은 관제묘로 갔다.
만든 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한 그곳으로.
삐걱, 안으로 들어가니 바닥 정중앙에 뻥 뚫린 구멍이 보인다.
아마 저곳이 지하로 내려가는 동굴 입구인가 보다.
“어디로 가는 것이냐? 거기로 가면 내가 못 쫓아갈 줄 알고!”
아니, 쫓아오라고 가는 거야.
남궁남호와 현무단이 관제묘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 남궁정혁이 동굴 밑으로 털썩, 몸을 던졌다.
“우리도 들어간다…… 너희들이 먼저 들어가 봐.”
현무단원들이 몸을 던졌고, 남궁남호도 맨 마지막으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혈강시 삼십여 구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모른 체.
현무단 백 명 대 혈강시 삼십 구.
과연 누가 이길까?
아니, 이 싸움으로 누가 가장 득을 볼까?